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리즈 페어의 매니지먼트와, 레코드 레이블과, 수많은 밤의 잠을 잃게 만든 열 한 곡이 있습니다.
어디서부터 얘기를 전개해나가야 할지 모르겠지만 앨범 제목은 funstyle이나 그녀의 오랜지기 팬으로서 이 앨범을 듣고 있는 제 심정은 전혀 fun하지 않고 오히려 뭔가 좀 살짝 북받쳐 오르면서 서글픈 마음까지 들기도 하네요. 사실 리즈 페어는 국내에서는 그닥 유명한 뮤지션은 아니죠. 팬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도 드물기도 하구요. 자, girly-sound라는 인디 데모테잎부터 본 앨범 funstyle을 발매하기 전까지의 이야기들은 지난번에 두번에 걸쳐서 얘기했으니 본 블로그를 참조하시구요, 오늘은 정말 정말 오랜만인 5년만의 신작 "Funstyle"에 대해 얘기해보려고 합니다.
01. Smoke
02. Bollywood
03. You Should Know Me
04. Miss September
05. My My
06. Oh
07. Bang! Bang!
08. Beat Is Up
09. And He Slayed Her
10. Satisfied
11. U Hate It
먼저 그녀가 메이져 레이블인 Capitol과의 계약이 끝나고 다시금 Dave Mathews가 설립한 인디 레이블 ATO와 재계약 후 Exile In Guyville 앨범을 리이슈했다는 건 지난번에 얘기했었죠. 그리고 많은 그녀의 팬들은 인디로 돌아온 그녀의 새 앨범을 기다렸습니다. 근데 여기서 반전이 일어나죠. 바로 새로 계약한 이 ATO라는 레이블과도 약간의 트러블이 생긴 겁니다. 그 이유인 즉슨, 그녀가 새 앨범을 위해 만든 곡들이 레이블 측에서 마음에 들지 않아 했기 때문이었죠. 결국 신작 발매는 취소되었고 또 다시 그녀는 ATO와도 결별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Capitol과는 달리 ATO와는 그다지 사이가 틀어진 것 같진 같습니다. 이번 앨범에 여러 곡에서 Dave Mathews가 기타를 쳐준 걸 봐도 말이죠.) 결국 매니지먼트를 잃은 그녀는 그렇게 세상 빛을 못볼 뻔했던 열한 곡들을 자체적으로 제작해 그녀의 공식 웹사이트에서 5.99달러에 배포하기에 이릅니다. 그리고 첫 싱글(?) "Bollywood"를 스트리밍으로 들려주었고 많은 사람들은 이 곡을 듣고 경악을 했다고 하죠. 또한 앨범에 대한 리뷰들은 모두 하나같이 거의 이 앨범을 두고 '역겹다', 'shitty하다', 'terrible하다'는 식의 평을 했습니다. (피치포크지에선 10점 만점에 2.6점인가 주었다죠) 그리고 이러한 평들을 보며 우리나라나 미국이나 critic 샌님들 센스 오브 휴머 없긴 똑같구나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왜냐면 전 이 앨범 첫 트랙부터 완전 흥분해서 탄성을 질렀거든요. 제가 왜 더 그랬냐면 이 앨범을 듣기 며칠 전 제 개인 블로그에 "만약에 내가 음악을 만들게 된다면 느릿느릿한 변태적인 비트에 기묘하게 뒤틀린 샘플음을 끼워넣고 상당히 당황스러워하는 고음의 나레이션이 얹어진 음악을 할 것 같다"라고 포스팅을 했었는데 이 앨범의 첫 트랙 "Smoke"가 정확히 그 분위기에 들어맞았기 때문이죠. 예, 맞아요. 이 앨범은 매우 매우 실험적입니다. 일단 말이죠, 한마디로 말하자면 데뷔 후 20년 가까이 되는 시간 동안 그녀가 들려준 음악 스타일을 완전히 '전복'시켜버리는 접근을 했다고 할까요? '인디-어쿠스틱-로우파이-록큰롤-컨트리-루츠록-메인스트림 팝록' 등의 키워드로 설명되던 그녀가 '훵크-소울-일렉트로닉-힙합-제3세계' 스타일을 시도했으니 말이죠. 록만 좋아라 듣는 코케이션 크리틱들이 이 앨범을 두고 밥맛이라고 하는 것도 사실 이해는 가요. 하지만, 쩝 뭐 지극히 personal한 이유도 있습니다. 저야 원체 힙합-소울-재즈-일렉트로닉을 메인으로 듣다보니 그녀의 이런 시도가 너무 너무 반가울 수밖에 없겠죠. 잡소리 그만하고 하나하나씩 보면요..
우선 오프닝곡 "Smoke"에선 느릿느릿한 칠 아웃 비트에 어우러진 묵직한 베이스음이 곁들여지며 그녀의 나레이션과 함께 전위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다가 뜬금없이 소울풀한 코러스가 등장하고 이어지는 "Bollywood"에선 인도 풍의 댄서블한 브레익비트에 랩(!)을 합니다. 그리고 "My My"에 가서는 70년대식 소울 그루브와 함께 브라스도 등장하고 "Bang! Bang!"으로 가면 아예 매시브 어택 스타일의 몽환적인 트립합 분위기를 내버립니다. 다음 곡 "Beat Is Up"은 또 어떻게요, 쌈바 리듬이 더해진 업템포 하우스 비트까지 나오더니 마지막 곡 "U Hate It"은 다시금 비트와 스킷과 나레이션이 버무려진 아방가르드한 스타일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이러니 다들 황당할 수 밖에요. 더욱 놀라운 건 이 모든 곡들을 그녀가 직접 기타와 키보드를 가지고 연주했다는 거죠. (몇몇 곡들에선 Dave Mathews가 기타를 쳐주긴 했지만 기타는 기타죠.) 그녀도 인터뷰에서 자기가 키보드를 가지고 그렇게 만들었다는 것에 대해 굉장히 뿌듯해하더라구요.
