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nikut's Cultural Paradise

official drafts

DJ Krush [Strictly Turntablized] (1994, Mo'Wax)

tunikut 2010. 9. 30. 09:38



01. Intro

02. Lunation

03. Fucked-Up Pendulum

04. Kemuri

05. The Loop

06. Silent Ungah (Too Much Pain)

07. Interlude

08. Dig This Vibe

09. Yeah

10. To The Infinity

11. The Nightmare of Ungah (Sandro In Effect)

  

 

  DJ Krush에 대해 얘기를 해보자면 사실 좀 답답한 감이 없지 않습니다. 톡 까놓고 말해보자면.. 현재 우리나라에서 힙합 좋아한다는 분들 붙잡아 놓고 DJ Krush를 아냐고 물어보면 아마 '이름은 들어봤지만 음악은 모른다'가 가장 많을 것 같고 아예 '모른다'가 그 다음을 차지할 듯 싶습니다. 그 만큼 국내 힙합팬들 사이에서 그에 대한 인지도가 높지 않다는 얘기죠. 혹자는 이럴 겁니다. "일본 인스트루멘틀 힙합? Nujabes(R.I.P.)Mitsu The Beats가 대세 아냐? 아님 Deckstream이나.." 그럼 전 아마 그 친구한테 이렇게 대답할 겁니다. ", 니네 때는 Nujabes(R.I.P.)일지 몰라도, 우리 땐 Krush였어.."라고 말이죠.

 

  또 잡설이 길었네요. 근데 이렇게 된 계기는 그의 이력과도 관련이 좀 있긴 합니다. 엄연히 '힙합 아티스트'지만 일렉트로닉 계열의 아티스트들과도 잦은 교류를 하고 자신의 비트에 곧잘 여성 보컬리스트들을 기용하기 때문에 미국이나 유럽의 매체들에서는 그를 '트립합 아티스트'로 쉽게 분류하거든요. (위키페디아만 봐도 그의 음악 성향을 '트립합'이라고 적어놨죠. 이미 '트립합'이란 장르는 없는데도 말이죠.) 그러다보니 그가 "Meiso", "MiLight" 같은 앨범들을 발표하며 가장 전성기를 누리던 90년대 중반에 국내에서 처음으로 그의 음악에 대해 관심을 가진 층은 힙합팬들이 아닌 모던록이나 댄스 뮤직 매니아들이었다는 거죠. 사실 이런 현상은 한때 그의 단짝이었던 DJ Shadow도 마찬가지입니다. DJ Shadow가 미국 서부 Bay Area를 기점으로 Quannum Project의 일원으로 힙합씬에 몸담고 있으면서 동시에 영국의 Mo'Wax 레이블의 사장 James Lavelle과의 콜라보(ya'll know dat, UNKLE)를 통해 일렉트로닉/브레익비트 계열의 음악도 했던 것처럼, 마찬가지로 DJ Krush 역시 재패니스 언더그라운드 힙합씬에서 Kemuri Production의 일원으로 몸담고 있으면서 동시에 영국의 Mo'Wax Ninja Tune 같은 브레익비트/드럼앤베이스 계열의 레이블과 콜라보를 이루었다는 걸 보면 말입니다. 근데 국내 힙합팬들에게 있어 Quannum Project Kemuri Production에 대한 인식도보다는 국내 모던록/댄스 뮤직팬들에게 있어 UNKLE이나 Mo'Wax, Ninja Tune에 대한 인식도가 더 높다보니 제가 위에 언급한 현상이 발생하게 된 것 같습니다. (무슨 논문 쓰는 것 같네요)

 

  DJ Krush에 대해 간략하게 얘기해보자면.. 그의 이력 중에 가장 화제가 되는 부분은 바로 야쿠자 출신이었다는 거죠. 일찌감치 학업을 그만두고 야쿠자의 길로 접어들었다가 어느날 자신의 책상 위에 놓인 잘린 손가락의 주인이 자신과 가장 친한 친구의 것임을 알고 나서 손을 씻게 됐다고 해요. 그러던 중 여자 친구와 함께 영화 "Wild Style"을 보고 난 뒤 힙합에 깊이 매료돼 힙합 디제이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합니다. 정말 전화위복이죠. 97년 내한 공연 당시 그를 직접 면전에서 보고 악수하고 싸인을 받기도 했는데 야쿠자 출신이라 굉장히 쫄았었는데 외모와는 다르게 굉장히 친절하시더만요. 싸인을 해달라고 하니까 고맙다며 먼저 악수하자고 손을 내밀기도 하고.. . 그의 음악 스타일에 대해 잠시 얘기해보자면.. '인스트루멘틀 힙합'을 기본 포맷으로 여러장의 앨범들을 발표했는데요, 제 주관적인 생각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본토씬의 J Dilla 못지 않은 '드럼 비트의 마에스트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싶습니다. 일본인 특유의 세심함이 느껴지는 그의 비트들은 일정 수준의 bpm을 유지하며 대체적으로 '정박'을 고집하면서 강력한 스네어의 질감을 강조하기 때문에 비트가 상당히 파워풀하면서 묵직합니다. 또한 딱 들으면 '크러쉬 음악'임을 알 수 있는 이유가 그의 샘플 운용인데요, 본토 프로듀서들이 대부분 소울-재즈 샘플에 기반을 둔다면 크러쉬는 보다 '동양적'인 샘플들-이를테면 피리 소리 등-을 많이 쓰는데 이 샘플들이 그만의 어둡고 둔탁한 비트와 맞물려 '크러쉬표' 사운드를 창출해냅니다. 또한 그의 스크래칭도 상당히 개성적인 것이, 주로 랩 아카펠라를 이용해 시원시원하게 쫙쫙 갈기는 본토 디제이들의 스크래칭과는 달리 그는 굉장히 소극적으로, "쉬익 쉬익~ 찌익 찌익" 거리면서 스트래칭을 합니다. (실제 그의 공연을 봐도 그렇게 하더라구요.. 신기했음)

