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nikut's Cultural Paradise

k.b.m. collection

Psy [싸이파이브] (2010, YG)

tunikut 2010. 11. 5. 10:00

 

 

(그게 그렇게 자게감인가. 어째 여백의 미를 모르시남. 거참 행간을 읽으셔야지.. 쳇.) 암튼. 남들이 가리온 2집에 침을 튀며 열을 올리고 있는 사이에 나에겐 그 못지 않게 중요한 앨범인 싸이의 5집이 나왔다. 이게 얼마만인가. 정말 반갑다. 싸이는 나와 성씨도 같고 나이도 같고 딸쌍둥이 아빠라는 것도 같다. 그리고 기본적인 감수성도 나와 비슷하다.

 

우선은, 나는 그래도 싸이의 2집이 가장 좋다. 아마도 앞으로도 싸이의 디스코그래피에서 2집 만큼의 완성도를 가진 '작품'이 나올까 의심이 들 정도로 말이다. 왜냐면 2집은 그 이후의 싸이의 앨범들과는 접근 방식이나 범주 자체가 아예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 이후에 나온 3-4-5집을 보자. 그렇다. '국민가수'로서 옷을 갈아입은 '대중적'인 싸이가 발표한 앨범들이다. 점프 유발용 싱글, 싸이표 발라드랩, 싸이표 팝송, 그리고 틈틈히 힙합.. 대중과 그의 오랜 '힙합팬'들을 향해 적당히 안전하게 곡들을 배치하고 있음은 여전하다. 그리고 난 이런 곡배치를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대중가수'이기 때문이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이번에 나온 5집은 유사한 곡배치와 패턴을 보인3-4-5집 중 가장 듣기 좋은 음반이라는 거다. (자게로 넘어갔지만 다시 언급하자면 2집 > 5집 > 4집 > 1집 > 3집)

 

자, 이번 앨범이 특이한 것 중에 하나는 YG에서 발표됐다는 거다. 이미 나를 포함해 대다수의 청중들은 이번 앨범에 YG가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에 관심이 가장 많았다. 결과는? 내 예상이 맞았다. 싸이 정도 되는 뮤지션이 그렇게 쉽게 휘둘리겠나? 전자음과 오토튠을 떡칠한 트렌디한 블랙트로니카? 싸이는 2NE1이 아니다. 이번 앨범은 예상을 깨고 YG의 프로듀서들은 개입 조차 하지 않았으며 김도현(aka Deze, 김도'훈'이 아님)과 공동 작곡한 한 곡을 빼고 전곡을 싸이와 유건형씨가 공동 프로듀싱했다. 오히려 전자음과는 반대로 아주 특이한 점은 이게 싸이의 의견인지 유건형씨의 영향인지는 모르겠지만 앨범 곳곳에서 '빈티지한 스타일'이 상당히 빈번하게 나타난다는 거다. 그러니까 60-70년대 소울 음악에서 주로 들리던 그 따뜻한 느낌의 현악 샘플이나 브라스들.. 그런 거. 앨범의 문을 여는 힙합 넘버 "싸군"에서는 살짝 아프리칸풍의 폴리리듬에 브라스 섹션이 들어가고 이재훈과 다시금 콜라보를 이룬 대중친화형 싸이표 미드템포 발라드랩 (뭐 이렇게 길어) "내눈에는"이나 전형적인 싸이 스타일의 듣기 좋은 팝송 "예술이야", 그리고 "미치도록" 등의 곡들에서는 소울풀한 현악 섹션이 레트로적인 향수를 자극하며 "나의 Wanna Be"에서는 다시금 브라스가 들어간 스카 스타일을 들려주는 등 '빈티지적 흑인 음악'에 기본을 두고 편곡돼있다는 점이 우선 가장 특징적이다.

