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구세주"라는 영화를 봤다. 물론 음악 듣고 음반 수집하는 게 내 주된 취미 생활이지만 영화 보는 것도 나한테는 무시 못할 중요한
요소다. 원채 뭘 보고 듣는 걸 좋아하다보니.. 물론 그렇다고 음악 리스닝 처럼 obsessive하게 digging하면서 영화를 보는 편은 아니고
대중적인 상업 영화서부터 좋아하는 감독들 위주로 두루 보는 편이다. 많이 볼 수록 문화적 유산이 축적된다고 생각하기 땀시.. 특히
테리 길리엄, 데이빗 린치, 대니 보일, 코엔 형제, 데이빗 핀처 등의 영화는 꼭 보는 편. 이 "구세주"라는 영화는 잘 아시겠지만 보는 관점
에 따라 trash가 될 수도 있는 전형적인 한국 코미디 상업 영화다. 근데 난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블로그의 favorite movies란에 올리고 싶은
충동을 느낄 정도로 아주 아주 재미있게 봤다. 그래 솔직히 말해서 이 영화를 놓고 작품성을 논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되는 거다. 이 영화
는 그저 우리가 심심할 때 전자오락을 하는 것처럼 보고 즐길 수 있으면 그만인 영화니까. 좀 과장해서 얘기해보자면 내가 태어나서 지금
까지 본 영화 중에 '웃는 빈도수'면에서는 최강인 영화였다. 이렇게 '자주' 웃게 만드는 영화 없다. every 5 minutes 마다 웃을 수 있다. 내
보장한다. 암튼 적어도 최근에 본 영화 중 지루하기만 하고 카우보이들의 동성애라는 정서가 영 나하곤 코드가 안맞던 "브로크백 마운틴"
보다는 훨씬 좋았다.
2. "손님은 왕이다"도 봤는데 이거 역시 참 괜찮았다. 명예남이라는 배우에 대한 오마쥬성이 강한데 솔직히 정치적인 이미지 때문에
좀 보기가 망설여지긴 했지만 그런 걸 다 떠나고 보면 오랫만에 코엔 형제 영화같은 한국 영화 한 편을 건진 셈이다. 성현아는 "주홍글씨",
"첼로"에 이어서 이번에도 역시 옷에 피를 묻히고 칼을 든채 겁에 질려 옆을 응시하는 연기를 보여줬다. 배우 성지루의 흡사 할리우드의
필립 호프만을 연상시키는 외모나 이미지가 매력 포인트다.
3. 음악을 듣기 위해서는 당연히 음반을 사야되는데 거기에도 역시 돈이라는 게 필요한 건 당연하다. 아무리 음악을 많이 듣는 마니아고
뭐고 돈이 있어야 들을 수 있는 법. 차비 아끼고 밥값 아껴도 모자란 건 어쩔 수 없다. 요샌 CD 플레이어보다 mp3 플레이어를 가지고
다니는 사람이 훨씬 많아져서 아직도 점퍼 안주머니에 하얗고 납작한 원형의 소니 CD 플레이어를 쑤셔 넣고 들으면서 다니는 나로서는
솔직히 좀 뻘쭘한 느낌도 있다. 특히 지하철 같은데 앉아서 CD 플레이어를 척 꺼내 씨디를 빼서 다른 씨디로 갈고 있는 나를 좀 어린애들
은 신기하단 듯이 쳐다보기도 한다. 그러면 일순간 나 스스로도 좀 뻘쭘하고 디게 시대에 뒤떨어져보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의기소침
해진다. 마치 무슨 느낌이랄까.. 명동 한복판에 앉아 석유 곤로를 고치고 있는 할아버지가 된 것 같은 느낌.. 참 나.. 불과 5년전까지만 해도
젊은 애들은 길거리에서 손에 씨디 플레이어를 들고 자랑스럽게 다녔단 말이다! 암튼 그래도 난 열심히 석유 곤로를 고치는 할아버지처럼
살거다.
