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nikut's Cultural Paradise

official drafts

Iida Katsuaki/Ryu Hankil [Selected Poems With Clockworks] (2009)

tunikut 2010. 2. 10. 09:43

 

01. 죽기 전에 적어도

02. 차가워져 가는 세계의 노래

03. 물 속의 우주

04. Flagging(가제)

05. Lost

06. 한밤의 끝에서

07. 포근한 장소

08. 계기는

09. 먼 옛날을 느끼다

10. 하늘 높이

11. 포엣

12.

13. 말라버린 흙

14. 따스한 어둠

15. 연회의 끝

16. 무제

17. 새로운 메세지를 기다리는 나날

18. 소설 시모키타자와 오전 4

19. 회전

20. 고요한 빛

 

Prolog

 

  때때로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다보면 무척 수치스럽거나 무척 당황스럽거나 심지어 나 자신을 때려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워질 때가 있습니다. 단순히 과거에 그랬었지.. 라고 흘려보내기엔 내 실수가 너무 치명적이어서 현재까지도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걸 인식할 수도 있죠. 아니, 어쩌면 내가 저지른 그 실수로 인해 피해를 입은 누군가가 있다면 나에게 아직

까지도 복수의 칼을 갈고 있을 수도 있는 노릇입니다. 일본 공포 영화 ""의 마지막 장면에서 티비 화면 속의 귀신으로만

생각했지 그제 직접 내 앞으로 기어나올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마찬가지로 과거에 내가 저지른 실수겠지라고만 생각했지

그게 현재의 나에게 영향을 미칠 거라 어떻게 예측했겠습니까.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Cache”라는 영화가 갑자기 떠오르네요.

지금 나는 무엇일까요? 지금의 나는 과연 어떤 의미일까요. 내가 여태껏 살아오면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은 나에게 어떤

의미였을까요. 또 그 사람들에게 난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질까요. 나와 아주 가깝게 지낸, 아니 심지어 나의 가족이었던 그

사람들을 이제 더 이상 볼 수 없거나 등을 돌리고 있다면 어떨까요? 지금의 난 과연 과거 그 사람들과 함께 지내던 과거의

나와 같은 나일까요? 속에 잠재된 무의식이 어떠할지 구체적으로 설명해보시겠습니까? 삶과 죽음의 경계가 종잇장 한장처럼

얇디얇을 수 있다는 걸 어떻게 깨달으시겠습니까? 손자에게 쌈짓돈을 엊어주시고 아무 말도 듣지 않고 떠나시는 주름진

할머니의 마음보다 아름다운 게 세상에 어디 있겠습니까?

 

Electro-Acoustic Improvisation (EAI)

 

  Electro-acoustic improvisation, 우리말로는 흔히 전자즉흥음악이라고 불리는 음악이 있습니다. 전자음악이라고 보기는

힘들고, 그 원류를 따라가본다면 free jazz에서 탄생됐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오스트리아, 독일, 미국 등에 씬이

발달돼있고 이웃나라 일본에도 저명한 아티스트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작지만 활발하게 활동을 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먼저 90년대 중후반부터 노이즈 사운드에 대한 관심으로 활동하시던 홍철기, 최준용 (아스트로노이즈, 퓨어

디지털사일런스 등), 진상태, 박승준, 그리고 언니네 이발관과 데이트리퍼로 활동하시던 류한길님이 바로 그들입니다.

오늘은 이들 중 류한길님의 음악에 대해 잠깐 얘기를 좀 해볼까 합니다.

 

  일단 전자즉흥음악이라고 하는 이 장르는 어떤 장르일까요.. 사실 저도 모릅니다. 이 음악을 접해본지도 얼마 안되구요.

