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nikut's Cultural Paradise

travel diaries

Paris (2006.4.3 - 2006.4.10) (5)

tunikut 2008. 12. 23. 17:10

 

2006년 4월 7일

 
[빠리지엥의 낭만.. 몽마르트르]
 
이제 내 뇌세포도 노화의 과정에 들어간 상태를 부인할 수 없는지 여행 기억도 슬슬 가물가물해지기 시작한다. 그래도 끝까지 힘을 내서 이 여행 일기를 완성해보자! 자아! 기지개 한편 '펴'고... (고등학교 때 화학 선생님이 즐겨쓰시던 표현이다.)
 
어젯밤에 너무 무리했는지 아침에 일어나기가 너무 힘들다. 샤워도 안하고 자서 그런지 몸도 찌뿌둥.. Tekken에 나오는 카즈야 마냥 뒤로 붕뜬 머리를 한채 잠에서 깨어났을 땐 이미 8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하도 맛이 없는 아침이라 돈이 아까워서 오늘 아침은 차라리 굶기로 한데 우리 셋 일행은 모두 동의했다. 동기 선배는 아침 일찍부터 오늘은 파리에서 유학 생활을 하며 강사일도 겸하고 있는 형을 만나기 위해 우리 일행과 헤어졌다. 교수님과 나만 둘이 남았다. 
 
(1) 우선 어제 유람선을 타러 가면서 학회장의 Edap 부스에 맡겨놓았던 포스터를 찾고
(2) 제약 회사 가이디드 투어 담당 직원과 만나서 오늘 일정도 물어보고
(3) Astellas에서 나눠주는 스피커 및 고급 아이템을 얻기 위해
 
교수님은 오늘 오전 나를 다시 학회장으로 파견시켰다. 특파원이 된 심정으로 터벅터벅 학회장으로 다시 가서 3가지 임무를 수행하고 다시 숙소로 돌아오니 점심 때가 다 됐다. (스피커를 포함한 고급 제약 회사 선물을 타기 위해서는 부스에 설치된 전자 오락 6가지를 플레이해서 일정 점수 이상을 올려야만 했다. 나는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오늘 오전 내내 학회장에서 전자 오락만 해야 했다.)
 
자아.. 이제 오늘은 뭘 할까.. 파리에서 봐야 할 필수 코스들 중에서 여태 못 본 것들을 보기로 했다. 마침 오늘 아침 날씨가 아주 화창하다. 그래! 파리에 와서 진정한 빠리지엥들의 낭만이 숨쉬고 있다는 몽마르트르 지역부터 시작하자! 몽마르트르는 우리 숙소와 가깝기도 했다.
 
메트로 빌리에 역에서 2호선을 타고 앙베르역까지 훌쩍 와서 드디어 몽마르트르 언덕을 향해 교수님과 나는 걸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 동네는 마치 한양대 병원 근처 좁은 먹자 골목을 연상시키는데 언덕을 향해 올라가는 좁은 골목의 양 옆으로는 싸구려 옷가지들과 먹거리 상점들이 즐비해있었다. 여기서 떡볶이와 부산 오뎅을 팔아도 괜찮을 것 같다는 쓸데 없는 생각도 해봤다. 세계 각국에서 온 멋모르는 여행객(교수님은 그들을 일컬어 '촌놈들'이라는 표현을 썼다.)들은 그 싸구려 물품들을 사기도 했다. 골목 끝에 다다르니.. 오호라.. 양 옆으로 동그랗게 올라가는 계단이 자리잡고 있고 중앙으로 잔디밭이 펼쳐져 있다. 그리고 그 위로 대사원인 사크레쾨르의 둥근 꼭대기가 살짜쿵 보이기 시작했고 양 옆 계단, 잔디밭, 땅바닥 할 것 없이 빠리지엥들이 주저 앉아서 샌드위치를 먹거나 연인과 사랑을 나누거나 나자빠져 자거나 암튼 그런 자유스러운 모습들을 매우 자랑스럽게 펼쳐보이고 있었다.

 

 언제 봐도 기분 좋은 몽마르트르..

 

.. 바로 이런 분위기라는 거군. 몽마르트르의 분위기라는 게..

