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nikut's Cultural Paradise

k.b.m. collection

Verbal Jint with Delly Boi [The Good Die Young] (2009, Annie Dog Music)

tunikut 2009. 10. 30. 11:25

 

Sit back. Just relax. 음. 일단 좀 잠깐 흥분을 좀 해야겠습니다. 아우진짜이거왕증말어떻게이런아진짜..

음, 예 그렇습니다. 일단 제 개인적으로는 매우 매우 만족한 앨범입니다. 그럼 하나하나 풀어나가봅시다.

 

제가 이 앨범을 듣고 가장 먼저 떠오른 소감을 "순수로의 회귀, The Return to Innocence Lost"라고 표현해보는 게 어떨까 생각합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얘기해보자면.. 그야말로 수많은 벽을 넘고 불길을 지난 그가 이제 드디어 마침내 '처음'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됐다는

그런 느낌이라고 할까요.. (물론 지극히 주관적인 해석입니다.) 무슨 얘기냐면, 물론 버벌진트의 정규 '1집'은 "무명"입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 느꼈 듯이 그 앨범은 '일반적인 한국힙합 엠씨가 발표하는 데뷔작'의 성격을 띤 음반이 아니었죠. 즉, 적당히 '안전빵' 사운드에

적당히 '대중적'인 컨셉과 적당히 영향력있는 보컬리스트나 엠씨의 휘쳐링을 품은 그런 앨범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반대로 엿먹어라식

의 왜곡된 사운드와 독기를 품은 가사가 어우러진 컨셉 앨범이었죠. 그리고 바로 거기서부터 그의 역정은 시작됐고 결국 "누명"에서

스스로에게 사형 선고를 해버림으로써 자신을 죽여버리는 지경까지 가게 된거죠. 하지만 제 생각에 이 과정은 어쩌면 필연이었습니다.
데뷔때부터 줄곧 그를 따라다니던 편견과 이에 맞물린 그의 불만과 분노를 반드시 그는 풀고 넘어가야했고 그 과정이 "무명"과 "누명"

으로 이어진 '살풀이'를 통해 나타나게 된 거죠. 그리고 이제.. 잠깐의 휴식기를 가지고 가슴 속에 깊이 품어두었던 짐을 벗어버린 그는

드디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제가 앞서 언급한 '일반적인 한국힙합 엠씨가 발표하는 데뷔작'의 성격을 띤, 대중적인 사운드, 안전한

가사, 그리고 화려한 휘쳐링이라는 삼요소를 지닌 딜리셔스한 앨범을 가지고 다시 왔습니다. (이러한 과정은 "누명"의 마지막 바로 전

트랙인 "사자에서 어린아이로"를 상기해보시면 묘한 연결성이 있음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죠.) 그리고 이 시퀀스를 가만히 곱씹어보면..

참 안타깝다는 생각도 들기도 합니다. (마치 순수를 잃어버린 어린 아이가 온갖 세상의 여파를 다 겪고 난뒤 마침내 다시 어린아이다운

순수를 찾은 모습이랄까요..)

 

그럼 이제 씨디를 열어봅시다. Verbal Jint with Delly Boi, 예 그렇습니다. 버벌진트 스스로는 '정규작'이라는 언급을 했지만 (근데 솔직

히 잠깐 어떤 생각도 드냐면 원래 정규작이 아닌 프로젝트 앨범으로 스스로도 생각하고 있지만 또 게시판에서 "역시 똑똑하네.. 괜히 말

바꿨다는 소리 듣기 싫으니까 정규작 내면서 프로젝트라고 또 그러네.." 이런 소리들이 또 나올까봐 그냥 아예 몰라씨발그래정규작이야

뭐 이런 느낌도 든다는..) 본 앨범은 힙합 앨범의 가장 전통적인 형태인 'one mc, one producer' 앨범이 맞습니다. 마치 우리 모두 좋아

했던 "MFU 2006"이나 "M&A", 그리고 "Stubborn Guys" 등을 연상하시면 될 거예요. 여지껏 그의 앨범들에서 들을 수 있었던 버벌진트식

