Tunikut's Cultural Paradise

official drafts

Verbal Jint 연대기 Part 2

tunikut 2009. 12. 8. 09:59

 

 

누명 (2008, Hiphopplaya/Overclass)

  

일단 "누명"이라는 일생일대의 역작은 여태까지의 한국힙합 앨범과는 좀 다르게 이해돼야 합니다. 제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이제까지의 한국힙합씬에서 이같은 걸작은 분명 없었으며 앞으로도 이 정도의 퀄리티를 갖춘 앨범이 나올까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입니다. 이를 반영하듯 본작은 2009년 제6회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랩 & 힙합 음반에 선정되기도 했었죠. 이 음반은 일단 시작부터 끝까지 VJ 자신을 주인공으로한 뮤지컬 형식의 스토리입니다. (제가 제 블로그에 그 스토리를 뮤지컬식으로 꾸며서 올려놓은 게 있으니 혹시 궁금하신 분은 방문을.. http://blog.daum.net/tunikut/840 *^^*) 그의 노력과 진심을 알아주지 못하고 억울한 누명을 쓴 주인공이 사형 선고를 받는 과정을 마치 영화의 배경음악과 같은 인스트루멘틀로 앨범의 문을 열고 있으며 잠시 과거 회상을 통해 그에게 있었던 일들, 자신의 노력, 자신의 능력, 사랑 등 '좋았던 시절'이 지나가고 앨범 후반부에 다시 현실로 돌아오며 씁쓸한 회심과 함께 사형을 언도당하는 과정을 앨범으로 표현한 거죠. 영화 "박하사탕"과 유사한 형식을 띠고 있으며 중간중간 interlude처럼 흘러가는 인스트루멘틀은 마치 영화 "박하사탕"에서 시간이 바뀔 때마다 나오는 기찻길씬과 유사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인터뷰에서 얘기했듯 자신의 진심이 담긴 '소울 뮤직'이라는 점에 공감하며 (여기서 얘기하는 '소울'은 당연히 장르상의 소울은 아닙니다.) 이 앨범을 만들면서 그 역시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다 쏟아부은 듯, '마지막 정규작'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물론 결과적으론 아니었지만요^^) 본작의 가치는 이미 "Favorite" "무명"에서부터 쌓아온 그의 '아티스트적 역량'이 집대성된 작품이라는 겁니다. 이제 그는 더 이상 '라임'이나 '스킬'에 중점을 두지 않으며, 자신이 직접 가상악기와 미디를 이용해 그의 감성을 듬뿍 담아 작곡한 비트들에 그 만의 '소울'이 담긴 가사들과 스토리텔링을 말하는 lyricist로서의 면모를 보인다는 것이죠. 그 동안 여러 훌륭한 프로듀서들의 비트가 담긴, 혹은 여러 훌륭한 엠씨들의 랩과 리릭이 담긴 앨범들은 물론 많이 있었지만 그 모든 것이, 아티스트 자신이 직접 겪은 자신의 감정과 '소울'을 담은 음악과 가사들로 집대성된 작품은 본작이 유일하며 그게 바로 제가 이 음반을 역대 한국힙합 사상 최고의 걸작이라는 말을 하는 이유입니다. 사형 집행 후 죽어가는 과정에서 어린시절을 회상하는 "사자에서 어린아이로"로 이 스토리는 끝을 맺고 마지막 트랙으로 흘러나오는 "여여(如如)"를 듣다보면 '변함이 없음, 진실의 모습'이라는 한자어 뜻과 더불어 윤회사상, 뫼비우스띠와 같은 묘한 불교철학적 여운을 남기며 마치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답니다.  

