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nikut's Cultural Paradise

travel diaries

UK & Ireland (2000.7.31 - 2000.8.12) (2)

tunikut 2008. 12. 19. 17:36

 

 

[솔즈베리/스톤헨지]

 
- 8월 6일 일요일 -
 
따르르르..릉. 탁!
아침 7시에 일어났다. 씻고 방으로 직접 갔다 주는 아침식사 를 먹었다. (저처럼 혼자이길 좋아하시는 분은 Limegrove Hotel
에서 묵으세요. 방에서 혼자 창밖을 내다보며 먹는 아침 식사가 쏠쏠하답니다. ^^) 이 B&B는 잉글리쉬 스타일과 콘티넨탈 스타일 중 뭘로 할 거냐 그러는데 잉글리쉬 스타일을 시키면 노른자 반숙 계란 후라이와 베이컨 한 줄, 토스트, 그리고 커피를 준다. (커피와 티 중 선택) 이번 여행에서 이 숙소에서 여러번 묵어서인지 이 아침 식사가 참 좋아졌다. 암튼 먹고 체크 아웃하고 짐을 역시 맡긴 후 숙소를 나왔다.
 
전날 워털루역에서 기차표를 살 때 솔즈베리로 갔다 오는 타임 테이블까지 미리 챙겼으므로 기차 시각까지는 여유가 있다.
슬슬 워털루 역에서 놀다가 오전 11시 5분, 솔즈베리행 기차를 탔다. 런던의 코치 티켓은 비행기 보딩 패스처럼 생긴 반면에 기차 티켓은 전화 카드처럼 생겼다. 암튼 기차는 달렸고 12시 40분경에 솔즈베리역에 도착했다. 확실히 기차가 빠르긴 하다.
솔즈베리역의 플랫폼을 나오면 바로 기차역내에서 스톤헨지로 가는 버스 티켓을 판다. 나는 줄을 섬과 동시에 스톤헨지까지의 버스 타임 테이블을 챙겨 들었다.
 
아.하.하.
 
이게 왠 일인가. 인버네스에서와 아주 똑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버스 출발 시각이 12시 50분이고 다음 버스는 2시 50분이다.
역시 2시 50분 걸 타고 가면 나는 오늘 밤 런던으로는 돌아갈 수 있을지언정 더블린을 못간다. 나는 오늘 저녁 8시 30분에 더블린으로 떠나야한다. 미리 더블린행 티켓을 샀기 때문에 일정을 바꿀 수도 없다. 결론적으로 나는 12시 50분 버스를 못타면
스톤헨지를 볼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시간은 12시 45분이 넘어 가는데 줄은 끝날 줄을 모른다. 아우.. 진짜. 어떻게 어떻게 해서 50분이 될랑말랑 직전에 티켓을 샀다. (어덜트 리턴, 5파운드. 학생 할인 없음) 티켓을 사자마자 역을 뛰쳐 나와 정류장으로 갔다. 휴우.. 근데 다행히 스톤헨지로 가는 버스 정류장은 역을 나오면 바로 옆에 있다. 스톤헨지로 가는 버스는 Wilts & Dorset Bus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50분이 넘었어도 버스에 올라탈 줄이 끊이지 않아서 역시 또 뛸 필요가 없었다는 걸 알았다. (사실 버스는 그날 1시가 다 돼서 출발했다..)
 
버스는 두 대가 서 있었는데 하나는 가이디드 투어용 다른 하나는 그냥용 이다. 나는 당연히 그냥용에 줄을 섰다. 근데 여기서 또 한번의 위기! 내가 타고 갈 버스 좌석이 2층 버슨데도 몽땅 찼다. 버스 기사 왈, 서서 가는 건 8명까지밖에 안된단다. 그래서 앞에서부터 하나씩 세기 시작하는데.. 긴장.. 그 결과는? 딱 나에서 끊겼다! 이런 우연이.. 앞에 한 사람만 더 있었어도 나는 그 버스를 탈 수 없게 되고 결국 스톤헨지를 볼 수 없게 되는 거다..
 
가까스로 버스에 올라타게 됐고 버스는 스톤헨지를 향해 출발했다. 스톤헨지로 가는 시간은 생각보다 얼마 안 걸린다. 한 이삼십분? 버스는 솔즈베리시를 벗어나 작은 시골길을 달려 오후 1시 25분에 스톤헨지에 도착했다. 도착하면 이미 스톤헨지가 보인다. 예상대로 이 곳 역시 사람들이 북적북적.. 근데 한국 사람은 하나도 없다. 일본 사람은 많은데.. 암튼 설레이는 가슴을 안고 입장 티켓을 끊었다. (학생 3파운드) 들어가다 보니 사람들이 하나씩 전부다 손에 무슨 커다란 핸드폰 같은 걸 들고 뭔가를 듣고 있다. 나는 저게 뭐지.. 하고 왔던 길 을 다시 가서 입구 근처에서 그 핸드폰 같은 걸 하나 뽑았다. 알고 봤더니 스톤헨지에 대한 설명이 말로 나오는 거였다. 각개 국어로 있는데 일본말은 있지만 역시 한국말은 없다. 나는 영어를 빼 들었다. 근데 들어도 별 영양가는 없다. 잘 들리지도 않고.. --;
 
스톤헨지..
세계 불가사의 중의 하나로 광활한 초원에 동그랗게 커다란 바위들이 일정한 규칙으로 서 있는 구조물..
해질 녁에 보면 그 가운데로 햇빛이 집중된다고 하는데..
그래서 뭔가 신비로운 염력이 작용한다는데..
 
반경 약 500미터 거리로 울타리를 둥글게 쳐놓았다. 굉장히 실망스럽지 않을 수 없다. 그래도 가까히 가서 돌도 만져보고 돌들의 배열도 좀 자세히 보고 하면 좋을 텐데 진짜 빛을 받아 염력을 일으킬까봐서인지 거 참.. 그저 멀리서 멀뚱히 바라보는 게 끝이다. 하는 수 없이 나는 둘레를 빙빙 돌면서 그저 멀뚱히 바라만 봤다. 에이.. 예상보단 실망스럽다. 스톤헨지의 배열은 사실 공중에서 내려다 봐야 정확히 알 수 있는데 측면으로만 보니 배열을 알기 힘들다. 하지만 역시 멋지긴 하다. 암튼 그렇게 해서 나는 스톤헨지를 봐버렸다!
 
30분 가량이면 충분. 나는 타임 테이블 상 1시 55분에 떠나는 버스를 타러 스톤헨지를 나와 버스에 올라탔다. 그리고 다시 솔즈베리시를 향해 달려서 2시 20분경에 솔즈베리에 도착했다. 아직까지는 시간이 많다. 보통 솔즈베리를 스톤헨지로 가는 거점으로만 생각하지만 실은 솔즈베리시 역시 볼 게 많다는 사전 정보 하에 나는 솔즈베리시를 구경하기로 했다.
 
솔즈베리시 역시 인버네스처럼 굉장히 조그마한 도시이다. 일단 솔즈베리 대성당을 목표로 역을 나와 지도를 보며 걸었다.
지도를 보며 걷고 있으니 한 아저씨가 길을 잃었냐며 어디로 가냐 길래 대성당으로 간다니깐 같은 방향이라며 직접 거기까지 데려다준다. 솔즈베리는 참 포근한 도시라는 느낌이 벌써부터 든다. 거의 시냇물 수준인 에이본강을 건너니 바로 대성당의 높은 탑이 보인다. 나는 솔즈베리 대성당의 경내(the close)로 들어갔다. 눈 앞에 우뚝 서 있는 솔즈베리 대성당..
 
영국에서 가장 높다는 성당이다. 솔즈베리 대성당은 여타 흔한 대성당보다는 확실히 멋지게 생겼다. 고딕 양식의 높은 탑도
예술이고.. 난 사실 여기서부터 이미 그날 본 스톤헨지보다는 이 솔즈베리라고 하는 도시에 매력을 느끼고 있었다.
대성당 둘레를 둘러보고 주위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나는 경내에 있는 Salisbury & South Wiltshire Museum으로
갔다. 겉으로 보면 굉장히 조그마한.. 박물관이라고 보기도 힘들게 생겨서 들어가 봤자 별게 있을까.. 라고 생각했지만
박물관 앞에 쓰여 있는 말이 나를 안으로 들어가게 했다.
 
'솔즈베리 박물관은 정말 매력적이다. 한번 쯤은 꼭 방문해 보라고 권유한다. - 누구누구
(누군진 몰라도 꽤 유명한 사람인 듯)'
 
저 문구가 왜 그렇게 인상적이었는진 몰라도 '나는 왠지 아무도 잘 안 가는 박물관을 보려고 한다'는 느낌에 팜플렛도 하나 샀다. (팜플렛 값 1파운드, 입장은 학생 2파운드)
 
안에는 이런 저런 솔즈베리시의 역사를 담은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다지 큰 감흥은 없었는데 관람을 하던 도중 한 서양인 할머니가 나한테 다가온다.
 
(유물을 가리키며)
"이게 어디서 온 건지 아십니까?"
"아뇨"
"바로 헨리 2세가 살던 곳에서 온 것이죠."
 
등등에서 시작해서 헨리 2세에 대한 얘기, 간단한 솔즈베리의 역사, 또한 Turner라고 하는 매우 유명하다는 화가의 그림 등을 직접 가이드 해주신다. 현지인인 할머니에게서 직접 솔즈베리의 역사를 들으니 꽤 그럴 듯 했다. 정말 유익한 시간이 아닐 수 없었다.
 
"어디에서 왔나요?"
"한국에서 왔습니다."
"오~~~ 한국.."
"한국에도 역시 헨리 2세와 같은 왕이나 황제가 있었나요?"
"물론입니다. 한국은 5000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오.. 5000년.. 여기보다 오래됐네요. (웃음)"
 
솔즈베리 박물관에서 예상치 않게 유익한 관람을 할 수 있었던 나는 마저 둘러보고 박물관을 나와 이제 다시 런던으로
돌아가기 위해 기차역 쪽으로 갔다. 그 할머니와의 만남으로 인해 이 솔즈베리라는 도시가 굉장히 친근하고 포근하게 느껴졌다..
 
