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nikut's Cultural Paradise

notes

압구정 area... 압구정 era...

tunikut 2008. 12. 26. 13:28

 

 

사람이 어떤 추억을 떠올릴 때는 대개는 감각적인 경우가 많다. 즉 당시에 보았던 풍경이라든지 청각 내지는 후각, 심지어는 살끝에 와닿는 바람의 촉각까지도 다 포함된다.

 
내게 있어 압구정은 그런 곳이다.
 

이해의 선물에 나왔던 주인공이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 지금은 없는 어릴적 위그든씨의 사탕 가게를 떠올리 듯이 소년 시절에 자주 찾던- 특히나 자신에게 있어 동경이나 소망이 담긴 장소라면 더욱 그렇다. - 장소는 평생토록 아늑한 추억이 된다.

 

내가 음악을 처음 들은 게 92년도니까 중학교 3학년 때다. 헤비메탈 음악을 좋아하던 누나가 공테이프에 Def Leppard, Guns N Roses, Skid Row, Metallica 등을 녹음해서 듣고 있었는데 난 어느날 저녁 숙제를 하다가 그 테이프를 빌려서 귀에 꽂고 들었다. 그 때 내 머리를 꽝 때리는 트랙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Def Leppard의 "Love Bites"였다. 화음 섞인 chorus와 애절한 느낌의 이 발라드 단 한 곡으로 내 음악 인생이 시작돼서 지금까지 오게 된 거다. 그러면서 내가 내 인생 최초로 산 CD가 바로 Def Leppard의 "Adrenalize" 앨범이었다.

 

이후로 계속해서 메틀/록 관련 씨디들을 사모으기 시작했는데 당시에는 우리나라에 라이센스가 잘 되지도 않았고 되더라도 금지곡이 잘리던지 조악한 부클렛 프린팅으로 제대로 된 수입 씨디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내가 정말로 정말로 당시 사고 싶었던 게 Def Leppard의 "Hysteria" 수입 씨디였다. 그러던 중 친구로부터 상아레코드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거기 가면 이런 저런 수입 씨디들이 다 있대.."
 

거기가 어딜까.. 강건너 용산에 살던 중학생 신분의 나로서는 강너머 어딘가에 있다는 상아레코드가 굉장히 멀게만 느껴졌다. 그리고 고등학교에 진학.

 

고2때 같은 반에 집이 부자인 아이가 있었다. 그 애는 항상 삐까번쩍한 수입 씨디 3-4장을 가지고 다니며 쉬는 시간 마다 부틀렛을 펴들고 아이들에게 보여줬다. 그애는 원판 씨디들을 미국에 사는 친척이 보내준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날..

 

난 드디어 그 아이와 같이 '상아레코드'를 한번 찾아가보자고 했다. 중간 고사가 끝난 날.. 우리는 지하철을 타고 강을 건넜다. 그리고 3호선 압구정역에 하차. 코끼리상가가 어딘지 물어물어 우리는 드디어 그 상아레코드라는 곳을 발견했다!

 

두근두근.. 2년 동안 동경과 소망이 있었지만 가보지 못한 곳... 난 드디어 그 땅을 밟았다!

 

그 안에는 내가 바라던 모든 것이 다 있었다. 우리는 겉으로는 표시를 안냈지만 속으로 눈빛을 교환하며 감탄 또 감탄했다.. 내 기억에 아마 거기서 처음으로 산 앨범이 Guns N Roses의 "Use Your Illiusion I"이었던 것 같다. 암튼 그러고 나와서 둘이서 하겐 다즈에 들어가서 아이스크림을 먹다가 한쪽벽에서 그린 데이의 "Basket Case" 뮤직비디오가 나와 "쟤들은 뭐래.. 왜 저렇게 눈이랑 목에 힘을 꽉 주고 노래하는 건데.." 그러다가 "I Think I'm cracking up! Am I just paranoid" 부분에서 손에 들고 있던 스푼을 둘다 떨어뜨리고 입벌린 채 한참을 감상했던 기억이 난다. 그 다음 기말 고사가 끝나고 우리 둘은 다시 거기 가서 난 그린 데이의 1집을, 그 아이는 당시 그린 데이의 라이벌이었던 오프스프링의 1집을 사기도 했다.

 

그러면서 상아레코드는 내 씨디 수집의 단골 가게였다. 지하철을 갈아타면서 거기까지 가는 데는 시간이 많이 걸렸지만 기분은 좋았고 씨디를 사서 귀에 꽂으며 다시 압구정역까지 걸어오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또 한편으로 당시 압구정 교회에는 신나라 레코드가 있었다. 상아레코드와는 다른 넓직한 규모에 여러 다양한 씨디들이 있던 그 곳.. 