 

사수자리 Vol. 1: 모범라임즈 (2008, Overclass)

 

당시 한국힙합씬에 만연하던 '믹스테잎붐' 속에서 발표된 그의 첫번째 믹스테잎입니다. 일단은 이거까지 딱 듣고 나면 버벌 진트라는 아티스트의 욕심은 정말 아무도 못말리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니이거뭐거의완전 한국힙합씬에서 거의 ''의 경지에 오르기 위함인지.. 세상에 "Favorite"부터 "누명"까지 이젠 '라임' '스킬'은 안중에 없는 듯 인스트루멘테이션과 작가주의적 서사에 주인점을 두는 듯 하더니, 본인도 아쉬웠던지.. 아님 입이 좀 근질거렸는지, hater들에게 그가 왜 '랩잘하는 엠씨'인지 일깨워주기 위함인지는 모르겠지만 (개인적인 생각엔 그냥 중간중간 머리 식히기 위해 만든 듯), 외국곡들의 MR에 얹은 그의 랩은 정말 '촌철살인'이라는 표현이 아깝지 않습니다. 특히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었던 "놈놈놈"이나 "A Milli"에선 사우스 비트에 평소 그의 앨범에서 들을 수 없었던 플로우를 보여주는데 느릿느릿한 비트에 속사포처럼 쏴대면서 아찔아찔하면서 완벽하게 라임은 다 맞추는 랩을 듣다보면 마치 한국힙합씬의 궤도에서 혼자 이탈해 냅다 우주로 날아가버리는 듯 합니다. 이 믹스테잎을 들으시고 재미없다고 느낄 분들은 아마도 없지 싶은데요, 이게 왜 재미있냐면 Jay-Z, Lil Wayne, Yung Joc, Akon, Arrested Development, Biggie, J Dilla, The Roots, Slum Village, 그리고 Daftpunk까지 평소 그가 주로 프로듀싱하던 미디에 기초한 사운드가 아닌 다양한 구질의 본토 비트들을 가지고 랩을 했기 때문에 일단 굉장히 '색다른 VJ'를 느낄 수 있다는 거고 가사들 역시 평소 그의 주된 테마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으나 믹스테잎 답게 보다 노골적인 표현과 재치어린 펀치라인들이 남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VJ ''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본 믹스테잎을 제외하고 얘기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우왕ㅋ굿ㅋ !!!!!

 

누명 Afterplay (2008, Annie Dog Music/Overclass)

 

"누명" 시즌을 마치며 "누명"에서 그가 프로듀스한 곡들의 인스트루멘틀과 각각의 악기 샘플들을 완전 해체시킨 작품으로 감상용이 아니고 엠씨들을 위한 인스트루멘틀과 프로듀서/DJ들을 위한 샘플링을 모아놓은 겁니다. 따라서 배포 역시 사전 신청을 받아 원하는 이들만 구입할 수 있도록 했죠. VJ에 대한 컬렉터스 아이템 정도로 보시면 될 듯 합니다. 그래도 지루할까봐 중간에 믹스테잎에서 가장 좋은 반응을 얻었던 "놈놈놈" Kjun 프로듀싱 버젼으로 실었는데 개인적으론 그냥 믹스테잎 버젼이 더 좋더군요. ^^ 암튼 이렇게 해서 그는 'Favorite-무명-누명 3부작' 시즌을 모두 마치며 후배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material 하나를 남겨둔 채 잠시 휴식기에 들어가게 됩니다.

 

 

 

 

 

CHAPTER 4. THE NEW ALBUM WITH DELLY BOI

 

자신의 마지막 정규작이라는 누명발표후.. 그는 더 이상 정규 앨범은 발표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했습니다. 제 생각엔 아마도 누명에 너무 에너지를 쏟아부은 나머지 이제 당분간 바쁘기도 하고 (그는 모대학 로스쿨에 입학합니다.) 앨범 작업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그간 믹스테잎과 몇몇 디지털 싱글을 발표하며 팬들의 갈증을 달래주었고.. Michael Jackson을 비롯 수많은 명사들의 사망 소식이 이어졌고.. 찬 바람이 불 무렵, 버벌 진트의 새 앨범에 대한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이번엔 그의 솔로작이 아닌, 같은 오버클래스 소속의 프로듀서 Delly Boi와의 프로젝트로서 말입니다.