'솔즈베리 박물관은 굉장히 매력적이다. 꼭 한 번 쯤은 방문해 보시라고 권유하고 싶다. - 박범수 --;'

[더블린 가는 길]
 
- 8월 6일 일요일 -
 
솔즈베리라고 하는 훈훈하고 따뜻한 도시의 추억을 가슴에 안고 오후 4시 50분경 런던으로 가는 기차에 올라 타 6시 20분경 다시 런던 워털루 역에 도착했다. 자.. 이제 오늘밤 나는 드디어 더블린으로 떠난다..
워털루역에서 다시 지하철을 타고 빅토리아에 도착. Limegrove Hotel에 가서 맡긴 짐을 찾아 VCS에 가서 대기했다. 밤 버스 시각은 저녁 8시 30분 차.. 해당 게이트 앞에 가서 대기하는데, 에딘버러 때와는 달리 정말 한국인은 커녕 동양인은 보이질 않는다. 역시 더블린은 잘들 안 가나보다..
 
모두 서양인인데 그 중엔 내가 좋아하는 뮤지션들을 닮은 사람이 참 많았다. Dave Matthews도 있었고 Armand van Helden도 있었다.. 암튼 예정된 시각 8시 30분에 버스는 출발. 일단 이 버스는 홀리헤드로 가는 거다. (첨에 더블린행 왕복 티켓을 살 때도 런던-홀리헤드, 홀리헤드-더블린, 더블린-홀리헤드, 홀리헤드-런던 이렇게 네 장을 끊어 준다.)
 
그리고 한 가지!
영국 내의 거의 모든 도시에서 곧바로 더블린을 갈 수 있다. 근데 영국내 어느 도시에서 출발하더라도 반드시 이 홀리헤드를 거친다. 즉, 이 홀리헤드(Holyhead)라는 도시는 더블린으로 가는 선착장인 것.
 
홀리헤드까지 가는 버스의 내 옆 자리에는 한 이탈리아 커플이 앞 뒤로 앉아 있었는데, (그러니까 내 오른쪽에 여자, 그리고 그 여자 앞 자리에 남자) 아우 정말.. 난 이 날 이 시각부터 이탈리아라는 나라를 증오하기 시작했다. 나는 밤 버스라 잠을 좀 자 두려고 빈 틈을 내어 몸을 기대었는데 대체 이 놈의 이탈리아 커플.. 아니 뭐가 그렇게 시끄러운지 모르겠다. 특히 둘 중 그 남자 놈.. 밤새 한 마디가 끊기질 않고 홀리헤드 도착까지 떠든다. 실로 대단하다.. 더군다나 앞에 앉았기 때문에 그 크고 느끼하게 생긴 검은 얼굴이 버스가 움직이는 내내 이쪽을 샥 돌아보고 여자 친구와 떠든다. 나는 그 남자한테 내 자리로 오실래요? 내가 그 쪽으로 갈께요. 라고 해도 싫덴다. 정말 죽이고 싶었다.
 
- 8월 7일 월요일 -
 
암튼 버스는 새벽 3시경에 홀리헤드의 선착장에 도착했다. 결국 잠은 한 숨도 못 잤다. 근데 더블린으로 가는 경로는 다소 복잡하다. 즉, 버스를 타고 홀리헤드로 가서 거기서 다시 배를 타고 더블린의 선착장에 가서, 다시 버스를 타고 더블린의 중심으로 가는 것. 이 과정들을 운전 기사가 설명하는데 영어긴 한데, 사투리가 워낙 심해서 거의 알아듣기 힘들었다..
암튼 다소 복잡한 경로를 어떻게 이동할지 몰라 그 때부터 나는 같이 버스를 타고 있는 일행들의 얼굴을 파악했다.
Dave Matthews 아저씨.. Armand van Helden 형.. 이 때는 그 느끼한 이탈리아 커플도 도움이 됐다.
 
홀리헤드에서 버스를 내리자 마자 나는 그 찍어둔 사람들이 움직이는 대로 그대로 따라 갔다. 어차피 이 사람들도 더블린을
가는 거니깐 이 사람들 하는 대로만 따라하면 더블린에 가는 거겠지. 홀로 하는 여행의 묘미는 바로 이런 것!
홀리헤드에서 버스를 내리면 일단 선착장 안으로 들어간다. 거기서 무슨 출국 신고서 비슷한 걸 적고 버스 티켓을 보여주면
페리 티켓팅을 바로 해준다. 비행기처럼 짐도 실을 수 있다. (내가 탄 페리는 Stena Line이라는 페리였다.)
 
페리 보딩 티켓을 끊고, 길게 나 있는 길을 걸어서 들어갔다. 문을 열고 무슨 대기 라운지 같은 델 들어갔다. 각종 식당과
상점이 있고 환전소 및 i, 그리고 불규칙하게 늘어선 벤치와 작은 영화관 등이 있다. 무슨 대합실 정도 되는 듯 했다.
근데 대체.. 페리를 타야할 '게이트'라는 게 없다. 페리는 새벽 4시 출발. 슬슬 시간이 다 돼 가는데 같이 타고 온 사람들을 봐도 영 배를 탈 생각은 않고 벤치에 기대어 앉아 여유롭다. 나는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i에 가서 물어봤다.
 
"Where can I get on the ferry?"
"You are on the ferry."
 
그랬다..
(근데 내 실수도 이해를 해줘야 되는 게 정말 '배 안'이라기보단 '대합실'같이 생겼다..)
나는 ferry 안에 있는 환전소(Bureau de Change)에서 영국파운드를 아이리쉬파운드로 환전하고 적당한 곳에 앉아 약간의 잠을 청했다. 하지만 역시 잠은 안 왔다.
 
대략 한 3시간 쯤 지났나..
아침 7시경 페리는 더블린의 Dun Laoghaire(던 리어리) 선착장에 도착했다. 페리를 나와 선착장까지 걸어가는데, 날라리스런 술 취한 서양 여자애 5명이 옆에서 같이 걸어가더니,
 
"Can you speak English?"
"Why you are in Dublin?"
"You cute!"
 
등등의 말로 씨끄럽게 희롱한다. 나는 모조리 다 씹었는데, 내가 성격이 온순해서가 아니라 영어를 몰라서였다. 내가 만약 우리말로 욕짓거리를 해줬다면 계네들은 아마 더 신나 했을 거다. 그럴 걸..
 
이 곳 던 리어리 선착장에선 역시 아일랜드(에이레 공화국) 입국 답게 외국인이면 여권이 필요하다. 여권을 보여줬더니 잠시 따라오랜다.뭔가 문제가 있냐니깐 그렇댄다. 그러더니 하는 말,
"Republic of Korea가 South Korea입니까?"
나는 그렇다고 했더니 도장을 찍고 통과 시켜 준다.
아마도 북한에서 왔을까봐 그랬나 보다.
 
암튼 선착장에서 나오니 이미 밖에 버스 한 대가 대기하고 있다. 그걸 타고 약 30분 가량 달려 나는 더블린의 센트럴 버스 스테이션인 Bus Eireann(Busaras)에 도착했다.
 
[더블린 시내 관광: 오코넬 스트리트/파넬 스퀘어]
 
- 8월 7일 월요일 -
 
Busaras에 도착한 나는 다시 또 한 번 '어디가 어딘지'의 고민을 했다. 항상 그런가 보다. 도착하기 전에는 지도를 대충 파악하고 쉽게 찾을 것 같은 길이 막상 도착하면 도무지 모르겠다. 언제나 그렇 듯이 왔던 길을 두 세번 왕복하고 하는 끝에 겨우 B&B들이 늘어선 Gardiner St. Lower를 발견했다. 에딘버러의 Pilrig St.와 마찬가지로 이 곳 역시 B&B촌. 초인종을 누르고 방을 알아보고.. 하는 끝에 붉은색과 금색으로 디자인된 제법 좋아보이는 B&B를 잡게 되었다. (역시나 숙소 잡기는 좀 어려웠음) Georgian Court B&B라고 하는 곳으로 말이 비앤비지 시설이 꽤 괜찮다. 샤워실과 화장실이 딸린 싱글룸으로 35아이리쉬 파운드. 이번 여행에서 묵은 숙소 중엔 가장 시설이 좋은 곳이다. 이 곳에서 전체적인 관리를 담당하는 아주머니에게선 런던이나 에딘버러에서 느낄 수 없었던 '따뜻함'이 느껴진다.. 친절하다.. 벌써부터 더블린이라는 도시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12시에 체크인하라고 해서 일단 짐을 맡겨 놓고 일정을 시작했다.
 
어느 도시나 그렇 듯 그 도시의 첫 일정은 항상 '메인가 및 그 주변의 통하는 길 파악하기'..
(브리스번에서의 퀸 스트리트, 싱가폴에서의 오차드 로드.. 복습)
 
당연 첫 일정은 더블린의 가장 중심 거리인 오코넬 스트릿이다. 현재 시각이 아직 오전 8시 정도였기 때문에 거리에는 인적이 드물었다. 평화로운 더블린의 아침이다.
 
센트럴 더블린시의 구조는 에딘버러의 그것 못지 않게 간단하다. 일단 원을 그리고 그게 센트럴 더블린이라면 그 원 상에 'ㅗ' 표시를 해보자. 밑의 가로는 '리페이강'이다. 이 강을 중심으로 남북으로 나뉘게 된다. (마치 에딘버러의 노스 브릿지를 기준으로 한 뉴 타운과 올드 타운처럼..) 또한 세로는 오코넬 스트릿을 의미. 리페이강을 기준으로 남북을 나눠서 관광하면 되고 오코넬 스트릿을 기준으로 동서로 나누어서 보면 더블린은 끝이다.
 
암튼 오코넬 스트릿.. 이 곳은 말 그대로 더블린의 가장 중심 거리로 더블린시 자체에서도 계속해서 개발 중이란다. 이 오코넬 스트릿의 특징이라면 '동상'들이 무지막지하게 많다는 것. 오코넬 스트릿을 대표하는 다니엘 오코넬 동상을 시작으로 그 거리에만 총 7개의 동상이 있다. 나는 파넬 스퀘어쪽에 있는 찰스 스튜어트 파넬 동상을 시작으로 동상들을 하나 하나 지켜보며 내려왔다. 찰스 동상을 카메라로 찍고 있자 한 아저씨가 "Hey, photograph me, thank you."라고 해서 찍어줬다.
 
