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nikut's Cultural Paradise

travel diaries

UK & Ireland (2000.7.31 - 2000.8.12) (1)

tunikut 2008. 12. 19. 17:33

 

 

방학 중 언제나처럼 늦잠을 자던 나는 친한 형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어 철훈이형"
"잤냐? 넌 이번 방학에 여행 안가냐?"
"글쎄.. 아 아직 잠이 안 깨서.."
"잠 깨면 여행 가"
"어 형."
 
잠을 깨고 여행을 가야겠다고 생각한 나는 그 날 저녁 아버지를 졸라 허락을 받아 냈다.
 
그래서 다시 배낭을 꾸렸다.
 
목적지는 '영국'이라는 나라를 대체적으로 둘러보는 코스인,
잉글랜드/스코틀랜드/아일랜드(물론 독립국이긴 하지만 그래도)/웨일즈를 택했다. 그냥 유럽을 돌지 왜 영국만이냐라고 할 사람도 있겠지만 개강까지 시간도 부족했고 특히 영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많은 매력을 느껴왔던 나이기 때문이다. 미국 영어보단 영국 영어가 좋다고 생각했고 또 음악을 좋아하는 취미가 있어서 팝 음악의 최고 선진국인 영국을 꼭 한 번 쯤 제대로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참이었다. 암튼 지금까지 국내조차 혼자 떠나본 적이 없을 정도로 모든 일에 의존적이고 독립심이 부족한 나는 난생 처음으로 먼 영국 땅에 혼자 떠났다. 내 자신을 향한 도전이었다.
 
[여행 준비]
 
1. 가이드 북: <세계를 간다 4권: 영국 편>
               <Lonely Planet: Dublin 편>
2. 항공권 구입: 어필 항공(강남역, 592-9797)
                 (저번 싱가폴 때도 그랬지만 무지 친절한 여행사, 강추)
3. 영국 Coach 타임 테이블 및 운임 정보:   http://www.gobycoach.com
                 (영국을 코치 타고 여행하실 분들에게 정말 좋은 사이트)
 
[일정 개요]
 
12박 13일 잉글랜드/스코틀랜드/아일랜드/웨일즈
 
7월 31일 월요일: 서울 출발 - 비행기 기내 1박
8월 1일  화요일: 런던 도착 - 런던 숙소 1박
8월 2일  수요일: 런던 시내 관광 - 에딘버러 행 밤 버스 1박
8월 3일  목요일: 에딘버러 시내 관광 - 에딘버러 숙소 1박
8월 4일  금요일: 인버네스/네스호 - 런던 행 밤 버스 1박
8월 5일  토요일: 런던 시내 관광 - 런던 숙소 1박
8월 6일  일요일: 솔즈베리/스톤헨지 - 더블린 행 밤 버스 1박
8월 7일  월요일: 더블린 시내 관광 - 더블린 숙소 1박
8월 8일  화요일: 더블린 시내 관광 - 런던 행 밤 버스 1박
8월 9일  수요일: 카디프 시내 관광 - 런던 숙소 1박
8월 10일 목요일: 런던 시내 관광 - 런던 숙소 1박
8월 11일 금요일: 런던 출발 - 비행기 기내 1박
8월 12일 토요일: 서울 도착
 
준비 과정에서 스코틀랜드 일정 중에 에딘버러와 글라스고를 갈 것이냐, 에딘버러와 인버네스를 갈 것이냐 고민 끝에 어린 시절 나를 상상의 나래 속으로 빠져들게 했던 네스호를 빼먹을 수 없어서 인버네스를 택했다. 또한 아일랜드 일정 중에 북아일랜드의 벨파스트를 갈 것이냐 아일랜드의 더블린을 갈 것이냐 고민 중에 주위의 만류로 더블린을 택했다. 역설적으로 영국 여행객의 필수 코스라는 옥스퍼드와 캠브릿지는 별 관심이 없어서 그냥 일부러 뺐고 대신 역시 어린 시절 환상의 장소였던 스톤헨지를 택했다. (네스호, 스톤헨지와 함께 마지막 한 가지 환상의 장소는 이스터섬의   모아이다.. 언제 한 번..)
 
[영국 가는 길]
 
- 7월 31일 월요일 -
 
입을 옷은 간단하게 준비했다.
반바지 하나, 긴바지 하나, 반팔티 둘, 긴팔티 하나..
빨간색 배낭과 회색 쌕을 하나씩 둘러매고 집을 나섰다.
마음이 설레임과 동시에 앞으로 다가올 미지의 세계에 대한 불안이 앞섰다.
 
오후 7시경 김포 공항 2청사 도착.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나는 군대를 아직 안갔기 때문에 출국 신고를 하고 공항세 및 여행세 19000원을 지불한 후, 보딩 패스를 끊었다. 한 가지 다른 점은 이런 과정들을 예전엔 같이 가는 일행하고 같이 했는데 이번엔 나 혼자 했다는 점..  보딩 패스는 싱가폴 창이 공항까지 가는 거랑 싱가폴에서 런던 히드로 공항까지 가는 걸 두 개 끊어주더라. (나는 싱가폴에서 경유하는 싱가폴 항공을 끊었다.) 이것 저것 좀 먹고 흡연실에서 담배도 피고 매점에서 2프로 두 캔하고 미니 초코파이하고 초코칩 쿠키를 사고 했더니 이미 8시 반이 돼서 보딩을 하고 들어가 비행기에 탔다. 오후 9시 반 비행기는 서울을 떴다.
 
- 8월 1일 화요일 -
 
새벽 3시가 다 돼서 싱가폴 창이 공항에 도착했다. 새벽이라 그런지 진짜 조용했다. 사람도 거의 없고.. 나는 여기서부터 이미 여행의 시작인 양 들고간 육미리 카메라를 들고 막 찍어댔다. 창이 공항은 예전에 싱가폴에 간 적이 있어서 무척 친근했다. 일본 오사카의 간사이 공항은 환승하는 통로가 무척 복잡했는데 창이 공항은 환승이 무척 간단하다. 그냥 도착해서 나와 거기 있는 라운지에서 기다리다가 입국할 사람은 입국하고 환승할 사람은 해당 게이트에 시간 맞춰 가서 타면 된다. 여기 창이 공항에서 대기 하던 중 런던으로 같이 가는 일행을 한 명 만났다. 부산에서 온 태훈이형인데 이 글 보면 연락 좀 바란다. 암튼 그 형 덕택에 런던에 도착할 때까지는 외롭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아침 9시 반 경에 비행기는 다시 싱가폴을 이륙해서 기나긴 12시간 비행 후 날짜를 다시 거슬러 올라가 8월 1일 화요일 오후 3시 반 경에 드디어 런던 히드로 공항에 도착했다. 히드로 공항의 입국 심사는 듣던 대로 다른 나라들에 비해 좀 까다로왔다. 나는 어떤 젊은 남자가 심사했는데 여행 목적 등을 묻더니 얼마나 있을 거냐 그래서 11일 있을 거라고 했더니 잠깐 수상하게 쳐다본다. 그러더니 혼자 뭐라고 뭐라고 하다가 오케이 통과. 나는 도착한 당일 바로 11일날 돌아올 비행기편을 리컨펌할라 그랬는데 대체 싱가폴 항공 카운터가 어딘지 찾질 못해서 포기했다. (알고보니 싱가폴 항공 카운터는 디파춰에 가야 있다. 내가 도착한 어라이벌에는 없다.) 암튼 그렇게 그렇게 해서 태훈이형이랑 나는 우리 나라 김포 공항처럼 히드로 공항과 바로 연결돼 있는 지하철(현지에선 underground라고 한다.)을 탔다.
 
One Day Travel Card를 끊었는데 가이드 북에 있던 바와는 달리 all zone이 4.70파운드다. 암튼 이게 있으면 그 날 하루 지하철과 버스는 마음껏 탈 수 있어서 잘만 이용하면 정말 좋은 카드다. 특별한 카드라고 해서 마치 비슷한 기능을 하는 싱가폴의 블루 카드처럼 이쁠 거라 생각했는데 그냥 허연 종이 쪽지 달랑이다.
 
지하철은 Heathrow airport를 떠나 Piccadily line을 달렸다. 나와 태훈이형은 빅토리아 코치 스테이션 근처에 숙소를 잡을 예정이었기 때문에 Acton Town역에서 Distinct/Circle line으로 갈아 탔다.
 
여기서 잠깐! 런던 지하철 정보.
런던 지하철 노선은 우리나라랑 참 비슷하게 생겼다. 우선 지하철 표 끊는 데 옆에 꽂혀 있는 무료 'Tube Map'을 꼭 챙기자. 지하철을 갈아타는 게 약간 머리를 좀 써야 된다. 자기가 내린 역에서 갈아타야 할 노선이 무언지 일단 확인하고 우리나라 처럼 그 노선(근데 영국은 우리처럼 1호선, 2호선 그렇지 않고 '무슨 라인' 이런 식이다. 즉 Piccadily line, Distinct line, Victoria line, Central line.. 등등 이름만 다르지 우리나라 노선 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쪽으로 가라는 화살표 따라 가면 된다. 좁은 통로를 무심히 걷다 보면 골목이 딱 두 갈래로 나뉜다. 한쪽은 'Eastbound', 다른 쪽은 'Westbound'라고 되어 있고 각각 에 해당하는 역 이름이 쭉 열거돼 있다. 혹은 한 쪽은 'Northbound', 다른 쪽은 'Southbound'라고 되어 있기도 하다. (동서냐 남북이냐는 노선에 따라 다름) 암튼 자기가 내린 역을 기준으로 자기가 가려는 곳이 동쪽인지 서쪽인지, 혹은 남쪽인지 북쪽인지를 판단한 후 그 쪽으로 가서 타면 된다. 근데 이런 과정이 처음에만 좀 헷갈리지 익숙해지면 진짜 갈아타는 게 편리하다는 생각이 든다.
 
암튼 그렇게 해서 빅토리아 지하철 역에 도착했다. 빅토리아 지하철 역을 나오니 바로 앞에 빨간 이층 버스가 지나간다. 그리고 좁은 길을 수많은 서양인, 흑인 등등이 막 지나간다. 빨간 색의 전화 박스도 군데군데 막 서있다. 우와~~~~ 드디어 영국이다! 나는 숙소를 잡기도 전에 이미 감동했다.
 