 
흥분을 감추고 양 옆의 계단을 따라 좀더 걸어 올라가니 파리 시내가 찬찬히 내려다보이면서 드디어 사크레쾨르의 웅장한 모습이 우리 앞에 자리 잡았다. 여전히 상당한 수의 서양인들이 여기 저기 주저 앉아 있었는데 대부분은 특별히 뭐 하는 거 없이 그냥 앉아만 있었다. 마치 양성 주광성을 가진 짚신벌레들 같았다. 서양인들은 햇빛 쬐는 걸 참 좋아하는데 런던의 피카디리 서커스에 가봐도 그 중앙의 분수대 같은 데 사람들 할 일 없이 무지하게들 앉아있는 걸 보면 참 재미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렇게 길거리나 공원에 떼거지로 할 일 없이 앉아 있지 않는다.

 

 Sacre-Coeur at Montmartre

 

우와아.. 여기가 맨날 사진으로만 보던 바로 거기구나! 무지하게 신났다. 이 때부터 난 교수님에게 참으로 깊은 고마움 - 마치 아버지와 같은 - 을 느꼈는데 교수님은 이미 와본 곳이지만 이 곳에 처음인 나를 위해서 여기 저기를 구경시켜 주시며 사진도 찍어주셨다. 

 
"자! 이리 와봐라. 자, 여기 서봐라"
 
사크레쾨르 사원 내부를 잠시 구경하고 나와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 걸어가니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 중에 하나라는 생 피에르 교회가 나왔다. 역시 이 곳에서도 잠시 내부를 구경했다. 내부는 매우 조용했다. 나는 주변을 빙 둘러보았는데 가톨릭 신자이신 교수님은 진지하게 자리에 앉아 기도를 하기도 하셨다. 생 피에르 교회에서 나와 다시 왼쪽으로 골목을 따라 빙 돌아가니 사크레쾨르와 더불어 몽마르트르의 제 2의 명풍경이 펼쳐졌다. 예전에 싱가폴에 갔었을 때 내 누이가 클라크 키 지역을 보고 마치 이 곳과 같다고 말을 한 적이 있었는데 여기 와보니 그 분위기가 뭘 의미하는지 알 것 같았다. 이 곳은 꼭 뭐같냐면 비유를 해보자면 그 왜 우리 나라 조선 시대 때 궁궐에서 궁중 악기를 연주하는 행사가 있을 때 말이야.. 사방으로 기와 지붕이 쳐진 벽이 둘러싸고 있고 중앙의 뜰에서 악사들이 궁중 악기를 연주하는 풍경.. 꼭 그렇다. 사방으로 노천 카페들이 빙 둘러싸고 있고 그 중앙에서는 수많은 거리의 화가들이 캔버스를 놓고 관광객의 초상화를 그리거나 풍경을 그리거나 그림들을 팔고 있었다. 붓을 들고 캔버스에 휘젓는 모습들이 마치 궁중 악사가 하프를 켜는 장면을 떠올리게 했다. 그래.. 여기가 몽마르트르구나....

 

 좁다란 골목에 빽빽이 늘어서있는 거리의 화가들..

 

 거리의 화가 뿐만 아니라 거리의 악사도 있다.

 

교수님과 나는 아침과 점심을 모두 거른 상태라 노천 카페에서 풍기는 음식 냄새에 군침이 돌았지만 동기 선배와 재회하기 위한 시각이 다가오고 있었다. 헉! 벌써 지금이 2시 40분.. 우리는 3시에 노트르담 대성당 앞에서 만나기로 한 것이다.
 
[시테 섬, 뽕네프, 그리고 노트르담 대성당]
 
교수님과 나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서둘러서 올라왔던 길을 다시 복습하며 몽마르트르와의 짧지만 강렬했던 여정과 작별인사를 했다. 메트로 4호선을 타고 남쪽으로 쭉~ 이동, 시테역에 도착했다. 지하철역을 나오니 벌써부터 노트르담 대성당의 뾰족한 첨탑이 올려다 보였다.
 
시테 섬.. 마치 우리나라 여의도와 같다고 할 수 있는 작은 섬으로 파리의 발상지라고도 한다. 길을 약간 걸으니 다시 세느강이 오후의 햇살을 받아 반짝거리며 흐르고 있었고 우측으로 세느강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라는 뽕네프가 모습을 드러냈다. 사진 한 방 안찍을 수 없었지... 뽕네프를 구경하고 다시 법원을 지나 동쪽으로 걸어 예정된 시각에 거의 맞춰서 오후 3시경 노트르담 대성당 앞에 도착했다.