하지만 제가 듣기에 이 음악은 글쎄요.. 우리가 흔히 인식하는 '음악'과는 조금 성질을 달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만들어

내고 창조해내는 음악이라기 보다는 주변 사물들이 내는 '소리'에 더욱 관심을 가지고 생겨난 장르인 것 같습니다. 혹자는

이 음악을 듣는 순간 "이게 무슨 음악이냐, 그냥 소음이지"라고 하실 분들도 분명히 계실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생활

하면서 무심코 듣는 소리들, 이를테면 시냇물 소리, 바람 소리, 새소리, 개소리, 시계 소리, 자판 두들기는 소리, 자동차

엔진 소리.. 이런 것들에서 '아름답다'라는 걸 발견하는 그 순간, 바로 그 지점에 관심을 갖는다면 이 음악을 듣다가도 뭔가

그 안에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따지고보면 뭐 그렇게 어려운 과정은 아닐 거라고 예상합니다.

금방 적응할 수 있으실 겁니다. 심지어 존 케이지의 "4 33"를 들으면서도 아름답다고 느끼신다면 이건 그것보단 더

쉽습니다. 자꾸 헛소리만 하는 것 같아 죄송한데요, 좀 현실적으로 표현해보자면 이 음악은.. 글쎄요 제 생각엔 말입니다,

free jazz와 로우파이, 그리고 노이즈가 혼합된 형태의 음악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깐 일정부분은

프리 재즈에, 일정 부분은 Merzbow 등으로 등으로 대표되는 다크 앰비언트-아방가르드 노이즈에, 일정 부분은 My Bloody

Valentine으로 대표되는 슈게이징 인디록에, 일정부분은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에 적을 두고 있는 새로운 형태의 아방가르드

음악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Ryu Hankil 

 

  류한길님의 음악은 제가 옛날부터 관심이 아주 많았기 때문에 쭉 들어왔지만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펑크(punk)'입니다.

왠 헛소리냐구요? , 물론 음악을 스타일로만 분류하지 말고 그 안에 내재된 이미지로 따져본다면 말입니다. "그는 멜로디

와 노이즈를 동시에 사랑하신 분이셨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멜로디보다는 노이즈에 더욱 집중하기 시작했고

이윽고 데이트리퍼라는 원맨 일렉트로닉 프로젝트에서 '노이즈 덥'이라는 스타일로 청중들을 뭉갰습니다. 당시 Alec Empire,

Primal Scream, Teenage Fanclub, Ken Ishii 등의 음악에서 영감을 얻으셨고 그 안에 내재된 펑크 정신을 바탕으로 공연시

수많은 노이즈 효과음을 통해 청중들의 귀를 괴롭다못해 즐겁게 하셨었죠. 그런 공연장에서의 모습이 너무 좋았어서 오히려

데이트리퍼의 데뷔 앨범은 좀 심심하게 들리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몇년 뒤 발매된 데이트리퍼의 두번째 앨범은 현재 그가

하고 있는 음악을 예고하는 전조적인 느낌이 많이 들었습이다. 그러니까.. 데이트리퍼라는 일렉트로닉-팝적인 비트감이 존재

하지만 그 질감들은 마치 사물의 충돌에서 느껴지는 불협화음과 같은 소음들이었죠. 또한 전자음악 특유의 꽉찬 사운드감

보다는 뭔가 텅빈 공간감에서 느껴지는 미니멀한 소품 박자들.. 그런 느낌이 바로 데이트리퍼 2집이었습니다. (최근 오버

클래스의 LOBOTOMY가 이런 데이트리퍼 2집에서와 유사한 사운드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습니다.) , 그리고는 전 류한길

께서 음악을 접으신 줄 알았습니다. 전공이신 미술 활동에 전념하시고 교편을 잡으신다고만 생각했는데.. 저런 그게 아니었

습니다. 언젠가부터 키보드 대신 laptop을 가지고 공연을 하시더니 이윽고 시계테옆이라는 획기적인 소품을 이용해 연주를

하시고 계신 겁니다. 그 모임이 바로 Relay라는 정기 즉흥연주회였고 앞서 언급한 몇몇 국내 전자즉흥음악인들이 이 음악

모임에 속해있으십니다. 한마디로 '국내전자즉흥음악씬'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이 국내씬이 실상 국내에선 그다지