우리는 버킹검 팰리스 로드를 지나 앞으로의 거점이 될 빅토리아 코치 스테이션의 위치를 확인한 후 그 옆으로 나 있는 길을 조금 더 걸어서 Warwick Way에 도착했다. (나중엔 이 동네가 거의 '우리 동네화'했지만 처음엔 지도 보고 물어 물어서 겨우 찾았다.) Warwick Way에 줄지어 늘어선 B&B들 중 적당한 숙소를 구하던 과정에서 우리는 또 한 명의 한국인 일행을 만났다. 홍대 부근에 산다는 재영이형이었다. 그 형은 현재 영어 교육을 담당하는 형이라 영어가 유창했다. 그 형 덕택에 Limegrove Hotel이라는 B&B에서 비교적 싼 값에 첫날 묵게 될 트리플 룸을 잡았다. (합이 57파운드, 한 사람당 19파운드) 재영이형두 이 글 보시면 연락을~
 
숙소를 잡고 나니 대략 오후 5시가 넘어 간다. 첫 날인데 이대로 있을 순 없지!라고 생각한 우리 세 명은 런던에서의 첫 일정을 시작했다.
 
[런던 시내 관광: 런던탑/타워브릿지]
 
- 8월 1일 화요일 -
 
숙소를 나선 우리 세 명은 일단 각각의 일정에 맞는 코치 티켓을 예약하러 빅토리아 코치 스테이션에 들어갔다. 나는 내일 떠날 에딘버러행을, 재영이형은 모레 떠날 에딘버러행을, 태훈이형은 유로라인 버스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근데 대체.. 늦은 시각 이어서인지 그 수많은 창구 중에서 단 한 개 창구만이 열려있었고 그 한 개의 창구를 향해 선 줄이 끝날 줄을 모르고 있다. 그래서 내일 아침 일찍 와서 사자고 합의를 보고 그냥 포기하고 나왔다. 사실 one Day Travel Card를 비싼 돈 주고 그냥 공항에서 시내까지 달랑 오는 데만 쓰기는 너무 아까워서 이걸 잘 활용하자는 끝에 나로서는 나중에 계획했던 일정인 런던탑/타워브릿지를 갔다 오기로 했다. 우리는 빅토리아 지하철 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Distinct line을 달렸다. 타워 브릿지를 보기 위해선 Tower Hill역에서 내리면 되는데 우리는 그 바로 전 역인 The Monument역에서 내려 걷기로 했다. The Monument 역에서 내려 그냥 아무렇게나 걷다보니 한 변두리에 커다란 탑 같은 게 보인다. 알고 봤더니 이게 'The Monument'였다. 탑에는 온통 라틴어같은 걸로 쓰여 있어서 이게 뭘 기념하는 건지 는 몰랐으나 여하튼 런던에서의 첫 관광인 만큼 그 사소한 탑 하나를 두고 사진도 찍고 그랬다.
 
The Monument를 보고 다시 발길을 돌려 좀 인적이 드문 도로를 걷다보니 먼 발치에 무슨 허연 성같은 게 보인다. 근데 이게 그 유명한 '런던탑'이란다. 여기서 수많은 사람들이 처형당했다지.. 사실 기대보다는 조금 실망스러웠다. 돈 내고 들어가서 봐야된다길래 용기를 내서 포기하고 사진만 찍고 감상만 했다. 런던탑의 옆 길을 따라 걷다보니 그 런던탑의 규모가 무척 크다는 게 느껴졌다. 약간 감동을 했는데 그래도 다시 돌아가 서 돈 주고 들어갈 용기는 없었다.
 
하지만 감동은 이제부터!
런던탑을 돌아 걷다보니 템즈강의 흐름이 느껴짐과 동시에 거대한 다리가 우리 앞에 놓여있다. 이게 뭐지.. 하고 고개를 샥 들어 하늘을 보니깐 하늘 위에 다리가 또 있다. 첨엔 3차원적 구조가 조립이 잘 안됐는데 약간 떨어져서 다시 보니깐 세상에 타워 브릿지다! 사진으로만 보던 타워 브릿지 위에 바로 우리가 서 있는 거였다. 우리는 놀라서 카메라를 빼 들었고 잠시 템즈강을 끼고 타워 브릿지 위에 서서 담배를 피웠다. 우리는 타워브릿지를 타고 건너 템즈강 건너편에 있는 고수부지에 정착했다. 한강 고수부지보다는 못한 자그마한 잔디밭이었는데 '서양인들과 잔디'라는 건 그렇게 궁합이 잘 맞는지 벌써 여럿이들 와서 누워있다. 거기 우리같은 동양 사람이 누워있으면 어째 그림이 잘 안나오는데 서양인들이 잔디에 누워있으면 그림이 잘 나온다. 암튼 거기서 담배 한잔의 여유를 즐기고 우리는 다시 템즈강변의 고수부지를 따라 걸었다. 조금 걷다보니 늘 그렇 듯이 강변 옆에는 분필로 칠판에 메뉴를 적은 식당들이 줄지어 있었고 조금 더 걷다보니 런던 브릿지가 나왔다. 런던 브릿지는 그냥 현대식으로 깔끔하게 지어놓은 거라 별 관람 가치는 없었다. 하지만 런던 브릿지에서 바라다보는 타워 브릿지의 야경은 진짜 죽였다.. (런던은 밤 9시 반 경이 되니까 슬슬 어둑어둑해진다.) 런던 브릿지를 건너 다시 The Monument가 있는 시내로 들어와 거기 지하철역을 탄 후 다시 숙소 근처인 빅토리아역에 도착했다.
 
그냥 들어갈 수 있겠나.. 어떻게 만난 인연인데. 우리는 숙소 근처에 마침 pub이 있는 걸 발견하고는 영국 전형의 맥주라는 bitter 세 파인트를 시켜 밖으로 나 있는 테이블에서 그 '미지근한' 맥주를 찔끔 찔끔 마시며, 우리나라의 관광 정책에서 시작해서 의약 분업에 이르기 까지 꽤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누다가 숙소에 들어와서 잤다.
 
[런던 시내 관광: 웨스트민스터/국회의사당/빅 벤/버킹검 궁전]
 
- 8월 2일 수요일 -
 
아침 7시에 눈을 떴다. 우리가 묵은 Limegrove Hotel이라는 무늬만 호텔인 B&B는 특히 아침 식사를 방으로 갔다 줘서 나처럼 자폐증적 성향이 강한 사람한테는 딱 좋았다. 아침 식사를 '잉글리쉬 스타일'로 부탁한 우리는 그 잉글리쉬 스타일의 아침 식사가 들어왔는데 그게 뭐냐면 계란 후라이(근데 노른자는 반숙이 돼있다.)랑 베이컨 한 줄, 그리고 토스트와 커피다. (앞으로 이 스타일의 아침 식사는 질리게 먹는다.) 암튼 아침을 먹은 우리는 숙소를 나왔다. 아 참, 나는 이 시점에서 체크 아웃을 했고 그 두 형들은 거기서 하룻밤을 더 묵는다. 그러니까 나는 체크 아웃, 그 형들은 다시 더블 룸으로 바꾸는.. 숙소를 나온 우리는 예정대로 빅토리아 코치 스테이션에 가서 여러 티켓들을 예약했다. (예약이라는 게 미리 구입하는 거다.)
 
여기서 정보 하나!
빅토리아 코치 스테이션(이하 VCS)에서 티켓을 살 때는,
1. 목적지 도시
2. 싱글이냐 리턴이냐 여부
3. 출발 날짜와 도착 날짜
4. 런던에서 출발 시각과 돌아올 때 출발 시각
 
네 가지 정보를 모두 가지고 표를 끊어야 된다. 특히 시각까지 정해야 된다는 까다로움이 좀 웃겼다. 그러니까 VCS에서는 티켓을 끊기 전에 여행 도시와 런던 사이의 타임 테이블을 파악해야 한다는.. 근데 그것도 걱정할 게 없는 게 VCS의 로비 한 쪽 벽에 런던에서 모든 도시 간에 운행되는 코치의 타임 테이블이 나와 있는 찌라시가 쫙 꽂혀 있다. 나는 일단 학생 할인 카드인 National Express (Student) Discount Coach Card를 바로 티켓팅 창구에서 발행했다. (이 할인 카드는 별 다른 데서 발행 해주는 게 아니고 그냥 티켓 끊는 데서 즉석으로 발행해준다. Student용은 9파운드. 국제 학생증이고 자시고도 필요없다. 그냥 디스카운트 카드 끊고 싶다. 나는 학생이다. 그러면 9파운드 내라 그러더니 슥 발행해준다.) 나는 그걸 발행 받음과 동시에 오늘 저녁 떠날 에딘버러행 싱글 티켓을 끊었다. 축제 기간이고 특히 성수기에 에딘버러행 코치 운임은 심지어 100파운드나 한다는 사례도 있다는 사전 정보를 얻고 무척 겁을 먹었는데 세상에 18파운드다. 왓다다. (물론 디스카운트 카드가 작용한 거긴 했지만) 나는 또한 8월 6일발 더블린 행 리턴 티켓도 같이 끊었다. 이건 역시 디스카운트 해서 52파운드다. 암튼 예상했던 코치 운임보다는 저렴한 값에 티켓을 구입한 나는 그 날 아침 기분이 참 좋았다.
 
자.. 이 쯤에서 이제 슬슬 일행과의 작별 시간이다. 그 두 형들은 대륙으로 넘어갈 예정이었기 때문에 아마도 영국에 있는 동안은 일정을 계속 같이 할 예정이었나 보다. 나는 이제 슬슬 나만의 일정을 시작해야 했기에 VCS에서 나온 나는 그 두 형들과 헤어졌다. 자! 이제 리얼 혼자다. 결심을 굳게 잡은 나는 찬찬히 일정을 시작했다.
 