 

 노트르담 대성당의 위압적인 모습

 

노트르담 대성당.. 파리 800년을 지켜온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대성당이다. 일단 이 앞에는 당연히 관광객들이 장사진을 치고 바글바글했는데 이 앞에서 성당의 정면을 두고 올려다 봤을 때 누구라도 그 웅장한 폭과 거대한 높이에 압도 당하고 말 것이다. 예전에 솔즈베리 대성당을 바라보았을 때 느꼈던 압도감과 거의 유사했다. 동기 선배와 재회한 우리는 일단 성당의 내부를 찬찬히 둘러보았다. 다른 성당과는 달리 이 곳은 관광지로 워낙 유명해서 그런지 내부에서 사진을 찍어도 특별히 뭐라고 그러지는 않는 것 같았다. 내부에서는 이미 미사가 진행 중이었다. 하지만 이런 성당의 내부는 이미 지겹게 봐온 지라 특별히 종교학에 관심이 없는 나로서는 다 그게 그거 같았다.  

 
[다빈치 코드의 현장으로]
 
그래, 내가 4월 초에 파리 여행을 할 때만 해도 아직 다빈치 코드 영화가 개봉하지도 않았었고 우리 일행 셋 모두 소설도 안읽은 상태였기 때문에 이 제목은 좀 무리가 있다. 그치만 지금 난 소설과 영화를 모두 본 상태이므로 저런 제목을 붙여봤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의 다음 코스는 루브르 박물관, 카루젤 개선문, 튈르리 정원이었기 때문이다.
 
대성당을 나온 우리 셋은 일단 가이디드가 아닌 자유 여행의 기분을 좀 느끼기 위해 시테 섬에서부터 출발해서 세느강변을 따라 서쪽으로 쭉 걷기 시작했다. 강가를 따라 걸으며 내려다보는 세느강의 모습은 어제 저녁 버스를 타고 가며 바라보던 것보다 훨씬 아름다웠다. 세느강변에는 검은색 나무 판대기를 걸쳐놓고 고서적들이나 기념품을 파는 노점상들이 줄지어 있었다. 루브르 박물관 근처에 다다르니 다시금 사람들의 발걸음이 많아졌다.
 
[루브르 박물관의 외경]
 
바깥에서만 보면 썰렁하게 병풍처럼 둘러싸여있는 루브르 박물관은 그 동쪽 입구도 무지 썰렁해서 그냥 이상한 좁은 틈바구니를 통해 들어가면 사방으로 루브르 궁전이 있고 가운데 뜰이 나온다. 일단 여기 보이는 뜰까지만 오면 '음, 이게 루브르군. 밖에서 보면 뭐 별거 아니군. 안에 들어가봐야..' 이렇게 생각이 든다. 하지만! 뜰에서 다시 서쪽으로 나있는 통로를 통과하면? 당신은 진정 파리에 왔다는 걸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다빈치 코드의 시작과 엔딩을 장식하던 루브르 박물관 앞의 피라미드다! 넓은 루브르의 마당 한가운데 에펠탑과 함께 파리의 새로운 상징이 된 피라미드가 우뚝 서있고 그 옆으로 얕게 만들어놓은 물가에 바람이 불며 잔잔한 수면을 흔들고 있다. 나는 스위스 융프라우에 가보지는 않았지만 사진에서 본 것을 떠올리면 이 피라미드와 그 물가는 마치 알프스 산맥과 그 밑에 있는 호수를 떠올렸다. 어떻게 이렇게 지어놓을 생각들을 다 했을까.. 우리 셋은 한참을 걸어왔기 때문에 일단 이 곳에 앉아 루브르의 외경을 감상하며 휴식을 취했다. 박물관 내부는 나중에 가이디드 투어 일행과 같이 관람하기로 돼있었다. 정면에서는 카루젤 개선문과 그 뒤로 튈르리 정원이 우리더러 "거기 그렇게 앉아 있지 말고 얼른 이리와~ 우리도 구경해야지?"라고 말하고 있었다.

 

 파리의 얼굴, 루브르 박물관과 피라미드!

