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nikut's Cultural Paradise

official drafts

Showbiz & A.G. [Runaway Slave] (1992, London)

tunikut 2010. 4. 20. 13:48

1 2일에서 진짜 맛있는 음식이 나왔을 때 그걸 맛을 본 호동씨의 표정을 떠올려봅시다. 눈썹이 자로 되면서 음식물을 머금은 채로 입을 살짝 벌리며 깊은 한숨을 내쉬면서 '.. 세상에 어떻게 이럴 수 있지?' 하는 듯한 그 감탄의 표정.. ㅋㅋ 제가 오늘 소개하는 이 앨범을 들으면서 제 표정이 그랬답니다. 자 또 썰을 풀어봅시다!




 

01. Still Diggin' (featuring Diamond D)

02. Fat Pockets

03. Bounce Ta This (featuring Dres)

04. More Than one Way Out Of The Ghetto

05. Silence Of The Lambs (Remix)

06. 40 Acres And My Props

07. Runaway Slave

08. Hard To Kill

09. Hold Ya Head

10. He Say, She Say

11. Represent (featuring Big L. Deshawn, & Lord Finesse)

12. Silence Of The Lambs

13. Party Groove (Bass Mix)

14. Soul Clap (Short Version)

15. Catchin' Wreck

16. Party Groove (Instrumental)

 

 