일단 VCS를 떠나 빅토리아 기차역을 지나 빅토리아 스트리트를 걷기 시작했다. 아침이라 그런지 역시 출근하는 영국인들의 바쁜 모습이 보인다. 암튼 빅토리아 스트리트를 따라 지도를 보며 꽤 해맨 끝에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을 발견했다. 그다지 웅장하진 않지만 역시 유럽풍의 성당 모습이었다. 빨간색 벽돌이 인상 적인.. 건물만 보고 사진만 달랑 찍고 오는 것에 반대하는 나는 일단 대성당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무척 조용하고 속은 그냥 평범한 성당의 모습이다. 나는 이 조용한 속에서도 용기 있게 촬영을 했다.
 
대성당을 나와 다시 빅토리아 스트리트를 하염없이 걸었다. 꽤 한 참을 걸은 끝에 드디어 그 유명한 웨스트민스터 사원을 발견했다. 이미 소수의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은 전날 런던탑 때와 마찬가지로 별 감흥이 별로 없었다. 나는 이런 스타일의 건물에는 별 감흥을 못 얻나 보다. 역시 돈을 내고 들어 가라길래 실내 구경은 안하고 대체적인 건물을 찍었다. 나는 솔직히 사원 자체보다는 그 주위의 시내 및 도로가 더 멋지더라. 바로 옆에 국회의사당이 있어서 그런지 그 주위의 도로는 꽤 이뻤다. 대략적인 건물의 구조를 관람하고 바로 앞에 보이는 국회의사당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국회 의사당 앞에 선 순간! 우와~~~~~~ 빅 벤이 보인다! 빅 벤은 그냥 별 거 아닌 시계탑인데도 이상하게 멋있게 생겼다. 또한 빅 벤 옆에는 바로 템즈강이 흐르고 웨스트민스터 브릿지가 놓여 있는 장관이 펼쳐져 있다.
 
빅 벤..  공사 담당자였던 Benjamin Hall의 애칭이었다는..
죽어라고 촬영을 한 나는 그 주위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지하도에 들어가서 화장실도 가고.. 근처의 노점상에서 우연히 그냥 London Visitors' Map을 하나 샀는데 이게 정말 좋은 거다. 런던의 모든 골목 골목 하나 하나가 다 도시돼 있어서 길 찾아 다니긴 진짜 편리하다. 또 알파벳 순으로 스트리트/각종 건물 등의 '찾아보기'란도 있어서 진짜 좋다. 또 지도 상에 해당 지역의 지하철역도 표시돼 있어서 어디를 가고 싶다 할 때 어느 역에서 내리면 되는지도 알 수 있다. 런던을 여행하실 분들은 필수 구매 품목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그렇게 해서 빅 벤을 봐버렸더니 시각이 슬슬 아침 10시가 다 됐다. 11시 반에 한다는 버킹검 궁전의 근위병 교대식을 봐야겠지! 신이 난 나는 빅 벤에서부터 세인트 제임스 파크를 끼고 가는 긴 길인 Birdcage Walk를 따라 걸었다. 중간에 세인트 제임스 파크를 슥 둘러보고 벤치에 앉아 담배 한 모금 피우는 일은 잊지 않았다. 암튼 Birdcage Walk를 다 통과했더니 드디어 버킹검 궁전처럼 생긴 게 멀리 보이고 큰 입구 게이트가 있다. 나처럼 혼자서 열심히 버킹검 궁전을 찾아 다니는 듯한 한 프랑스(아마도) 청년에게 이게 버킹검 궁전이냐라고 물었더니 자기도 모르겠는데 그런 것 같다고 했다. 암튼 거기가 버킹검 궁전이 맞았다. 이미 사람들은 궁전의 정문 앞에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근데 이 때 슬슬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좀 불안했다. 근데 11시가 지나자 다시 해가 쨍쨍 난다. 그래서 안심했다. 버킹검 궁전은 대 영국 여왕이 사는 곳인 데도 불구하고 그냥
낮은 철조망 담이 고작이었다. 또한 궁전 자체도 그다지 웅장하지 않다. 영국 시민들은 이런 서민적인 구조를 굉장히 높이 칭찬한다고 한다. 그래서 영국 여왕이 인기도 많은가 보다. 궁전 앞에는 근위병 두 명이 부동 자세로 딱 지키고 서 있었다.
11시 반이 가까워지자 사람들은 더욱 불어나 궁전 앞의 긴 행렬길을 양쪽으로 꽉꽉 애워쌌다. 나는 다소 일찍 와서 대기하던 상태였기 때문에 바로 앞의 좋은 위치를 확보할 수 있었다.
 
11시 반이 될 쯔음, 내가 들어왔던 큰 게이트 쪽에서부터 행진곡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말을 탄 전형적인 영국 순경이 앞장 서고 그 뒤로 까만 털복숭이 모자에 빨간 제복을 입은 근위병들이 행진곡을 울리며 입장하기 시작했다! 아아아.... 정말 그 때의 감동이란.. 나는 지금 영국 런던에 와서 '가장 영국다운' 모습을 보고 있다. 이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나는 최대한으로 감정을 북받치게 끌어올리고 근위병의 행진을 처음부터 끝까지 촬영했다. 그리고 감동했다. 근위병들은 행진을 하며 버킹검 궁전 안으로 들어 갔다. 궁전 앞의 마당(?)에서 교대식을 할 차례였다. 궁전의 담쪽에는 이미 엄청난 사람들이 바싹 달라붙어 있었기 때문에 나는 교대식을 제대로 볼 수는 없었다. 교대식 중 재미 있는 건 고참 쯤 돼 보이는 위병이 이제 막 신참이 된 위병들의 자세를 교정하는 것인데 그 고참이 고래고래 큰 소리로 명령을 내리면 신참들은 줄을 바로 잡거나 자세를 교정한다. 근데 그 모습이 참 우스꽝스럽게 무슨 티비 코미디를 보는 것 같다. 신참들도 약간 오바해서 실수를 연발하는 것도 같고.. 이게 진짜 실수를 해서 꾸중을 듣는 건지 관객들을 위한 쇼맨쉽인지는 모르겠다. 암튼 영국 런던에서의 근위병 교대식이란 참 영양가 높은 볼거리다. 비로소 영국에 내가 와 있다는 걸 피부로 느끼기 때문이다. 대략 40분 정도를 구경하다가 버킹검 궁전을 나섰다.
 
[런던 시내 관광: 트라팔가 광장/피카딜리 서커스/코벤트 가든]
 
- 역시 8월 2일 수요일 -
 
버킹검 궁전을 떠난 나는 뿌듯한 마음으로 버킹검 궁전을 향해 그린 파크와 세인트 제임스 파크를 가로지르는 The Mall을 걸었다. The Mall은 바로 옆으로 세인트 제임스 파크를 끼고 가는 긴 길인데 옆으로 보이는 세인트 제임스 파크의 풍경이 멋있었다. The Mall을 거의 다 걸으니 큰 무슨 독일의 개선문같은 문이 보인다.
아, 이게 버킹검 궁전으로 향하는 大문이구나..
 
그 문을 나오니 갑자기 다시 차들이 오가고 또 정신이 없다. 다시 지도를 펼쳐 들고 왼쪽을 쳐다봤더니 먼 발치에 내셔널 갤러리가 보인다. (나는 그 때까지 내셔널 갤러리에만 관심이 있었고 트라팔가 광장이 어딘지는 전혀 몰랐다.) 내셔널 갤러리 쪽으로 가까이 가봐야겠다고 생각한 나는 차도를 건너 무슨 큰 탑이 있고 비둘기들이 많은 이름도 모를 광장을 지나 내셔널 갤러리 쪽으로 갔다. 근데 이 광장을 지나다보니 기분이 영 이상하다. 이 광장은 그냥 내셔널 갤러리 앞의 광장에 불과한데 너무 분위기가 생동감이 넘친다. 나는 그 때까지도 '이 근처에 분명이 트라팔가 광장이 있어야 되는데..'라고만 생각했다.
음, 그래서 다시 가이드북을 펼쳐서 트라팔가 광장의 사진을 봤다. 근데 지금 내가 서있는 곳이 그 사진과 똑같다. 내가 서있는 데가 바로 트라팔가 광장인 거다. 바보.. 내가 그런 착각을 한 이유는 상상 속으로 트라팔가 광장이 어마어마하게 큰 광장일 줄 알았다는 거다.. 무슨 옛날 여의도 광장.. 정도? 나는 안심하고 이 곳에서 잠시 쉬기로 했다. 매점차에서 콜라와 핫도그 를 하나 사서 점심으로 벤치에 앉아 먹었다.
 
한쪽으로 줄지어 있는 초상화를 그려주는 화가들..
또 한쪽에는 각종 수공예품을 비롯한 기념품을 파는 노점상들..
햇볕은 쨍쨍했고.. 양 옆의 분수에서는 애들이 아예 웃통을 벗고 분수에 서 물장구를 치고..
한쪽 구석에는 비둘기 모이만을 전문적으로 파는 매점..
온갖 비둘기들이 바닥을 쓸고..
벤치에는 잠시 휴식을 취하는 영국인 아저씨가 비둘기 모이를 주고..
양 옆의 분수 중앙에는 굉장히 높은 넬슨 제독의 기념탑..
그 밑으로 양 옆의 사자상에는 아이들이 타고 놀고..
천국이다!
 
이 트라팔가 광장은 그 순간부터 내가 지정한 런던의 베스트 플레이스가 된다. 이후 런던 일정이 있는 날에는 난 꼭 한번 씩 여기에 들러 30분 내지 한 시간 동안 광경을 바라보며 휴식을 취하곤 했다. 잠시 후 내셔널 갤러리 쪽에서 총포가 울리더니 비둘기들이 그 쪽으로 떼를 지어 날아가는 광경도 운 좋게 볼 수 있었다.
 
한 한시간 쯤 앉아서 쉬었나.. 이제 남은 일정은 별 거 없다.
시간이 여유가 있다. 나는 서서히 자리를 일어나 트라팔가 광장을 마주 보고 왼쪽으로 나 있는 도로를 따라 걸었다. 조금 가다보니 Haymarket이 나타났고 계속 그 길을 따라 올라가면 피카딜리 서커스가 나오겠지라는 기대감에 걸어 올라갔다. 올라가다 보니 'phantom of the opera' 간판이 보인다. 런던의 뮤지컬은 꼭 봐야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개인적 취향상 뮤지컬은 보지 않기로 하고 계속 묵묵히 걸어 올라갔다. 올라가다 보니 Virgin Megastore가 보인다. 개인적 취향상 자연스럽게 안으로 들어갔다. 한 30분 쯤 씨디 구경을 하고 구입은 나중으로 미루자는 다짐과 함께 조금 더 걸어 올라갔더니 드디어 사진에서 보던 피카딜리 서커스의 중앙에 도달했다.
 