 

  자, 그럼 인제 오늘 들고 나온 앨범 "Strictly Turntablized"에 대해 얘기해봅시다. 본 앨범은 그의 공식적인 두번째 솔로 앨범인데요, 개인적으로는 그의 앨범들 중 가장 좋아하는 앨범이기도 합니다. (그의 디스코그래피 중 제일 구하기 어려운 앨범이기도 하구요. ) 제가 이 앨범을 제일 좋아하는 이유가요, 첫번째 솔로작이었던 전 앨범 "Krush"가 완연한 '재즈'를 기반으로 한 재즈 힙합/애시드 재즈 스타일의 음반이었고 다음 앨범들인 "Meiso" "MiLight"가 엠씨들을 기용해 만든 본격적인 '힙합' 앨범들이었다면 그 사이에 놓인 본 앨범 "Strictly Turntablized"는 앨범 타이틀에서도 느껴지듯이 '턴테이블만을 사용해 만든 pure한 비트 앨범'이라는 겁니다. 이 앨범에는 랩도 없고 노래도 없습니다. 그저 시종일관 타이트한 '힙합 인스트루멘틀'로만 채워져 있는데 그 비트들의 질감이 그의 어느 다른 앨범들에서 보다도 강력한 '파워 드럼'의 그것이라는 거예요. 가까운 예를 들어보자면.. 혹시 J Dilla "The Shining" 앨범을 들어보신 분이 있으시면 그 앨범에 수록된 "E=MC2"이라는 곡이 시작될 때 갑작스럽게 등장하는 '파워 드럼' 있잖습니까. 바로 그 느낌의 비트들이 본 앨범을 채우고 있는 대부분의 비트들이라는 겁니다. 엄격한 '정박'의 끝부분에 기묘한 효과음과 함께 살짝 엇박으로 장난을 친 듯한 "Fucked-Up Pendulum", '정박'의 극단을 보여주는 듯한 파워 비트로 마치 거인이 스텝을 밟는 듯한(giant steps?) "Kemuri", 비브라폰의 영롱한 샘플을 사용한 "Dig This Vibe"와 참을 수 없는 그루브감을 선사하는 "Yeah" 등 크러쉬의 대표곡들이 수록된 앨범이라는 점에서도 본 앨범의 가치는 높다고 할 수 있겠죠. 암튼 모든 걸 떠나서 '크러쉬의 비트'를 마음껏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앨범이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주변에서 크러쉬의 앨범을 추천해달라고 하면 이 앨범을 추천합니다. (참 못됐죠 제일 구하기 어려운 앨범을) 바꿔 말하면 그 만큼 노력과 비용을 기울여서 구할 만한 값어치가 충분한 앨범이라는 점도 되겠죠.

 

  2006년에 발표한 "Stepping Stones"라는 베스트 앨범 이후로, 정규작으로는 2004년의 "Jaku" 이후로 아직까지 앨범 소식이 없는데요, 그러다보니 점점 더욱 팬들에게 잊혀져가는 것 같습니다. 혹자는 크러쉬가 이제 너무 일렉트로닉쪽으로 간 거 아니냐는 얘기도 하고 하는데.. 이러다 '한물 갔다'는 소리까지 듣게 되는 건 아닌지 그의 오랜 팬으로서 걱정스럽기도 합니다. 그의 홈페이지를 보니 새 앨범에 대한 언급을 하시던데.. 부디 죽여주는 언더그라운드 힙합 앨범 하나 가지고 나오시길! Madlib, El-P, D.I.T.C. 뭐 이런 분들하고 콜라보해서 죽이는 거 하나 어떻게.. 안될까요 크러쉬 형님?

 

 

* 오리지날리 포스티드 온: http://blog.naver.com/blogmiller/1100940585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