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nikut's Cultural Paradise

official drafts

한국힙합 5인 열전

tunikut 2009. 11. 3. 09:50

들어가며  

 

  우리나라에도 이제 힙합은 더이상 낯선 장르가 아니죠. 소위 말하는 90년대 '랩댄스' 시절을 통해 가요계에 열심히도 힙합 음악을 전파하려했던 파이오니어들 - 진영,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 DJ DOC, 업타운으로 대표되는 - 의 노력에 의해, 그리고 언더그라운드에서 본토 힙합의 현지화를 위해 힘쓰던 여러 뮤지션들의 노력에 의해, 이제 우리나라에도 버젓한 힙합씬이 형성되어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개인적으로도 한국힙합 앨범들을 수집하는 게 취미다보니 저도 모르게 한국힙합의 역사를 그 동안 대략적으로나마 쭉 경험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는데요 얼마전 잠자기 전에 가만히 누워 '한국힙합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다섯을 꼽아보자면?' 대충 뭐 이런 약간 유치쌉싸레한 생각을 해보다가 결국 이렇게 잠시 동안의 지면을 빌어 이야기를 풀어보게 됐습니다. 분명 제 선정기준에 동의하지 못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그냥 '저 인간은 저렇게 생각하나보다'라고 가볍게 넘어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댜. 그럼 시작해 보죠. ^^

 

Tiger JK (타이거 제이케이)

 

  명실상부한 한국힙합의 선구자이자 장인입니다. 자 우리 시간을 거슬러 1995년으로 가봅시다. 95년이 어땠는지 잠시 상기시켜드려보죠. 현진영 "흐린 기억속의 그대" 이후 이렇다 할 후속타를 못날리고 서서히 사람들의 기억에서 멀어져 갔구요, 서태지와 아이들이 "Come Back Home"을 들고 나온 시기이고 DJ DOC가 한참 "머피의 법칙"에 이은 "미녀와 야수", "겨울이야기"로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였으며 듀스는 3 "굴레를 벗어나"를 발표한 시기입니다. 그러던 중, 소리소문 없이 지금은 사라진 오아시스 레코드에서 왠 생소한 이름의 Tiger JK라는 청년이 앨범을 한장 발표합니다. 앨범은 100% 랩으로만 채워진, 그것도 매우 raw하고 둔탁하며 노이즈성 강한 사운드를 담고 있었죠. 당연히 묻혔습니다. 그리고 몇년 뒤, 그는 Drunken Tiger라는 듀오를 결성해 당당히 국내 가요계에 입성하였으며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 그가 왜 중요할까요? 일단 '선구자성'입니다. 자자.. 기억을 더듬어 보세요. 우리나라에서 제대로 된 모양새를 갖춘 힙합 앨범이 처음 나왔던게..? 그래요, 일단 생각나는 아티스트로는 업타운, 김진표, 하이텔 블렉스의 검은소리 1, 갱톨릭 등이죠? 그럼 따져볼께요. 업타운의 데뷔 앨범은 96년이었고, 김진표의 데뷔 앨범은 97, 검은소리 1집 역시 97, 갱톨릭의 데뷔 앨범은 98년입니다. 어때요? 타이거 제이케이의 솔로 데뷔 앨범이 95년이니까 제일 빠르라고 할 수 있겠죠? 다음으로 그가 중요한 이유는 바로 '무브먼트'의 수장이라는 점이죠. 무브먼트라는 크루가 얼마나 현재 국내 방송계를 장악 - 가요 및 예능 모두 - 하고 있는지는 다들 잘 아실겁니다. 얼른 대표적인 예만 들어봐도, 다이나믹 듀오, 에픽 하이, 은지원, (리쌍) 등이 모두 여기 소속(이라고 하긴 좀 그렇지만.. 계약 관계가 아닌고로)이니까요. 이 모임을 처음 만들었으며 현재까지도 '정신적 지주'로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또한 드렁큰 타이거 역시 점차적으로 대중의 사랑을 얻고 있는 상황이구요. 정말 당연히 리스펙 받아야 할 분임에는 틀림없겠습니다.