마치 명동 입구의 신세계 백화점 앞의 분수대를 연상시키는 구조물에 사람들이 원숭이처럼 다닥다닥 붙어 앉아 있다. 주위로는 환상으로 길들이 쭉쭉 뻗어 있고. 빨간색 이층 버스들이 정신 없이 돌아 간다. 피카딜리 서커스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주위엔 돈을 구걸하는 예술꾼들이 보였는데 특히 인상적이었던 건 온 몸에 은색을 칠하고 동상처럼 가만히 서 있는 사람이다. 가만히 서 있으니 정말 동상같아서 적잖은 감동을 받았기에 기꺼이 돈을 선사했다. 피카딜리 서커스의 둘레에는 버버리를 위시한 상점가가 즐비해 있고 버거킹, 맥도날드 역시 당연히 있다. 멀리 SANYO의 간판이 엄청 크게 보였다. 그 옆엔 SAMSUNG도 있었다. 그리고 세계 3대 레코드숍인 Virgin Megastore, Tower Records, HMV도 다 있다. 물론 나는 세 군데 다 들러서 한 군데당 30분 이상은 족히 구경했다. 살만한 아이템을 찍고 구입은 나중으로 미뤘다.
 
영국은 역시 CD의 천국이다. 팝음악의 본고장답다. 특히 Dance/Soul 부분에 있어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령하고 있는 영국의 레코드숍에는 정말 댄스적인 마인드가 가득하다. 테크노/하우스/힙합/소울 쪽의 아이템은 정말 거의 없는 아이템이 없을 정도로 다양하고 (물론 졸라 희귀반은 없다) 한 쪽 벽에는 댄스 Vinyl(우리식으로 LP판)들이 하우스/테크노/드럼앤베이스/다운템포/가라지/힙합/소울.. 등등의 댄스 하위 장르별로 정리가 되어 있어 여러 디제이처럼 보이는 형들 이 열심히 아이템을 고르고 있다. 또한 바로 옆에는 아예 deck(턴테이블)이 있어 직접 Vinyl을 골라 들어볼 수도 있고 디제잉을 해볼 수도 있다. 기본적으로 영국이란 나라의 젊은이들은 이런 마인드가 있다. 피카딜리 서커스를 거니는 대부분의 젊은이들의 손에는 HMV나 타워레코드의 비닐 봉지가 하나씩 들려있었다.
 
아아.... 여기서 살고 싶어..
 
(CD가격은 대체로 역시 비싼 편. 싱글이 5파운드 내외, 앨범은
11파운드~15파운드 내외)
 
레코드숍에서 감동한 나는 마지막 일정인 코벤트 가든을 향해 걸었다. 피카딜리에서 코벤트쪽으로 걸어가려면 다시 트라팔가 광장을 지나 이번엔 트라팔가 광장을 마주보고 오른쪽 길로 올라간다. 한 참을 올라가다 오른쪽으로 휙 꺽어 들어가면 거기가 코벤트 가든이다. 근데 내가 코벤트 가든에 도착했을 때 갑자기 엄청난 폭우가 쏟아졌다. 그래도 꿋꿋히 나는 코벤트 가든의 풍경을 촬영했다. 이 곳은 무슨 커다란 쇼핑몰 내지는 식당가이다. 폭우 때문에 활기찬 모습을 볼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분위기는 좋은 동네였다. 코벤트 가든을 대충 훑어 보고 내려오는데 한국인 꼬마애들이 지나가다 내 뒷 모습만 보고는 "어 저기 한국 사람이다!" 그러더니 나를 보고 단체로 길가에서 크게 "안녕하세요~~~~!"를 외친다. 나는 얼떨결에 "어~ 안녕~~"이라고 답했지만 조금 멋적었다. 참 이상하다. 특별한 가이드도 없이 한국인 꼬마애들끼리 돌아다닌다. 그리고 내 뒷 모습만 보고 한국인인 줄 안다. 아무리 생각해도 신비로운 꼬마들이다.
 
코벤트 가든을 내려와 다시 차링 크로스 로드(트라팔가 광장 주위가 차링 크로스)에 다다랐을 때 나는 '영국에 왔으니 댄스 클럽 구경을 안할 수 없지'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둔 댄스 잡지인 Muzik지의 클럽 가이드 쪽에서 차링 크로스쪽에 있는 Heaven이라는 댄스 클럽을 확인하고 지도를 보며 그 클럽이 있는 거리를 찾았다. 그 클럽은 굉장히 구석진 무슨 상가같은 골목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렇다곤 하지만 Deep Dish, Carl Cox 등 유명 댄스 디제이들이 디제잉을 하는 장소이다. 막상 내가 거기 도착해 보니 아니나다를까 까만색의 삭막한 문이 꽝 닫혀 있었고 금색으로 문에 'Heaven'이라는 글짜만 달랑이다. 밤이 되면 이 문이 열릴 것이리라. 위치를 확인하고 나중에 들러볼까말까 고민을 계속하며 다시 트라팔가 광장 쪽으로 내려왔다.
 
그 때까지도 폭우는 계속되고 있었다. 나는 비를 조금 피하러 지하철 차링 크로스 역 안으로 들어갔다. 재미난 게 역 안에서 한 화가가 어떤 흑인 여자 꼬마애의 초상화를 쭈그리고 앉아 그려주고 있었다. 아마 트라팔가 광장에서 그리다가 비가 와서 이 곳으로 피신해 계속 그림을 그리는 것일 거다. 놀라운 장인 정신에 박수가 나왔다.
 
암튼 비를 피하고 있는데 이게 왠일! 오늘 아침에 헤어졌던 재영이형과 태훈이형을 그 역 안에서 우연히 만났다. 마침 나로서는 오늘 일정도 끝난 시점에서 만나 더욱 마음이 편하고 여유가 있었다. 암튼 무지 반가왔다. 그 형들이 아직 트라팔가랑 피카딜리를 못 봤다 길래 내가 즉석 가이드가 돼서 길을 안내했다. (이미 그 동네는 길을 다 파악했다.) 나는 지나온 길을 다시 복습하며 재관광을 하고 우리 셋은 다시 뭉쳐서 저녁 식사를 하기로 하고 Soho 지역으로 갔다. (Soho 지역은 피카딜리 에서 조금만 올라가면 있다.) 소호 지역은 그야말로 먹자 골목에 약간의 슬럼가. Sex shop들도 많이 뜨이고 심지어 한 창녀에게 붙잡히기까지 했다.
 
소호 거리를 지나 차이나 타운을 지나 Leicester Square쪽으로 나왔다. 이미 비는 가시고 다시 해가 쨍쨍 떠올랐다. 배가 무척 고파 있던 우리 셋은 마침 허기를 달래 줄 정말 환상의 식당을 발견했다. 중국 음식 부페였는데 4.50파운드만 내면 마음 껏 먹을 수 있다. (하지만 음료수값은 따로 받는다.) 게다가 메뉴들도 시원한 중국식 장국에 볶음밥, 탕수육 등등 대체로 입에 잘 맞는 것들이라 우리는 여기서 뽕을 뽑았다. 그 날 하루 식사 분량은 족히 먹었는 듯 싶다. 이 식당의 이름은 기억이 잘 안나는데 찾기는 쉽다. 지하철 Leicester Square 역에서 나오면 바로 아래로 뻗은 도로가 나오는데 이 식당은 지하철역 입구에서 바로 건너편에 있다.
 
(그 도로를 따라 내려가면 트라팔가 광장이 나오져)
 

암튼 실컷 배불리 먹은 우리 셋은 다시 트라팔가 광장으로 내려와 쉬며 소화를 좀 시키고 나는 이제 슬슬 짐을 챙겨(그 날 아침 체크 아웃할 때 숙소에 짐을 맞겼다. 그 숙소는 친절히 짐을 맡아 주더라.) 에딘버러로 가는 밤 버스를 타기 위해 다시 그 형들과 헤어졌다. 이 날 하루 런던의 주요 코스를 둘러보며 느낀 점은 대체적으로 웨스트민스터/빅 벤/버킹검 궁전/트라팔가 광장/피카딜리 서커스/코벤트 가든/소호 지역까지 하루만에 걸어서 다 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도 시간이 남는다는..

 

[에딘버러 가는 길]
 
- 계속 8월 2일 수요일 -
 
(이 날 하루가 좀 길었어요.. 한 게 많아서)
그렇게 해서 그 날 저녁 무렵 두 형들과 다시 헤어지고 나는 지하철을 타고 다시 빅토리아 지하철 역(거의 우리 동네)에
도착, Warwick Way에 위치한 Limegrove Hotel에 가서 맞겨두었던 짐을 다시 둘러 매고 빅토리아 코치 스테이션에 갔다.
오늘밤 나는 10시 30분 버스를 타고 에딘버러로 올라갈 예정이었다. VCS에 도착하니 한 8시 30분경.. 나는 밤 차 안에서
먹을 물을 사고 간단한 과자를 좀 사고 해당 게이트를 확인한 후 (VCS의 정문을 들어서자 마자 정면에 목적지와 시간대,
그리고 헤당 게이트가 스크린에 뜹니다. 마치 공항처럼..) 주위에서 대기했다.
 
