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nikut's Cultural Paradise

official drafts

Verbal Jint 연대기 Part 1

tunikut 2009. 11. 19. 09:21

 

 

 

 

프롤로그

 

버벌 진트 (Verbal Jint A.K.A. VJ A.K.A. King of Flow)… 한국 힙합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하나이자 가장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하는 인물입니다. 매번 앨범을 발표할 때마다 화제를 모으며 당대 한국 힙합씬의 가장 큰 화두로 대두되는 그.. 얼마전 그의 신보가 발매되었는데요. 이를 계기로 오늘은 이 자그마한 지면을 빌어 연대기순으로 그의 앨범들과 함께 그에 대한 이야기를 잠시 나눠볼까 합니다. (그가 왜 한국 힙합씬에서 중요한지 및 그가 창조한 한국말 라임에 관한 얘기는 제가 지난달에 쓴 "한국힙합 5인 열전" 포스팅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CHAPTER 1. SHOW N PROVE ERA

 

일단 Show N Prove (SnP) 90년대 후반 PC 통신 나우누리에 있던 '흑인음악창작동호회'를 말합니다. 여타 흑인음악 동호회와는 달리, '창작'이라는 관심사를 두고 모인 이들로서, 회원들이 모두 자작곡들을 발표하면서 데모씨디 형태의 앨범을 소량으로 발매하기도 했었죠. 개인적으로는 당시 '언더그라운드 힙합씬'(아직 ''이란 게 형성되기도 전이긴 하지만)에서 가장 왕성한 창작 활동을 보여주었던 모임이고 '한국말 라임'의 혁신을 이룬 집단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중심에 바로 버벌 진트라는 인물이 있었습니다. 당시 이 모임에 있었던 인물들을 잠시 열거해볼까요? 지금은 너무나도 유명한 휘성을 비롯, Defconn, P-Type, Krucifix Kricc, b-soap, 4WD, 절정신운한아, Trish Park, Tafka Buddah, 그리고 오늘 얘기하는 Verbal Jint 등이 바로 그들입니다.

 

Sex Drive (2000, Ill Supa Entertainment)

 

그의 이름을 걸고 나온 첫번째 결과물. SnP 활동 당시 hand-made CD-R 형태로 제작돼 회원들에게 판매된 싱글입니다. 이미 본작에서부터 그가 치열한 고민 끝에 창조해낸 한국말 라임과 이를 이용한 다음절 라임이 등장하고 있으며 동명 타이틀곡 "Sex Drive"에서는 지금 들어도 파격적인, 섹스에 관한 상당히 explicit한 단어들을 남발하며 그와 콤비를 이룬 Shy-D a.k.a. Defconn의 역시 노골적인 메타포들("쾌감의 일출봉"이 대표적)과 비트를 뭉개버리는 플로우가 블루지하면서 끈적한 버벌 진트의 비트 위에 절정을 이룬 명곡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 밖에 몇년 후에 다시 부활하는 그의 숙명적인 테마 "To All The Hip Hop Kids"의 첫 버젼이 본 싱글에 수록돼 있기도 한데 업타운, 원타임, 다크루, 그리고 MP에 대해 싸잡아 "fuck all that", 클럽에서 죽때리는 여성팬들을 '*구리나 원하는 썅*'이라고 표현해버리는 과감함으로 시작부터 논란을 일으킵니다. 

 

Modern Rhymes EP (2001, Annie Dog Music)

 

