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nikut's Cultural Paradise

k.b.m. collection

Deegie [개] (2009, e-Table)

tunikut 2009. 3. 4. 17:04

 

이번 앨범을 듣기 전에 씨디장에 꽂아뒀던 그의 씨디들을 며칠간 하나씩 하나씩 꺼내어 다시 들어봤다. 그야말로 revisiting하는

기분으로. insane deegie-the last winter story-417일간의 세계일주-bleufilm: 2 jazzy for hiphop/클리토레스?까지. (난 insane

deegie 2는 '구입'하지 못해서 못'들어'봤다.) 그러면서 들었던 생각은 국내 힙합씬에서 가장 저평가된 뮤지션이 바로 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보통 사람들이 VJ하면 단순히 랩스킬을 떠나서 탁월한 뮤지션쉽-즉, 작곡을 하고 연주를 하는-을 높이 평가

하곤 한다. 또한 보통 사람들이 salon 01이나 LBTM의 음악들을 들으며 독특한 감각과 실험성에 탄복하곤 한다. 그렇다면 국내

힙합씬에서 이 '뮤지션쉽'이라는 것과 '실험성'을 모두 갖춘 아티스트를 꼽는다면 과연 누굴 꼽을 수 있을까? 그 대답을 '디지'라고

대답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에 대해 다소 의구심이 드는 게 사실이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간단하다. 외향적으로 비춰지는 이미지가 너무 '초강력'하다보니, 그 이미지에만 초점을 두고 그를 판단하게

된다는 거다. 난 예전 MP에서 활동하던 PDPB 시절부터 그를 직접 무대 위에서 봐왔다. 아직도 분명히 기억난다. dj krush가 처음

내한했던 홍대 앞 nbinb에서 처음봤던 그의 모습을.. 레게 파마 머리를 하고 뒤뚱뒤뚱 혹은 껑충껑충 뛰며 관객들 사이를 비집고

다니던 그의 모습을.. 알토 소리 그득한 무드 넘치는 재즈 mr에 "조선일보 진짜 좆같지 않나요?" 같은 발언을 하던 그를.. 그게 정확히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의 그의 모습이다. 솔직히 말해 나 역시도 그를 처음보고 '음악은 되게 좋은데 하는 짓이 왜 저래'라고 생각했다.
암튼 간에.. 이리저리 돌리지 말고 요점을 말하자면 그의 '음악', 그리고 그의 '앨범'들을 들어본다면, 그리고 서두르지말고 흥분하지

말고 calm down한 상태에서 찬찬히 그의 앨범들을 들어본다면 그가 들려주는 음악에 반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나 역시도 그의

10년지기 '팬'임을 자처하지만 간혹 그의 언행이나 행동들을 보면 좀 과하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고 그가 부르짖는 사상에 정확히

동의하지 못하는 경우도 왕왕 있어왔긴 하지만, 그는 뮤지션 아닌가. 우리는 리스너고. 그럼 그의 외향적인 면이나 이미지에 집중할 게

아니라 그의 '음악'에 관심을 더욱 쏟아부어야 하는 것 아닐까?

 

서두에 언급한 바 있는 그의 '뮤지션쉽'과 '실험성'을 두고 거봐 이거 들어봐 이건 이러이러하니깐 뮤지션쉽이 있는 거고 여기선 이러

니까 실험적이야 뭐 이런 식으로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저 10년이라는 세월을 장식하는 그의 디스코그래피를 경험한 '팬'으로서 그를

이제는 integrated된 마인드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뮤지션은 예술인의 한 부류다. 예술인은 자신의 주관과 감성 등을 자신

