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U 발표! 둥.. 둥.. 둥..]
날짜가 지나갈수록 이젠 거의 나 스스로 아침에 일어나는 걸 포기했나보다. 룸메이트인 동기 선배도 늦잠 잘 자기로 유명하지만 그래도 역시 나의 늦잠 수준에는 못미치는지 오늘 아침도 역시 동기 선배가 날 깨웠다. 발표 준비로 바짝 긴장을 하고 난 터라 그런지 일어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여전히 그 영양가 없고 성의도 없는 아침을 챙겨 먹고 오늘은 정식으로 프레젠테이션이 있는 날이라 어제와 달리 말끔한 곤색 정장 차림에 하얀 와이셔츠, 노란색 넥타이를 매고 손에는 포스터를 둘둘 말아 든 채 숙소를 나왔다. 자아.. 실은 이걸 위해서 파리에 온 것 아닌가! 여전히 파리의 4월 아침 공기는 차가웠다.
Tunikut on presentation
자아!!! 이제 숙제 끝이다! 다시 놀러 가자!!!
라 데팡스역 앞 광장에 있는 거대한 신개선문
우리 일행은 자리를 뒤로 옮겨 거대한 신개선문 아래 계단을 올라갔다. 파리에 있는 세 개의 ‘개선문’들 중에 단연 높이로서는 최고가 아닐까.. 그 문 아래 서 있으니 마리를 쓸어올리는 시원한 바람과 함께 어마어마한 규모에 압도당하게 된다. 나는 외투를 벗고 와이셔츠 차림에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신개선문 아래를 산책했다. 할 일 없이 심심한 두 명의 프랑스 여자들이 말을 건네며 느끼한 말투로 “Ou, can you speak French? Beautiful man?”이라고 한다. 허걱.. 푸하하 ‘뷰티풀 맨’이라니.. 태어나서 저런 말은 처음 들어봤다. 근데 이런 상황은 아주 예전에 더블린에 갔었을 때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더블린의 던 리어리 선착장에 도착하여 페리에서 내려 걸어나갈 때 이런 비슷한 상황을 겪은 적이 있다. (UK & Ireland 편 참고)
학회장 근처의 볼로뉴 숲 입구의 벤치에 앉아 바라본 라 데팡스의 모습
이 곳 벤치에서 바라다 본 EAU 학회장 Palais de Congree의 모습
어느덧 시간이 다 되어 우리는 다시 5시 30분부터 열릴 Edap 주최 심포지움 “전립선암의 HIFU 요법”을 들으러 학회장으로 들어왔다. 영국의 한 여성 물리학 교수가 HIFU의 물리적 법칙을 강의했고 이어서 독일, 프랑스의 비뇨기과 교수가 실질적인 치료 경험을, 이탈리아의 종양내과 교수가 내과적인 관점에 대해 심포지움을 펼쳤다. 바야흐로 소위 ‘유럽 열강’ 4개국의 학자들이 모인 것이다. 심포지움은 상당히 흥미로웠다. 특히 난 원체 영국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 여성 물리학자의 강의가 꽤 인상적이었고 특유의 영국식 발음도 아주 듣기가 좋았다.
버스에서 바라다본 세느강변의 모습. 저 멀리 파리에서 흔히 보는 커플의 모습도 보인다.
세느강변의 풍경과 그 강물에 취해 정신 못차리고 버스 창밖을 바라보다 보니 벌써 버스는 유람선 선착장에 도착했고 아니나 다를까 유람선 꼭대기에는 Edap 회사의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다.
우리가 탄 유람선의 모습
배 위에서 사람들이 다 이런 식으로 서있다..
그래, 솔직히 까놓고 말해보자. 내가 살면서 내 평생에 이런 경험을 다시금 할 수 있을까.. 일단 이런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내가 학계에 계속 뜻이 있어서 대학에 남아 교수가 된다면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어디 학자가 되는 게, 교수가 되는 게 쉬운 일인가.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너무나 모호한 미래다. 그렇다면 수련 과정을 마치고 개업을 한다면? 물론 개업을 해서 돈을 많이 벌게 된다면 해외 여행은 할 수 있겠지.. 하지만 내가 아내와 자식들을 데리고 파리에 여행 와서 이렇게 세느강의 유람선에서 선상 파티에 대접 받으며 있을 수 있을까.. 기껏해야 지도를 들고 여기 저기 돌아다니는 여행객 내지는 가이드를 따라 유람선에 앉아 야경을 바라보며 식사 정도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학계에 소속되어, 대학에 소속되어 명예를 가진 교수로서 대접을 받으며 이런 자리에 있게 된다는 건 참 부러운 일이다. 내가 이 찬란한 순간에 세느강변의 미치도록 아름다운 야경을 보며, 반짝거리는 에펠탑을 올려다보며 서울 집에 홀로 있는 아내 생각이 무척이나 많이 들었다. 솔직히 내 주장은 명료하다. 그래, 이 풍경은 나중에라도 아내와 함께 와서 세느강의 밤유람선을 타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내가 진짜 바라는 건 내가 지금 이 곳에서 이런 대접을 받으며 서있는 걸 내 아내도 똑같이 경험해보길 바란다. 우리가 가이디드 투어를 하는 일행 중에 한 지방 의대의 젊은 교수 부부가 있었는데 그들은 언뜻 보아도 그다지 품위 있어 보이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그냥 흔히 보는 젊은 – 약간은 촌스런 – 대학 강사처럼 보였고 그 아내 역시 그냥 30대 초중반의 평범한 차림의 여성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교수 부부’였다. 그 교양없이 촌스러운 사나이는 ‘교수’이기 때문에 이렇게 젊은 나이에 그의 아내를 이 곳 파리에 데리고 와서 이런 저런 호강스런 경험을 시켜줄 수 있는 것이다. 아.. 역시 교수란 참 좋은 건가 보다.
세느강의 밤 유람선에서 바라다본 에펠탑의 모습은.. 이렇습니다. (서남용 버젼)
2006/05/08 (월) 0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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