작곡프로듀싱은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모든 프로듀싱은 Delly Boi가 도맡았고 (물론 3-4곡 공동작곡이 있긴 하지만) VJ는 랩에 집중

하는 형식입니다. 제가 또 이번 앨범을 '프로젝트 음반'이라고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본 앨범의 색깔이나 성격에 Delly Boi가 주조해낸

비트들이 기여하는 정도가 매우 크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이미 "Collage 2" 앨범부터 두드러졌던 엿가락 쑥쑥 뽑아내듯 쫙쫙 깔리는

트렌디한 전자음과 패럴 윌리암스, 채드 휴고, 그리고 팀보의 환영이 보이는 듯한 비트들에 적당히 팝적인 감각을 섞은 그의 프로듀싱은

분명 이 앨범이 '맛깔나게' 느껴지는 가장 큰 이유이며 곧바로 이번 앨범의 성격을 규정짓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또한 거기에 휘성, Lisa

와 같은 '대중가수'들의 참여와 Tiger JK, The Quiett과 같은 스타급 엠씨들의 참여 역시 이 앨범을 "예쁘게" 만드는 또 다른 요소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자, 그럼 (그렇다고 하더라도) 역시 가장 중요한 VJ의 랩과 가사는 어떨까요. 제가 지금까지 그의 결과물들을 들어오면서

느꼈던 아쉬운 점 중에 하나는 노랫말의 테마가 다소 제한된 것 같다는 거였는데요, 이번 앨범의 "을지로 5가", "Yessir", "Ordinary"로

이어지는 평범한 일상을 덤덤하게 묘사한 힘을 쫙뺀 가사들은 무척 신선하고, "R.E.S.P.E.C.T."가 주는 신실함은 분명 여태까지의 그의

이미지를 전복시키기에 충분하며, "나쁜 교육"의 시사성 또한 보다 확장된 lyrical spectrum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제가 이번 앨범을 듣고 하고 싶은 말은 이제 거의 다 한 것 같은데요. 좋아하는 트랙들 몇곡을 잠깐 언급하고 끝내겠습니다. 일단 전 제일

먼저 공개된 "무간도"를 듣고, 풋풋했던 "사랑해 누나" 이후, 이젠 거물급으로 성장한 VJ와 휘성이 8년만에 VJ 앨범에서 다시 만났다는 것

만으로도 어떤 뭉클함이 느껴졌습니다. 또 앨범 내 가장 신선한 트랙이라 할 수 있는 "을지로 5가"는 말할 것도 없구요, 이게 도대체 한국

힙합곡인지 본토의 것인지 구분이 안되는 Delly Boi의 업템포 팝비트와 제대로 필받은 VJ의 랩이 환상적인 조화를 보이는 "Yessir"도

무척 멋집니다.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제 생각에 '예술적'이라는 느낌이 드는 트랙은 역시 마지막 트랙인 "La Strada"인 것 같습니다.

이전작들에 비해, 청자를 확 집중하게 만드는 컨셉은 그다지 뚜렷하지 않은 본작이지만 이 곡은 유일하게 앨범 타이틀인 '죽음'을 강하게

암시하고 있습니다. 마치 영화 "8마일"의 오프닝이 연상되는, 스테이지 위에 올라가기 전의 심리 상황부터 결국 무대 위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지는 과정까지를 묘사한 그의 가사와 함께 마치 랩과 비트가 한 벌스씩 주고 받으면서 대화를 하듯 엮어낸 델리 보이의 프로듀싱은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일으킵니다. 거의 연기를 하듯이, 의식을 잃으면서 마지막 힘을 내듯 말하는 "잠깐 내 마이크를 끌께"에 이어, 폭발

하듯 터지는 델리 보이의 비트들은 청자들에게 굉장한 카타르시스를 안겨주기에 충분합니다.

 

자, 이제 "The Good Die Young" 시즌이 시작됐습니다. 앞으로 또 어떤 활동과 결과물들을 보여줄지 실로 기대되구요, 개인적인 바램

이라면 '오버클래스 컨퍼런스'에서가 아닌, '버벌진트 단독 공연'을 한번 보여주면 어떨까.. 싶기도 하네요.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