의 방식대로 표현할 줄 알아야 하며 거기엔 나름의 서사와 테마가 존재하게 마련이다. 우리는 이런 걸 '작가주의'라고 부른다. 그의 음악

을 듣다보면 소름이 돋을 정도의 지독한 컨셉과 테마와 작가주의를 만날 수 있다. "크리스마스의 악몽"의 등골 서늘한 반전 스릴러와

거기에 어우러진 하드코어/스래쉬 사운드나 "섹스, 거짓말, 그리고 뮤직비디오"에서의 조악하고 퇴폐적이며 몽환적인 설정과 효과음들

을 들어보라. 또한 "Cloud 9"에서의 교회 성가음이나 레드 제플린에 대한 오마쥬, "존 레논이 생전에 남긴 말처럼"에서의 모던록/델리스

파이스에 대한 오마쥬나 "Never Again"에서의 상큼한 애시드 재즈/훵크를 듣다보면 그처럼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줬던 '한국힙합'

뮤지션은 없었지 싶다. 뭐 '재즈 flava'에 대한 건 두말 하면 잔소리다. 단언하건대 '재즈힙합'이 뭔지도 몰랐던 우리네 리스너들에게
국내에서 처음으로 '재즈힙합'을 보여줬던 건 그였다.
 
그렇게 10년이 흘러 이제 난 그의 마지막 언더그라운드 부틀렉 앨범 "개"를 듣고 있다. "부탁한말씀"으로 시작되는 나레이션부터 트랙들

을 넘기면서 제일 먼저 들었던 느낌은, 요근래 나를 이렇게 흥분시켰던 앨범은 외국 음반이나 국내 음반이나 통틀어서 없었던 것 같다는

거다. "부탁한말씀"을 들으면서 이 앨범이 지향하는 컨셉이 어떤 것임을 대략 파악하게 된다면 "I.D. No. c8c8588"의 그야말로 '땐스뮤직'

에 어우러지는 신랄한 랩핑(듣다보면 나도 모르게 전성기 시절의 싸이가 연상된다)을 들으면서 어느새 내 몸은 좌불안석 상태가 되며

"개"에 와서는 그의 지독히도 지독한 피끓는 육두문자에 내 입도 꿈틀꿈틀하게 된다. 그러다가 "종합병원"에서 나오는 김좆키와 김폭딸의

보이스웨어 목소리를 듣고 이어 "이사야 34장 15절"의 스윙스의 랩까지 듣고 나면 더 이상 이 앨범을 듣고 있을 수 없을 것이다. 나도

여기서 꺼버렸다. 왜. 앨범이 사람을 너무 흥분시키니까 말이다. 이 앨범은 이렇다. (근데 여기서 끄길 잘한 게 여기까지가 '개들'의 전반부

이고 그 이후는 또 다른 '개들' 이야기가 나온다.) 사운드 얘기를 잠깐 해볼까? 앞서도 잠깐 얘기했다시피 이제껏 그의 앨범들을 듣다보면

힙합과 재즈를 기본으로 하면서도 록, 펑크, 하드코어, 모던록, 애시드 재즈, 훵크, 심지어는 클래식이나 교회 성가까지  다양한 스펙트럼

이 느껴졌지만 유일하게 그가 여지껏 잘 보여주지 않았던 스타일이 댄스뮤직 쪽이었다면 이번 앨범의 전반적인 스타일은 투스텝이나

빅비트의 느낌이 많이 나서 반가웠다는 거다.  

 

내 기억에 1집 발매 당시에 그가 언젠가는 '완전 한정 패키지에 아주 저속한 삽화들이 난무하는 컨셉 패키지 앨범을 만들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내 생각에 바로 이 "개" 앨범이야말로 그가 추구했던 궁극의 부틀렉 앨범이 아닐까? 이 앨범은 그가 마지막으로

자신의 '에네르기' 게이지를 최대한 올려 '까대기'를 극단화시키다 못해 듣는 청자의 중추신경계를 자극시키기까지 하니 말이다. 이 앨범

을 다 듣고 나면 자극됐던 당신의 중추신경계가 급작스러운 withdrawal을 느끼면서 안헤도니아 상태에 빠지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