더블린은 사실 그렇게 유명하거나 큰 관광지는 없다. 훌륭한 관광지는 런던이나 에딘버러가 훨씬 많은 거다. 그렇지만 나는 이번 여행을 통털어 최고의 도시로 더블린을 꼽는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더블린의 분위기'이다. 오코넬 스트릿을 걸어내려오고 있는 동안 '더블린 사람들'을 유심히 지켜봤다. 헉 근데.. 사람들이 다 참 착하게 생겼다! 사람들의 얼굴 표정에서 전혀 악의를 볼 수 없는.. 이게 바로 아일랜드란 말인가! 나는 역시 또 감동하기 시작했다. 감자칩을 손에 들고 먹으며 걸어오는 서양 여자애 역시 굉장히 순수(?)해 보인다. 에딘버러의 그 날라리들이 아니다!

안전한 도시.. 그게 더블린의 인상이다.
 
현지인들처럼 오코넬 동상 앞의 벤치에서 휴식도 취하고 하며 오코넬 스트릿을 거닐다가 (중간에 갑자기 배가 아파 맥도날드에 들어 갔는데 아침이라 그런지 휴지가 없어서..) 오코넬 스트릿에서 가로로 뻗어 있는 Earl St. North로 향했다. 이 곳은 보행자 전용 도로로 더블린의 유명한 음유시인(?)이자 작가 James Joyce 동상이 서 있는 걸로 유명하다. (이 거리는 곧 바로 Talbot St.와 연결되어 있는데 이 곳을 지나면 바로 숙소가 있는 Gardiner St. Lower가 나온다. 참 편리하다.)
 
제임스 조이스 동상을 보고 다시 발길을 돌려 커시드럴 스트릿을 통해 St Mary's Pro-Cathedral에 도착했다. 같은 성당이지만 솔즈베리 대성당과 같은 웅장한 게 있는가 하면 이것처럼 굉장히 낮고 소박한 성당도 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멋'이 느껴지는 성당이다.. 원래는 중심가인 오코넬 스트릿에 세워지기로 했던 성당인데, 프로테스탄트인 잉글랜드의 탄압으로 이렇게 구석진 곳에 세워졌다는.. 왜 'Pro-'라는 말이 붙어있는지는 아직도 그 의미를 잘 모른단다.
 
암튼 이렇게 해서 오코넬 스트릿과 그 주변을 다 봤는데 아직도 10시경이다. 숙소 체크인까지는 시간이 남아서 뭘할까.. 고민 끝에 예정에 없던 파넬 스퀘어 쪽을 가 보기로 했다. 오코넬 스트릿을 따라 쭉 다시 올라간다. 군데 군데 보이는 Pub과 상점에는 'Guiness' 간판이 보이는데 이 쯤 되면 더블린에 온 실감이 나게 된다.
 
파넬 스퀘어는 오코넬 스트릿의 북쪽에 위치한 곳으로 건물의 높이도 낮은 한산한 동네다. Rotunda Hospital, National Wax Museum, James Joyce가 살던 곳이라는 James Joyce Center 등이 있는 곳.
 
나는 아일랜드의 국민 밴드 U2에 관한 것이 전시되어 있다는 것에 매력을 느껴 Naional Wax Museum을 들어가 보기로 했다. 이 곳에는 U2의 전시관 뿐만 아니라 'Chamber of Horror(우리나라로 치면 유령의 집)', 그리고 각종 어린이들의 fairytale과 fantasy가 있는 곳이란다. 암튼 시간이 남아 이 안에서 빈둥거리다 체크인 하자는 생각으로 들어갔다. 사실 U2가 내 목적이었다. (벌써 기억이 가물가물한지 입장료가 기억이 안난다.. 학생 할인이 있었고 쌌던 것 같다.)
 
들어가긴 들어갔는데..
아침이라 그런지 아무도 없다. 말이 박물관이지 그냥 우리나라 '유령의 집'과 같은 구조. 즉 어둡고 좁은 통로다. 근데..
아직 그 '공포의 방'은 안 나왔지만 왜 이렇게 분위기가 으시으시하냐.. 어린이들 취향의 인형들과 괴물들이 양 옆 유리벽에서 움직이고 (여기선 피터팬도 얼마나 그로테스크하게 생겼는지 모른다.) 들려오는 음향들도 꽤나 심상치 않다.
아우, 어째 슬슬 무서워진다. 내가 미쳤나.. 지금은 무서워할 곳이 아냐.. 아직 '공포의 방'은 나오지도 않았다고..
아무도 없는 어둡고 복잡한 미로와 같은 길을 '혼자' 걷자니 기분이 참 뒤숭숭하다. 미치겠다..
'공포의 방'이 가까와졌는지 안 그래도 기분이 이상한데 그 방에서 들려오는 음향 효과가 날 더 미치게 만든다. 온갖 신음소리와 비명소리..
 
아무래도 안되겠다. 근데 어디서 꼬마애들 소리가 들린다. 봤더니 서양 꼬마애들 두 명이 떠들면서 오고 있다. 살았다..
나는 계네들 뒤를 따라 진행하려고 했는데 계네들은 그냥 재미없다는 듯, 휙 다시 왔던 길을 빠꾸해 밖으로 나가버린다. 다시 혼자다.. 나는 도저히 더 이상 관람(?)을 진행하기 어렵다 싶어 U2도 포기하고 옆으로 나 있는 '화재시 비상구'를 통해 밖으로 나와버렸다. 잡겨 있는 문을 어떻게 열고 나오니깐 박물관 직원이 날 붙잡는다.
 
"공포의 방은 안 보셨자나요. 여긴 통로가 아니예요."
"아.. 아뇨.. 거긴.."
"빨리 다시 들어와요 자.."
"아. 사실 지금 가 봐야 돼서.."
"아 그렇다면 할 수 없군요. 잘 가요."
"고맙습니다."
 
원래 이 곳은 부모가 아이들을 데리고 둘러보는 오락장같은 곳이다. 헌데 이른 월요일 아침 왠 멀쩡한 청년이 혼자 들어오는 모습도 거기 직원들이 보기엔 좀 우스웠을 것이다. 아후 쪽 팔려.. 결국 U2는 못 봤다. 아쉬웠다. 다시 숙소 쪽으로 내려오면서 가이드북을 펴 '왁스 뮤지움'에 관한 걸 읽어봤더니..
 
'왁스 뮤지움에 있는 '공포의 방'은 용기 있는 자들을 위한 방이다. 허나 괴기스런 모습과 그로테스크한 소리들을 즐기는 사람이 아니 라면 공포의 방을 선택하지 않고 대신 U2가 전시된 방을 보고 나올 수 있다.'
 
이런 젠장.............................

[더블린 시내 관광: 트리니티 컬리지/세인트 스티븐스 그린/템플 바]
 
- 8월 7일 월요일 -
 
왁스 뮤지움까지 보고 12시경에 숙소에 체크 인을 했다. 일단은 어제 밤에 잠을 거의 한 숨도 못자 피로를 풀겸 샤워를
하고 침대에 잠시 누워 휴식을 취했다. 살 것 같다.. 하지만 마냥 쉴 수만은 없지. 오후 1시경 다시 가방을 둘러
매고 숙소를 나왔다. 지금까진 리페이강(River Liffey)의 북쪽을 봤으니 이제 진짜 관광지들이 집중돼 있는 강의 남쪽으로 본격적인 관광을 해보자!
 
그 첫 코스는 트리니티 컬리지(Trinity Collage).
공식 이름은 'University of Dublin'이지만 그냥 트리니티 컬리지라고 불리운다. 이 곳은 유명한 'Book of Kells'가 있다고 해서 더블린의 관광객들이 반드시 찾는 곳이다. 다리를 건너 웨스트모렐랜드 스트릿과 컬리지 스트릿을 지나 트리니티 컬리지의 정문에 도착. 생각보다는 입구가 작다. 이번 여행에서 유일하게 보는 대학교..
넓은 캠퍼스와 잔디밭, 그리고 대학생들의 자유로운 모습들이 보인다. 나는 일단 그 유명한 'Book of Kells'를 보러 Old Library로 갔다. 역시나 예상대로 관광객들이 득실득실.. 허나 런던 등과는 달리 역시 동양인은 찾기 힘들다. (입장료는 학생 4아이리쉬파운드) Book of Kells는 AD 800년경 아일랜드의 켈트족들이 켈트어로 쓴 책으로 세계에서 가장 오랜된 책들 중의 하나. 주술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한다. 도서관 안에는 따로 Book of Kells의 박물관을 만들어 놓았는데 Book of Kells 뿐만 아니라 당시의 관계된 유물 등도 같이 전시해 놓았다. 한 쪽 벽에는 이 책의 제작 과정을 그대로 재현한 스크린 이 있다.
Book of Kells는 사람의 가죽 위에 쓰여진 책이라고 한다. 또한 실제로 보니 켈트어로 쓰여진 글만 있는 게 아니고 이쁜 색상을 띤 그림들도 첨부된 그림책(?)이다. 옛날에 쓰여진 책인데도 책이 참 예쁘다.
 
암튼 그렇게 보고 나와 가이드북에서 본 인상적인 구조물을 보러 버켈리 도서관 쪽으로 걸어갔다. 이 도서관 앞에는 참으로 인상적 인 조각품이 있는데 바로 'Sphere with Sphere'라고 하는 작품이다. 둥그런 구형의 구조물인데 금색을 띠고 있으며 단순한 구가 아니라 그 한 쪽면에 굉장히 또 복잡한 조각들이 내부로 파여져있는 형태다. 가이드북에서 본 사진이 인상적이어서 일부러 들렀다.
 
그렇게까지 봐버리니 이제 이 대학에서 볼 건 다 본 것 같다. 대부분의 관광객들도 이 정도만 보고 학교를 나간다. 난 그래도
나도 대학생인데 이런 것만 휙 볼 순 없지.. 하고 이런 저런 대학내의 풍경을 살펴 봤다. 그렇게 특별할 건 없었다.
우리나라의 캠퍼스 풍경과 그렇게 다를 건 없더군.
전공이 전공이니 의과대학 건물을 안볼 수 없었다. 아.. 근데 여기서 난 '역시 선진국'임을 또 느꼈다.
우리나라의 의과대학이라는 건 그냥 단과대 건물 한 채에 그 안에 '해부학 교실', '생리학 교실' 등의 파트가 그냥 아주 조그
맣게 나뉘어져 있는 게 전부인데, 여기는 그게 아니다. 해부학을 예로 들자면 우리나라는 그냥 'Department of Anatomy'
라고 하는 교실이 있지만 여기는 아예 'Anatomy Building'이라고 표기가 되어있다. 즉 '각 교실마다 건물 한 채'인 거다. 더 놀란 건 각 교실마다 교실 전용 버스가 있다...
 
