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nikut's Cultural Paradise

travel diaries

Paris (2006.4.3 - 2006.4.10) (3)

tunikut 2008. 12. 23. 16:43

 

2006년 4월 5일

 

[European Association of Urology (EAU) 2006]

 

 

! 곧 준비해서 내려가겠습니다!
, 일어나지..?
 
동기 선배의 한마디와 함께 부시시 잠에서 깨며 파리에서의 두번째 아침을 맞았다.
 
자아.. 이제 오늘은 우리가 파리에 오게 된 진짜 목적. 유럽 비뇨기과학회가 열리는 날이다. 어제까지의 티셔츠와 점퍼 차림의 관광객 패션을 벗어나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매고 가벼운 점퍼만 하나 걸친채 숙소를 나왔다. 내일은 발표하는 날이니까 점잖게 입고 오늘은 세미 정장으로 입는데 다들 동의하는 분위기였다.
 
우리가 갈 학회장은 1호선 뽀흐뜨 마요(Porte Maillot) 역에 위치한 빨레 데 꽁그레(Palais des Congree, 불어에 까막눈인 나도 일주일 갔다 오니 발음이 된다. 얼..)였다. 마찬가지로 숙소에서 가까운 Villiers 역에서 타서 1호선 라 데팡스행을 탔다. 벌써 뽀흐뜨 마요역에 도착하니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여느 학회장과 마찬가지로 입구에서부터 제약 회사 광고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OAB 어쩌고 저쩌고.. 해외 학회라는 걸 처음 참석해보는지라 솔직히 모든 게 하나 하나가 다 감동이었다. 사전 등록 확인 후 초록집을 받기 위해 각국의 비뇨기과 의사들 사이에 파묻혀 길게 난 줄 한가운데 서있자니 내가 여기와서 이러고 있는게 또 너무 감격스럽다. 이래저래 정신없이 등록하고 책 받고 하면서 학회의 시작을 자축했다. 국내 학회에서도 여러 제약 회사 부스들이 있고 각종 다과 및 선물들을 돌아다니면서 줏어 챙기는데 확실히 해외 학회는 물이 다른 게 선물의 질도 그렇고 막 여기저기서 음료 마시고 게임도 하고 난리였다.
 
우리는 일단 프로그램북을 보며 전체적인 분위기도 보고 내일 동기 선배와 내가 발표하게 될 room에 가서 초록 발표하는 것도 듣고 하며 일단 오늘 하루는 대부분의 시간을 학회장에서 보냈다. 근데 참 웃겼던 건 파리라는 도시가 원체 볼 게 많은 도시라 그런지는 몰라도 솔직히 심포지움이나 초록 발표를 듣는 사람들보다 밖에 나와 돌아다니는 사람이 더 많았다. 그리고 서양 사람이라고 다를 줄 알았는데 제약 회사 부스 돌아다니면서 먹을 거 챙겨 먹고 하는 거 보면 사람은 역시 다 똑같은 것 같다.
 
다른 사람들 초록 발표하는 걸 듣다가 동기 선배와 나는 동시에 큰 충격을 받았는데 우리가 내일 발표할 때 분명히 서울에서 올 때는 포스터만 하나 걸어놓고 질문하면 답변만 하는 걸로 알았는데 이게 왠걸! 다른 연자들은 전부 자기 포스터가 스크린에 비취지면 마치 oral session처럼 간략하게 프레젠테이션을 먼저 하고 질문을 받는 게 아닌가! 젠장! 난리 났다. 준비 하나도 안했는데.. 언제 이걸 영어로 프레젠테이션 하냐.. 저 사람들 앞에서.. 연습도 하나도 안했는데.. 음, 오늘은 관광을 대폭 줄이고 일찍 숙소에 들어가서 영어 프레젠테이션 준비해야겠다!
 
오후 4시쯤 됐을까.. 교수님과 우리는 학회장에서 나오기로 했다. 나오기 전에 Edap 부스 앞에 쇄석기에 턱 걸터 앉아 한국 직원이 계속 갖다 주는 와인을 받아 마셨더니 정신이 대략 애매하다. 자, 이 학회가 시작한 오늘부터 앞으로 며칠간은 와인과 샴페인에 다소 취한 몽롱함이 나를 둘러싸게 된다.
 
학회장에서 나눠준 가방에 책에 각종 선물에 죽도록 무거운 가방을 짊어지고 학회장을 떠난 우리는 일단 저녁 6시경 어제의 가이디드 투어 일행이 있는 호텔로 가서 저녁 식사를 같이 하기로 하고 그 사이에 조금 시간을 떼우기로 했다. 우선 어제 아침에 샹젤리제 거리 앞에서만 잠깐 멀리 바라보았던 개선문을 좀 가까이서 만끽하기로 했다. 우리는 넥타이에 검은 백을 어깨에 둘러맨 애매한 복장으로 다시금 관광객이라는 본연의 자세가 되어 개선문 앞에까지 왔다.  
 
