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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chael Haneke 영화 두 편

tunikut 2009. 10. 6. 13:36

허무주의적이고 씨니컬한 독일 감독 미카엘 하네케의 영화 두 편을 인상깊게 봐서 포스팅해본다. 비록 두 편 밖에 안봤지만 각종

인터넷 상의 그에 대한 평가들을 읽어보면 그의 작품의 특징은 일단 참으로 관객들을 불편하게 만든다는 거다. 그러면서도 그 안에

지독하게 깃든 허무주의와 sarcasm, 그리고 비판적 시선 등등은 영화를 '불편'하게 보고 나서도 그 영화가 주는 느낌이 오랫토록

기억에서 잊혀지지 못하게 한다는 것. 내가 본 두 편의 영화는 다음과 같다.

 

Michael Haneke [Funny Games] (1997)

 

 

아주 먼 옛날.. 그러니까 내가 대학교 1학년 신입생 시절.. "관객을 가지고 노는 발칙한 영화"라는 홍보 문구를 단 영화가 바로

이거다. 이 영화는 2007년에 헐리우드에서 완소 나오미 왓츠님께서 출연하시며 리메이크되기도 했는데.. 암튼 개인적으론 당시

이 영화를 보면서 불편했다기 보다는 굉장히 흥미미진진했다고 하는 편이 맞겠는데 (그렇다고 나를 새디스트로 보지는 말길),

내가 개인적으로 굉장히 관심있어 하는 테마 중에 하나가 '펑범하고 평화로운 가정-그리고 낯선 이-그리고 몰락'이라는 거다.

실제로 본 블로그에 포스팅된 여러 영화들 (주로 유럽 영화들)이 이 테마를 가지고 있는데 도미니크 몰 감독의 "레밍"이나

슈테판 크로머 감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여름 휴가" 등이 같은 테마라고 보면 되겠다. 이 테마는 사실 굉장히 불편하고 굉장히

위험하고 굉장히 무서운 테마다. 언제든지 우리의 실제 현실에서도 나타날 수 있으며 바로 당신의 옆에서 당신의 가정을 위협하

는 누군가가 있다고 생각하면 소름끼치기 그지없다. 자, 그렇게 이 영화는 시작한다. 왠 멀쩡해보이는 청년이 계란을 좀 빌려달라

고 집으로 찾아오면서 이 평범한 가족의 몰락과 잔인한 학살과 고문이 시작된다. 아..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상황은 너무 싫다.

"낯선이"는 가장 공포스러운 테마다.

 

 

Michael Haneke [Cache (Hidden)] (2005)

 

 

이건 몇달 전에 메가티비 (현 쿡티비)에서 봤다. 뭐 볼 만한 스릴러 없나 땡기던 중 시놉시스만 보고 왠지 "로스트 하이웨이"삘이

느껴져 골랐다가 역시나 감독 특유의 지독한 롱테이크로 눈을 비벼가며 세수하며 본 작품. 마지막 장면까지 범인을 절대 알려

주지 않지만 감독 왈 "이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계속해서 범인이 누군지 알고 싶어한다면 이 영화를 온전히 이해한 게 아니다"

라고 했듯이 이 영화는 범인이 누구냐라는 지극히 헐리우드스런 질문을 던지는 영화가 아니다. 그보다는 머랄까.. 프랑스인의

알제리 이민 대학살 사건을 모티브로 인종차별에 대한 굉장히 강한 냉소와 비판 의식이 느껴지는데 이게 정치적인 방향으로

전개되는 게 아니고 한 개인의 죄의식과 심리, 어쩔 수 없는 현실에서의 비겁함 - 우리 누구나 그럴 수 있는 - 을 통해 굉장히

우회적이지만 매우 서서히 관객에게 죄어오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 얼마전에 모블로그 기고글을 쓰다가 잠깐 그런 언급을 한

적이 있는데 당신이 과거에 저지른, 다시 떠올리기 싫은, 생각하기도 싫은, 혹은 부끄러운 어떤 실수가 있었고, 잊혀진 줄로만

알았던, 혹은 이제는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고 그럴 거라고 자위하고 살고 있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서서히 그 과거의 실수가

현재의 나에게 족쇄가 되어 다시금 영향을 미치게 되는.. 그런 상황. 이 역시 또다른 현재인의 공포가 아닐까?

 

위에 본 두 영화를 통해 보자면 미카엘 하네케 감독은 정말 오늘날을 사는 '어느 정도는 여유가 있는 평화로운 중산층의 가정'

에게 나타날 수 있는 '공포'라는 게 어떤 건지 진지하면서도 서서히, 그리고 보는 이의 기억에 깊게 자리잡을 수 있게 심어주는

탁월한 능력이 있는 것 같다. 우리가 진정 두려워하는 게 무엇인가? 미카엘 하네케 감독이 보여주는 테마가 바로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