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한국 영화 포스터에는 반드시 에로틱한 장면이 강조돼 있었는데 80년대에 초등학교를 다니던 나에게는
그 포스터들은 꼭 한번쯤 경험해보고 싶은 미지의 세계였다. 특히나 나영희씨가 주연으로 나왔던 "매춘"이나
"이브의 건넌방"의 포스터는 그 자체로도 굉장히 야릇했는데 정작 성인이 돼서 어렵게 구해서 봤더니 초등학교
시절 꿈꾸던 바로 그 야릇한 에로가 아니라서 굉장히 실망했다는 것. (그냥 보지 말고 상상만 할 걸 그랬다.)
암튼 여기까진 좀 다른 얘기였고..
고 김기영 감독님의 '하녀' 시리즈는 다시 봐도 역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딱 두개지 싶다. '덮어두기'와 '회피
하기'라는 것. 소문 날까봐, 평판 안좋아질까봐.. 아들이 죽었는데도 덮어두고, 사람을 죽였는데도 닭모이 분쇄기
에 갈아서 조심스레 덮어버리고, 가족 살인이라는 사실이 끔찍해서 '이 일은 그냥 덮어두자'고 하고.. 후환이
두려우니까 그냥 '묵인'하자는 것. 이건 역시 또 다른 화두인 '회피하기'와도 연관된다. 전무송씨의 이 영화에서
의 행동들을 보라. 오리지널인 '하녀'에서보다 더더욱 무기력하고 안절부절 못하며 수동적이고 책임감도 별로
없다. 나영희씨의 손에 이끌려 이층으로 끌려 올라가면서 어리숙하면서도 '뭐 어쩌라구'의 표정으로 딸을 바라
보던 전무송씨의 표정이 모든 걸 말해준다. 오죽하면 그걸 본 어린 딸이 "하나님, 저 여자와 아빠를 죽게 해주세요"
라고 했을까.. (<-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이고 강렬한 대사였다, 그리고 이 대사는 영화의 엔딩에서 "엄마, 하나님
이 내 부탁을 들어주셨나봐"라고 다시금 확실한 각인을 시켜버린다.)
'덮어두기'와 '회피하기'.. 가장 손쉬운 방법. 그리고 내가 즐겨쓰는 방법. 바로 내 모습이었다. 김기영 감독님은
냉소적으로 그걸 꼬집고 싶었던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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