 

[카루젤 개선문, 튈르리 정원]

 
루브르의 내부는 내일 다시 와서 관람하기로 하고 우리는 피라미드를 뒤로 한채 아까부터 자꾸만 유혹의 손짓을 보이고 있는 카루젤 개선문 쪽으로 걸었다. 카루젤 개선문은 루브르와 튈르리 정원 사이에 자리잡고 있는 또 하나의 개선문으로 쉽게 말해 '오리지날 개선문'이다. 이 여성스러운 이미지의 개선문이 가장 먼저 만들어졌고 만들어놓고 보니 너무 작고 초라하다고 실망한 나폴레옹이 에투알의 개선문을 그렇게 거대하게 지은 것이다. 여기에서 시작해서 시대순으로 서쪽으로 일직선상에 '에투알 개선문'과 라데팡스의 '신개선문'이 이어진다. 지금 몇 번을 계속 말하는 것 같은데 이 일직선 구조.. 아 정말.. 중독적이다. 카루젤 개선문을 통과한 우리 세 일행은 이제부터 신고 온 신발에 먼지를 잔뜩 묻힐 각오를 해야했다. 지금까지는 돌바닥을 걸어다녔지만 튈르리 정원은 마치 우리나라 80년대 '국민'학교 운동장과 같은 먼지 흙바닥이기 때문이다.

 

 다소 아담하고 여성스러운 카루젤 개선문

 

잠에서 깬 로버트 랭던이 브쥐 파슈 형사와 함께 차를 타고 와 내린 곳이 바로 여기 튈르리 정원 아닌가? 루브르 앞으로 넓직하게 자리잡은 이 공원은 마치 런던의 하이드 파크처럼 관광객들보다는 현지인들의 쉼터처럼 보였다. 이 튈르리 정원의 압권은 바로 동그란 모양의 넓은 분수대인데 왜 압권이냐면 이 분수대를 빙 둘러서 1인용 벤치가 쭉 늘어서 있는데, 여기에는 현지인들이 주로 앉아서 분수에 떠다니는 오리들한테 먹이를 주고 있는데, 운 좋게 벤치 자리가 생겨서 한번 앉아 보면 내 말이 왜 압권인지 이해가 갈 것이다. 이 1인용 벤치의 바닥과 등받이가 이루는 묘한 각도가 일단 한번 앉으면 마치 의자속으로 사람을 빨아들이는 것처럼 신기하게 편안하기 때문이다. 튈르리 정원에 오면 꼭! 이 분수대 앞의 1인용 벤치에 앉아보자! 앉는 순간 느끼는 그 황홀감을 내가 보장한다! 아아.. 정말 한참을 앉아 있었다. 오랜 여행과 오랜 행보 끝에 이런 자리에 잠깐 동안 앉는 것 자체가 행복이라는 건 이제 더 강조 안해도 알겠지..

 

 튈르리 정원의 분수.. 왼쪽에 보이는 저 1인용 벤치에 꼭 한번 앉아보길!

 

[다시 샹젤리제 거리로]

 
튈르리 정원까지 다 보고 나오니 기다렸다는 듯이 다시금 콩코드 광장의 아라베스크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이 콩코드 광장에서는 마침 한 프랑스 여자 모델이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금발의 아름다운 이 미녀는 8등신이 아니라 거의 10등신에 가까웠다. 사실 나는 별로 관심은 없었는데 같이 있는 일행들 때문에 이 모델 옆에서 상당한 시간을 소요해야만 했다. (음?)

 

 바로 이 사람이다!

 

.. 오늘 아침에 학회장으로 파견된 내가 알아본 정보에 따르면 오늘 저녁 7시에 다시 프랑클린 디 루즈벨트 호텔에서 가이디드 투어 일행이 모여 저녁 식사를 하기로 돼있었다. 지금 시각은 6시가 약간 넘은 시각.. 계속 걷자! 우리는 콩코드 광장에서 다시 샹젤리제 거리를 따라 쭈욱 걸었다. 샹젤리제 거리는 지금 와서 다시금 기억을 더듬어보면 참 괜찮은 거리였던 것 같다. 이렇게 넓은 거리가 가만히 보자.. 우리나라에 있나? 시청앞? 그래도 그 길이는 샹젤리제에 비할 수 없지.. 뭐 이런 생각들을 했다. 우리는 샹젤리제의 바로 차도 옆으로는 여러 번 걸었기 때문에 그 주변의 관공서들 사이로 가장 자리에 다시 따로 나 있는 일종의 샛길을 따라 걸었다. 여기는 중심가 차도 옆과는 달리 공원처럼 조성돼 있었는데 가만 보니까 샹젤리제의 차도 옆으로는 주로 관광객들(촌놈들)이 걸어다니고 현지인들은 이 샛길을 많이 이용하는 것 같더라. 우리는 우리도 촌놈인 것을 모르고 촌놈들이라고 막 그러면서 현지인들처럼 샛길을 따라 걸었다. 군데 군데에서 그렉(Grec) 샌드위치를 파는 노점상을 볼 수 있었다.