[개선문]
 
개선문.. 에펠탑과 함께 수도 파리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물이다. 프랑스군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나폴레옹 1세가 건축했다는 바로 그.. 물론 그 전에 티브이나 책에서 수도 없이 보았던 그 건축물이지만 솔직히 주변으로 방사선상으로 도로가 나 있고 횡횡 지나다니는 도로가에 가만히 서서 개선문을 올려다보고 있으면 그 어느 누구도 감개무량해지지 않는 사람 없을 것이다. 개선문의 중앙에는 꺼지지 않는 불이 타고 있다. (근데 이 불을 꺼뜨린 사람이 작년엔가 있었는데 바로 한국 젊은 관광객들이었다고 한다.)
 
우린 개선문의 모든 각도를 사진으로 담겠다는 일념으로 세상에 그 무거운 책더미 짐을 들고 넥타이 차림에 길을 하나씩 건너며 모든 각도에서 개선문을 찍었다. (교수님의 지도 하에 움직였는데 솔직히 조금 괴로웠다.) 나중에도 언급되겠지만 파리시가 정말 나를 미치게 만들었던 매력 중의 하나는 바로 이 개선문과 연결된 길이다. 이 개선문을 중심으로 동쪽으로 쭉 가면 루브르 박물관 앞의 튈레리 정원 입구에 있는 카루젤 개선문이 있고 반대로 서쪽으로 쭉 가면 현대식의 라 데팡스의 신개선문이 있다. 그것도 만들어진 순서대로, 세 개의 개선문이 일직선상에 놓여있는 이 구조는 정말 나를 미치게 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언제봐도 바로 그 모습의 개선문

 

[바스티유 광장에서의 저녁 식사]
 
시간이 얼추 다 되어 다시금 교수님과 우리는 후랑클린 디 루즈벨트 호텔에 도착, 가이디드 투어 일행들과 다시 만나 버스를 타고 동쪽에 있는 바스티유 광장으로 향했다. 현지 가이드의 얘기를 들어보니 어제 프랑스 대학생은 물론 고딩 애들까지 다 뛰쳐나와 이 바스티유 광장 주변을 모두 점거하고 시위를 벌였다고 한다. 뉴스에서 이 근방 일대가 난리가 났다고 하는데 오늘은 와보니 참 평화스러웠다.
 
바스티유 광장으로 가는 길에 세느강이 다시 나오면서 다리 하나가 나왔는데 다리 이름은 뭔지 잘 모르겠지만 이 다리 주변의 풍경이 너무 예뻤다. 바로 이 순간부터 나는 세느강이라는 존재의 아름다움에 탐닉하고 있었다. (나중에 다시 얘기하겠다.) 

 

 바스티유로 가는 버스에서 바라다 본 다리 위 세느강변의 모습 (이 다리가 어제 시위대로 난리가

 났다던 다리다.)

 

학생 때부터 지겹게 들어왔던 바로 그 장소! 프랑스 혁명의 시작! 바스티유의 총성 바로 거기다. 여기에 오면 관광객들을 맞이하는 자유의 천사상이 있는 높은 탑이 떡 버티고 있고 마치 런던의 피카디리처럼 탑 주변으로 차들이 빙빙 돌아간다. 그리고 그 옆으로는 대혁명 200주년을 기념하여 만들었다는 오페라 바스티유 건물이 있었다. 이미 해질녘이 다 된 바스티유 광장에는 많은 현지 젊은이들이 계단이나 바닥에 주저 않아 빵을 먹고 있었다. (얘들의 기본 행태가 이런 식이다. 그 극치는 나중에 몽마르트 언덕에서 느낄 수 있다.) 우리들은 탑 바로 앞의 한 레스토랑에서 저녁 식사를 역시 와인과 함께 맛있게 먹었다. (와인은 정말이지 지겹도록 먹는다.)

 

 바스티유 광장 중앙에 우뚝 서 있는 탑

 

오페라 바스티유

 

[샹젤리제 거리, 버진 메가스토어]
 
저녁 식사 후 다시 버스를 타고 샹젤리제 거리에 도착. 이제 시간이 9시를 넘어가고 있었고 파리 시내는 어느새 깜깜해졌다. 동기 선배는 내일 있을 발표 및 영어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하기 위해 먼저 교수님을 모시고 숙소로 갔다. 난? 뭐 어떻게 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가겠니. 이 블로그의 travel diaries를 각국마다 하나하나 읽어보면 알겠지만 내가 해외에 와서 하는 일 중에 가장 즐거운 일 중에 하나가 바로 CD 쇼핑 아닌가. 일행 다들 먼저 들어가라고 하고 난 샹젤리제 거리에 우뚝 솟아있는 버진 메가스토어에 들어갔다.
 
