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nikut's Cultural Paradise

k.b.m. collection

Market No. 1 [1st Market No. 1 Company CD] (2006, Market no. 1)

tunikut 2008. 12. 22. 09:17

 

(작정하고 길게 쓸 참이다. 점점 갤러리 글 길이가 무슨 리드머 리뷰보다 길어져 왜..)
 

솔직히 내가 이들의 음악을 처음 접한 건 작년에 공개된 온라인 프로젝트였다. 지난번 온라인 프로젝트 앨범 포스팅 때도 언급을

했었지만 팀의 메인 엠씨인 Disel의 그 정말 듣기 어려운 보이스에 공감 안되는 가사들이 주종을 이루던 온라인 프로젝트에서 ‘뭐가

이렇게 세상에서 제일 구려!’ 그러면서 치를 떤 게 사실이다.

 
그러던 어느날..

이요(E.O.)라는 신인 프로듀서/엠씨가 새 앨범을 발표하면서 Luther Vandross의 “Superstar”를 간들어지게 샘플링한 “기억해”

라는 단 한 곡으로 국내 힙합 키즈들의 마음을 송두리째 앗아간 사건이 있었다. 바로 이 ‘이요’라는 이름은 마켓 넘버 원 온라인

프로젝트 시리즈의 자켓 디자인을 유심히 본 사람들이라면 첫번째 시리즈에 자그마한 글씨로 그 이름을 찾아볼 수 있어 ‘오호

그래?’ 이러면서 왠지 마켓 넘버 원에 대한 이미지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일이었다. (실제로 이요의 앨범에 AS가 참여했으며

이요는 마켓 넘버 원은 아니지만 친한 사이라고)

 
그러던 또 어느날..

잠시 잊고 지내던 마켓 넘버 원이 새 앨범을 발표한단다. 이름은 무슨 첫번째 컴퍼니 CD라고? 앨범 자켓? 오호 이쁘다. 이거

이루펀트 자켓보다 더 이뻐서 일단은 morphologically 성공한 셈. 힙플을 들어가봤더니 씨디 주는 이벤트를 한다. 난 외국 씨디

는 무조건 수입으로 내 돈 주고 사지만 ‘코리안 블랙 뮤직’은 될 수 있으면 공짜 혹은 싸게 입수하려는 경향이 있어서 국내 음반쪽

이벤트는 다 참여하는지라 이벤트를 클릭했다. 그리고는.. 아아…..

 

마켓 넘버 원의 신곡 “잘가”의 인트로 피아노음을 들으며 잠시 동안 15년 전의 나로 여행을 갔다 올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느낌을

그대로 받아 이벤트라는 것도 망각한 채 내 손은 이미 힙플 이벤트 감상평란에 뭐라고 뭐라고 막 쓰고 있었고 아래와 같은 감상평을

남기고 이벤트에 당첨됐다.

 

1994년 릴레함메르 동계 올림픽 쇼트트랙에 김소희라는 여자 선수가 있었습니다. 당시 제가 아마도 고등학교 2학년 이었고 남학교

여서 당연히 주위에 여자 아이들은 쉽게 구경 하지 못했죠. 물론 저는 숫기도 없는 평범한 학생이었습니다. 당시 그런 저에게 쇼트트랙

계주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김소희 선수는 왜 그렇게 멋있었는지.. 아니 왜 그렇게 이상형처럼 아름다워 보였는지 심지어는 막 자기 전

에 생각나고 꿈도 꾸고 유치하게 공책에 KSH라는 이니셜까지 써놓고 다니기도 했답니다. (지금 보면 그 선수도 많이 나이가 들었더군요)

 

왜 이런 얘길 하냐구요? 그러니까 그때 당시 제가 아주 잠시나마 그녀에게 빠져있었을 때 꼭 그녀를 생각하면서 듣던 노래가 하나

있었는데 바로 영국 출신의 록그룹 Def Leppard의 "Miss You In A Heartbeat" 이라는 곡이었어요. 이 곡의 시작부에는 잔잔한

피아노음이 나오는데 그 음을 들으면서 잠자리에서 빙판 위를 달리는 김소희 선수를 떠올렸었죠.

 

서두가 너무 길었군요. 마켓 넘버 원의 신곡 "잘가"를 듣기 위해 화면의 플레이 버튼을 누르자마자 흘러나오는 피아노 멜로디는

바로 그 곡 "Miss You In A Heartbeat"의 멜로디였습니다. 물론 이들이 그 곡을 샘플링으로 따왔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만..

잔잔한 피아노음이 시퀀싱 걸린 비트에 맞물려 흐르는 멜로디와 가사는 비단 이 이벤트에 참여하려는 것이 아니어도 곧바로 글을

쓰게 만드네요.