 
"학회는 어떠셨나요?"
 
저녁 7시에 프랑클린 디 루즈벨트 호텔에 다시 와보니 학회의 마지막날인 오늘 하루 종일 학회장에서 시간을 보낸 여러 교수님들 내외가 있었다. 모두들 말끈한 정장 차림인 것에 비해 한 손에는 카메라를 들고 청바지에 점퍼 차림인 우리 일행은 솔직히 좀 뻘쭘하고 어떻게 생각하면 좀 미안하기도 했다. 에이 몰라!
 
호텔 옆에는 주류점이 하나 있었는데 진열대에는 유명한 돈페리뇽 샴페인과 830유로(우리나라 돈으로 100만원)나 하는 샤또 무통 로칠드(Chateau Mouton Rothschild) 와인도 있었다. 동기 선배와 나는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아래에 사진도 이렇게 찍어놨다.

 

 돈페리뇽 샴페인(좌)과 샤또 무통 로칠드 와인(우)

 

독특한 외모의 가이드와 다시 인사한 후 우리는 자유 여행객에서 다시 가이디드 투어 여행객으로 변신, 버스에 올라타 저녁 식사 장소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러고보니 지금까지 교수님과 나는 하루 종일 굶었다.

 
[몽파르나스에서의 저녁 식사]
 
버스는 남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세느강의 다리를 건너며 무한 반복되어 이제는 귀에 익숙한 파리 이야기들이 다시금 가이드의 입에서 들려왔다. 그 목소리는 상당히 부드러워서 잠이 슬슬 오기도 했다. 묘지가 많기로도 유명한 몽파르나스에 가까워지자 예상했던 것처럼 검은색의 몽파르나스 타워가 보였다. 오늘 저녁 우리는 저 꼭대기에서 저녁 식사를 할 참이었다.

 

 몽파르나스 타워의 위력적인 모습

 

파리에서 가장 높은 전망대로 알려진 이 몽파르나스 타워의 59층 꼭대기에 이르자 파리 시내 전체가 쫙 펼쳐졌는데 마치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는 것처럼 장엄했다. 에펠탑, 개선문, 루브르, 튈르리 정원, 사크레쾨르... 마치 이제 슬슬 여행이 끝나가는 걸 아쉬워하듯 여태까지 구경했던 파리시의 명소들이 한눈에 펼쳐지며 나에게 절을 하고 있었다. 파리시의 조감을 보면 참 재미있는 게 에펠탑만 유난히 확 튀고 나머지 건물들은 전부 같은 높이로 깎아놓은 듯이 마치 무슨 레고 조각들 같다는 거다.

 

 몽파르나스 타워 꼭대기에서 내려다본 파리시의 전경  

 

[LIDO Show]

 
파리에 와서 한 식사 중에 아마 가장 고급스러운 저녁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푸짐한 식사를 마친 우리들 일행은 오늘의 마지막 코스로 샹젤리제 거리에 있는 LIDO show 관람을 위해 버스에 올라탔다. 이 LIDO 쇼라는 것은 많이들 아시는 물랑 루즈와 더불어 파리의 대표적인 쇼이다. 브로드웨이나 라스베가스와 견줄 정도로 파리에서는 상당히 유명한 쇼라고 한다. 샹젤리제 거리를 항상 왔다 갔다 하면서 바라만 봤지만 실제로 그 안으로 들어간다고 생각하니 기대가 매우 컸다. 솔직히 이런 생각이 든다. 야아, 내가 파리에 와서 리도 쇼까지 보고 가는 구나. 정말 여행 한번 진짜 알차게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 하루는 정말 파리에 이곳 저곳 많이도 봤다. 관람료는 1인당 100유로...........

솔직히 이 비용을 모두 제약 회사에서 다 대줄 거라고 기대했던 것도 무리긴 했지만 막상 줄을 서고 있으려니까 직원이 관람료는 각자 부담하라고 해서 솔직히 약간 배신감이 든 것도 사실이다. 암튼..
 
그래, 100유로씩이나 하는데 어디 한번 얼마나 대단한지 보자!