나는 여기서 대기하던 중 또 한 명의 한국인 일행을 만났다. 여자 아이였는데 이름은 이소라. 먼저 나에게 말을 건네며 인사
를 했다. 혼자서 유럽 여행을 떠난 상태라고 하며 막막해 하는 눈치였다. 자기는 성격이 의존적이고 독립심이 부족해 뭔가 변화가 필요함을 느끼고 다짜고짜 혼자 떠난 것이라고.. 세상에 나랑 여행 동기가 똑같다. 그렇지만 나는 처음에 점잖음과 태연함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이런 저런 교통편에 관한 것들을 나한테 물어보았는데 영국에 도착한지 하루만에 대체적인 런던 지하철과 코치 쪽은 이미 꿰서 대답해줄 수 있었다. 이소라양(말을 튼 건 아니나 이소라씨보다는 이 표현이 적당할
듯 싶어.. 나보다 나이도 어리고)과 벤치에 앉아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었는데 낮에 겪었던 일들을 나한테 얘기해주더라.
낮에 런던 시내를 관광하며 걷고 있는데 한 영국인 아저씨가 말을 건네며 접근하더니 자기가 영국 가이드를 해주겠더란다. 그러더니 뭐라뭐라 하다가 자기 사무실로 갈 일이 있으니 일단 같이 가자고 하길래 무심코 따라 가다가 아무래도 영 기분이 이상해서 그냥 됐다고 하고 돌아왔다고 한다. 또 한 번은 왠 이탈리아 남자가 또 접근하더니 남자 친구 있냐.. 등등을 물으면서 없다고 했더니 자기가 남자 친구가 되주면 안되겠냐.. 는 등 심지어는 '날 원하지 않냐'라고까지 했다고 한다. 이런 저런 불길한 경우들을 느끼고 꽤 불안해 했다. 근데 알고 보니 이소라양도 그 날 저녁 나처럼 에딘버러행 밤 버스를 타는 모양이다. 근데 나와는 타는 버스가 달랐다. 같이 타고 가면 좋을 텐데라는 인사말을 끝으로 먼저 소라양은 버스를 탔다.
 
나는 그러고서 30분 정도를 더 기다리다 해당 게이트 앞에 가서 대기 했다. 근데 난 여기서 또 다른 한국인 일행을 만났다. 여자 세 명이었는데 모두 나보다 나이가 월등히 많은 누나들이었다. 이 누나들은 나와 같은 버스를 타고 에딘버러로 가는 일행들이다. 먼저 그 누나들이 친근하게 말을 건네고 잘해주어서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에딘버러까지 가는 길도 외롭지 않겠구나.. 라고 생각한 나는 안심했다. 한 분은 명연씨.. 다른 분은 옥진씨.. (이름이 맞나 모르겠다.) 그리고 셋 중에 가장 나이가 많은 누나는 밤 버스에서 모포까지 덮어주고 가장 잘해주었는데 아쉽게도 성함을 모른다.. 암튼 수줍음이 많은 나는 세 누나들 사이에 둘러싸여서 밤 버스를 타고 에딘버러를 향해 달렸다. 같은 민족이라는 훈훈한 정이 느껴지는 밤 버스였다.

[에딘버러의 오전]
 
- 8월 3일 목요일 -
 
밤 버스 내에서는 거의 잠을 한 숨도 잘 수 없었다. 기대감 반 승차석의 불편함 반 때문이었다. 날이 밝을 무렵 한 두어 시간 쯤 잤나.. 싶은 순간 잠이 깼다. 이미 버스는 에딘버러 시내를 달리고 있었다. 나는 창 밖을 내다보았다.. 으와!!!!!
 
이건 '예술'이라고밖에 표현이 안된다. 런던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분위기의 어여쁜 건물들.. 저 멀리 언덕이 펼쳐져 있고 언덕위에는 푸른 동산과 아름다운 구조물들이 박혀있다. 나는 어느새 잠이 확 달아나 같이 가던 누나들을 깨워 밖을 좀 보라고 소리쳤다. 이게 에딘버러의 내 첫 인상이었다. 버스는 그냥 단순한 도시를 달리고 있다기 보다는 예술적인 조각가가 빚어낸 자그마한 인형 도시 셋트 안을 달리고 있는 듯 했다.
 
아침 7시경. 버스는 에딘버러의 세인트 앤드류스 버스 스테이션에 도착했다. 에딘버러의 아침은 춥다고 유명해서 이미 두꺼운 잠바를 껴 입고 버스를 내렸지만 그래도 역시 싸늘하다. 입에선 입김이 나온다. 나는 곧바로 버스 스테이션에서 다음날 인버네스로 가는 버스표를 끊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왠일! 이 세인트 앤드류스 버스 스테이션이라는 곳에는 전혀 어떤 무슨 '건물'이 없다. 당연히 역에는 정류장이 있고 그 옆에 건물이 있어서 대기하고 표를 사고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좀 황당했다. 그냥 무슨 우리 나라 시내 버스 정류장 처럼 그야말로 '정류장'만 있다. 나는 다소 황당했지만 그거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 숙소를 잡아야 한다!
 
8월의 에딘버러는 축제 기간이라 숙소를 예약 없이 묵는 건 불가능하다고 잔뜩 긴장하고 있는 터였다. 나는 일단 같이 온 누나들과 같이 움직였다. 정류장을 내려오니 바로 에딘버러의 가장 중심가라는 프린세스 스트릿이었다. 아직 이른 아침이라 사람도 거의 없고 차도 드물었지만 이 프린세스 스트릿이라는 길거리도 그 장관이 장난이 아니다. 에딘버러라는 도시는 하나하나가 모두 걸작이고 장관이기 때문에 일일히 그 감탄사를 열거하기가 힘들다. 암튼 그 날 아침 프린세스 스트릿에서 올려다보는 에딘버러성과 멀리 올드타운의 언덕들의 장관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거기서부터 우리 일행 네 명은 모두 지도를 펴들고 고민했다. 아무리 도시가 작고 좀 지나면 익숙해진다지만 막상 처음 도착했을 때는 어디가 어딘지 분간을 하기가 힘든 게 사실.. 일단 바로 앞에 i가 보이길래 거기서 지도도 좀 구하고 하려고 했지만 i는 10시에 문을 연단다. 막막..

누나들은 유스호스텔에서 묵을 예정이었나보다. 하지만 나는 B&B에서 묵을 예정이었다. 나는 체질상 도미토리에서는 절대
잘 수 없다고 생각했다. 암튼 처음엔 어디가 어딘지 분간이 안 서서 무작정 누나들이 가는 방향으로 따라 갔다. 누나들은 노스 브릿지를 건너 올드 타운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우리가 도착한 정류장이 있는 곳과 프린세스 스트릿 쪽은 뉴 타운, 그리고 중간에 다리를 건너 남쪽에 위치한 곳은 올드 타운이다.)
 
누나들은 올드 타운에 속하는 로열 마일 부근의 유스호스텔을 찾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예정한 숙소는 뉴 타운 쪽의 칼튼 힐 근처의 B&B였다. 이제 슬슬 나도 나름대로의 일정을 시작해야겠다 싶어 이 쯤에서 누나들과 작별을 고했다. 에딘버러에 같이 도착했으니 만나겠지 뭐.. 하면서 가볍게 헤어졌다. 흑 근데 그게 내 외로움의 시작이었다. 암튼..
 
나는 다시 방향을 삭 바꿔 프린세스 스트릿의 동쪽으로 걷다가 워털루 플레이스를 지나 Leith Walk를 따라 내려갔다. 이 길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조만간 내가 숙소를 잡기로 예정한 Pilrig St.이 나올거야.. 라고 생각했는데..
 
우악.. 이 Leith Walk라는 길은 그야 말로 '大로'였다. 어마어마하게 길고 긴 길이다. 한 1.5킬로는 걸었나 싶다. 한 참을 내려가니 왼쪽으로 Pilrig St. 표지판이 보였고 예상대로 그 곳은 B&B 촌이다.
 
아아.. 근데 역시 예상이 맞았다. 대부분의 B&B가 'no vacancies'였고 'vacancies'라고 되어 있는 곳 역시 싱글룸은 다 찼다.. 이런 막막.. 더블룸이 있긴 하지만 40파운드나 달랜다.. 아우.. 모든 숙소를 다 물어봤지만 역시 마찬 가지..
 
이 때부터 에딘버러의 첫 고생길이 시작됐다. 묵으려면 어쩔 수 없이 더블룸을 40파운드나 주고 잡아야 한다. 이를 어쩌나.. 어깨에 맨 짐은 무겁다. 밤 버스를 타고 와서 피로도 안 풀렸다. 하는 수 없었다. 그래도 런던에서 코치 티켓을 예산보다 저렴하게 끊었다고 나름대로 합리화하면서 미친척하고 40파운드나 주고 더블룸을 잡았다. 내가 묵은 곳은 Craigmoss Guesthouse라고 하는 빨간 집이었다. 주인 아주머니는 전형적인 서양 아주머니셨는데 친절하게 대해주시긴 했지만 살짝 겉과 속이 다른.. 듯한 인상을 받았다.
 
그 아주머니는 나에게 짐을 내려 놓고 지금 아침식사가 나오니 아침 식사를 하라고 했다. 나는 그러겠다고 했지만 사실 솔직히 조금 버벅대고 어안이 벙벙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전까지는 그나마 일행이 있어서 숙소를 구했고 등등 옆에 일행이 있어 주었지만 지금은 생판 나 혼자 숙소를 잡고 영어를 쓰며 말을 해야했다.
 
아아.. 주위를 빙빙 도는 이 뻘쭘한 분위기.. 나는 다이닝 룸으로 들어갔다. 방에 체크인도 하기 전에.. 두꺼운 옷을 입고 한 참을 걸어서 땀 범벅에 잠도 못 자 얼굴도 부르트고 영 스타일이 아닌 상태에서 고풍스런 다이닝 룸에 들어갔다. 거기엔 중앙의 메인 테이블에 한 서양인 젊은이가 혼자 식사를 하고 있었다. 주인 아주머니는 이제 막 에딘버러에 도착한 소년이라며 그 사람의 옆으로 나를 앉히는 거였다. 으악 내 자폐증세가 발동하기 시작했다!
 
나는 경직돼서 아무 말도 못하고 죄지은 사람처럼 그 사람 옆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 사람은 미국에서 온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 사람도 그다지 친절한 사람은 아니어서 어색함을 버리기 위해 내가 먼저 말을 꺼내고 그 사람은 그냥 동조하는 식이었다. 우리 둘의 대화는 툭툭 끊어지는 어색 뻘쭘 썰렁 그 자체였다.
 