암튼 그렇게 부러움을 듬뿍 느끼고 트리니티 컬리지를 나와 학교의 남쪽에 있는 Kildare St.로 향했다. 국립 박물관과 국립 미술관을 보기 위해서였다. 근데 국립 박물관 앞에는 'Closed Mondays'라고 쓰여있다.. 아쉽다. 각 도시별, 나라별로 박물관은 한번쯤 가보려고 그랬는데.. 발길을 돌려 국립 미술관쪽으로 가니, 이런. 기대했던 국립 미술관이 있을 자리에는 온통 공사 중이다. 가이드북에서 봤던 국립 미술관의 멋진 풍경 대신에 온통 시끄러운 공사와 수리만 진행되고 있어서 실망했다. 아마도 재건설을 하거나 큰 수리를 하는 모양이다.
 
결국 박물관과 미술관 관람은 포기하고 좀 더 남쪽으로 걸어서 St Stephan's Green이라는 공원에 들어 갔다. 공원은 이미
런던에서 하이드 파크라는 엄청 크고 멋진 곳을 봐서 별 감흥은 없었고 그저 잠시 쉬고 싶어서 갔다.
 
근데 여기서도 뜻 밖의 멋진 풍경을 봤다. 공원의 한 쪽에서 'Summer Festival'이라는 이름으로 작은 축제를 하고 있더라.
흥겨운 재즈를 연주하는 아저씨 밴드가 무대에서 들려주는 음악을 들으며 바로 앞의 잔디밭에 사람들이 누워있다. 곡이
끝나면 박수를 치고.. 한 색소폰 아저씨가 들려주는 조용하고 감미로운 연주를 들으며 현지인들 사이에 껴 잔디밭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자니 기분이 쏠쏠하다.
 
그렇게 즐거운 마음으로 공원을 나와 이제 오늘의 마지막 일정인 템플 바(Temple Bar) 쪽으로 갔다. 템플 바라는 곳은 리페이 강의 남쪽에 위치한 일종의 번화가 내지는 먹자 골목같은 곳으로 많은 식당과 술집, 레코드숍을 비롯한 상점들이 모인 곳이다. 마치 런던의 소호 지역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겠으나, 소호 지역은 좀 슬럼가틱하고 다소 불량스러운 냄새를 풍긴다면
이 곳 더블린의 템플 바는 역시 '안전함'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풍기는 곳이다. 불량스러운 느낌은 전혀 감돌지 않고 그저
젊은이들의 활기참과 흥겨움이 느껴지는 곳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더블린은 '안전한 도시'이다.
 
이 쯤 되니 배가 출출해진다. 그 동안 너무 식사를 제대로 못한 것 같아서, 여행도 이제 슬슬 막바지로 가고 있으니 이 곳
더블린의 템플 바에서 제대로 식사해보자! 하고는 제법 근사해보이는 식당에 들어갔다. 역시나 고급스런 분위기에 웨이터들의 영어도 격식이 있는 억양을 가진 완벽한 영국식 영어였다. 나는 11아이리쉬파운드짜리 베이컨 요리와 5아이리쉬파운드 정도 하는 아이리쉬 커피를 주문했다. 말이 베이컨 요리지 그런 얇은 베이컨이 아니고 두텁디 두터운 고기 세 줄과 상추를 쪄서 잘게 썰은 것을 소스와 버무린 것으로 아일랜드 전통 요리란다. 너무 멋있다! 아이리쉬 커피라는 건 처음 먹어봤는데 알코올이 들어가 있는지 약간 취기가 돈다. (알고 봤더니 '아이리쉬 커피'라는 건 알코올이 특징적인 거란다. 커피에 관심이 없는 내가 뭘 알아야지..)
 
암튼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의 먹자 골목에서 아일랜드 전통 요리와 함께 아이리쉬 커피를 마시고 있자니 참 내가 혼자 이 먼 곳까지 와서 이러고 있는 게 대견스럽다.
 
아이리쉬 커피 탓에 약간 취기가 돈 상태에서 식당을 나와 바로 앞에 있는 pub에 들어 갔다. 'The Temple Bar'라고 하는 펍으로 가이드 북에 사진도 실린 바 있다. 이름에서부터 풍기는 게 이 곳 템플 바의 가장 대표적인 펍 같다. 나는 여기서 드디어
그 기네스(Guiness)라고 하는 아일랜드 특유의 맥주를 시켰다. 기네스는 스타우트류(흑맥주)의 일종. 처음에 웨이터가 기네스 한 파인트를 척 내 주는데, 어째 색깔이 하나도 안 까맣다. 나는 이상해서 이게 기네스예요? 라고 물어보니 당연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아 참, 여기 기네스 1 파인트는 약 4아이리쉬파운드 정도 했던 것 같다.)
여전히 의아한 기분에 잔을 들고 적당한 자리에 가서 앉아 놓고 보니 이게 슬슬 까매지더니 완전한 시꺼먼 흑맥주가 된다.
참 신기했다. 시꺼먼 맥주.. 그리고 표면에는 커피우유색 거품이 낀.. 맛은 어떨까.
 
무지무지하게 쓰다. 근데 묘한 마치 한방 보약같은 향이 살짝 돈다. 그리고 그 쓰디쓴 끝 맛에는 아주 역시 또 묘한 커피향
비스무리한 단맛이 남는다..
 
아! 정말 기막힌 맛이다!
아일랜드에서 기네스를 마신다는 건.. 일본에서 쓰시를 먹는 것과 같고.. 스코틀랜드에서 스카치 위스키를 마시는 것과 같고.. 이탈리아에서 피자를 먹는 것과 같고.. 우리나라에서 김치를 먹는 것과 같다. 펍에 앉아 이런 저런 여러 나라의 대표 음식들을 떠올리며 맥주를 마시고 있으니 역시 또 여기까지 와서 내가 이러고 있는 게 대견스럽다. 크흑...
 
아이리쉬 커피에 기네스까지 걸치니 몽롱~해진다. 게다가 어젯밤에 잠을 못잔 것까지 섞여.. 템플 바를 나와 다시 리페이강의 다리를 건너며 혼자 취한 기분에 사색을 했다. 다리에 기대고 서서 리페이강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자니 이 도시 더블린이 너무 좋아진다.. 내일은 아침 일찍 서둘러야 되는 일정이 없다. 어차피 내일도 하루 종일 여기 더블린에 있을 거니깐..

아!! 아주 여유롭고 기분 좋은 상태에서 숙소에 들어와 행복한 잠을 잤다. 밖에선 누가 틀었는지 아일랜드의 역시 국민 밴드인 The Cranberries의 곡들이 귓가에 들려오고 있었다...

 

[더블린 시내 관광: 더블린 성/성 패트릭 대성당/기네스 호프 스토어/킬마인엄 제일]
 
- 8월 8일 화요일 -
 
여행도 슬슬 막바지에 이르고 있는지, 아침에 일어나기가 조금씩 힘들어진다. 이 날도 8시에 알람을 맞췄었는데 계속
깅개다가 45분쯤 돼서 일어난 것 같다. 오늘은 더블린을 떠나는 날.. 조금 아쉽다. 샤워하고 9시 정도에 다이닝 룸에 가서 아침 식사를 했다. 여긴 에딘버러의 B&B에서와는 달리 나같은 사람들을 배려하기 위함이었는지 큰 메인 테이블같은 건 없고 모든 테이블이 자그마한 2인용이었다. 좋았다.. 적당한 자리를 잡고 앉아 식사가 나오길 기다렸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토스트만 주고 메인 식사가 안나온다. 이상해서 뒤를 돌아봤더니 직접 주방에 가서 받아오는 체제.
 
"Do you want it all?"
"Yes."
 
풀 아이리쉬 브렉퍼스트라 해서 기대하고 모든 메뉴를 다 접시에 담았는데, 아이리쉬 스타일이라고 해서 특별한게 아니라 역시 주된 것은 베이컨과 계란이다. 잉글리쉬 스타일, 스코티쉬 스타일, 아이리쉬 스타일의 아침 식사는 말만 다르지 모두 베이컨과 계란, 그리고 토스트가 다다. 한 가지 아이리쉬 브렉퍼스트는 특징이 다른 데와는 달리 계란 후라이가 아니고 스크램블이었다는 것. 그리고 약간의 콩이 나왔다. 다 때려치우고 열라 맛있었다.
 
아침 식사를 끝내고 짐을 준비해 나와서 체크 아웃을 했다. 이 곳 역시 짐을 맡아주더라. 더블린은 참 모든 게 친절하고
좋은 곳이다..
 
가벼운 쌕만 매고 다시 오늘 일정을 시작했다. 오늘은 대체로 리페이강의 남서쪽을 둘러보는 시간..
 
첫 코스는 더블린 성이다.
리페이강을 건너 Dame St.쪽으로 걸어가 더블린 성을 찾았다. 근데 지도만 보면 금방 찾을 것 같은데 영 찾기가 쉽지 않다.
대신 더블린 성을 찾는 과정에서 Christ Church Cathedral과 Dublinia(아직도 이 곳이 뭐하는 곳인지 모르겠다.)를 발견
해서 간단히 사진을 찍고.. 어떻게 어떻게 해서 더블린 성을 찾았다. 더블린 성은 꽤 구석진 변두리에 위치해 있다.
 
음.. 근데..
성 내부의 입장은 'guided tour only'다. 더블린 시내의 관광지에는 'guided tour only'가 많은 것 같다. 더블린 시는 관광 사업에 꽤 주력하는 듯 하다. 별의별 곳에 모두 가이디드 투어가 있고, 기념품점이 있다. 세상에 대성당 안과 대학교 안에 기념품 점이 있는 건 좀 희한했다. 가이디드 투어는 값이 비싸서 성의 완전 내부로 들어가보진 않았고 대략적인 겉의 모습과 군데군데를 훑어봤다. 근데 더블린 성은 그다지 멋진 것 같지는 않다. 이번 여행에서 본 성들 중에선 가장 꼴찌다..
 
이번 여행에서 나는 성, 대성당, 궁전 등을 많이 봤는데 사실 이런 곳들은 나한테 별로 매력을 못 준다. 나는 대체로 어떤 유적지나 건물 등에서는 별 감동을 얻지 못하나 보다. 그보다는 자연 경관이나 길거리의 모습, 음식 등과 같은 보다 실제적인 것에 더 감동을 잘하는 편이다. 바로 이런 게 가이드 딸린 패키지 투어에서는 맛볼 수 없는 자유 여행의 장점 아닐까..
 