 

음.. 이상한 얘기는 그만하고.. 근데 정말 웃기는 게 아니 얘네들 내가 알던 마켓 넘버 원 맞어? 라는 겁니다. 무슨 조선 시대 막걸리

한잔 걸친 걸걸한 한량의 목소리로 별로 와닿지 않던 가사를 웅얼대던 그들이 맞냐구요. 지난 번에 EO 앨범의 서정성에 놀랐는데

이 곡은 정말이지 그냥 의외다, 놀랐다 정도가 아닌 '대박'이라는 느낌이군요!

 

아무튼 이벤트를 떠나서 마켓 넘버원의 이 곡은 정말 저에게 잊고 지냈던 학창 시절의 추억을 상기시켜주었다는 점에서 큰 선물이

된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써보면 어떨까요.

 
"잘 가. 내 고등학교 시절아. 잘 가. 김소희 선수.."
 
쩝. 글쎄다. 김소희 선수를 지금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면 많이 늙어서 어떻게 보면 할머니같기도 한데.. 암튼.
 

뭐 이제 이런 얘기는 그만 하고 하여튼 그렇게 앨범을 받아 들어보고 나서는 비단 “잘가” 뿐 아니라 앨범 수록곡들이 모두 하나같이

왜 이렇게 마음에 드냐는 거다. 무슨 느낌이냐면 왜 그렇지 않나. 첫인상이 기분 나빠서 관심 끊고 모른 척 하고 지냈는데 어느날 그

친구가 나에게 예상치 못한 큰 선물을 주었을 때 그 고마움이 배로 되는 것처럼.. 이 친구들.. 정말 괜찮은 앨범 하나를 들고 나왔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가장 눈부신 발전을 한 건 단연 프로듀싱. AS, TAK, Disel, 그리고 Baoul의 프로듀싱 모두가 어떤 일관성을 지닌

듯이 매끈하게 다듬어져 스무드하게 착착 감기는 비트들을 들고 나왔는데 그 느낌이 방방 뜨는 것도 아니고 ‘서정적이지만 몸을 흔들지

않을 수 없는’ 이상한 그루브감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 가장 우려했던 Disel의 ‘조선중기막걸리한잔걸친한량목소리’도 “Reggea Man”

에서 마치 쿤타를 연상시키는 ‘레게 보컬’로 승화시키고 있으며 다른 곡에서도 그 단점을 적절한 시점에서의 장점으로 바꿔버리는 묘수

를 보여주고 있어 안심이다. 인트로인 “리듬공장 제일상회”의 유머러스함도 맘에 들고 “In City”에서의 살짝 록적인 디스코 그루브도

신나(지만 이상하게 차분하)며 “Epilogue”에서의 물소리와 적절하게 어울리는 라운지 비트감도 꽤나 매력적이다.

 

그럼 이제 문제의 “잘가” 얘길 더 해보자면 솔직히 내 생각에 이 곡을 딱 듣고 나서는 이 곡은 그냥 ‘언더그라운드 힙합 그룹 마켓 넘버

원의 신곡’으로 끝나서는 안될 곡 같다. 기분 같아선 주위 사람들한테 한번씩 들려주고 이 곡 어때? 괜찮지? 이렇게 소개도 해주고 싶고

라디오 방송에도 아는 사람 있으면 좀 틀어보라고 해주고도 싶고 방송국에 빽이라도 있으면 공중파는 못되더라도 케이블에서 한번쯤

다뤄주고도 싶은 마음도 들 정도로 사랑스러운 곡이다. 좀 더 과장을 보태보자면 ‘2006년 코리안 힙합 베스트 싱글’ 후보 안에 올려도

될 정도로 마음에 들었다 난. 사람은 멀티이미지를 접할 때 더 그 감동이 커지는 법. 이 곡의 가사를 가만히 음미하면서 정대선씨와

결혼하는 노현정 아나운서의 전남친의 감정으로 이입시키면 더 큰 애잔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노현정 아나운서의

팬은 아니다.)

 

쩝. 암튼 간에 이 친구들 참 대단하다. 한 리스너로 하여금 ‘개혐오’에서 ‘완전 소중’으로 극과 극을 오가는 평가를 이끌어낼 수 있는

뮤지션은 흔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음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이 미니 앨범 정도 되는 프로듀싱에 쪼금 유명한 사람들 약간만 휘쳐링

시켜서 정규 앨범 하나 내면 대박 터뜨릴 수도 있을지 모른다. 실망만 시키지 마라.

 

2006/08/29 (화) 2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