그의 첫번째 official release이며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그가 '창조'해낸 한국말 '라임'이 공식적으로 세상에 모습을 들어낸 신호탄과 같은 작품입니다. 후에 그가 결성한 크루 이름이 되는 "Overclass"라는 곡을 시작으로 휘성과의 콜라보 (이 곡 역시 휘성의 첫번째 솔로 오피셜 레코딩입니다.)를 이룬 "사랑해 누나"를 비롯해 "Drama" 등의 트랙들을 통해 라임 스킬 뿐 아니라 스토리텔러로서의 면모도 보여줍니다. 아직까지는 전통적인 작법인 cut&paste에 기초한 루핑에, 재지한 샘플링을 이용한 프로듀싱을 보여주고 있는데 아직 '괴물'이 되기 전의 풋풋한 모습이랄까요. "Overclass"를 통해 이후 누명까지 그가 짊어지고 가게 되는 고민을 표출하고 있으나 아직 앨범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10대와 20대 초반의 상황과 감수성이 물씬 느껴진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CHAPTER 2. RETURNIN’ TO THE RAP GAME

 

그 후로 오랜 시간이 흐릅니다. 전 솔직히 버벌 진트가 거의 반은퇴한 줄 알았습니다. 간간히 다른 아티스트들의 휘쳐링과 프로듀싱 등으로 가뭄에 콩나듯 그 이름을 들어볼 수 있었지만 역시나 Sex Drive Modern Rhymes EP의 인상이 너무나 강렬했던 저에게는 그의 복귀가 무척 기다려졌습니다. 특히나 그 사이 Digital Masta 사건 등등 안좋은 루머가 들렸고 이제 그 카리즈마틱했던 버벌 진트는 그냥 그렇게 사라지는 건가 걱정도 들었습니다. (물론 제가 바빴던 시기여서 관심이 없어서 그랬는지 몰라도 그 사이 그는 공일오비, Lisa, 베이비복스, 휘성, 이현도, 주석, 다이나믹 듀오, 데프콘, Size of Fullbite, 맥시멈 크루 등의 앨범에 휘쳐링 혹은 프로듀싱으로 번외 활동들을 계속 했습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6년 뒤, 힙합팬들이 다이나믹 듀오, 신의 의지, 소울 컴퍼니, 그리고 빅딜에 한참 빠져있어 그의 이름이 약간씩 잊혀져갈 무렵, 그는 새로운 EP 앨범 한 장을 가지고 다시 우리곁에 돌아옵니다.

 

Favorite (2007, 만월당)

 

하하.. 다시 돌아온 그는 역시 그다웠습니다. 이렇게 완벽한 컨셉을 갖춘 EP는 전 여태 못본 것 같습니다. 앨범 자켓부터 느껴지는 야릇한 분위기 - 예쁜 여자 모델이 왠 모텔 침대 같은 데서 무릎을 꿇고 응시하는 - EP 전체를 감싸는 정말 대단한 컨셉입니다. 바로 Sex Drive부터 시작됐던 그의 '사랑과 섹스' 테마를 '앨범 통째'로 구현한 셈인데요, 그가 서서히 '괴물'로 느껴지게 되는 이유가 본작부터 시작이 됩니다. 일단 그가 잠깐 해보던 - 실제 그는 인터뷰에서 '이런 방식은 잘 못한다'고 고백하기도 했듯 - 컷앤페이스트와 샘플링을 벗어 던지고 미디에 기초한 작곡과 연주로 모든 곡들을 채워나갑니다. (또한 이러한 방식은 최근의 트렌드이기도 하죠) 흑인음악뿐 아니라 Rock팬이기도 하며 기타리스트이기도 한 그는 직접 70년대 사이키델릭록 분위기를 살려 오프닝 트랙 "합꿍"을 통해 '약에 취한 더러운 섹스'의 퇴폐적인 분위기를 물씬 내다가 난데없이 urban pop 사운드에 상큼한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재끼는 "Favorite"을 거쳐 앨범의 백미인 "Make Up Sex"에 이르면 정말로 끈적끈적한, 마치 80년대 한국 가요에서 느껴지던 아련한 분위기에 질퍽한 가사들이 여과없이 흘러나옵니다. "Interlude"에서의 게스트 조효제씨의 목소리와 웃음 소리를 듣다보면 10대의 감수성, - 그 왜 그런 거 있죠, 잘 나가는 녀석, 싸움도 잘하고 얼굴도 잘생기고 공부도 잘하는 녀석이 여자 친구도 예쁘고 막 섹스도 하고 하는 그런 녀석을 바라보는 그저 평범하기 이를데 없는 내가, 그가 부러우면서도 죽이고싶고 나 자신에 대한 혐오와 함께 혼자 몰래 마스터베이션을 해버리는 ', 나도 저런 예쁜 목소리의 여자친구를 갖고 싶다, 너의 favorite, 그게 내 favorite이었으면.. - 뭐 그런 10대의 심리까지 이끌어내고 있다는 점입니다. (아니 저만 그런 감정을 느낀 걸수도 ㅎ) 이 앨범부터 제가 그에게 느낀 점은 그저 '라임과 플로우, 스킬'을 강조하던 엠씨가 아닌, 완벽한 컨셉과 작가주의, 그리고 인스트루멘테이션을 갖춘 '아티스트'라는 점이라는 겁니다. 