 

 리도 쇼장 입구

 

쇼는 사실 대단하긴 했다. 그 작은 스테이지에서 수많은 무희들이 춤을 추고 재주를 보여주는데 시시각각 바뀌는 스테이지 세트는 탄성을 지를 만했다. 스테이지가 순식간에 얼음판으로 바뀔 줄은 몰랐다. 근데.. 난 그래도 자칭 문화애호가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쇼와 음악 등에 대해선 적어도 그 자리에 있던 다른 교수님들이나 전공의들보다는 더 깊은 애착을 갖고 즐길 수 있었다. 손뼉도 치고 몸도 흔들고 하면서.. 그리고 쇼의 후반부에 잠깐 보여준 한 스테이지에서는 정말로 '오소독스한 고전 쇼 그 자체'의 느낌을 받을 수 있었고 아주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왠지.. 자꾸 100유로라는 거금 생각이 났는지 그 정도까지 돈을 주고 볼 정도는 아니라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나와 동기 선배를 제외한 대부분의 일행은 쇼가 끝날 때까지 졸거나 먼저 자리를 뜨고 있었다.

 
1시간 남짓 한 쇼가 끝나자 우리 테이블에 있던 모에 샹동 샴페인을 가지고 가도 된다는 말에 동기 선배와 나는 각각 한병씩 손에 들고 밖으로 나왔다. 샹젤리제 거리에 나와 동기 선배는 몸이 좀 안좋다며 다시 형 집에 가서 오늘 잘 거라고 하고 모에 샹동 한 병을 들고 먼저 갔고 나와 교수님은 숙소로 돌아왔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교수님의 지론대로 밤 길에 얼굴에 인상을 쓰고 걸어야만 했다. 
 
[만취 In Melody]
 
"그거 잘 꼬불쳐놔라. 먹지 말고. 내일 마지막 날이니까 같이 먹자."
 
숙소에서 교수님 방으로 들어가며 교수님이 나에게 얘기 했다. 난 "옛!"이라고 대답하고 안녕히 주무시라는 말과 함께 방으로 들어와 책상 위에 그 큰 모에 샹동 1병을 척 올려세웠다. 그리고 잠을 청하려는데 어제까지만 해도 동기 선배와 같은 방을 쓰다가 갑자기 여기 타지에 와서 혼자 빈 방에서 잠을 자려니 어째 상당히 적적했다. 지금 나는 아까 저녁 식사 때 와인을 들이키고 LIDO 쇼에서 샴페인을 들이킨 터라 또 어젯밤처럼 적당히 취기가 올라있었다. 혼자 있으니 조용하고 적적하다. 잠이 좀처럼 안온다. 내 앞에는 모에 샹동 샴페인 한 병이 날 따 잡수시라고 버티고 서있다. 에라 모르겠다! 한 잔만 하고 자자. 다시 코르크 마개로 막아놨다가 내일 먹지 뭐. 코르크 마개를 힘들게 열어 빈 컵에 한 잔 따라서 쭉 들이켰다. 샴페인 특유의 시큼하면서 상큼한 느낌과 탄산이 인두를 자극했다. 음, 근데 이 코르크 마개가 왜 이렇게 안닫혀.. 이거 큰일났다! 교수님이 먹지 말라고 그랬는데.. 뚜껑이 다시 닫히지 않는다! 이거 어떡하지..
 
'에이! 교수님도 이해하실 거야. 저 놈 저 고약하지만 그래도 지 욕심이 있는 놈이군'
 
이렇게 생각하시겠지 뭐.. 라고 나는 슬슬 자기 합리화를 하면서 한잔, 두잔, 세잔 계속 연거푸 따라 마셨다. 마시다 보니 이제 완전히 취해서 갑자기 음악이 듣고 싶어졌다. 엊그제 샹젤리제에서 사온 씨디 중에 Hocus Pocus의 씨디를 꺼내 포터블 씨디 플레이어에 넣고 이어폰을 꽂았다. 근데 이 놈의 Hocus Pocus의 음악들이 왜 이렇게 그루비한 거야! 아주 죽이네 죽여!
 
그 동안의 여정과 그 동안 바라봤던 아름다운 광경과 내가 이 곳 파리에 이렇게 있다는 도취감이 버무려진데다 그 큰 모에 샹동 1병을 계속 따라 마시며 알코올에 취했고 또한 Hocus Pocus의 그루브 넘치는 재즈 힙합의 리듬에 섞여 그 날 밤 그 방에서 난 혼자 파티를 열었다. (솔직히 내가 지금 와서 '혼자만의 파티'라는 고상한 표현을 쓰는 거지 쉽게 말해 몇 시간 동안 술에 취해 혼자 춤추고 난리 발광을 하다 잠이 든 것이다.)
 
6편에 계속......

 

2006/05/25 (목)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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