 

또 한 가지는 이 앨범은 특히 4집과 아주 유사한 곡 배치를 하고 있지만 그 퀄리티면에서 다소 아쉽던 4집에서보다 확실히 업그레이드된 퀄리티를 자랑한다는 건데, "넌 내 여자니까"나 "소나기" 같은 곡들에서 봤다시피 원체 싸이라는 뮤지션이 지닌 탁월간 멜로디 메이킹 감각은 앨범내 가장 서정적인 발라드 "설레인다"에서 빛을 발한다. 요새는 대부분의 추세가 랩도 하고 노래도 하는 게 자연스러운 분위기이기 때문에 (가리온 2집에서 MC 메타가 노래를 할 줄 누가 알았겠나) 이제 더 이상 싸이의 "노래"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건 의미가 없으며 오히려 살짝 '술한잔 걸친 김현철' 삘이 나는 그만의 독특한 보컬에는 묘한 매력이 있다. "설레인다" 뿐 아니라 "내눈에는", "나의 Wanna Be" 등의 팝넘버들에서 그가 들려주는 멜로디를 들어보라. 또 "예술이야"나 (앨범 내에서 유일하게 YG flava가 강하게 느껴지는) "솔직히 까고말해" 같은 '싸이표 팝송'들은 거부하기 어렵다. 타이틀곡이 좀 약하다는 평이 있지만 개인적으론 "Right Now" 무척 좋아하는데 "연예인"보다는 "환희" 때로 되돌아간 듯한 분위기의 곡으로 곡만 딱 들어도 공연장에서의 그의 모션이 연상될 정도로 점프를 유발하는 곡이면서 마치 시속 80km로 달리다가 점차 고조되면서 순식간 자 간다.. 그러면서 시속 180km로 악셀을 밟았을 때 관성의 법칙에 의해 몸이 뒤로 쭉 밀리는 듯한 그 아찔한 느낌을 받았다. (반드시 이어폰을 끼고 볼륨 이빠이 올리고 들어보시길) 서인영이 참여한 "Thank You"와 YDG와 콜라보를 이룬 "서울의 밤거리"가 대체로 평이 좋은데 개인적으론 "Thank You"는 아무리 들어도 뭐가 좋은지 잘 모르겠고 "서울의 밤거리" 역시 살짝 넵튠스 스타일의 비트에 YDG와 싸이가 주고 받듯이 랩을 하며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는 시도는 좋았으나 다소 산만하고 허술한 곡 구성 때문에 아쉽게도 별다른 감흥을 얻지는 못했다. 또 4집에서의 "Jump" 처럼 "오늘밤새"나 "미치도록" 같이 왜 싫었는지 모를 엄한 곡들도 있긴 하다.

 

끝으로 그의 랩에 대해 잠시 얘길 해보자. 물론 뭐 여러 언더그라운드 엠씨들의 그것과 비교할 건 아니지만 그의 라임 역시 그다지 나쁘지 않다. 원시적인 스타일의 소위 "쌍팔년도 라임"을 하는 것도 아니고 적시적소에, 가끔은 정말 엑설런트하다는 생각이 들도록, (다음절 라임을 포함해) 박아 놓은 라임들은 '힙합 리스너'들의 귀를 절대 거슬리게 하지는 않는다. 나는 싸이 랩의 가장 큰 장점을 '딜리버리'라고 생각하는데 단어 첫음절에 강세를 줘서 꾹꾹 심어주는 특유의 발음과 억양은 분명 인정해줘야 한다.

 

싸이는 참 영리하고 똑똑하며 이율배반적이다. 대중들이 무엇을 원하는지와 그의 팬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잘 안다. 군대 갔다 와서 경제적으로도 부담이 안되는 상황은 아닐 텐데 굳이 이 앨범을 '19금' 앨범으로 제작한 것에 대해 팬으로서 참 고맙다. 가정도 생기고 아이들도 생기고 국민가수 칭호도 받고, 그랬지만 자신 고유의 '아티스트적 아이덴티티'를 절대 잃지 않는 그를 언제나 응원해주고 싶다. 그에게 많은 감정이입을 하는 나는 또 한번 "나의 Wanna Be"의 진솔하고 솔직한 심정을 담은 가사를 들으면서 '박씨성을 가진 77년생 딸쌍둥이 아빠'의 심정을 대리만족해버렸다.    

 

"열등감이 오늘의 나를 살게 해, 그래 말이 필요 없이 잘 돼야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