 

CHAPTER 3. STRUGGLIN’ AND DEBATIN’     

 

자 그렇게 화려하고 강렬하며 중독적인 EP 이후, 이제 그의 커리어에 있어 가장 중요한 두 장의 앨범이 발표됩니다. 바로 '무명'.. 그리고 '누명'입니다. 이 앨범들을 발표할 무렵부터 그는 SnP 시절부터의 동료 b-soap Steady B.와 당시 데뷔 앨범을 발표한 Warmman & Lobotomy, 그리고 BrownBeat 레이블에서 시작된 Salon 01의 멤버들을 규합하여 그의 가장 인상깊었던 모던 라임즈 트랙 "Overclass"의 제목을 그대로 받아 '오버클래스'라는 크루를 조직하게 됩니다. 이후 가장 hot한 엠씨들인 Swings San E가 가세함으로서 명실상부 '한국힙합씬의 대안'과 같은 성격을 띤 진보적인 크루로서 성장하지만, 특유의 '나르시즘'적 애티튜드 때문에 반감도 많이 사고 논란도 많이 일으키게 되죠. (Salon 01은 후에 분리돼 나와 다시 독자적인 노선을 걷습니다.)

 

무명 (2007, Hiphopplaya/Overclass)

 

이 앨범은 참 특이한 앨범입니다. 일단 버벌 진트의 공식적인 첫 '정규작', 소위 '1'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흔히 정규 데뷔 앨범을 내는 마인드와는 전혀 다른 작업을 했습니다. 일단 그가 인터뷰에서 밝혔다시피 본작의 컨셉은 "힙합 지진아들 머리 좋아지는 앨범"이라는 거죠. 바로 그가 예전부터 고민해오던 그것. 아무리 고급 요리를 해줘도 '삼겹살에 소주'가 최고인 줄 아는 답답함.. 바로 그 마인드에서 이 앨범이 탄생했습니다. 제 생각엔 버벌 진트 스스로는 한장의 싱글과 두 장의 EP, 그리고 번외 작업들만으로도 그에 대한 커리어는 충분하다고 생각한 듯, '정규 1'이라는 부분을 크게 염두하지 않고 만들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저 하나의 '주제'에 대한, '빛이 없다'는 의미의 '無明' 타이틀에 '닭장 속 가득한 닭대가리들' 자켓을 놓고 제대로 한번 표출해보고 싶었다는 거죠. 일단 주요 가사들을 봅시다. "I'm tired of that 정박아랩 떠떠떠떠"(투올더힙합키즈투), "정규가 아니라 판단할 수 없대 병신들"(개꼬장), "농담이 아니야 이제 니들에겐 아까워"(개꼬장) 등등.. 아주 제대로 독기가 찼죠. 하지만 이 앨범은 이런 메시지에서 끝나는 게 아니고 사운드적으로도 그 동안 스스로 모든 곡들을 프로듀싱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오래된 엘피, Warmman, Lobotomy, Kjun, Giant, Nuoliunce 등의 외부 프로듀서들을 영입해 당시 한국힙합씬의 정형화된 사운드 - 90년대 프리모/피트락에 기반한 - 에서 벗어나 클럽튠과 Neptunes, Def Jux J Dilla의 아우라가 느껴지는 비트들을 통해 때론 미니멀하게, 때론 정박에서 벗어나거나 아예 우주로 날아가버립니다. 