더블린 성을 보고 나오니 뚜껑 없는 투어 버스가 지나간다. (뚜껑 없는 투어 버스는 모든 주요 도시에 다 있는 것 같다.
런던, 에딘버러, 더블린, 카디프에서 봤다.)
 
버스 옆에 쓰여져 있는 관광지 이름을 봤더니 St Patrick's Cathedral이 있길래 왠지 봐야 할 것 같아서 바로 옆으로 난
니콜라스 스트릿을 따라 걸어 내려왔다.
 
(난 시내 구경은 다 걸어서 한다.)
 
세인트 패트릭스 커세드럴.. 성 패트릭 대성당이다. 이 곳은 더블린의 대표적인 관광지 중 하나로 즉 더블린을 대표하는 대성당이다. 이미 솔즈베리 대성당이라는 아주 멋진 대성당을 본 후라 입구 쪽의 겉모습은 영 안 멋지다. 나는 표를 끊고 안으로 들어가보기로 했다. 내부는 그냥 전형적인 대성당의 모습.. 런던에서 들어가 본 웨스트민스터 대성당과 별 차이는 없다.
다른 점이라면 관광객들이 어수선하게 많다는 것. 성당의 한쪽에 기념품점이 있는 건 어째 성당의 풍경이 아닌 것 같다. 이 곳은 대표적 관광지 답게 '성당'으로 이용된다기 보다는 하나의 '관광지'로, 성당 내부가 아예 박물관이다. 여러 기념이 되는 유물 등을 전시해 놓았는데, 난 왠지 성당 의 본모습이 아닌 것 같아 별 감동은 없었고 씁쓸하기까지 했다. 그렇게 대충 보고 나와 다른 쪽으로 있는 입구를 들어가니 잔디밭과 함께 경내가 나온다. 오.. 근데..
 
이 잔디밭에서 바라다보는 성 패트릭 대성당은 참 멋졌다.. 입구에서 가졌던 '솔즈베리 대성당보단 못 하잖아'라는 생각이
사라질 만큼 솔즈베리 대성당에 필적할 만한 아름다움이다. 솔즈베리 대성당이 여성적이라면 이 곳은 남성적이라고 해야 하나.. 황금 빛깔을 띠었던 솔즈베리 대성당이라면 이 곳은 전체적으로 짙은 회색 톤이다. 남성의 힘이 느껴지는..
 
암튼 그렇게 보고 나와 다음 장소인 오늘의 하일라이트!
기네스 호프 스토어(Guiness Hop Store)로 향했다.
대성당에서 조금 더 서쪽으로 걸어가면 있는데, 이름만 보면 무슨 기네스 맥주를 파는 큰 가게같은 느낌이지만 사실 가게는 아니고 아일랜드의 대표적인 맥주인 기네스를 기념하는 관광지이다. 세인트 제임스 게이트라고 하는 곳에 위치해 있는데 이 곳은 시내 전체가 하나의 커다란 기네스 양조 지구이다. 각종 공장 및 사무소 등이 밀집해 있는 곳.
 
티켓을 끊고 안으로 들어갔다. (학생 4아이리쉬파운드) 내부는 총 3층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특이하게도 처음 입장하는 곳은
3층이다. 거기서 시작해서 2층을 보고 최종적으로 1층을 보고 나오게 되어있다. 3층은 'Advertising Guiness'라고 하는 곳으로 각종 기네스를 홍보하는 문구와 관련 전시물, 홍보 영상 등이 있다. 이 곳을 보고 있으면 아일랜드인들이 얼마나 기네스를 좋아하고 또 하나의 관광 상품으로 개발하려고 하는지를 볼 수 있다. 2층은 'Brewing And Packaging Guiness'라고 하는 곳. 즉 기네스의 재료부터 시작해서 양조 과정, 마지막으로 하나의 기네스라는 맥주가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전시한 곳이다. 잘 기억은 안나는데 기네스라는 맥주를 만드는 재료는 엄청 간단한 듯 했다. (물, 보리, 효모.. 그 정도?) 마지막으로 1층은 'Transporting Guiness, Sample Bar And Shop'이라고 하는 곳으로 이 곳 기네스 호프 스토어를 찾는 관광객들이 만족을 안할 수 없게 정말 생각 잘했다는 느낌이 든 곳. 뭐냐면 쉽게 말해 하나의 작은 '펍'을 거기다가 만들어 놓아서 3층과 2층을 둘러본 관광객들이 직접 기네스를 한 잔 할 수 있는 술집이다. 이름도 템플 바(Temple Bar)를 패러디한 샘플 바(Sample Bar).. 4아이리쉬파운드짜리 티켓에 아예 1층에서 기네스를 주문해 마실 수 있는 쿠폰이 붙어 있어서 참 생각 잘한 것 같다. 나는 어제도 그 템플 바에서 기네스를 마셨는데 오늘 역시 이 샘플 바에서 기네스를 또 마셨다. 참 기분이 좋더라.
 
옆에는 기네스를 상품화한 온갖 티셔츠, 열쇠고리, 모자 등등을 파는 기념품 점이다. 기네스의 색깔인 검은색과 금색을 이용한 상품들.. (참 웃겼던 건 더블린 시내의 길거리에 있는 쓰레기통(Litter)의 색깔 역시 검은색과 금색이라는 것.. 정말 기네스의 위력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그 곳을 둘러보고 나오니 역시 기네스의 영향인지 또 기분이 알딸딸.. 잠시 그 앞에 벤치에 앉아 다음 일정을 구상했다. 이제 센트럴 더블린시에서 대충 볼 건 다 본 것 같다.
 
지금부터 본다면 이제 더블린 중심을 벗어난 외곽이다. 나는 북동쪽의 Casino At Marino를 볼 것인가, 남서쪽의 Kilmainham Gaol을 볼 것이냐.. 북서쪽의 피닉스 파크를 볼 것이냐.. 잠시 고민을 했다. 시간 상 셋 중의 하나를 택해야 한다. 근데 카지노를 본다면.. 어차피 그냥 건물 하나일 것이고, 또 이 카지노 역시 내부 관람은 '가이디드 투어 온리'라고 한다. 음.. 세계에서 가장 크다는 피닉스 파크(크기가 뉴욕 센트럴 파크의 두 배, 런던 하이드 파크의 6배나 된다고...)는 분명 가 볼 만한 가치가 있었지만 시간 관계상 가봐야 그 크기를 가늠할 정도의 구경은 못할 게 뻔하고 또 '공원'이라는 건 이제 워낙 많이 가봐서..
 
결국 킬마인엄 제일로 결정을 했다. 이 곳은 그래도 '감옥'이니 뭔가 좀 색다른 걸 볼 수 있겠다 싶어였다.
 
기네스 호프 스토어에서 서쪽으로 Bow Lane과 Kilmainham Lane을 따라 걸어가면 되는데, 헉.. 이 곳은 정말 멀다. 걸어가면 된다는 생각을 하기가 좀.. 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 곳이다. 지도를 보면 얼마 안돼 보이는 Bow Lane과 Kilmainham Lane의 실제 거리가 얼마나 먼지.. 기억상 약 2킬로 가까이는 걸은 듯.. 걷고 또 걸어도 감옥은 안 나온다. 나중엔 슬슬 인적이 드물어지고 무슨 시골길같은 델 걷는다. 이거 제대로 오고 있는 거 맞어.. 라고 해도 지도를 보면 분명 제대로 오고 있다.
 
한참을 가서야 감옥에 도착. 킬마인엄 제일(Kilmainham Gaol).. 아일랜드의 독립 투쟁을 잘 반영한다는 곳으로 현재는 감옥으로 이용되지 않고 관광지로만 개방되어 있다. 암튼 티켓을 끊고 안으로 들어갔다. 역시나 감옥의 더욱 안쪽 깊숙한 데는 가이디드 투어 온리였다. 내가 본 곳은 당시 죄수들의 생활이 느껴지는 각종 전시물들이 있는 박물관과 간단한 아일랜드의 투쟁 역사 등을 전시해놓은 곳, 그리고 'Art in Prison'이라는 자그마한 갤러리이다. 박물관이라는 것에 별 감흥을 얻지 못하는 나이지만 (그래도 열심히 박물관은 많이 들어갔다...) 이 곳은 역시 '죄수'와 관련된 곳이라 그런지 나름대로 재미가 있었다.
 
암튼 이 곳을 끝으로 더블린의 공식 일정은 끝이다..
현재 시각은 대략 오후 6시경.. 오늘 밤 9시 밤차를 타고 런던으로 돌아가야 한다. 약 세 시간의 여유가 있다. 나는 더블린을 마지막으로 음미하기 위해 그냥 더블린 중심 시내를 사색하며 걷기로 했다. 다시 왔던 길을 걸었다. 근데 걷다 보니 금방이다. 이상하다.. 올 때는 그렇게 멀더니..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2킬로는 안되는 것 같다. ^^)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들으며 걷다 보니 금방 다시 센트럴 더블린에 도착. 일단은 리페이강가를 따라 좀 걷다가 다시 그 템플 바로 갔다. 템플 바에서 나는 또 한번 진기한 풍경을 봤다. 스코틀랜드의 에딘버러에서는 킬트 차림의 소년이 스코틀랜드의 민속음을 팬 파이프로 불고 있었는데, 이 곳 더블린에는 소박한 시골 차림의 소년이 가느다란 피리로 아일랜드의 소리를 들려주고 있었다.. 아 여긴 아일랜드지.. 마저... 나는 기꺼히 돈을 선사했다.
 
템플 바의 레코드숍(Comet Records라는 곳)에 들어가 씨디 구경을 하고 Armand van Helden의 [The Funk Phenomena] 앨범을 하나 샀다. (더블린의 레코드숍에는 역시 아일랜드라 그런지 이 곳 출신들인 U2, Sinead O'Connor, The Cranberries, The Corrs 등의 아이템들이 많다.) 그럭저럭 템플 바를 거닐고 중앙에 있는 광장같은 데 앉아 담배도
피우고.. 하다가 다시 중심가인 오코넬 스트리트에 있는 벤치에 앉아 또 빈둥빈둥 휴식을 취하면서 더블린이라는 도시를 음미했다.
 
여기서 잠깐!
 
도시별 '잠깐 앉아서 쉴만한 장소' 총정리!
 