"미국에 가본 적 있나?" "아니 아직, 미국에서 왔나?" "그렇다"
... 침묵 ....
"나는 한국에서 왔다." "오 그런가."
... 침묵 ...
"학생인가?" "그렇다. 의학을 전공하고 있다." "오 정말인가."
... 침묵 ...
"나는 미국에 관심이 많다. 힙합 음악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오 그런가. (갑자기 웃는다. 어째 힙합을 좋아하는 동양인
  메디칼 스튜던트라는 게 매치가 잘 안됐나 보다.)"
... 침묵 ...
등등등 몇 마디 하다가, 그 사람은 식사를 다 했는지,
"Okay, we talk later."
라고 하고 자리를 일어났다.
 
텅빈 다이닝 룸에 나 혼자. 그것도 중앙의 커다란 메인 테이블에. 혼자 식사를 하고 있으니 이제 잠에서 일어난 서양 여행객
들이 주위의 테이블에 하나씩 자리를 잡고 앉아 영어로 신나게 떠든다. 주인 아주머니도 같이 동조하며 신나게 떠는다.
 
나는 중앙의 메인 테이블에 혼자 앉아 아무 말 없이 식사를 한다.
 
으하악! 이 무슨 생지옥인가.
 
암튼 이걸 이기는 길은 빨리 식사를 마치고 나와 나름대로의 일정을 시작하는 거다. 후다닥 식사를 끝내고 나와서 주인
아줌마에게 체크인은 언제 되냐고 하니 11시는 되어야 한다고 한다. 지금 시각은 아직 9시경.. 그래서 나는 일단 무거운 짐은 거기 내려 놓은 채 11시경에 온다고 하고 일단 나갔다. 주위를 빙빙 돌던 어색한 분위기는 가셨지만 어째 좀 의기소침해졌다. 하지만 마냥 의기소침해 하기엔 아직 해결해야할 문제들이 많았다.
 
첫번째는 대체 다음날 인버네스로 가는 버스표를 어디서 끊어야 는지다. 세인트 앤드류스 버스 스테이션에는 무슨 건물이란 게 없고.. 아.. 막막하다. 일단은 기차역인 웨벌리 스테이션으로 갔다. 거기 가서 대충 대충 보니 버스 티켓팅을 하는 곳은 없었는데 마침 버스 운행에 관한 문의는 Cockburn St.에 있는 트레블라인으로 가라고 되어 있었다. 나는 일단은 이 스트리트를 찾기 위해선 에딘버러 지도가 있어야 겠다고 생각하고(가이드 북엔 없다.) 그 때 쯤 문을 연 i에 들어가 지도를 구입했다. 이제 지도를 보고 Cockburn St.를 또 엄청나게 찾았다. 봤더니 노스 브릿지를 건너 올드타운으로 가서 휙 돌아서 내리막길을 내려가야 하는 곳이다. 엄청 멀다.
 
죽어라고 지도를 보고 걸어서 Cockburn St.에 도착했더니 으엑! 세상에 내가 있던 i에서 반대쪽으로 휙 돌면 바로 거기였다.
그러니까 난 바로 옆에 있는 거리를 두고 반대 방향으로 한 바퀴 삥 돈 셈이다. 암튼 거기 도착했더니 이젠 또 뭐가 트레블라인인지 대체 그런 거 같은 게 없다. 그래서 나는 좀 대체로 여행 정보 같은 걸 담당하는 거 같은 델 찾아 들어가 인버네스로 가는 버스에 대해 알고 싶다고 하니깐 반대쪽 사무실을 가리키며 저기 가보라고 한다. 그래서 거길 들어가서 인버네스행 버스표를 알아봤더니.. 대답은 허무 그 자체였다. "그냥 세인트 앤드류스 버스 스테이션에 가서 운전기사한테 돈주고 타면 돼요."
 
하지만 난 거기서 좋은 정보를 얻기는 했다. 에딘버러에서 인버네스로 가는 버스의 타임 테이블과 역에서의 출발 정류장 번호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난 이 타임 테이블에 맞춰 역에 가서 5번 정류장에서 운전기사에게 돈을 내고 버스를 타면 되는 거였다. 휴우.. 큰 거 하나는 끝났다. 벌써 11시가 거의 다 돼간다.
 
근데 난 또 하나의 문제에 봉착했다. 혼자 가기 때문에 그냥 카메라를 들고 가는 건 의미가 없겠다 싶어 육미리 캠코더를 들고 갔는데 이 캠코더의 밧데리 충전 문제다. 충전을 해야 계속 찍지.. 아직도 일정이 얼마나 많이 남았는데.. 근데 이미 밧데리는 다 되어 가고 있었다. 문제가 뭐냐면 영국은 플러그를 꽂는 구멍이 세 개라는 거다. 우리나라나 일본 등 대체적으로 두 개의 구멍에 꽂는데 여긴 세 개라서 이대로라면 전혀 구멍이 맞질 않는다. 어떡하나.. 어떡하나.. 또 고민 고민.. 근데 신이 나를 도왔는지 의기소침해져 다시 숙소 쪽으로 돌아오는 Leith Walk에 전파상이 있는 것이다! 그것도 두 군데가 나란히 있다. 나는 그 중에 일단 한 군데를 들어가 이 밧데리를 충전하고 싶은데 구멍이 맞질 않는다고 했다. 주인 아저씨는 드디어 내가 찾던 보물같은 걸 들고 나타났다! 그래 바로 내가 찾던 게 저거야! 그건 그러니까 그걸 뭐라고 표현하는지 모르겠는데 일종의 mediator였다. 그러니까 한쪽에 두 개의 구멍이 있어 내 충전기를 거기에 끼우고 다른 쪽에는 세 개의 막대가 돋아 있었다. 그걸 세 개의 구멍에 끼우면 되는 것이다. 근데 그 아저씨는 이게 꽂는 면이 너무 헐겁다.. 이대로라면 충전이 불가능하다.. 라는 절망적인 말을 하신다. 그 아저씨는 저기 맞은 편에 '존 루이시스'라는 곳을 가보라고 한다. 거기엔 딱 들어맞는 게 있을 거라고 한다.
 
그 아저씨는 정말 정말 친절했다. 내가 거의 아저씨를 붙잡고 애원하는 듯이 전 이걸 충전해야 돼요.. 울먹이는 듯한 표정을 짓자 같이 안타까워하며 나를 도울 방법을 연구해준 분이다. 이 아저씨 덕택에 그 날 아침 잡은 숙소에서 당한 봉변(?)은 말끔이 씻어졌다.

'아.. 에딘버러는 그렇게 불친절한 도시는 아니구나..'
 
그렇게 해서 거길 나와 아저씨가 말씀해주신 '존 루이시스'라는 곳을 찾았는데 영 그런 데가 없다. 그래서 난 그 전파상 바로 옆에 있는 또 하나의 전파상에 들어갔다. 거기는 어떤 여자분이 경영하고 있었는데 그 아저씨처럼 친절하다기 보다는 그냥 말 수 적고 할 일만 딱딱 하는 사람이었다. 충전기를 보여주자마자 내가 뭘 원하는지 눈치 했다는 식으로 조금 전의 그 mediator를 딱 꺼내준다. 끼워봐도 되겠냐고 양해를 구한 뒤 끼워보니 딱 들어 맞았다. 나는 실제로 충전이 잘 되나 거기서 직접 충전도 해 봤는데 아! 잘 된다! 그래서 거기서 그걸 기쁜 마음에 샀다. (그다지 싼 값은 아니다. 4.70파운드 정도 했던 거 같다.)
 
암튼 일단 기본적으로 봉착한 문제는 모두 해결했다!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11시 30분 경이 돼서 나는 숙소에 체크인 할 수 있었다. 숙소에 짐을 내려 놓고 샤워를 하고 나니 이제야 좀 살 것 같았다. 별 거 안했는데 왜 그렇게 죽을라 그러냐.. 하실 분도 계시겠지만 에딘버러라는 도시는 런던과 달리 걷기가 무지 힘들다. 왜냐면 도시 자체는 런던에 비하면 훨씬 조그맣지만 대부분의 길들이 오르막 내리막이다. 내가 묵은 숙소와 시내 중심을 연결하는 Leith Walk 역시 경사진 약 1.5킬로 가량의 길인데 난 이 곳을 이 날 아침 한 4~5번은 왕복했다.. 또한 내가 버스편을 알아본 Cockburn St.같은 경우는 아예 경사가 가파른 수준의 길이다. 눈이 내려 썰매를 즐기기에도 위험할 수준의..
 
이 에딘버러라는 도시는 이렇게 도로와 길들이 오르막 내리막이기 때문에 바라다 보이는 경치는 정말 환상이라고 밖에 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지만 걷기는 좀 힘든 그런 도시였다..
암튼 그렇게 해서 힘들고 힘든 에딘버러에서의 아침이 끝나고 정오 12시 쯤 돼서야 난 홀가분하게 관광을 시작할 수 있었다.

[에딘버러의 오후: 프린세스 스트리트/에딘버러성]
 
- 8월 3일 목요일 -
 
12시경.. 나는 가벼운 쌕 하나만 둘러매고 숙소를 나왔다.
다시 그 기나긴 Leith Walk를 걸어 올라가서 프린세스 스트릿에 도달했다. 이 프린세스 스트릿은 에딘버러의 가장 번화가로 각종 상점 및 백화점, 식당 등이 밀집한 곳이다. 특히 내가 8월에 왔기 때문에 축제 기간이라는 이유로 사람들이 정말 분주했다. 일단 프린세스 스트릿에 오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길거리 한복판에 서 있는 검고 괴기한 형상의 뾰족탑인데 이게 Scott Monument이다. 그 탑을 기준으로 왼쪽으로는 i와 i앞의 휴식터가 나 있고 또 그 옆으로 웨벌리 스테이션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다. 그 탑의 오른쪽으로는 The Mound라는 길을 거쳐 에딘버러 성으로 올라가는 길이 나 있고 역시 그 옆으로 내셔널 갤러리가 있다.
 