4. 요새 자금 사정이 딸려 씨디를 많이 못샀는데 게 중에서 좋게 들은 힙합 씨디 두 장이 있다. 바로 O.C.의 "Jewelz"하고 Black Moon
의 "War Zone". 전자는 뉴욕의 저 유명한 D.I.T.C. crew (근데 이 크루 지금 뭐하죠?) 소속의 엠씨이고 후자는 Buckshot, 5 Ft, DJ Evil
Dee로 구성된 뉴욕 삼인조. 재즈의 본고장이 뉴올리언스라면 힙합의 본고장은 브룩클린인데 바로 이 두 팀 다 브룩클린을 기반으로 하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음악적 색깔도 비슷한데 둔탁하고 raw한, 그러나 우탱이나 QBC와는 또 다른 매력적인 비트에 카리스마 느껴지는
랩핑이 압권이다. 누가 만들었는지 진짜 찾아가서 한 대 때려주고 싶은데 소위 '먹통힙합'이라고 하는 음악이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인데
내가 좋아하는 힙합이 이런 먹통힙합이다. 그렇다고 내가 먹통이냐? 먹통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은 디게 무슨 무식하고 그런 느낌이 들어
서 싫다. 온라인 레코드점 중에서도 '먹통 레코드'라고 있는데 왠지 느낌이 안좋아서 주문하기 싫어진다. 먹통힙합이라는 말 만든 사람보다
더 때려주고 싶은 사람들이 있는데 '된장힙합', '김치힙합' 이런 말 갖다 붙인 애들.. 뭐냐 그게.. 말 나온 김에 한심한 거 하나 더. featuring
을 "퓨쳐링"이라고 쓰는 사람들.. 옛날에 4WD님이 하신 명언이 갑자기 생각난다. "퓨쳐링이 뭐냐. 무슨 빽 투 더 퓨쳐냐?" 암튼 간에 Black
Moon의 저 앨범 참 좋았고 1집 "Enta Da Stage"가 더 죽인다는데 국내에 지금 수입된 거 구하기가 어렵다.
5. 결국에는 이렇게 되는 건지 모르겠는데 힙합 듣다가 알앤비 듣고 그러다보니 소울/훵크도 찾아 듣다가 이제 재즈에 관심이 부쩍
많아졌다. 그치만 아직 나는 힙합 초심자가 우탱의 엔터 더 우탱 씨디를 사는, 혹은 록 초심자가 딥 퍼플의 씨디를 사는 마음과 같다.
이제 기껏해야 내가 산 재즈 앨범은 달랑 두 장. 재즈 색스의 거장 John Coltrane의 명반 "A Love Supreme"과 재즈 보컬 Johnny
Hartman과의 협연작 "John Coltrane And Johnny Hartman" 이렇게 두 장이다. 아직 하드밥이 뭔지 후리 재즈가 뭔지 개념이 안잡힌
나지만 일단은 열심히 들어보니 정말이지 색다른 재미가 느껴진다. 앞으로 Thelonious Monk, Miles Davis, Eric Dolphy, Art Blakey,
Wynton Marsalis 등의 거장들부터 하나씩 하나씩 찾아 들어보려고 한다.
6. 일단 휘성의 전 앨범을 다 모았고 이번주 일요일에 잠실에서 하는 휘성 단독 콘서트 예매를 했다. 나만큼은 아니지만 역시 만만치
않게 휘성을 좋아하는 집사람과 보러 갈 예정.. 그래서 이번 주 내내 휘성의 앨범들을 다시 찬찬히 듣고 있는데 생각보다 대중들에게
덜 알려진 곡들 중 명곡이 참 많다는 거.. 1집의 "하늘에서"와 2집의 "사랑하지 않을 거라면"은 정말이지 심금을 울린다. 공연 보고 와서
사진과 함께 후기 올릴께요~! (앞으로 공연 사진들을 올리는 게시판을 하나 더 추가할 예정임)
7. Lyn이기 전에 이세진이라는 이름으로 냈던 데뷔 앨범을 드디어 드디어 구했다. 흐흐.. 의외로 항상 지나다니던 가까운 곳에서 발견
했는데, 경희대 앞의 M모 음반점에는 그다지 희귀 아이템들이 많다고 할 수 없는, 별 특색 없는 음반점인데 아주 가끔 가다 상상을
초월하는 희귀반들이 나타난다. 암튼 갑자기 품절이 돼버린 에픽 하이의 2집과 함께 이세진의 데뷔 앨범을 이 곳에서 구입해서 기분이
참 좋다.
8. Matt이라는 가수가 있는데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남자 알앤비 보컬이다. "R&B 2 Rue"라는 앨범이 있는데 4월 초에 파리로 출장을
갈 일이 생겼는데 여건이 되면 이 앨범을 한번 사서 들어볼 생각이다. www.virginmega.fr에 가서 이 음반의 수록곡들을 샘플로 들어볼
수가 있는데 목소리 진짜 예술이다.
9. 요새 국내 힙합계의 대세가 뭐냐고 물으면 두 가지를 대답하면 된다. 1. 싱글, 2. 리미티드 에디션. 가리온의 무투가 시발점이 되어
정말이지 많이도 나온다. 가리온-트레스패스-대팔- 각나그네-아이 에프까지.. 그리고 각나그네하고 대팔하고 Bust This의 싱글이 또
나온다는데.. 또한 DS connexion, Outsider 음반이 아예 한정판으로 제작되는가 하면 개화산, 라마의 유전자 앨범이 조기 품절돼버리는
사태까지.. 두 현상 모두 나같은 컬렉터를 괴롭게 만드는 현상이다.
10. 가족을 포함해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마음이 담긴 편지 한장과 자그마한 선물을 준비하는 마음을 가지는 건 참 좋다고 생각한다.
2006/03/17 (금)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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