 

수상경력:

2005 Mnet-Km 뮤직비디오 페스티벌 최우수작품상

2005년 제20회 골든디스크상 뮤직비디오 작품상

2008년 제5회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힙합 노래상

 

MC Meta (엠씨 메타)

 

  자, 타이거 제이케이 못지않게 중요한 분 여기 또 계십니다. 바로 엠씨 메타.. 힙합 듀오 가리온의 리더입니다. 뭐 몇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 분의 위치는 절대적이었고 아무도 의심하는 사람이 없었지만 최근 들어서는 세대가 바뀌면서 이 분의 랩이 별로다 뭐다 말이 많더라구요. 그렇게 된데에는 각종 힙합 매체에서 이 분에 대해 너무나 '신격'화 한 것에 대한 반발심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무튼! , 일단 말이죠, 한마디로 이 분의 업적을 얘기하자면, '한국어 랩'을 창조하신 분이라고 하면 이해가 될까요? 아직까지 제대로 된 라임이나 플로우, 스토리텔링 등이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말로 된 랩이 본토의 그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유사한 형태의 ''으로 되기까지는 그의 끊임없는 노력과 실험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지도 모릅니다. 위에 Tiger JK 95년도에 힙합 앨범을 발표했다고 하더라도 교포 출신이었던 그의 랩이 98% 이상 영어랩이었다고 봤을 때, 또한 시대적으로 김진표 "열외" 100% 우리말랩으로만 된 앨범이라는 중요한 역사성을 띠지만 정작 "열외" 앨범에 실린 라임이라는 게 1차원적인 형태라고 본다면 같은 해 발표된 "검은소리 첫번째 소리"를 비롯, 그 이후로 '가리온'의 이름으로, 혹은 각종 featuring 형태로 발표했던 그의 결과물들은 라임에서부터 킥과 스네어를 타는 플로우, 그리고 스토리텔링 등이 갖춰진 제대로 된 '우리말랩'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성이 높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또한 당시 하이텔 검은소리의 시삽으로 계시면서, 초창기 클럽 마스터플랜 힙합 공연의 핵심 인물로 활동하면서 국내 언더그라운드 힙합씬의 형성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셨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높다고 하겠습니다. 또한 밑에 다시 나오겠지만 '소울컴퍼니'라는 언더그라운드 레이블의 설립에 결정적인 '후학 양성'을 한 업적 또한 무시할 수 없겠구요. 그의 랩은 라임이라는 측면보다는 킥과 스네어를 정확하게 타는 그만의 개성적인 플로우에 때때로 선보이는 촌철살인의 엇박랩, 그리고 거기에 어우러지는 스토리텔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이런 것들을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그가 처음 만들었구요.

 

수상경력:

2006년 제3회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힙합 싱글상

 

Verbal Jint (버벌 진트)

  