 

Verbal Jint with Delly Boi [The Good Die Young] (2009, Annie Dog Music)

 

, 얼마전 발매된 따끈따끈한 버벌 진트의 새 앨범입니다. 제가 이 앨범을 듣고 가장 먼저 떠오른 소감을 "순수로의 회귀, The Return to Innocence Lost"라고 표현해보는 게 어떨까 생각해요. 좀더 구체적으로 얘기해보자면.. 그야말로 수많은 벽을 넘고 불길을 지난 그가 이제 드디어 마침내 '처음'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됐다는 그런 느낌이라고 할까요.. (물론 지극히 주관적인 해석입니다.) 무슨 얘기냐면, 물론 버벌 진트의 정규 '1' "무명"입니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그 앨범은 '일반적인 한국힙합 엠씨가 발표하는 데뷔작'의 성격을 띤 음반이 아니었죠. , 적당히 '안전빵' 사운드에 적당히 '대중적'인 컨셉과 적당히 영향력있는 보컬리스트나 엠씨의 휘쳐링을 품은 그런 앨범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반대로 엿먹어라식의 왜곡된 사운드와 독기를 품은 가사가 어우러진 컨셉 앨범이었죠. 그리고 바로 거기서부터 그의 역정은 시작됐고 결국 "누명"에서 스스로에게 사형 선고를 해버림으로써 자신을 죽여버리는 지경까지 가게 된겁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 이 과정은 어쩌면 필연이었어요. 데뷔때부터 줄곧 그를 따라다니던 편견과 이에 맞물린 그의 불만과 분노를 반드시 그는 풀고 넘어가야했고 그 과정이 "무명" "누명"으로 이어진 '살풀이'를 통해 나타나게 된 거죠. 그리고 이제.. 잠깐의 휴식기를 가지고 가슴 속에 깊이 품어두었던 짐을 벗어버린 그는 드디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제가 앞서 언급한 '일반적인 한국힙합 엠씨가 발표하는 데뷔작'의 성격을 띤, 대중적인 사운드, 안전한 가사, 그리고 화려한 휘쳐링이라는 삼요소를 지닌 딜리셔스한 앨범을 가지고 다시 왔습니다. (이러한 과정은 "누명"의 마지막 바로 전 트랙인 "사자에서 어린아이로"를 상기해보시면 묘한 연결성이 있음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죠.) 그리고 이 시퀀스를 가만히 곱씹어보면.. 참 안타깝다는 생각도 들기도 합니다. (마치 순수를 잃어버린 어린 아이가 온갖 세상의 여파를 다 겪고 난뒤 마침내 다시 어린아이다운 순수를 찾은 모습이랄까요..) 그럼 이제 씨디를 열어봅시다. Verbal Jint with Delly Boi, 예 그렇습니다. 버벌진트 스스로는 '정규작'이라는 언급을 했지만 (근데 솔직히 잠깐 어떤 생각도 드냐면 원래 정규작이 아닌 프로젝트 앨범으로 스스로도 생각하고 있지만 또 게시판에서 "역시 똑똑하네.. 괜히 말 바꿨다는 소리 듣기 싫으니까 정규작 내면서 프로젝트라고 또 그러네.." 이런 소리들이 또 나올까봐 그냥 아예 몰라씨발그래정규작이야 뭐 이런 느낌도 든다는..) 본 앨범은 힙합 앨범의 가장 전통적인 형태인 'one mc, one producer' 앨범이 맞습니다. 마치 우리 모두 좋아했던 "MFU 2006"이나 "M&A", 그리고 "Stubborn Guys" 등을 연상하시면 될 거예요. 여지껏 그의 앨범들에서 들을 수 있었던 버벌진트식 작곡프로듀싱은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모든 프로듀싱은 Delly Boi가 도맡았고 (물론 3-4곡 공동작곡이 있긴 하지만) VJ는 랩에 집중하는 형식입니다. 