파리에는 신기한 게 편의점도 없지만 그 유명한 타워 레코드HMV도 없다. 오로지 바로 이 버진 메가스토어가 유일한 대형 레코드숍이다. (아니면 있는데 내가 못찾은 건가? 암튼). 참고 삼아 파리에서 음반 쇼핑하시려면 버진 메가스토어를 가세요. 제가 알기로 이 곳 샹젤리제 거리와 루브르 박물관 지하에 있습니다. 음, 내가 파리에 와서 느낀 점은 프랑스라는 나라 역시 우리나라에 비하면 물론 엄청난 음반 시장을 보유한 나라지만 솔직히 호주, 런던, 도쿄에 비하면 참으로 열악한 것 같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자그마한 레코드점들이 길거리에 이따금씩 있기 마련인데 그런 거 하나 찾기 정말 어렵다. 어제 가이디드 투어 할 때 저녁 식사 전에 잠깐 쁘렝땅 백화점에서 자유 쇼핑 시간 1시간이 주어졌었는데 난 그 시간에 그 주변이 좀 명동스럽길래 레코드점 있겠지 기대하고 둘러봤는데 딱 하나 진짜 허접스런 무슨 우리나라 종로 3가 짜가 테잎 파는 데 같이 생긴 레코드점 하나 보고 결국 찾지를 못했다. 음반점 밀집 지역이 따로 있는 시부야에 비하면 파리는 아직 멀었다. 멀었어. (그래도 향음악사와 신나라 레코드가 나란히 있는 신촌이 더 나은 건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이 곳 버진 메가스토어의 위용은 역시.. 선진국의 레코드점 다운 모습이다. 이 버진 메가스토어가 좋은 점은 거의 죽은 도시화 돼버리는 일요일의 파리 시내에서도 오픈을 하며 밤 12시까지 문을 여는 걸로 알고 있다. 아니나다를까 9시-10시가 다 된 시각인데도 매장안은 북적대고 있었다. 내일 발표 준비? 뭐 그까짓거 대충 하지 뭐.. 여기까지 와서.. 이렇게 스스로 합리화 아닌 합리화를 하며 찬찬히 음반들을 구경했다. 소울/댄스/힙합쪽의 코너를 당연히 중점적으로 봤는데 이 곳의 재미있는 점은 힙합을 international hiphopfrench hiphop 코너로 따로 분류를 해놨다는 점이다. 앞으로 머지않아 내 생각에 국내 레코드점에도 Korean hiphop란이 따로 생길 거라고 본다. 프랑스에 왔으니 프랑스 음악을 들어야지 하는 생각에 3장의 씨디를 샀다. 파리에도 흑인들이 참 많고 흑인들이 많으니 힙합도 상당히 인기다. 매장 안에서도 귀에 헤드폰을 끼고 고개를 까딱까딱거리는 흑인들 많다.
 
Hocus Pocus [73 Touches] 국내 매니아들 사이에서는 이미 유명한 그루브 끝내주는 후렌치 재즈 힙합 그룹
Sinik [Sang Froid] - 프랑스에서 대중적으로 아마도 제일 유명한 랩퍼로 이 앨범은 그의 2006년 신작이다.
Matt [R&B 2 Rue] - 현재 신작을 발표하기도 한 프랑스 최고의 알앤비 남자 보컬. 프랑스의 휘성 정도?
 
(위 세 장의 리뷰는 조만간 Notes 란에 올릴 예정입니다. ^^)

 

 Virgin Megastore at Champs Elysees

 

봉수아 메씨 오부아
 
벌써 현지인 다 됐다. 매우 간단한 짧은 회화와 함께 계산대에서 씨디 3장을 계산하고 나와 샹젤리제 거리로 나오니 시원한 바람이 양미간을 또 건드리기 시작한다. 실로 오랜만에 이렇게 유럽땅에 혼자 서있다. 영국과 아일랜드를 혼자 돌아다니며 소위 호연지기를 길렀던 6년전의 추억이 다시금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래, 내일 발표가 문제냐. 이렇게 일행과 떨어져 혼자 있을 기회가 쉽게 안온다. 좀 걷자!
 
난 다시금 홀로 자유 여행을 하는 대한민국 청년으로 둔갑, 씨디 세 장이 담긴 비닐 봉지를 덜렁덜렁 흔들며 늦은 시각의 샹젤리제 거리를 산책했다. 바쁘게 걸어가는 파리의 젊은이들 사이에 파묻혀 노란 조명을 켜고 길가에 옹기종기 보여있는 노천 카페들 사이를 거닐며 샹젤리제의 밤바람을 맞고 있으니 감기에 걸려도 행복할 것 같았다. 아아
 
후랑클린 디 루즈벨트 역에서 조르쥬 생크 역까지 천천히 걸어와 다시 메트로를 타고 숙소에 왔다. 방에 들어와보니 동기 선배가 기쁜 듯이 준비 다했다 그러면서 잘려고 그러고 있었고 나는 아직도 샹젤리제 밤거리의 분위기에 취해 시큰둥하게 앉아 열심히 학회 발표 준비를 하고 좀 늦게 잤다.
 
4편에 계속

 

2006/04/29 (토) 0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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