 

95년도에 Def Leppard가 베스트 앨범 "Vault"를 발표하고 처음으로 내한해서 팬사인회를 가진 적이 있는데 그 장소가 바로 압구정 신나라레코드였다. 중학교때부터 나의 우상이었던 이들을 실제로 본 것도 너무 너무 감동스러웠지만 같이 어때동무하고 사진도 찍고 그래서 너무 기뻤다.

 

암튼 난 중고등학교 시절 한달에 한번 정도는 꼭 상아 아니면 신나라를 번갈아 왔다갔다 하면서 한참 동안 - 족히 2-3시간은 걸린 것 같다 -쇼핑하면서 씨디 '1장'을 사오곤 했었다.

 

대학교에 들어오면서 인터넷이 발달하게 되면서 주로 씨디 구입은 CDnow와 같은 외국 인터넷몰과 eBay와 같은 경매사이트를 이용했고 직접 가더라도 거의 대부분 신촌의 향음악사를 애용했다. 그러면서 어느덧 상아와 신나라는 내 발걸음이 뜸해지게 됐다.

 
그러고서 다시 압구정을 찾게 된 건 2000년 어느날 소개팅껀이 하나 생겨서였다. -_-
 

007팅의 형식이었는데 당시 약속 장소가 압구정 신나라 레코드 앞이었다. 당시 상대 여자는 지금 기억에 맘에 들었었는데 그 때 신나라앞에서 기다리다가 심심해서 상아 레코드에서 Dreem Teem의 믹스 앨범을 하나 실로 오랜만에 샀던 것 같다. 허나 당시 나만 맘에 들었고 그 여자애는 내가 맘에 들지 않았던지 혼자 좀 좋아하다가 끝났다.

 

그러고 나서.. 2001년 다시금 압구정 지역에 열라게 왔다갔다 한 일이 있었으니 바로 현재 내 와이프의 당시 직장이 압구정 현재 백화점 디자이너였던 것이다. 우연찮게도 인터넷 채팅에서 알게 된 우리는 수많은 데이트 시절을 압구정과 신사동에서 보냈다. 당시 의과대학생이었던 나는 의료계 파업 및 수업 거부 시절이라 시간이 남아돌아서 아침마다 와이프집에서 기다렸다가 출근길 바래다주고 압구정 상아 레코드 옆에 있던 던킨 도너츠에서 커피도 마시고 끝나면 마중 나가서 로데오 거리에서 저녁도 먹고 그랬다. 아직도 너무 아늑한 기억이 지금 집사람과 만난지 3주 정도, 그러니까 이제 막 서먹서먹한 단계가 끝나는 시기에 첫 크리스마스 이브날 현대 백화점 앞에서 와이프를 기다렸다가 로데오 거리의 인형 가게에서 보라색 향수 곰인형을 하나 사주고 바에서 맥주를 마시면서 바라보던 그 옆모습이 생생하다.

 
그리고 결혼 후.. 와이프가 압구정 직장을 그만 두면서 압구정에 갈 일은 이제 없어지게 됐다.
 
그러고 3년이 지났다.
 
한 2주전 주말이었던 것 같다. 그 날이 언제더라.. 신촌 Geek에서 빅딜 공연이 있었던 날.. 시간이 남던 난 정말로 오랫만에 옛 추억을 떠올리며 3호선 지하철을 타고 압구정으로 갔다. 오랫만에 상아레코드에 가서 데드피와 어드스피치의 앨범을 사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언제나 나를 반겨주던 버스 정거장 앞 코끼리 상가 골목에는 상아레코드가 있지 않았다.
 

옆에 새로 생긴 듯한 한 DVD 가게 주인에게 물어봤더니 "거기 없어진지 2년도 넘었어요"라고 했다. 난 혹시나 근처 다른 데로 이전했나.. 갤러리아 백화점까지 걸어가봤지만 역시 상아레코드는 없었다.. 그럼 신나라는? 난 부랴부랴 발길을 돌려 길을 건너 압구정 교회 쪽으로 향했다. 그러나.. 텅빈 교회 건물 안에는 소년 시절의 나를 반겨주던 여러 가수들의 포스터와 환하게 밝혀져 있던 씨디 매장안의 풍경은 존재하지 않았다..

 
아.. 이렇게 내 소년 시절도 끝난 거구나.. 나도 이제 내년이면 서른 살인데..
 
가을이 오고 있음을 알리는 스산한 바람이 귓가를 스치며 터벅 터벅 쓸쓸한 심정으로 다시 지하철역을 향해 걸었다.
 

집으로 돌아오며 어릴 적 상아 레코드 안에서 탄성을 지르며 바라보던 수많은 라이브 부틀렉 씨디들.. 그리고 신나라 레코드에 쭈그려 않아 Alice In Chains의 "Sap EP"를 꺼내 들던 한 소년의 모습이 그리워졌다.

 

2005/10/16 (일)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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