런던: 뭐니뭐니 해도 트라팔가 광장이 최고다. 비둘기떼와 섞여 생동감 넘치는 이 곳에 앉아 담배를 피우는 등 휴식을 취하거나 지도 보기, 다음 일정 계획하기, 간단한 식사 등에는 최적의 장소.
 
에딘버러: i 앞의 벤치가 최고. i 앞에는 벤치 등을 여러 개 만들어 공원처럼 조성된 휴식터가 있는데, 특히 여기는 현지인들다 i 앞이라 그런지 관광객들이 많이 앉아 있어서 왠지 소속감도 드는 곳.
 
더블린: 단연코 오코넬 스트릿의 벤치! 그냥 드문드문 있는 벤치를 생각하면 곤란하다. 오코넬 스트릿은 굉장히 큰 편이라
인도가 양 옆 뿐만이 아닌 찻길의 중앙에 하나 더 있는데, (그러니까 양 옆 일방통행 도로를 구분하는 인도가 하나더)          여기엔 각종 동상들과 함께 앉아 있을 수 있는 곳이 많다. 특히 현지인들이 많이들 앉아서 쉬는데 이 곳에 앉아 오코넬
스트릿의 풍경을 보며 식사를 하거나 지도를 보기는 최적.
 
밤 8시경이 다 됐길래 근처 수퍼마켓에서 밤차 안에서 먹을 물과 먹이를 좀 산 후 숙소에 가서 맡아 논 짐을 찾아 다시 센트럴 버스 스테이션인 Busaras에 갔다. 이렇게 더블린 일정은 끝이 났다.
 
더블린.. 아일랜드의 수도..
사실 아일랜드의 진가를 보려면 시골을 봐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난 이 곳 더블린만 보고서도 분명 '아일랜드'를 느꼈다.
더블린에는 아름다운 건물이나, 뛰어난 관광지 등은 없다. 하지만 그런 게 더 매력적이게 만든다.
아무리 찾아봐도 전혀 악의가 느껴지지 않는 사람들의 얼굴..
낮은 건물과 자그마한 도로에서 느껴지는 그 소박함.. 훈훈함..
리페이 강가에서 느껴지는 그 묘한.. 투쟁의 역사가 느껴지는
쓸쓸하고 고요한 느낌..
번화가이며 젊은이들의 거리이긴 하지만 전혀 불량스러움이
감돌지 않는 템플 바..
아아.. 더블린..
다른 곳은 몰라도 이 곳 더블린은 꼭 반드시 다시 한 번 올 것이다!
신혼 여행을 이 곳으로 올까...
 
[카디프]
 
- 8월 8일 화요일 -
 
밤 9시 Busaras를 출발한 버스는 다시 더블린의 던 리어리(Dun Laoghaire) 선착장에 도착했다. 버스를 타고 오며 본 차창 밖에는 갈매기들이 많은 해변가의 비치가 보였는데 너무 너무 아름다왔다. 차라리 더블린에서 하루 더 묵으면서 여기서 해수욕이나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더블린 비치는 다음에 언제 기회가 있으면 꼭 올 것이다.
 
- 8월 9일 수요일 -
 
역시 왔던 코스를 그대로 따르며, 던 리어리에서 페리를 타고, 홀리 헤드에 도착. 홀리헤드에서 버스를 타고 아침 7시경에 다시 런던의 빅토리아 코치 스테이션에 도착했다. 런던에 다시 돌아오니 무슨 집에 돌아온 것 같다. 일단은 VCS에서 11시 출발 카디프행 왕복 티켓을 끊었다. (디스카운트 해서 13파운드 정도 했던 것 같다. 기억이 가물가물..)
 
너무나도 능숙하고 익숙하고 당연하게 나는 짐을 매고 다시 내가 묵던 Limegrove Hotel로 갔다. 무슨 예약을 한 것도 아닌데 그냥.. 험상궂은 범죄형의 주인 아저씨.. 싱글룸을 달래니깐 얼마나 있을 거냐 그래서 이틀 있을 거라니까 더블룸을 그냥 싱글룸값을 받고 척 준다. (험상 궂은 외모와 거기에 걸맞는 터프한 말투와 묵묵한 행동.. 그다지 좋은 사람같지는 않은데 난 왜 이 아저씨가 좋아보이는지..) 암튼 다시 숙소에 도착. 이제 여행이 끝나가고 있다..
 
지금까지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아일랜드를 봤으니 이제 마지막 남은 곳! 바로 웨일즈의 수도 카디프이다.
 
늘 그렇 듯이 어디를 향해 '갈 때'는 잠을 거의 못자지만 거기서 다시 '돌아올 때'는 잠을 아주 잘 잔다. 어젯밤도 아주 버스 안에서 잘 잤다. 그래서 그다지 피로하진 않았다. 대충 샤워를 하고 다시 숙소를 나와 VCS에 가서 대기하면서 대충 과자 부스러기로 아침을 때우고 11시에 카디프행 버스에 올라탔다. 카디프까지는 약 3시간이 소요된다. 오후 2시 10분경 카디프의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사실 오늘 카디프에서는 그다지 오래 있을 시간이 없다. 오후 6시경에 다시 런던으로 돌아가야 돼서 약 4시간밖에 둘러볼 시간이 없었다. 카디프시는 사실 하루 묵으면서 좀 더 많이 봐야하는 곳이었는데.. 여기서 하루 묵을 수도 있었는데 11일날 서울행 비행기를 타야 했으므로 전날인 내일은 왠지 리컨펌도 하고 런던에 있어야 될 것 같아서.. 우선은 버스 정류장을 벗어나 우드 스트릿으로 나왔다. 4시간 동안 일정을 쪼개서 여기 저기 하드코어식으로 둘러볼 수도 있었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그냥 여기서도 슬슬 보기로 했다. 여유가 없어지면 여행은 즐거운 게 아니고 피곤한 법이다. 우드 스트릿에서 배가 고파진 나는 일단 식당부터 들어갔다.
 
식당과 펍을 겸한 곳이었는데, 여기서는 일단 테이블 번호를 정하고 바텐더에게 직접 음식과 술을 주문하면 직접 테이블로 갖다 준다. 나는 [미스터 초밥왕]에서 봤지만 아직까지 먹어본 적이 없던 참치 스테이크와 비터 맥주 한 파인트를 시켰다.
(사실 배가 고팠던 나머지 좀 성급했다. 웨일즈의 전통 요리가 뭔지 물어보고 시키는 거였는데..) 생선같은 질감에 스테이크의 빛깔을 띤 참치 대뱃살 스테이크는 기막히게 부드럽고 맛있었다. 쇼타처럼 철판을 두 개 얹어 스며나오는 육즙을 방지했던 것일까.. 뭐 그런 쓸데없는 생각도.. 암튼 깨끗하게 삭삭 비우고 나오니 벌써 4시가 다 됐다.. (참치는 해동 과정이 필요했는지 좀 늦게 나오더라.)
 
이제 본격적인 카디프 시내 관광이다.
카디프라는 도시.. 사실 생긴 건 여타 영국 도시와 별 다를 건 없었다. 하지만 웨일즈만의 느낌은 길거리의 간판과 표지판에서 보인다. 모든 간판과 표지만, 심지어는 광고에까지 온통 '웨일즈어'이다. 물론 영어도 같이 있긴 하지만..
 
근데 웨일즈어의 특징은 대체 이걸 어떻게 발음하나.. 라는 거다. 예를 들면 'llandarf'라는 단어.. '르란다프'도 아니고 '란다프' 도 아닌 '스란다프'라고 발음한다.. 참 나.. 또한 곳곳의 간판에 'Welsh'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는데 이걸 보니 참 영국의 도시들을 다니면서 각각의 국민들이 얼마나 나름대로의 자존심을 지니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에딘버러의 도시엔 'Scottish'라는 수식어가 많고 더블린에는 'Irish'라는 수식어가 붙은 간판들이 많이 보였다. 근데 여긴 'Welsh'라니.. 하하.. 참 재미있다.
 
카디프라는 도시는 굉장히 작은 도시였다. 건물들도 아담한.. 하지만 왠지 또 역시 '웨일즈'라는 이상한 나름대로의 느낌을
받았는지 역시나 분위기는 화려하지 않고 소박하다. 중심가라고 할 수 있는 하이 스트릿에 들어서니 저기 먼 앞에 드디어 '카디프 성'이 보인다. 성을 목표로 쭉 걸어 올라가 카디프 성 앞에 왔다. 카디프 성의 외벽에는 각국의 깃발들이 꽂혀 있었는데 난 '역시 일본은 있지만 우리나라는 없겠지'라고 생각했다. 얼.. 근데 그 몇 개 안되는 국기 중에 한국기도 있다.. 뿌듯했다.. (물론 일본도 있다.) 카디프 성은 시내 도로 옆에 세워져 있어 마치 우리나라의 수원성을 연상케 하는 느낌이었다.
 
티켓을 끊고 들어가려는데 점원이 어떤 티켓으로 할 거녠다. 난 '학생이요..'라고 했는데 'guided tour'와 'ground tour' 중에 택하란다. 알고 보니 가이디드 투어는 성 내부에 들어가서 각종 화려한 전시물들을 보는 것이고 그라운드 투어는 그 안으로는 들어가지 못하는 것. 난 '전시물'이라는 것에 약간 질려서 그라운드 투어를 택했다. (물론 그라운드 투어가 가격이 훨씬 싸다. 학생 티켓이 있는데 가격이 기억 안남.. 싸다 그래도.)
 
카디프 성문을 들어가면 일단 넓은 잔디밭이 있고 한 가운데 성탑이 있다. 이 성탑은 물 위에 세워져 있어서 굉장히 아름답다. 성탑의 꼭대기에는 웨일즈의 국기(용이 그려져 있는..)가 펄럭인다. 나는 그라운드 투어라 그 성탑 안으로도 못 들어가는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고, 그 성탑옆에 세워진 건물 안만 들어갈 수 없는 거였다. 그 건물 안에는 각종 화려한 내부 장식이 있다는데 별 관심 없다.. 약간 가파른 계단을 올라 성탑 안으로 들어갔다. 그 안에서도 계속 가파른 나선형 계단이 있는데 이 계단을 끝까지 올라가면 그 성탑의 꼭대기에 다다른다.
 