  다음, the one and only 버벌 진트입니다. 90년대 후반 당시 하이텔에는 검은소리가 있었다면 나우누리에는 SnP가 있었는데요, SnP는 당시 언더그라운드 흑인음악씬에서 가장 왕성한 창작물들을 발표하던 모임입니다. 데모 씨디 형태로 발표된 당시 작품들은 현재는 초희귀레어아이템들로 불리우는 것들인데요, 여기 소속된 분들만 해도 지금은 너무나 유명한 Defconn, 휘성, P-Type, Krucifix Kricc, 4WD, 절정신운한아, 그리고 지금 얘기하는 Verbal Jint등입니다. 단조직입적으로 말해 이 분 없었더라면 지금의 우리말랩에 있어서의 라임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위에 언급한 MC Meta '한국어랩'을 완성하였다면 거기에 Verbal Jint '한국어 라임'을 정립했다고 할 수 있죠. 지금이야 버벌 진트하면 워낙에 마음고생을 하신터라 상당히 cynical하고 sarcastic하고 arrogant한 이미지지만 당시만 해도 꽤 naive했었는데요, 나우누리 게시판에 여러 본토 엠씨들의 라임들을 일일히 예를 들어가며 '현재의 우리말 랩에 있는 라임들도 이러이러한 식으로 변화해 나가야 한다'는 내용의 제법 진지한 고민을 다룬 글들을 올리곤 했습니다. 다시 하던 말을 계속 하자면 버벌 진트 이전의 라임과 버벌 진트 이후의 라임으로 크게 갈린다는 점인데요, 그 이전의 우리말랩의 라임이라고 한다면 "~하지/~했지/단무지/허벅지" 처럼 끝음절만 일치시키면 되는 줄 알았다는 거였지만 버벌 진트가 만든 이후의 라임은 모음을 활용한 (본토 힙합 그대로의) 라임이라는 점이 매우 중요합니다. 흔히 그의 대표곡들 중 하나인 "Overclass"에서의 hook 부분의 "Suckers can't feel my rhymin'/어떻게 이런 놈들과 나란히/힙합을 얘기하니/아까워 내 시간이"로 대표되는 진정한 의미의 라임이라는 거죠. 지금은 그가 만들어놓은 이 라임 방법론을 따르지 않는 엠씨는 없습니다. 언더그라운드씬이나 메인스트림의, 심지어는 최근 백지영씨의 "내귀에 캔디"의 후렴구에서 "내 귀에 캔디, 모처럼 달콤했니"에서 '캔디' '했니'의 라임 맞추기가 바로 Verbal Jint가 치열한 고민을 통해 만들어놓은 거라고 보면 굉장히 대단한 인물임에는 틀림 없습니다. 그는 또한 한국힙합 초창기 세대임에도 최근까지도 '오버클래스'라는 진보적인 힙합 크루를 결성해 유행을 앞서가며 씬을 리드하고 있답니다.

 

수상경력:

2009년 제6회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랩/힙합 음반상

 

The Quiett (더 콰이엇)

 

  더 콰이엇은 언더그라운드 레이블 Soul Company 소속의 엠씨이자 프로듀서입니다. 일단 Soul Company라는 레이블은 레이블 이전에 하나의 크루처럼 시작을 했는데요, 바로 이 소울 컴퍼니라는 레이블이 생기면서부터 국내 힙합씬에도 본토와 유사한 형태의 레이블-크루 위주의 소속과 활동, 그리고 앨범 발표가 활성화됐다는 거죠. 그리고 그 형태는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구요. 그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힙합 앨범이라는 게 메인스트림에서는 기획사에서, 언더그라운드라고 해봤자 대학동아리나 피씨 통신, 혹은 인터넷, 밀림닷컴 등을 중심으로 앨범 발표가 이뤄졌다면 Soul Company의 등장 이후로 신의 의지, Big Deal, 한량사, 가라사대 등에서 현재의 Overclass, Salon 01, Jiggy Fellaz, Soul Connection 등과 같은 레이블 혹은 크루 중심으로 각종 공연 및 앨범 발표가 이루어지게 됐다는 거죠. 이 중 The Quiett은 이러한 언더그라운드 형태의 레이블 운영과 앨범 발표에 있어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초창기 양대 언더힙합 컴필레이션이라 할 수 있는 신의 의지의 "People & Places Vol. 1"의 대다수의 곡들을, 소울 컴퍼니의 "The Bangerz"의 전곡을 프로듀싱했는데요, 이는 또한 그가 한국힙합씬에서의 '합합 전문 프로듀서'라는 존재의 시작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마치 본토처럼 말이죠. The Quiett의 등장 이후로 전문적으로 힙합 음악을 만드는 프로듀서들의 이름이 대두되기 시작했고 본토에 DJ Premier, J Dilla, Pete Rock, Dr. Dre, Just Blaze, Kanye West 등등 처럼 국내에도 Loptimist, Critickal P, Mild Beats, Primary, Keeproots, Keslo, Xepy, Delly Boi 등등등 처럼 힙합 전문 프로듀서들이 활발한 활동을 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걸고 솔로 앨범도 발표하기도 하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서는 다소 뜸한 듯하나 작년까지만 해도 본인의 솔로 앨범들 뿐만 아니라 윤미래 "검은 행복"을 비롯한 여러 힙합곡들을 프로듀싱하며 매우 정력적인 활동을 보였습니다. 또한 그의 랩 역시 뛰어난 스킬을 보여준다고는 할 수 없으나 잘 정렬된 라이밍과 더불어 "상자속 젊음"과 같은 곡에서 많은 고등학생들의 심금을 울린 바 있는 국내에 몇안되는 lyricist로서도 그 존재 의미가 크다 할 수 있겠습니다.

