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nikut's Cultural Paradise

official drafts

The Roots [How I Got Over] (2010, Def Jam)

tunikut 2010. 9. 24. 10:16



01. A Peace Of Light (featuring Amber Coffman, Angel Deradoorian & Haley Dekle)

02. Walk Alone (featuring Truck North, P.O.R.N. & Dice Raw)

03. Dear God 2.0 (featuring Monsters Of Folk)

04. Radio Daze (featuring Blu, P.O.R.N. & Dice Raw)

05. Now Or Never (featuring Phonte & Dice Raw)

06. How I Got Over (featuring Dice Raw)

07. DillaTude: The Flight Of Titus

08. The Day (featuring Blu, Phonte & Patty Crash)

09. Right on (featuring Joanna Newsom & STS)

10. Doin' It Again

11. The Fire (featuring John Legend)

12. Tunnel Vision

13. Web 20/20 (featuring Peedi Peedi & Truck North)

14. Hustla (featuring STS)

 

  

  사실 전 요즘의 힙합씬에 루츠같은 밴드가 있다는 게 고맙습니다. 이들이 들려주는 음악은.. 항상 새로웠거든요. 그렇다고 트렌드를 좆는다거나 트렌드를 이끈다거나 뭐 그런 식도 아니었죠. 그렇다고 완전 전통적인 스타일만 고집하는, 누군가에 의해 '구닥다리'라는 비난을 들을 법한 음악을 하는 것도 아니었구요. 그냥 이분들은 이분들이 원하는 스타일의 음악을 계속 해왔을 뿐이지만 그게 우리같은 청자들한테는 언제나 후레쉬했다는 겁니다. 때로는 어떤 메인스트림 힙합튠보다도 감미롭고 팝적인 음악을 들려주기도 했고, 때론 어떤 언더그라운드 힙합보다도 괴상하고 실험적이기도 했죠. 흔히들 루츠의 베스트 앨범이 뭐냐고 물으면 레코드점 가서 루츠 앨범들을 쫙 일렬로 놓고 눈감고 아무거나 고르면 그게 베스트 앨범이라고들 합니다. 그만큼 매너리즘과는 거리가 먼, 내놓는 앨범마다 '죽인다'는 반응을 이끌어내왔기 때문이죠. 대충 한번 스윽 훑어볼까요? Organix (1993), 재기발랄한 올드스쿨 스타일에 재즈가 범벅됐었지만 신디사이저음을 사용한 몽환적인 느낌도 잃지 않았습니다. (혹자는 "Game Theory"부터 루츠가 일렉트로닉해졌다고 하지만 사실은 데뷔작부터 이들은 신디사이저음을 많이 강조했었죠.) Do You Want More?!!!??! (1995), 이들에게 '재즈 힙합'이라는 칭호를 붙게 만든 재지한 사운드라고 하는데 개인적으론 안들어봐서 뭐라 말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다음 Illadelph Halflife (1996), 당시 힙합씬에서 유행하던 mafioso 컨셉을 살짝 끌어들여 귀에 짝짝 붙는 깔쌈한 시퀀싱 사운드에 하드코어한 분위기를 냈었죠. Things Fall Apart (1999), 어쿠스틱한 사운드에 기반을 둔 훵키함과 재지함이 뒤섞여 힙합을 예술적 경지로 끌어올렸죠. Phrenology (2002), 4/4 비트의 전형적인 하드록을 끌어들였을 뿐만 아니라 전위성과 난해함까지 보여줬던 역작이었습니다. The Tipping Point (2004), 안들어 봤습니다. Game Theory (2006), 슬슬 어두워집니다. 모던록/일렉트로닉까지 곁들여 상당히 암울하고 하드한 앨범이었죠. Rising Down (2008), 어두운 루츠의 끝을 보여줬죠. 퀘스트럽의 스네어 소리는 귀청을 찢으려는 듯 신경질적이었습니다. 그리고 2010. 아홉번째 스튜디오 앨범 "How I Got Over"가 발매됐습니다.

 

  루츠는 이번 앨범 발매전 보도매체를 통해 "Barack Obama 새대통령이 당선된 것을 축하하며 새로운 느낌의 밝은 앨범이 될 것이다"라고 했는데요, 앨범 자체는 물론 이전 두 앨범 "Game Theory"-"Rising Down"에 비해 어둡고 암울한 장막을 많이 걷어낸 느낌이긴 합니다만 그렇다고 완전 밝고 경쾌하다고만은 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가사들은 여전히 현실에 대한 비판과 개인적인 번뇌를 노래하고 있거든요. 제 생각엔 약간은 뭐랄까요, 이전 두 앨범에서 현실에 대해 신경질적으로 쏟아 부었다면 이젠 그야말로 'sick and tired'한 느낌.. 그리고 거기에서 배어나오는 '슬픔'이 주된 정서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후반부로 가면서는 '이 순간을 오래 기다렸다. 이제 변화가 필요하다'는 식의 메세지를 보이며 미래에 대한 낙관을 보여주기도 하는데요, . 그럼 이런 정서를 담은 새 앨범 "How I Got Over"의 사운드를 루츠의 음악감독 ?uestlove은 이번엔 어떤 식으로 방향 설정을 했을까요.