그렇게 확고한 컨셉과 새로운 사운드를 가지고 등장한 본작은 하지만 한가지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바로 어쩔 수 없이 앨범의 '통일감' 측면인데요, 물론 '거장'이 되면 좋다고 '거장'이 잠깐 실수를 하더라도 '의도된 거겠지'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기에 본작의 허술하고 뭔가 듬성듬성 빈 듯한 구성도 역시 그가 의도한 것이라면 할 말 없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역시 아쉬운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앨범 타이틀과 자켓부터, 뭔가 굉장히 짙은 '독기'''이 선 앨범일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정작 과감한 독기를 품은 곡은 "투올더힙합키즈투", "개꼬장" 그리고 "Cold As Ice" 단 세 곡 뿐, 감수성 어린 스토리텔링이나 자전적인 이야기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라는 거죠. 그런 부분에서 비슷한 컨셉의 앨범이었던 Deegie ""가 떠오릅니다. 앨범의 전반부 연속으로 독기를 들이댄 트랙들 때문에 듣는 사람을 거의 토나올 지경까지 몰고 갔던 Deegie의 작품처럼 이 앨범 역시 전반부 너뎃 트랙들을 그런 식으로 몰고 갔다면 보다 '확실한 컨셉'과 통일감을 구현할 수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군요. 암튼.. 이 앨범 이후, 앨범이 담고 있는 메세지에 당연한 듯, 그에 대한 엄청난 찬사에 반비례해 그 못지 않은 논란과 반감, 그리고 소위 'IP 사건'으로 대표되는 몇몇 불미스런 루머들이 생기게 되고 이는 결국 '누명'이라는 그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낸 역작의 발표로 이어지게 됩니다.

 

누명 간보기 (2008, Overclass)

 

사실 이 앨범은 여러 팬들 사이에서 '안내도 됐을 음반' 내지는 '777장 한정발매됐으나 아직도 판매 중인 굴욕 앨범' 등으로 평가되고 있기도 합니다. 타이틀도 우스꽝스럽고 자켓도 다소 비호감인 걸 보면.. 저 역시도 구입을 망설이기도 했구요. 하지만 정작 내용물은 그다지 재미없지는 않습니다. 원래 "누명"이라는 앨범의 기획 의도는 "무명"을 재구성/리믹스한 앨범이었다고 하지만 그 사이에 있었던 여러 사건들과 심경 변화 이후 앨범의 기획 노선이 바뀐 거죠. , 아직까지 그의 심경 변화가 있기 전에 나왔다고나 할까요? 허나 본 앨범은 결과적으론 '누명 간보기'가 전혀 아닌 '무명 보강하기'의 성격이 강합니다. '힙합지진아 박멸'을 위한 그의 캐릭터는 더더욱 독기를 품었고 악마적입니다. 사타닉한 저음으로 음성 변조시킨 "간보기 Interlude" Aeizoku 특유의 불길한 프로듀싱에 보컬을 고음 변조 처리한 "삼박자 Aeizoku Remix"는 섬찟할 정도이니까요. 그 밖에도 임성훈씨의 ".. 노래 잘들었습니다"가 뜬금없는 "투올더힙합키즈 투 Aeizoku Rmx", Swings NODO의 랩이 첨가된 "Make Up Sex Rmx"나 특유의 변태적인 아프리카 리듬을 도입한 JA "엉덩이가 닮았네 Ja Rmx" 등도 쏠쏠한 재미입니다.

 

그의 최대의 역작 "누명"과 신보 이야기는 Part 2에서 계속...

 

 

 

* Originally posted on: http://blog.naver.com/blogmiller/1100741366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