꼭대기에서 내려다보는 전경이 기가 막히다. 성탑 둘레는 물로 되어 있기 때문에 멋지고.. 성탑 앞의 잔디밭의 광경도 멋지다. 무엇보다 카디프 시내가 쫙 내려다 보인다.. 아 참 멋졌다. 이번 여행에서 내가 본 성을 멋있는 순으로 나열하자면..
카디프 성 > 우르크하트 성 > 에딘버러 성 > 더블린 성이 되겠다.
 
암튼 그렇게 카디프 성을 둘러보고 나오니 이제 진짜 시간이 없다.. 벌써 4시 반이 되갈라 그런다.. 6시면 버스를 타야 된다..
아아.. 좀 아쉽더라. 카디프라는 도시도 굉장히 아름다운 것 같고 더 볼거리가 많을 것 같은데..
 
나는 성문을 나와 성벽을 따라 걸었다. 성벽에는 유명한 동물 조각들이 쭉 열거돼 있는데 이것들은 밤에 보면 진짜 동물같다고 한다. 근데 실제로 보니 정말 그럴 것 같은 게 동물들이 그냥 부동 자세로 조각된 게 아니고 눈깔도 선명한 것들이 각종 액션을 취하고 있다. 성벽을 타고 밖으로 기어나오려는 듯한 동물들의 생동감이 느껴지는 조각들이다. 그 성벽을 따라 조금 걸으면 뷰트 파크가 나온다. 이 공원은 마치 에딘버러에서 홀리루드 궁전과 홀리루드 공원의 관계처럼 성 주변에 조성된 공원이다. 성 안과 통해져 있어 성을 통해 들어갈 수도 있는데 내가 갔을 때는 그 사이 통로가 잠겨 있었다. 공원은 하도 많이 봐서 별 감흥은 없었다. 그냥 한가로운 공원이다.. 하지만 군데 군데 마치 스톤헨지를 연상시키는 작은 바위들이 늘어선 것이 특징적이었다.
 
공원을 나와 조금 더 걸으면 강이 나오는데 강의 이름은 '터프 강'.. (무슨 강씨 성을 가진 사람 애칭같다..)
영국의 대부분의 도시들은 다 강을 끼고 있다. 물론 도시라는 게 강을 중심으로 발전하는 거긴 하지만..
런던의 템즈 강, 인버네스의 네스 강, 솔즈베리의 에이본 강, 더블린의 리페이 강, 그리고 카디프의 터프 강..
(에딘버러만 없군)
 
시간이 워낙 없어서 더 이상 일정을 진행하는 건 무리겠다 싶어 그냥 슬슬 터프 강 유역을 거닐었다. 터프 강을 거닐다보니
저 옆 쪽으로 굉장히 아담한 건물에 아주 예뻐보이는 시내가 있었는데 거길 가보고 싶었지만 역시 시간이 없었다.
다음에 다시 카디프에 오면 그 시내 쪽으로 꼭 가볼거다!
 
오후 5시가 넘어 나는 다시 터프 강 유역을 떠나 버스 정류장 쪽으로 갔다. 런던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타려고 하는데 이 카디프 버스역에서 버스 타는 법은 좀 특이했다. 보통 같으면 그냥 구입한 티켓을 버스 기사에게 보여주고 버스 기사가 티켓을 끊으면 타는 건데, 여기는 좀 다르다. 일단 역 내에 있는 'Check-in'이라고 쓰여있는 사무실에 들어가서 티켓을 보여준다. 그러면 직원이 그 티켓을 끊고 빨간색 회수용 보딩 카드를 건네 준다. 그러면 그걸 갖고 있다가 운전 기사가 그 카드를 회수하면서 탑승하는 것. 오후 6시경에 출발한 버스는 다시 3시간 정도를 달려 9시경 런던의 VCS에 도착했다. 런던은 더블린이나 에딘버러와 같은 도시들보다는 좀 해가 일찍 진다. 9시 반 경이 되면 어두워짐. 도착하니 어둑어둑 해져 VCS 내에 있는 버거킹에서 간단히 저녁을 먹고 숙소에 돌아와 잤다. (원래는 근처 식당 겸 펍에서 피쉬 앤 칩스를 먹을라 그랬는데 바텐더가 식사는 9시까지만 된다고 해서..) 암튼 그렇게 해서 아주 짧지만 가치 있는 웨일즈의 카디프 일정을 끝냈다. 그래도 잠깐이지만 난 웨일즈에 다녀 온 거다. ^^;
 
웨일즈의 수도라고는 하지만 굉장히 작은 도시 카디프..
시내 한 가운데에 아름다운 카디프 성이 위치한..
온갖 표지판에는 따라 읽기조차 힘든 웨일즈어..
역시나 소박하고 따뜻함이 느껴지는 분위기.. 그리고 사람들..
이번 여행에선 아주 살짝 맛뵈기밖에 할 수 없었지만
다음에 기회가 생기면 좀 시간을 많이 내서 웨일즈 구경을
제대로 해보고 싶다.

[마지막 일정: 런던 시내 빈둥거리기]
 
- 8월 10일 목요일 -
 
딱! 딱! 딱! 딱!
간 밤에 꿈이 얼마나 재미있었던지 난 그 날 아침 알람을 씹고 계속 잤다. 근데 자꾸 어디서 딱딱딱딱 소리가 난다.
그러더니 결국 달그락 소리가 나더니 누군가가 문을 따고 들어온다.
 
허걱 나는 놀라 벌떡 일어났다. 근데 알고 보니 아침 식사를 가져온 여점원이었다. 아후.. 한참을 노크하다가 내가 안 일어나자 문을 따고 들어온 것이리라.. 무지 미안해서 쏘리를 연발했다. (근데 나는 그만 그 누나한테 팁을 안 주는 실수를 범했다. 그러고보니 난 이번 여행에서 아무한테도 팁을 안 줬다.. 전혀 의식을 못하고 있었는데 생각하니 약간 미안한 느낌이 든다.. 특히 더블린 식당에서의 그 웨이터.. 그리고 여기 라임그로브 호텔의 아침 식사 담당 누나한테는 꼭 줬어야 되는 건데.. 다음에 런던에 오면 다시 이 숙소를 잡아서 그 누나한테 꼭 팁 줄 거다!)
 
암튼 오늘은 여행 일정의 마지막날!
일단은 내일 떠날 비행기편의 리컨펌을 해야 하는 게 도리인 것 같아서 숙소를 나와 지하철을 타고 히드로 공항으로 갔다.
4.70파운드짜리 all zone용 one Day Travel Card를 끊고.. (지하철을 타기 전에 그 동안 정 들었던 '우리 동네'인
Warwick Way와 Limegrove Hotel, 그리고 VCS와 버킹검 팰리스 로드를 카메라에 담는 건 잊지 않았다.)
 
여기서 정보 하나!
히드로 공항에는 터미널이 1, 2, 3, 4 이렇게 네 개가 있다. 지하철 공항역도 터미널 4 따로, 터미널 1,2,3 따로 이렇게 두 개가 있다. 어디서 내려야 되나? 히드로 공항으로 가는 지하철 안에 답이 쓰여있다. 터미널 4는 주로 영국 항공.. 인 듯 싶고 1, 2, 3도 각각 담당 항공 회사가 적혀 있다. 대부분의 아시아권 항공 회사는 터미널 3에 있다. (싱가폴 항공도 물론 터미널 3)
 
지하철 '히드로 터미널 1, 2, 3'역에 내려 터미널 3의 departure로 가서 싱가폴 항공 카운터에 가서 리컨퍼메이션을 의뢰했다. 카운터 옆에 있는 사탕을 집어 먹으면서 있자니, 남자 직원이
"아, 내일 출발하시는 군요. 리컨펌 하실 필요 없습니다."
당당한 자신감의 표출이다. 난 그래도 해 달라고 졸랐더니 내 항공권을 보고 컴퓨터를 탁탁 두들기더니 확실하다고 해준다.
암튼 그렇게 공항 리컨펌을 하고 다시 지하철을 타고 빅토리아 에 오니 벌써 정오가 다 돼 간다.
 
사실 나는 오늘 브리스톨에 다녀오려는 계획을 하고 있었다. 근데 지금 브리스톨을 떠나봤자 갔다 오는 시간을 빼면 실질
적으로 브리스톨에 있는 시간은 두 시간도 채 안돼 어제의 카디프 보다 더 맛뵈기밖에 할 수 없는 시간 때문에 과감히 포기했다. 그럼 오늘은 뭘 하나.. 그냥 런던에서 빈둥거리기로 했다. 사실 런던에서도 볼 건 다 봤기 때문에 그다지 볼 것도 없다.
오늘은 여행의 마지막을 사색하며 그냥 쉬는 날이다. 원데이 트래블 카드도 샀겠다.. 그냥 여기 저기 막 지하철 타고 돌아다니기로 했다. (난 런던에서 그 유명하다는 빨간색 이층 버스 안 탔다. 왜냐면 난 이상하게 버스눈이 어둡다. 국내에서도 버스는 잘 안 탄다..)
 
어디부터 가지..
우선은 식사를 할 겸 Leicester Square로 갔다. 왜냐! 전에 갔던 그 중국 음식 부페에 가기 위해서! Leicester Square 역에서 내려 나오면 바로 건너편에 그 식당이 있기 때문에 찾기가 아주 쉽다. 4.50파운드를 내고 볶음밥과 탕수육을 비롯한 식사를 또 꾸역꾸역 실컷 먹었다. 먹는 도중에 앞 테이블에 앉은 한 인도인처럼 까맣게 생긴 동양 꼬마애가 나보고 중국 사람이녠다. 그래서 한국 사람이라고 그랬더니 자기는 영국 사람이랜다.
 
"I'm from London!!!!!"
 
이라고 아주 자신 있게 소리를 지르는데 내가 보기엔 열라 가소로왔다. (지도 동양인이면서..)
 
먹고 나서 바로 난 길을 따라 내려와 다시 트라팔가 광장에 왔다. 전에 보기만 하고 들어가보지 않았던 National Portrait Gallery와 National Gallery에 들어갔다. (둘 다 무료) 난 특히 Natonal Portrait Gallery가 인상적이었다. 여러 유명인들의 초상화가 파트별로 전시돼 있는데 그 중에는 DNA와 단백질의 시퀀싱 기법을 발명한 엄청 머리 좋은 학자인 Sanger도 있었다. 또 영국의 국민 가수 엘튼 존, 데이빗 보위, 로비 윌리암스, 스파이스 걸스, 올 세인츠까지 있더라.. 암튼 잼있었다.
그렇게 보고 나와 언제나 그랬 듯이 트라팔가 광장에 앉아 좀 쉬어주고..
 