 

  먼저 그가 두들기는 스네어 소리를 좀 들어봅시다. 확실히 '뭉툭'해졌습니다. 2000년대의 루츠 사운드에서 신경질적이고 날카롭게 두들겨지던 그 소리들이 다소 차분하고 부드럽게 누그러진 느낌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뭉툭해진 스네어를 가지고 그는 강박적이다 싶을 정도로 '정박'으로 승부합니다. 얼마나 고맙습니까. 808드럼머신-스냅댄스 등으로 표현되는 느릿느릿한 최근 힙합씬의 비트들 가운데서 철저하게 전통적인 '정박'을 그것도 뭉툭한 스네어로 고집스럽게 두들기다보니 앨범은 전반적으로 힙합 특유의 블런트한 그루브감이 살아있습니다. "Radio Daze"같은 곡이 대표적인 예가 될 수 있겠네요. 하지만 그보다도 더 중요한 포인트는 이번 앨범의 전체적인 느낌을 한마디로 표현해본다면 바로 '소울(SOUL)'이라는 겁니다. 그야말로 "They've got jazz, funk, rock&roll, and electronics. But now, they gotta have SOUL!" 뭐 이딴 식으로 거창하게 표현해볼 수도 있겠죠. 어쿠스틱한 느낌을 강조하고 있지만, 빈티지스런 건조함이라기보다는 적당히 윤기가 흐르는 따뜻한 소울 뮤직이라고 할까요? 특히 그 느낌은 앨범의 후반부에서 더욱 강하게 발휘되는데 "The Day"에서는 Patty Crash, "Right on"에서는 Joanna Newsom의 디바 소울 보컬이 마음을 촉촉하게 해주고 있으며 이어지는 "Doin' It Again" "The Fire"에서는 John Legend의 파워풀한 보컬이 곁들여져 이들의 콜라보작 "Wake Up"의 전초를 마련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앨범의 두번째 싱글이었던 "Dear God 2.0" 역시 신을 향한 슬프고 애잔한 정서가 소울풀한 멜로디로 잘 표현된 곡이라고 할 수 있으며 "How I Got Over"에서는 아예 Black Thought 스스로가 소울풀한 보컬을 구사하기도 합니다. 이렇듯 앨범은 전체적으로 'Soul'이라는 하나의 키워드로 설명할 수 있는 성질을 지니고 있습니다만 수록곡 중 맨 뒤 두 곡은 살짝 의외성을 보이기도 하는데, "Web 20/20"의 경우 전위적인 느낌의 오프비트에 루츠 앨범에 없으면 섭한 Peedi Peedi의 휘쳐링이 빛나는 곡으로 '루츠 앨범에 Peedi Peedi가 휘쳐링한 곡은 전부 좋다'는 공식이 여전히 유효함을 증명하고 있으며 "Hustla"의 경우 아기가 칭얼대는 소리를 그대로 샘플링해서 루프로 돌려버린 ?uestlove의 실험성에 탄복하면서 Nas "Street's Disciples"라는 곡에서 Salaam Remi가 들려준 그 아방가르드한 효과음에서 받은 bizzare함을 다시금 느끼게 해주고 있습니다. (전 이런 weird하고 bizzare한 효과음을 되게 좋아하거든요.)

 

  벌써 이들의 다음작이 예고됐는데요, 바로 잘 아시다시피 John Legend와의 콜라보작인 "Wake Up"이라는 앨범으로 아마도 조만간 또 발매가 될 것 같습니다. 결국에는 본 앨범 "How I Got Over"에서 만들어진 '소울풀한 루츠'로의 방향선회와 John Legend와의 콜라보를 더욱 심화시킨 앨범이 될 거라는 느낌인데요, 정말 언제나 새로우면서도 그들 나름의 고고함과 진중함은 한결같이 유지하고 있는 독보적인 그룹 루츠의 행보에 우리같은 청자들은 그저 행복의 신음소리만을 낼 뿐입니다. "!" "!"

 

 

* 오리지날리 포스티드 온: http://blog.naver.com/blogmiller/110093900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