[트레인스포팅]의 첫 장면에서 이완 맥그리거가 달리는 길이 바로 이 프린세스 스트릿이라고 한다. 달리다가 내셔널 갤러리 뒷 쪽으로 달아난다고 하는데.. 영화를 본 게 하도 오래돼서 그랬던가.. 했다. 또한 스코트 모뉴먼트가 있는 부근에는 프린세스 스트릿 가든이라는 이름으로 조성된 자그마한 공원이 있는데 이 곳에서 바라다보이는 올드 타운의 건물들 및 에딘버러 성의 정경은 눈이 부시게 아름답다. 또한 관광객들을 위해서인지 스코틀랜드에서만 볼 수 있는 광경이 타난다. 즉 전통적인 킬트 복장을 하고 팬 파이프를 부는 사람들이 보이기 때문에 그 소리를 들으며 프린세스 스트릿을 걷고 있노라면 정말 스코틀랜드에 와 있다는 기분이 든다. 나는 스코트 모뉴먼트를 보고 프린세스 스트릿 가든에서 약간의 식을 취한 후 The Mound 쪽으로 이동, 내셔널 갤러리에 잠깐 들어가 그림들을 좀 보고.. 계속 길을 따라 올라갔다. 에딘버러 성에 가보기 위함이었다.
 
에딘버러 성은 여기서 보면 꽤 먼 곳에 있을 듯 하지만 막상 길을 따라 올라가보면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는다. 올라가는 도중에 잠시 뒤를 휙 돌아서 내려다보면 또 다시 에딘버러 시내가 쫙 내려다 보이는데 이게 또 너무 멋있다. 에딘버러라는 도시의 아름다움은 말로 표현하기에는 부족하다. 직접 가서 봐야 한다는 거다. 마치 대관령 고개마냥 동그랗게 생겨 있는 비탈길을 올라가니 어느새 에딘버러 성에 도착했다. 아니나 다를까, 예상대로 에딘버러 성 근처에는 사람들이 북적댄다. 그 이유가 5년 주기로 8월에 열리는 에딘버러의 축제.. 그 중에서도 가장 하일라이트라는 '밀리터리 타투'라는 행사가 이 곳 에딘버러 성에서 열리기 때문이다. 축제는 내일 시작된다는데.. 나는 내일 에딘버러를 떠나야 한다. 아쉬웠다. 하지만 이미 '밀리터리 타투'의 티켓은 매진이라니 어차피 볼 수도 없었다. 에딘버러 성의 입구를 들어가니 사방으로 관중석이 설치돼 있었다. 아마 이 곳, 즉 에딘버러 성의 입구에서 그 유명한 밀리터리 타투가 행해지나 보다. 여기 서서 조금 둘러보고 있었더니 갑자기 성쪽으로부터 대포 소리가 뻥!하고 들린다. 아하~ 이게 바로 매일 1시마다 울린다는 공포 소리구나.. 운좋게 들었다.
 
성의 내부는 들어가보지 않고 나는 그냥 주위를 둘러보다 성을 내려왔다. 대부분의 성들이 그렇 듯이 에딘버러 성도 멀리서 올려다 볼 때의 모습이 더 근사한 것 같았다. 슬슬 배가 고파왔다.
 
다시 프린세스 스트릿에 내려온 나는 일단 상점에서 음료수와 샌드위치 를 사서 i앞의 벤치에 앉아 점심 식사를 했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나는 프린세스 스트릿과 그 뒷쪽으로 평행하게 조성된 도로인 조지 스트릿, 퀸 스트릿을 빈둥빈둥 좀 걷다가 다시 프린세스 스트릿으로 와서 기념품 가게에 들어갔다.
 
나는 사실 아주 오래전부터 스코틀랜드의 그 '킬트'라고 하는 치마에 관심이 많았다. 왜냐면 나는 중학 시절 미국 프로레슬링인 WWF에 열광해 있었는데 그 중에 내가 가장 좋아했던 레슬러는 Rowdy Roddy Piper라는 인물이었다. 그는 스코틀랜드인으로 항상 그 빨간 체크무늬 치마를 두르고 나타나서 온갖 반칙으로 상대방을 쳤다. 그 이후로 나도 그 치마 하나 갖고 싶다.. 는 막연한 바램이 있었다. 이 치마는 적당한 때 입으면 참 멋지다는 생각이 든다. 대니 보일 감독의 영화 [인질]을 봐도 끝 장면에 이완 맥그리거가 이 치마를 두르고 나온다. 또 얼마 전에 숀 코네리가 영국 여왕으로부터 '기사'라는 칭호를 받는 모습에서도 그는 이 치마를 두르고 나왔다.
 
나는 혹시 치마 안 파나.. 하는 생각에 기념품 점을 들어갔더니 역시나 이 치마를 판다! 미니치마는 25파운드선.. 길게 내려오는 큰 치마는 30파운드나 한다. 으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비싸다. 나는 살까말까 망설이다 일단 상점을 다시 나와 i앞에 있는 벤치에 앉아 담배를 피우며 고민하기 시작했다.
 
한 30분쯤 앉아 있었을까.. 어째 슬슬 외로와진다. 그도 그럴 것이 런던에 있을 때는 그래도 한국 사람을 비롯한 동양인들도 많고 흑인들도 많고 해서 그다지 외로움을 못 느꼈는데 (난 흑인들을 좋아한다.) 이 곳 에딘버러에는 흑인은 아예 없는 수준이고 동양인들도 거의 안 보인다. 온통 백인들이다. 게다가 도시는 눈부시게 아름답고 세련되고 품위가 있다. 아아아.. 어째 소외감과 함께 외로움이 밀려온다. 어제 밤에 같이 올라온 그 누나 세 명이 갑자기 지 보고 싶어진다. 분명이 근처 어딘가에 있을 텐데.. 그냥 아침에 헤어지지 말고 같이 움직일 걸..
 
외로움이 점점 커지더니 아예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우울증으로 바뀐다. 이런 게 '고독'인가 보다. 암튼 이대로는 더 이상 관광을 해도 별 감흥이 없을 것이라고 판단, 외로움의 보상 심리로 기념품 점에 들어가 30파운드짜리 킬트 치마를 하나 사버린 다음 숙소로 일단 들어왔다. 숙소의 침대에 잠시 누워 마음을 가다듬은 다음, 방금 산 킬트를 입어 봤다. 기분이 좀 산다. 들고 온 캠코더를 내쪽으로 비추고 잠시 서울에 있는 가족들에게 보내는 영상 메세지로 외로움을 호소했다. 한 30분 쯤 있었나.. 오후 3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나는 벌써부터 약해지면 안되지.. 라는 마음에 결심을 다시 한번 굳히고 다시 숙소를 나왔다.

[에딘버러의 오후: 홀리루드 궁전/아더스 시트/칼튼 힐]
 
- 8월 3일 목요일 -
 
다시 숙소를 나온 나는 다음 일정인 홀리루드 궁전 쪽으로 가고 있었다. 지금까지 내가 있던 곳은 뉴 타운, 즉 에딘버러시의 북쪽이었다면 이제 내가 가고 있는 곳은 올드 타운, 즉 에딘버러시의 남쪽이다. 에딘버러에는 특이하게 시내를 가로지르는 강이 없다. 강은 없지만 마치 서울역의 염천교처럼, 사이에 기차역과 철도를 두고 North Bridge라는 다리를 통해 뉴 타운과 올드 타운이 나뉘어지는 구조이다.
 
뉴 타운 쪽에서 바라만 보던 환상적인 옛 건물들이 줄지어 선 올드 타운..
 
다리를 건너면서(이 다리 역시 살짝 경사진 길이다.) 올려다보는 올드 타운의 모습 역시 장관이다. 특히 이 다리에선 멀리 아더스 시트 (Arthurs Seat)의 깍아 지르는 90도 각도의 절벽이 올려다 보이는데 그 절경은 정말 말로 표현 불가능하고 직접 가서 봐야 한다. 암튼 다리를 건너 나는 일단 오른쪽으로 잠시 하이 스트리트를 따라 올라가 성 자일즈 대성당을 봤다. 이 동네는 씨끌벅적하고 무슨 시장판같은 분위기인데 이런 데에 대성당이 있는 게 좀 안 어울렸다. 머리를 박박 밀은 스킨헤드족들이 고래 고래 소리지르고 있어서 좀 쫄았다. 잠시 둘러보고 나는 다시 노스 브릿지의 왼쪽 길인 캐논게이트를 따라 내려갔다. (정말 에딘버러는 '올라갔다', '내려갔다'라는 말이 그대로 맞을 정도로 대부분의 길이 경사길이다.)
 
캐논게이트를 따라 한 참을 내려가다보니 관광객들이 슬슬 카메라를 들고 올라온다. 아마도 홀리루드 궁전에 다 왔나보다.
홀리루드 궁전은 캐논게이트의 막다른 곳에 위치해 있다. 홀리루드 궁전의 뒤쪽으로는 홀리루드 공원이 위치해 있고 그 둘레는 아더스 시트라고 하는, 제주도의 성산 일출봉처럼 생긴 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구조이다. 나는 대체로 무슨 성, 궁전 등의 내부 구조에는 사실 별 관심이 없어서 공짜가 아니면 잘 안들어간다. 홀리루드 궁전도 역시 겉 모습만 훑어 봤는데, 나는 그 궁전보다 멀리 올려다보이는 아더스 시트의, 그 아까 말한 90도 각도의 절벽이 정말 환상이었다.
 
그렇게 그 동네를 둘러 보고 나는 다시 내려왔던 캐논게이트 길을 따라 올라가서 노스 브릿지를 건너 다시 뉴타운에 도착, 역시 i 앞에 있는 벤치에 앉아 저녁 식사를 했다. (역시 쥬스와 샌드 위치. 대체로 이렇게 먹는 데 3파운드선.) 좀 비싼 데서 먹을 수도 있었으나 에딘버러에서 숙박비와 킬트값으로 돈을 너무 많이 썼다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벤치에 앉아 샌드위치를 먹고 있는데 멀리 반가운 얼굴이 지나간다. 바로 전날 저녁에 VCS에서 만난 이소라양이었다. 아 마저 이 친구도 나랑 같이 에딘버러에 올라왔지. 그 전까지 외로움에 떨었던 나는 무지 반가웠다. 잠시 같이 벤치에 앉아 대화를 나누었다. 소라양의 말로는 아더스 시트의 그 90도 각도 절벽까지 올라갔다 왔다고 한다. 으윽.. 나는 거기까지는 못 올라가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거기도 사람이 올라갔다 올 수 있는 곳이었다니.. 후회가 컸다.
 