많은 반향을 일으키고 있지는 못하나 이웃나라 일본에서부터 유럽씬의 아티스트들과는 많은 교류를 통해 발전을 하고 있다는

데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관련 해외잡지 등등에도 이들의 음악에 대해 기사를 다루고 있기도 하구요. 또 최선배님, 강태환,

박재천, 미연님 등등 국내 프리 뮤직씬의 뮤지션들과의 협연도 하고 있습니다. 자 얘기 하다보니까 딴데로 샜군요. 제 글도

아방가르드인가봅니다. (아니, 사실 오늘 쓰는 글은 컨셉을 그렇게 잡았습니다. 글의 첫 단락을 보시면 아시겠지만요) 류한길

님의 음악을 예전부터 지금까지 듣다보면 스타일은 조금씩 바뀌어갔으나 한가지 공통적인 게 있습니다. 바로 '질러주는'

지요. 조용히, 서서히 시작했다가 점차 고조되다가 흥분기에 확싸질러버리고 다시 조용히 사라지는 느낌.. 그 뭔가 안에 내재

된 분노와 불만 등을 아주 조심스럽게 표출하는 느낌이랄까요.. 표출하긴 하지만 왠지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표출하는 느낌..

그 이미지 때문에 전 항상 그의 음악을 들으면서 '펑크(punk)'라는 단어를 떠올리곤 합니다. 왠지 제 글도 그런 게 느껴지지

않나요? 뭔가 소극적으로 공격하는 느낌..

 

Selected Poems with Clockworks

 

  본작은 그런 배경과 맥락에서 발표된, 정식으로 그의 이름이 전면에 새겨진 그의 '앨범'입니다. (이 앨범 발표 전에 물론 책자

부록 씨디나 5 Modules 컴필레이션 앨범 등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정식 솔로 데뷔작은 아니고 일본의 시인 Iida

Katsuaki와의 협연 듀오 프로젝트라고 하는 게 정확합니다. 이 앨범은 처음부터 끝까지 시계태옆을 이용한 류한길님의 연주

위에 이이다 카츠아키씨가 직접 낭랑한 목소리의 일본어로 시를 낭독하는 구성입니다. 듣기 전부터 꽤 멋질 거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구입해서 들어보니 느낌이 아주 색다릅니다. 저기 위글의 서두에 제가 적어놓은 '이상한 글뭉치'와 일맥상통하는 주제의

시들이 '일본어' - 일본 영화나 애니메이션 좋아하시는 분들은 공감하시겠지만 알아듣지는 못하더라도 일본어가 주는 특유의

비장함 등이 하나의 음악처럼 들린답니다 - 로 울리며 그 뒤에서 무심히 시계태옆을 이용해 즉흥연주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잘그랄잘그랄거리는 소리로 시작해서 정적이 흘렀다가 찌이이익~~ 고막을 자극하는 소리에다가 툭.... 의미없는 박자

까지.. 그리고 그 위로 낭랑하게 울리는 "나니모나이데쓰요."

 

Epilog

 

  오늘은 그저 이런 음악이 있다는 걸 소개해 보고 싶었습니다. 기분도 꿀꿀하기도 했구요. 관심 있으신 분들은 꼭 음반을 구해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음반 구입처가 궁금하신 분들은 저에게 연락주세요) 굉장히 색다르고 신선한 경험이 되실 거라는 걸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참고로 최근 그의 이름으로 세 장의 앨범이 나왔는데요, 하나는 그의 솔로작, 그리고 Jason Khan과의

듀오작, 마지막으로 Bryan Eubanks와의 듀오작이 그것들입니다. 재미없는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Originally posted on: http://blog.naver.com/blogmiller/1100803783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