제가 또 이번 앨범을 '프로젝트 음반'이라고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본 앨범의 색깔이나 성격에 Delly Boi가 주조해낸 비트들이 기여하는 정도가 매우 크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이미 "Collage 2" 앨범부터 두드러졌던 엿가락 쑥쑥 뽑아내듯 쫙쫙 깔리는 트렌디한 전자음과 패럴 윌리암스, 채드 휴고, 그리고 팀보의 환영이 보이는 듯한 비트들에 적당히 팝적인 감각을 섞은 그의 프로듀싱은 분명 이 앨범이 '맛깔나게' 느껴지는 가장 큰 이유이며 곧바로 이번 앨범의 성격을 규정짓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또한 거기에 휘성, Lisa와 같은 '대중가수'들의 참여와 Tiger JK, The Quiett과 같은 스타급 엠씨들의 참여 역시 이 앨범을 "예쁘게" 만드는 또 다른 요소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 그럼 (그렇다고 하더라도) 역시 가장 중요한 VJ의 랩과 가사는 어떨까요. 제가 지금까지 그의 결과물들을 들어오면서 느꼈던 아쉬운 점 중에 하나는 노랫말의 테마가 다소 제한된 것 같다는 거였는데요, 이번 앨범의 "을지로 5", "Yessir", "Ordinary"로 이어지는 평범한 일상을 덤덤하게 묘사한 힘을 쫙뺀 가사들은 무척 신선하고, "R.E.S.P.E.C.T."가 주는 신실함은 분명 여태까지의 그의 이미지를 전복시키기에 충분하며, "나쁜 교육"의 시사성 또한 보다 확장된 lyrical spectrum을 보여주고 있습니다그럼 좋아하는 트랙들 몇곡을 잠깐 언급하고 끝내겠습니다. 일단 전 제일 먼저 공개된 "무간도"를 듣고, 풋풋했던 "사랑해 누나" 이후, 이젠 거물급으로 성장한 VJ와 휘성이 8년만에 VJ 앨범에서 다시 만났다는 것만으로도 어떤 뭉클함이 느껴졌습니다. 또 앨범 내 가장 신선한 트랙이라 할 수 있는 "을지로 5"는 말할 것도 없구요, 이게 도대체 한국힙합곡인지 본토의 것인지 구분이 안되는 Delly Boi의 업템포 팝비트와 제대로 필받은 VJ의 랩이 환상적인 조화를 보이는 "Yessir"도 무척 멋집니다.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제 생각에 '예술적'이라는 느낌이 드는 트랙은 역시 마지막 트랙인 "La Strada"인 것 같습니다. 이전작들에 비해, 청자를 확 집중하게 만드는 컨셉은 그다지 뚜렷하지 않은 본작이지만 이 곡은 유일하게 앨범 타이틀인 '죽음'을 강하게 암시하고 있습니다. 마치 영화 "8마일"의 오프닝이 연상되는, 스테이지 위에 올라가기 전의 심리 상황부터 결국 무대 위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지는 과정까지를 묘사한 그의 가사와 함께 마치 랩과 비트가 한 벌스씩 주고 받으면서 대화를 하듯 엮어낸 델리 보이의 프로듀싱은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일으킵니다. 거의 연기를 하듯이, 의식을 잃으면서 마지막 힘을 내듯 말하는 "잠깐 내 마이크를 끌께"에 이어, 폭발하듯 터지는 델리 보이의 비트들은 청자들에게 굉장한 카타르시스를 안겨주기에 충분합니다.

 

에필로그

 

휴우.. 이제 끝나네요. 글 한번 우라지게 길게 써봤습니다. 괜히 용량만 많이 차지한 것 같아 죄송하기두 하네요. 암튼 버벌 진트.. 그는 한국힙합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에 한명입니다. 이젠 단순히 그에게 '한국말 라임의 선구자'라는 칭호는 지겨울 정도입니다. 그보단 그야말로 한국힙합씬에서, rhyme, flow, skill, lyricism, instrumentation, 그리고 auteurism을 모두 갖춘 유일무이한 힙합 아티스트가 아닐까 싶네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Originally posted on: http://blog.naver.com/blogmiller/1100754991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