다시 왼쪽으로 걸어 피카딜리 서커스에 갔다. HMV와 타워 레코드에 들어가서 씨디 세 장을 샀다.
 
Norman Cook [All Star Breakbeats]
Armand van Helden Presents War <Slippin' Into Darkness> Single
Fumiya Tanaka [International DJ Syndicate - Mix3]
 
신나게 씨디 구경하고 씨디 사고 나와서 이번엔 또 어디로 갈까.. 웨스트민스터 대성당과 더불어 런던의 또 하나의 대성당인
St Paul's Cathedral을 보기 위해 지하철을 타고 'St Paul's'역에 내렸다. 역을 나와 경내로 들어가니..
오올... 이 대성당 진짜 크다.. 지금까지 이번 여행에서 본 다른 대성당들은 쨉도 안되게 엄청 큰 규모이다.. 난 이미 영국물을 먹은 놈인지 현지인들처럼 그냥 길바닥에 턱 다리 뻗고 앉아 잠시 그 성당을 올려다 보며 생각했다. 그러고보니 잉글랜드의 수도인 런던에 이렇게 어마어마하게 큰 대성당이 있다는 게 신기했다. 잉글랜드는 프로테스탄트로 카톨릭을 탄압하지 않았나.. 그래서 더블린의 '성 매리 프로-대성당'은 그렇게 구석진데 세워진 것 아니었나..
 
세인트 폴스 대성당을 떠나 나는 Stratford로 가보려고 지하철을 타려는데 이게 콩나물 지하철이다. (런던에도 콩나물 지하철이 있다) 그래서 스트랫포드는 안 갔다.
 
나 혼자 하는 여행이기 때문에 모든 게 내 맘이다.. 아 편하다.. 근데 슬슬 돈이 다 떨어져간다. 물론 마지막 날이긴 하지만 씨디를 사다 보니 돈을 다 썼다. 한 4파운드 정도 남았나.. 근데 이 돈은 내일 히드로 공항으로 타고갈 지하철 값이다.. 으악! 파산이다. 적어도 먹을 물과 오늘 저녁은 충당해야 되지 않냐..
 
빅토리아역 근처 버킹검 팰리스 로드의 벤치에 앉아 고민을 시작했다. 근데 지갑을 보니 서울에서 갖고 간 돈 5천원이 있다.
'그래! 이걸 환전하자.' 난 천원은 여유를 두고 환전소에 들어가 4천원을 환전했다. 애게.. 4천원을 환전했더니 겨우 나오는 돈이 1파운드 95펜스다.. (현지에서 우리돈을 환전하면 이상하게 환율이 더 높아진다.) 그러고서 나는 곧바로 빅토리아 지하철 역에 들어가 히드로 공항까지 어덜트 싱글 운임을 알아봤더니 3파운드 정도 한다. 총 재산을 놓고 봤더니 내일 지하철 값을 빼고 3파운드 정도 여유가 있다. 으아 살았다.. 3파운드면 물과 식량을 조달할 수 있다..
 
나는 다시 지하철을 타고 오늘의 마지막 일정이자 이번 여행의 마지막 일정! 바로 노팅 힐(Notting Hill)로 향했다. 비록 영화 [노팅 힐]은 안 봤지만 그래도 왠지 가봐야될 것 같아서.. 지하철을 타고 'Notting Hill Gate' 역에 내리면 된다. 역을 나와 시내를 둘러보니 뭐 별 아무 것도 없다. 별 특이할 건 없다. 만약 영화를 봤더라면 특별한 걸 찾았는 지도 몰랐을 텐데..
 
시각은 오후 8시경.. 슬슬 어두워지려고 폼을 잡는다. 나는 어렵게 마련한 마지막 돈을 탁탁 털어 근처 수퍼마켓에서 물과 음료수, 그리고 치킨맛이 나는 빵을 하나 샀다. 근데 이 노팅 힐의 수퍼마켓에는 우리나라 식품이 참 많았다. 난 이번 여행에서 어느 수퍼에 들어갔어도 우리 나라 식품을 못 봤는데, 여기 노팅 힐에는 신라면, 짜파게티, 육개장 사발면, 양파링, 꿀꽈배기, 새우깡.. 등등 꽤 많다. 암튼 거기서 식량을 사서 노팅 힐의 벤치에 앉아 먹었다. 먹고 있는데 한 껄렁껄렁하면서 말이 많은 젊은이가 나한테 담배를 빌린다. 굉장히 능청스럽고 명랑한 사람이었는데 나보고 라이타불이 너무 세다며 머리카락이 홀라당 다 벗겨지는 줄 알았다고 오버 액션까지 곁들인다. 잼있는 사람이다. (백인이면서 흑인식의 영어를 구사한다.)
 
한 참 또 앉아 있는데 이번엔 약간 초췌해 보이는 아저씨 (마치 매시브 어택의 3D, 혹은 데이빗 홈즈를 연상케 하는 외모..)
가 옆에 와서 앉는다.
 
그: "일본에서 왔나?"
나: "아니다. 한국에서 왔다."
그: "음, 그렇군... 한국."
나: "어디서 왔나?"
그: "잉글랜드."
그: "근데 담배 가진 것 있나?"
나: "없다. 지금 내가 피우는 게 돗대다."
 
그렇게 말하니깐 실망스런 표정으로 자리를 일어난다. 목적이 담배 빌리는 거였다 보다. 이제 슬슬 해가 지려고 한다. 노팅 힐을 마지막 일정으로 나는 그 곳을 떠나 다시 지하철을 타고 빅토리아의 숙소에 왔다. 아....... 여행의 마지막 밤이다. 댄스 클럽에 꼭 가서 즐기고 싶었지만 돈도 없었고 무엇보다 밤에 혼자 클럽을 가는 게 좀 그랬다. (런던의 밤 지하철은 약간 위험하다는 정보를 들은 적이 있다.) 난 침대에 엎드려 지금까지 육미리 캠코더로 열심히 찍은 테잎들을 보면서 여행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다시 서울로]
 
- 8월 11일 금요일 -
 
따르.. 탁!
어제 아침과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알람이 울리자 마자 바로 일어났다. 팁도 못 준 그 누나한테 미안해서.. 오늘도 팁 줄 돈은 없다.. 흑. 아침 식사가 나올 때까지 얼른 샤워를 하고 그 누나를 맞이하려고 했다. (어째 어감이 좀 이상하다.)
샤워실(공동)에서 한 참 샤워를 하고 있는데.. 윽! 방 열쇠를 안가지고 나왔다......... 여행이 마지막에 이르다보니 긴장이 풀려서 이젠 막 덤벙댄다.. 하는 수 없이 주인 아줌마한테 사정을 얘기 하니 아줌마가 그 아침 식사 담당 누나한테 뭐라고 말을 한다. 그러더니 "저 애가 방문을 열어줄 거예요." 그런다.
 
아흐... 어제 아침처럼 또 그 누나가 문을 따줘야된다.. 그 무거운 아침 식사를 들고 여기까지 올라오는데..
(하필 그 때 잡은 내 방이 또 건물의 꼭대기층이다.)
여기까지 올라온 누나는 숨이 찬지 헉헉거린다.. 그걸 보면서 팁을 못 주는 내 자신이 얼마나 미웠는지 모르겠다.
(동양인이라 그런가보다.. 하세요.. --;)
암튼 또 다시 그 누나의 도움으로 방 문을 열고 들어가서 뻔뻔스럽게 아침 식사를 먹었다. 아침을 비운 나는 도망치듯이 체크 아웃을 하고 나왔다. 이제 영국 여행 일정이 끝났다.. 너무나도 정이 든다.. 아니 이제 슬슬 영국에 정이 들래니깐 떠나야 된다.. 빅토리아 지하철 역에서 히드로 공항까지 어덜트 싱글 티켓을 끊고 히드로 공항으로 갔다.
 
터미널 3에 도착.
내가 타야 할 것은 정오인 12시에 떠나는 비행기이다. 싱가폴 항공 카운터에서 싱가폴 창이 공항까지 가는 것과 창이 공항에서 다시 서울로 가는 비행기의 보딩 패스를 끊고 게이트 앞에서 대기, 비행기에 올라타 11일간 발붙였던 영국땅을 날아 올랐다.
 
 
- 8월 12일 토요일 -
 
다시 날짜가 하루 넘어 8월 12일 오전 7시 45분. 싱가폴 창이 공항에 도착해서 약 3시간을 대기하고 다시 10시 45분에 서울 경유 로스앤젤레스행 비행기에 올라타 저녁 6시경에 서울 김포 공항에 도착했다. 실내가 오히려 후덥지근한 반면 밖이 에어콘인 영국과는 달리 서울은 장마철을 넘어선 한여름철의 더위가 푹푹 찌고 있었다..
 
아아아아아....
 
너무 좋은 경험을 하고 온 것 같다.
무엇보다 '나 혼자' 모든 걸 해냈다는 점이 뿌듯하고 기뻤다.
그렇게 의존성이 강했던 내가..
심지어는 은행에서 송금하는 일 조차 최근에 와서 알게 된 내가..
혼자 힘으로 준비해서 먼 영국과 아일랜드 땅을 다녀왔다..
모든 과정을 혼자 힘으로 진행했다..
 
정리 타임!
 
다양한 인종들이 보이는 어수선함.. 그러나 그 가운데
느껴지는 역시 품위있고 세련된 도시 런던..
질투가 나고 소외감이 들 정도로 눈부시게 화려한 아름다움을
뽐내던 스코틀랜드의 에딘버러..
네스강가의 자그마한 도시 인버네스..
그리고 괴물 네시가 산다는 네스호.. 우르크하트 성..
강활한 초원에 늘어선 스톤헨지의 바위들..
나에게 깊은 선물을 안겨다 준 너무나도 사랑스럽고 포근한
도시 솔즈베리..
이번 여행에서 느낀 최고의 도시이자 아일랜드의 소박함이
그대로 담겨 있는 '안전한 도시' 더블린..
살짝 본 것이 더욱 깊은 여운을 주는 웨일즈의 수도 카디프..
그리고 다시 런던.. 그리고 다시 서울..
 
이번 여행은 내 인생에서 젊은 날에 마지막으로 떠난 여행이다. 남은 평생 동안 스물 네살 때 혼자 다녀온 이 영국 여정은

절대로 잊지 못할 것이다..

 

2005/06/26 (일) 0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