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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tin Scorsese [Shutter Island] (2010)

tunikut 2010. 7. 19. 14:58

 

Warning: 아무렇지도 않은 듯 스포일러 언급됩니다. 스포일당하기 싫으신 분들은 읽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실 처음에 이 영화를 딱 다 보고 나서는 맥이 탁 풀렸다. 아마 다들 그랬으리라 본다. 같이 본 내 아내는 이미 영화 시작하고

몇분 안돼서 "이거 그거 아냐?"라고 이 영화의 결말을 추측해버렸으니 말이다. 그리고 어느 정도 반전 영화를 즐겨보시는 분들

은 적어도 중반부 이후엔 이 영화의 결말을 예측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많은 분들이 "식스센스"와 "유쥬얼 서스펙트"에 이

영화의 반전을 비유하는데 사실은 이 영화의 반전은 데이빗 핀처 감독의 "파이트 클럽"에서의 반전과 매우 유사하다. 하지만

정말로 짜릿하고 긴박하고 극적으로 반전을 전개했던 핀처 감독과는 달리 거장 스콜세지 감독이 보여준 반전 장면은 그야말로

맥이 탁 풀릴 수밖에 없었다. 어느 블로거분의 표현대로 "조용필이 랩을 하면 요새 젊은 청소년들에게 어필할까?"처럼 반전에

익숙해진 요즘의 관객들에게 노장의 반전은 그다지 매력적이지 못했다. 그 블로거분의 표현을 빌자면 "자, 다들 놀랐지? 사실

이런 거였어"하고 감독이 말을 하지만 정작 관객들은 놀라지도 않고 박수도 없어서 배우과 감독 모두 뻘쭘해지는.. 뭐 그런 느낌

말이다. 그래서 당연히 내 블로그에 이 영화를 포스팅 안하려고 했다. (이 카테고리의 제목은 어디까지나 favorite movies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영화나 음악이나 예술 장르는 작자의 의도도 중요하지만 그걸 해석하는 입장도 중요하다고 봤을 때..

난 혹시 이 영화가.. 하고 다른 쪽으로 생각해봤다가 온 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그 해석이 만약 감독이

의도한 바라면.. 이 영화는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는 두고 두고 회자될 충격적인 작품이다. 그러니까 만약 주인공 디카프리오가

정신병자가 아니라면? 그냥 주인공 말대로 셔터 아일랜드의 음모에 의문을 품고 이를 수사해나가려는 보안관이 맞는 거라면?

그래서 매우 매우 치밀하게 계획된 시나리오와 음모에 완전히 걸려들어서 세뇌당한 거라면? '디카프리오가 정신병자'라는 결말

에 맞춰서 영화를 돌려보며 지나간 장면들을 보면 주변 인물들의 대사 하나하나에 담긴 의미를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근데,

'정신 멀쩡한 보안관 디카프리오'라고 해놓고 영화를 다시 돌려봐도 장면 장면에 담긴 인물들의 대사가 또 다르게 느껴진다.

그리고 난 이 영화를 후자쪽으로 놓고 해석하기로 했다. 치밀하게 계획된 음모에 완벽하게 세뇌되고 농락돼버린 주인공.. 그리고

결국엔 자신은 정신이 멀쩡함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도 정신병자라고 인정해버리는 주인공.. 그리고 결국 뇌수술을 받으러 등대로

끌려가는 주인공.. 이 모든 게 대부분의 관객들이 그렇게 해석했을 '정신병자 디카프리오의 환상, 그리고 약간의 사이코드라마'

가 아니고 '치밀하게 계획된 음모'였다면.. 아 정말 짜릿하다. 내가 항상 가장 큰 관심사로 담고 있던 바로 그 테마 아닌가. 치밀

하고 완벽한 세뇌작업으로 스스로 파괴돼 버리는 자아.. 바로 그 주제!

 

만일 전자쪽의 해석이라면 이 영화는 아무 건덕지도 없는 그저 식상한 반전 영화일 것이다. 하지만 후자쪽의 해석으로 본다면

두고두고 나한테는 회자될 만한, 그리고 내가 만약 진짜 시나리오를 쓴다면 가장 큰 레퍼런스로서의 기능을 할 그런 영화다.

여하튼 잘 봤다.

 

p.s. 근데 쓰고나서 생각해보니 영화는 전자쪽으로 의도된 영화인 것 같긴 하다. 그래도 뭐 난 그냥 후자쪽으로 해석할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