 

수상경력:

2007년 제4회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힙합 앨범상

 

Tablo (타블로)

 

  뭐 이 분에 대해서야 많은 설명 필요 없겠지요. 한국힙합씬을 봤을 때 제 생각에 이 분의 가장 큰 업적은 바로 '힙합의 대중화'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 딱 짤라놓고 말해서 에픽 하이 이전의 가요씬과 이후의 가요씬에 큰 차이를 남겼다는 점이죠. 일단 에픽 하이라는 이름이 대중들에게 알려지기 전에도, 언더그라운드성이 짙었던 1집 발표 당시 그는 단독으로 TV 예능프로그램 및 시트콤, 그리고 라디오 디제이 등을 통해 그의 이름을 알려갔습니다. 그러면서도 중간중간 에픽 하이의 이름이나 힙합 음악에 대해 대중들에게 알리는 것을 잊지 않았는데요, 그럼으로써 점차 대중들이 '힙합 음악'에 대해 거리감을 덜느끼도록 만들었다는 거죠. 물론 그 이전부터 양현석씨나 정연준씨 등 국내에 힙합 음악을 대중화시키기 위해 애를 쓰신 분들이 많이 계셨지만 타블로 만큼이나 확실하게 대중들에게 정곡을 찔러준 인물은 없었다는 겁니다. 윗글과 중복되는 내용이지만 현진영-서태지와 아이들-듀스-DJ DOC-업타운 era '랩댄스' 시절이었고 제대로 모양새를 갖춘 힙합을 들고 나온 Drunken Tiger, CB Mass, Dynamic Duo까지만 해도 대중들과 매니아 층 사이를 왔다갔다하는 중간 정도의 위치였다면 에픽 하이의 "Fly" 이후부터는 여느 아이돌 그룹 못지 않은 인기와 앨범 판매고를 구가하게 됐죠. 그리고 에픽 하이 이후로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하던 Mighty Mouth, Untouchable, Outsider, 그리고 최근의 Supreme Team까지 온전한 형태의 힙합을 가지고 그대로 메이져씬에서 활약을 보이게 됐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그의 음악성이야 말할 것도 없겠지만요.

 

수상경력:

2005M.net KM Music Festival 최우수 힙합부문 상

골든디스크 최우수 힙합부문 상

KBS 연예대상 올해의 아티스트

SBS 가요대전 힙합부문 상

2007 M.net KM Music Festival 올해의 음반, 최우수 힙합부문 상

골든디스크 올해의 가수상

KBS 연예대상 올해의 가수상

2008M.net KM Music Festival 최우수 힙합부문상, 작사상

서울가요대상 올해의 음반, 올해의 가수상

5회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힙합 음반, 네티즌이 뽑은 올해의 음악인

2009년 싸이월드 디지털 뮤직 어워드, 베스트 앨범 어워드 수상

 

마치며

 

  글쎄요, 뭐 한국힙합씬의 '핵심인물 5'을 나름대로 뽑아봤지만 그 밖에도 이 땅에 힙합이라는 음악을 정착시키기 위해 노력한 수많은 아티스트들에게 이 자리를 빌어 respect의 마음을 건네며 글을 마칠까 합니다. Hip Hop Forever!

 

* Originally posted on: http://blog.naver.com/blogmiller/1100727397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