전 이런 시도들을 그렇게 생각해요. 한마디로 "엿을 먹이는" 거죠. 그 동안 하고 싶었던 걸 참고 참다가 완전히 해방된 상태에서 "이게 내가 요새 하고 싶었던 음악이다. 좋아하던지 싫어하던지 말던지" 뭐 딱 이 느낌 아닐까요? 그래요. 그리고 이런 태도, 이게 진정 우리가 사랑한 Liz Phair 스타일의 attitude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또 하나는 말이죠, 그녀가 이 앨범을 발매하기 전까지 텔레비젼쇼 Swingtown의 스코어 작곡가로 활동한 사실은 잘 알려져 있죠. 바로 그 Swingtown이라는 쇼가 70년대 funk/soul era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고 opening theme은 youtube 같은 데서 들어보시면 아시겠지만 완전 디스코 그 자체라는 거예요.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그녀의 관심이 흑인 음악쪽으로 돌려진 탓도 있을 거라고 봐요. 아무튼, 전 리즈 페어의 오랜지기 광팬입니다. 저의 최고의 훼이버릿 아티스트죠. 그리고 전 힙합과 흑인 음악을 제일 많이 듣습니다. 그리고 일렉트로닉도 가끔 듣구요. 근데 그런 그녀가 이런 음악을 합니다. 그러니 제 기분이 어떻겠어요? 이건 마치 말도 못걸고 몰래 쳐다만 보며 짝사랑하던 여자로부터 발렌타인데이날 먼저 초콜렛을 받은 기분이랄까요? 가끔씩 '리즈 페어가 만약에 흑인 음악이나 비트 있는 음악을 한다면 어떨까?' 이런 상상을 했었는데 마치 제 소원을 들어준 기분이라고 할까요?
한편 그러나 그녀의 이전 음악들을 좋아하던 팬들을 완전히 배신하지는 않습니다. "You Should Know Me"와 "Miss September"는 그 동안 그녀가 쭉 들려줘왔던 (개인적으로는 별로 안좋아하는) 어쿠스틱한 컨츄리 스타일의 곡들이고 "Satisfied"는 "Polyester Bride", "Why Can't I", "Everything To Me"를 충실히 계승하는 전형적인 메인스트림 록발라드 넘버죠. 하지만 제 생각에 이번 앨범 최고의 곡이라고 자부할 만한 곡이 하나 있는데요 바로 "And He Slayed Her"라는 곡이예요. 정말 정말 전형적인 리즈 페어 스타일의! 그녀가 아니면 들려줄 수 없는 Girly-sound/Exile In Guyville era로 완전히 회귀한 듯한 인디-로우파이-기타팝이라는 거죠. 리즈 페어 초기작들을 좋아했던 사람들은 딱 듣는 순간 느낌이 팍옵니다.
자, 이렇듯 곡들은 앨범 제목에 걸맞게 그녀의 유머 감각 - 원래 굉장히 유머 감각이 특출난 사람입니다 - 이 발휘된 fun한 style을 들려줍니다. 하지만 가사들은 어떨까요? 예, 절대 fun하지 않습니다. 제가 글의 첫머리에 씁쓸하고 서글퍼진다는 게 그런 이유입니다. "Smoke"에서는 아이도 키워야 되는데 거의 빈털털이가 되다시피한 자신의 모습을 우스꽝스럽게 묘사하고 있으며 "Bollywood"에선 Swingtown 스코어 작곡가로 활동하면서 느꼈던 환멸을, "U Hate It"에선 이 앨범에 대해 "I really hate it!"하는 critic들을 묘사하며 거의 정신 착란을 일으키는 자아를 표현합니다. 또 "And He Slayed Her"에선 그녀를 구렁텅이로 내몰았던 Capitol의 사장 Andy Slater (재미있는 언어유희죠)에 대한 지독한 혐오를 드러내고 있고 "My My"에서는 "good girl이 될 수도 있었지만 이런 attitude를 가진 게 나야"라며 원래의 자기 자신으로 돌아왔음을 선언하며 "Satisfied"에서는 "모든 걸 이루었지만 이게 만족스러웠니?"라며 과거를 반추합니다. 이렇듯 그 동안 그녀가 겪었던 일들과 심경을 담은 앨범이다보니 가사는 상당히 무겁고 진중한 편이죠.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Oh Bangladesh"에선 한동안 들을 수 없었던, 그러나 그녀의 트레이드마크였던 sex에 대한 노골적인 묘사가 다시금 등장한다는 겁니다.
휴.. 또 글이 길어졌네요. 아무튼 그녀의 삶을 보면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생즉공 공즉생의 불교 용어가 자꾸 떠오르기도 해요. 모든 스포트라이트와 성공과 돈도 한 때.. 다시금 시카고의 조그마한 방에서 Girly-Sound 테잎을 녹음하던 시기로 돌아온 거죠. 음.. 글쎄요. 그녀의 '음악'을 사랑하던 팬의 입장에서는 무척이나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인간적으로는 조금은, 마음 한구석이 시린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오랫동안 그녀의 팬으로 있다보니 인간적인 정까지 들어버렸나봐요.
* 오리지널리 포스티드 온: http://blog.naver.com/blogmiller/110093222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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