   오늘 들고 나온 이 앨범은 뉴욕 언더그라운드 힙합씬의 전설 D.I.T.C. 크루의 초기 대표작 중 하나인데요, (D.I.T.C. 크루에 대한 언급은 지난번 Diamond D 앨범 리뷰 때 했었죠) 지난번에 소개했던 Diamond D의 데뷔 앨범 "Stunts, Blunts, & Hip Hop"과 더불어 D.I.T.C. 초기 양대 클래식으로 평가받는 앨범입니다. Show (혹은 Showbiz)와 메인 엠씨인 A.G.의 듀오작으로 전곡을 Showbiz가 프로듀싱했고 (8 14 Diamond D와 공동 프로듀싱) A.G.가 랩을 하는 형식인데요, 특이한 점은 프로듀서인 Show의 랩 또한 들을 수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나쁘지 않습니다.) 암튼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이 앨범 역시 시대적 배경은 올드스쿨이 뉴스쿨로 개화해가는 과도기라고 할 수 있겠는데, 그 당시의 flava가 듬뿍 담긴 '미치도록 아름다운 앨범'이라고 표현해보면 어떨까요. 일단 사운드면에서 Show가 만들어내는 비트들은 지난번에 얘기했던 Diamond D의 그것과는 또다른 개성을 보이고 있습니다. Diamond D의 비트가 베이스음을 덧입혀 부드럽게 그루브감을 선사한다면 이 앨범에서 Show가 주조하는 비트들은 상당 부분 '드럼 자체의 리듬'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Show의 랩가사에서도 "SP-1200을 사고 싶어"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진짜 SP-1200이 없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매우 살짝살짝, 거의 없다고 봐도 될 정도의 재즈 샘플들만 적시적소에 곁들이면서 대부분을 그야말로 폴리리듬 가득한 '파워 드럼'으로 채웠다는 점이 특징인데요 그래서 그런지.. 그 미니멀하게 살짝살짝 들어가는 horn샘플들이 더욱 강력한 그루브감을 만들어낸달까요? 수록곡 중 "Hard To Kill"을 들으면서는 진짜 거짓말 안하고 '성적' 흥분감을 느낄 정도였는데요, 샘플도 거의 없고 비트도 킥과 스네어 달랑 두 개에다 그 사이에 들릴 듯 말듯 살짝 쪼갠 비트 조각을 하나 끼워넣었는데 - 그렇다고 Dilla 스타일의 오프비트가 아니라 정박을 유지하면서 - 그게 이끌어내는 그루브감은 진짜 아랫도리를 적실 정도로 꽤나 dope합니다. (사실 D.I.T.C. 사운드가 뉴욕 힙합의 전형이라고는 하지만, 같은 하드코어 스타일이라도 QB 스타일이나 우탱이 대낮에 막 몽둥이로 쳐죽이는 스타일이라면 D.I.T.C.의 경우엔 어두운 밤길 뒤에서 타박타박 다가가 목을 잡아 끄는 스타일이라고나 할까요?) 혹시 Buckwild가 프로듀스한 O.C. 데뷔 앨범 수록곡 "Time's Up"의 그 흐느적 간지 지대로인 비트가 마음에 들었다면 아마 본작에 수록된 "Runaway Slave"를 들어보시면 이미 그 분위기를 Show가 먼저 내고 있었다는 점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암튼 간에 열악한 환경과 열악한 장비로 지금 들어도 무척 세련되고 도프한 '미친 비트'를 만들어낸 Show의 능력에 진짜 경외감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한편 A.G.의 랩과 가사들은 어떨까요? Big L, O.C.와 더불어 크루의 메인 엠씨 답게 그의 랩 역시 적당한 하이톤의 개성을 유지하면서 유려한 라이밍을 선보입니다. 당시의 랩이란 게 지금과는 달라서 복합다층구조의 라이밍이나 기발한 펀치라인 가사들은 거의 없지만서도, 시대적 정황을 고려해보면 꽤나 스킬풀한 랩을 선보이기 위해 고심한 흔적이 보입니다. Nas "Illmatic"이 힙합계의 "Kind Of Blue"라는 평을 받는 이유가 기발한 다음절 라이밍의 확립과 자전적 회고, 스토리텔링 등을 담은 lyricism이라는 점인데요, 시대적으로 2년이 앞선 본 앨범에서의 A.G.의 랩에서도 이미 다음절 라이밍이 등장하고 있으며 자전적인 회고("More Than one Way Out of the Ghetto")나 스토리텔링("He Say, She Say")이 등장하는 점으로 보아 그의 랩 역시 당시로서는 꽤 creative한 것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겠습니다. (제가 왜 이런 얘길 하냐면 심지어 wikipedia에서도 Illmatic 이전의 가사들은 모두 '단순 일차원적 라임 배열'에 지나지 않았다라고 하고 있기 때문이죠) 누구나 주저하지 않을, 앨범의 베스트 트랙은 단연 posse cut "Represent"일 겁니다. 이 곡에서 만큼은 Show 역시 다소 어그레시브한 기타 샘플을 사용하고 있는데요, 이 곡의 가치는 단연코 Big L의 공식적인 데뷔 verse라는 점일 겁니다. Big L이 누굽니까. 지금은 고인이 된, D.I.T.C. 내 최고의 리리시스트이자 D.I.T.C. 내에서 대중적으로도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엠씨입니다. 그의 공식적 첫 목소리가 담긴 이 트랙을 들으며 밤거리를 걸어보세요. 길 옆으로 라이트를 켠 차들이 지나가고, 길가 하수구에선 허연 수증기가 피어오르고.. 집앞 밤거리가 곧바로 뉴욕 브롱스의 밤거리처럼 느껴지실 겁니다. 한편 히트 싱글인 "Party Groove"는 또 어떻게요, 80년대 디스코 열풍이 불던 그 특유의 댄서블한 빈티지 샘플을 이용한 댄스 뮤직이라고 할 수 있으며 "Soul Clap"에선 올드스쿨 초기의 블록파티를 재현하는 듯한 분위기가 압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글을 마치며 잠시 생각해보니.. 사실 좀 그렇습니다. 록음악과 비교를 잠시 해보자면.. 너바나부터 시작된 그런지-얼터너티브 열풍은 금새 모던록-컬리지록-브릿팝의 열풍으로 이어졌고 이 음악들을 즐기던 음악팬들은 80년대 헤비메탈과 클래식록 음악들을 일정부분 무시했었던 분위기였죠. 구닥다리라고.. Suede를 듣지 왜 Quiet Riot을 듣냐고.. 근데 지금의 힙합씬이 그렇습니다. 언젠가부터인가 '힙합'하면 미디 작곡이 주가 된 전자음과 댄서블한 클럽튠, 그리고 돈과 여자, 혹은 부담없고 편한 가사들, 얇고 여리면서 약간의 보컬이 가미된 - 혹은 오토튠이 가미된 - 랩들.. 그래요. 시대의 조류란 무시할 수 없어요. 그리고 이것들도 나쁘진 않아요. 하지만, 제가 소싯적부터 좋아해오던, '힙합'이라는 건 샘플링에 기반한 묵직한 브레익비트와 간간히 곁들여지는 스크래칭, 그리고 간지나는 도프한 랩들.. 그거였거든요. Nas형이 왜 힙합이 죽었다고 말을 했고 Jay-Z가 왜 오토튠의 죽음을 주장하는지 사실 좀 통감이 되기도 합니다. 근데 말이죠. 재미있는 건, 다시 록음악과 비교를 해보자면 언더그라운드-인디록씬의 음악적 자양분은 예나 지금이나 '옛것'에 기반을 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60-70년대 비틀즈-비치보이스부터 지미 헨드릭스, 더 후, 벨벳 언더그라운드나 섹스 피스톨즈에 대한 어떤 고집이나 리스펙트가 가장 큰 위치를 차지하고 있죠. , 그럼 언더그라운드 힙합씬은 어떨까요? , 맞아요. 아직도 본토의 많은 언더그라운드 힙합팬들은 80년대 후반 올드스쿨과 바이닐 컬쳐, 그리고 90년대 초반 뉴욕 힙합이나 쥐훵크를 그리워한답니다. 이런 사운드를 아직도 내고 있는 언더그라운드 힙합 앨범들이 높은 인지도를 얻고 있다는 점이 이를 반증합니다. 일례로 90년대 초반 잠깐 등장했다 잊혀졌던 Freestyle Professors의 신보는 '옛것' 그대로를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undergroundhiphop.com의 여러 평점들에서 만장일치의 별 5개를 얻어냈습니다. 한편 80년대 후반-90년대 초반을 장악하던 Marley Marl이나 KRS-One, 그리고 오늘 얘기한 D.I.T.C. 크루와 같은 힙합 장인들이 주류에 진입하지 못하고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점은 다소 씁쓸하기도 하네요. 아무튼! 다시 부활하고 있는 Wu-tang과 달리 실질적으로 D.I.T.C. 크루는 현재 좀처럼 그 단합된 모습을 찾기 어려운 게 사실이지만 (제 생각엔 Fat Joe가 제일 심한 듯), 앞서 얘기한 것처럼 현재 발표되고 있는 여러 언더그라운드 걸작 앨범들에는 아직도 produced by Show, Diamond D, Lord Finesse, or Buckwild의 이름들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는 걸 놓고 봤을 때, 여전히! 예전에도 그랬고 쭉 그래왔듯이, D.I.T.C.의 이름은 본토 언더그라운드 힙합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영원한 로망임에는 분명한 것 같습니다. 그들은 언제나 still diggin' 하니까요.

 

 

* Originally posted on: http://blog.naver.com/blogmiller/1100846583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