현재 시각이 대략 7시.. 아직 무지 밝다.
 
시간 상으론 다시 갔다 올 수도 있었지만 나는 사실 남은 일정도 있었고 사실 좀 피곤했다. 밤차에서 잠을 못 잔 것도 있고, 오늘 아침 고생한 것도 있고.. 소라양은 그날 밤 버스로 올라올 때 나처럼 버스 안에서 한국인 일행을 만나서 하루 종일 같이 구경했다고 한다. 멀리 같이 온 일행을 가리 켜 주는데 봤더니 붉은 악마 복장을 한 축구 선수 모습의 당차고 듬직한 한국인 청년 둘이었다. 나한테 그런 휴머니즘이 있다고는 생각지 않았는데 어째 전날 런던에서 불안해하던 소라양이 같이 다니는 일행을 봤더니 듬직해보여 안심이 갔다.
 
소라양과 빠이빠이하고 나는 다시 칼튼 힐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칼튼 힐(Calton Hill).. 내가 에딘버러에서 가장 기대하고 있는 곳이다. 여기서 내려다보는 에딘버러시의 전경은 가히 최고의 볼거리라고 한다. 그래서 가장 마지막 일정으로 잡은..
 
칼튼 힐을 가려면 프린세스 스트릿의 동쪽을 지나 워털루 플레이스까지 와서, 거기서 길을 따라 내려가면 이제 내 숙소 쪽으로 가는 Leith Walk가 되는 것이고 내려가지 않고 그 옆으로 또 나 있는 길을 따라 올라가면 된다.
 
길을 따라 올라가니 왼쪽으로 칼튼 힐로 올라가는 입구가 보인다. 입구를 들어가니 그 때부터 분위기가 또 다르다. 인적이 드문 비탈길로, 그렇게 시끄러운 시내와는 반대로 굉장히 조용하고 한적하다. 나는 비탈길을 따라 등산하듯이 올라갔다. 올라가는 중에도 에딘버러 시내가 쫙 내려다 보인다. 얼마 올라가지 않았는데 벌써 칼튼 힐의 정상에 도착했다. 에딘버러시내는 오르막 내리막 온통 비탈길이기 때문에 에딘버러 성도 그랬 듯이 밑에서 올려다보면 꽤 멀어보이지만 조금만 올라가면 정상에 다다른다. 즉 시 자체가 하나의 언덕이라 조금만 올라가도 시의 전경이 내려다보이는 것이다. 심지어는 시내에 있어도 시내가 내려다 보이니..
 
암튼 정상에 도착하니 예상대로 파르테논 신전같이 생긴 구조물이 한 가운데에 당당하게 서 있다. 에딘버러를 '스코틀랜드의 아테네'라고 하는 말이 이해가 갔다. 그 옆으로는 넬슨 기념탑, 나폴레옹 전쟁 전사자 기념탑 등의 구조물들이 보인다. 나는 주위를 슥 둘러보고 적당한 위치에 가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에딘버러 시 전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내가 지금까지 지나온 장소들이 한 눈으로 다 잡힌다..
 
멀리 보이는 에딘버러 성..
여전히 분주한 프린세스 스트릿.. 스코트 모뉴먼트..
그리고 올드 타운의 그 고풍스런 옛 건물들..
왼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멀리 홀리루드 궁전..
그 뒤로 보이는 홀리루드 공원엔 어린애들이 축구를 하고 있고..
그 뒤로 병풍처럼 둘러선 아서스 시트.. 그 깍아지른 90도 각도의 절벽..
시선을 뒤로 돌리면 멀리 바다도 보인다..
그 바다 위에 떠 있는 이름 모를 섬도 보이고..
저 시내 어디선가 울려퍼지는 팬 파이프 소리..
주위는 굉장히 조용해서 이러한 절경을 더욱 살려준다.
아아아.. 역시 내가 가장 기대했던 장소 답다.
오늘 아침 받았던 약간의 스트레스가 말끔히 씻어진다.
외롭지도 않고 그저 행복감에 도취되었다.
이 곳에 앉아 시내를 내려다보고 있노라면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는데 나 역시 족히 한 두 시간은 여기 앉아 있었지 싶다.
이제 시각은 대략 9시를 지나가고 있다. 아직 해는 질 줄을 모른다.
 
나는 모든 일정을 마쳤다는 여유감과 함께 전날 잠을 못잔 피로가 몰려왔다. 또한 내일 아침 일찍 인버네스로 가는 첫차를 타야 하기 때문에 일찍 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슬슬 일어나 칼튼 힐을 내려왔다. 근처에서 물 한 통을 하서 Leith Walk를 따라 내려와 숙소에 안착. 샤워를 하자마자 잠 들어버렸다. 그 때가 10시.. 아직도 밖은 밝았다.

 

[인버네스/네스호/우르크하트 성]
 
- 8월 4일 금요일 -
 
새벽 5시. 따르르릉 알람 소리와 함께 잠에서 깼다. 어헉.. 근데.. 이게.. 나는 거의 동사 직전의 상태에 가까운 강도의 추위를 느꼈다. 전날 밤 너무 피곤했던 나머지 창문을 열어 놓고 면티와 팬티 차림에 잤던 것이다. 그것도 가장 큰 실수가 침대 이불 깊숙한 곳으로 파묻혀 자야될 것인데 그만 가장 겉의 얇디 얇은 커버만 덮고 잔 것이다. 으아악! 나는 정말 죽는 줄 알았다.
여긴 그야말로 북극이다. 온 몸이 덜덜덜 이빨이 따따닥 떨렸다. 암튼 추위를 무릅쓰고 뜨거운 물에 샤워를 하고, 가지고 온 옷을 모두 껴입고 체크 아웃을 했다. 시간은 6시..
 
다시 Leith Walk를 올라와 프린세스 스트릿 쪽으로 걷고 있는데 멀리 진짜 반가운 두 얼굴이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다. 세상에! 재영이형과 태훈이형이었다! 마저.. 그 형들은 내가 에딘버러 올라온 바로 다음날 에딘버러를 갈 예정이었지.. 아마도 지금 막 도착했나 보다. 너무 반가웠다.
웨벌리 스테이션이 어디냐.. 저기로 내려가면 된다. 어디가 죽이냐..
저기 위에 칼튼 힐이 죽여준다.. 등 짧은 대화밖에 할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6시 55분 첫차를 타야했기 때문..
 
"또 보지 뭐~"라는 인사를 하고 나는 세인트 앤드류스 버스 스테이션
에 도착했다. (하지만 그 뒤로는 그 형들을 볼 수 없었다.)
 
내가 버스를 타야 할 곳은 5번 정류장. 이번엔 스코틀랜드 내에서의 이동이기 때문에 National Express 버스가 아닌 Scottish CityLink 버스였다. 전날 고생해서 알아둔 정보대로 나는 운전 기사에게 직접 인버네스로 가는 티켓을 사서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는 6시 55분, 에딘버러를 떠났다.
 
인버네스로 가는 중간에 내다 보이는 경치는 정말 아름다왔다. 스코틀랜드는 참 아름다운 나라이다. 초원이 보이는가 하면
동산에서 양들이 풀을 뜯고 있다. 이런 모습들이야말로 내가 기대했던 스코틀랜드의 모습 아니던가. 나는 기분이 아주 살았다. 버스는 중간 중간에 서는데 특히 중간에 Pitlochry라는 자그마한 시골 마을은 정말 아담하고 포근하게 생겨서 다음에 또 스코틀랜드를 갈 일이 있으면 이 마을을 꼭 둘러보겠다는 다짐을 했다. 도착 예정 시각은 11시 18분이었는데 11시 반이 다 돼서 인버네스의 Farraline Park Bus Station에 도착했다. 나는 일단 오늘 밤 런던으로 가는 밤 버스의 싱글 티켓을 끊었다. (중간에 글라스고를 경유하는 버스로 디스카운트해서 24파운드)
(여행 오기 전 인버네스의 버스 스테이션 카운터기가 '삼성'이라는 글을 읽었는데 와서 보니 진짜 삼성이더라..)
 
암튼 내가 인버네스에 온 목적은 단 하나!
네스호와 우르크하트 성 때문이다.
나는 일단 네스호 투어를 알아보려고 버스 스테이션을 나와 가까이에 있는 Railway Station에 가서 투어 문의를 했다. 근데 첫차는 이미 12시에 출발했다고 하고 (현재 시각이 대략 12시 8분) 다음 투어는 2시에 시작된다고 한다. 투어 소요 시간이 3시간 30분. 내가 만일 2시 투어를 하게되면 5시 30분이 돼서야 인버네스시에 도착하는데 내가 그날 밤 런던으로 갈 밤 버스가 5시 30분 출발이다. 전혀 여유가 없으므로 이 투어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나는 5시 30분에 런던으로 떠난다. 달리 네스호와 우르크하트성을 갔다 올 방법이 없겠냐"고 하자, 그럼 가이디드 투어를 하지 말고 그냥 버스를 타고 갔다 오면 된다고 한다. 그러더니 버스 타임 테이블을 보여주는데 으힉! 버스가 12시 15분에 출발한다! 다음 버스는 1시 15분.. 대략적인 타임 테이블을 보니 1시 15분 버스를 타게 되면 늦는다! 친절한 그 투어 센터 직원은 나에게 "빨리 뛰어라!"라고 한다. 나는 그 5분 동안 잽싸게 내가 도착했던 버스 스테이션으로 달렸다.
(네스호로 가는 버스는 Farraline Park Bus Station에서 출발한다.)
 
정보 하나!
네스호 구경하실 분들은 좀 서두르셔야 합니다. 가이디드 투어는 12시, 2시.. 그렇게 간격이 크구요, 일반 버스 타고 갔다 오시려고 해도 버스가 그렇게 자주 갔다 오는 게 아닙니다.
 
암튼 열라게 뛰었다. 뛰어서 도착하니 12시 12분 정도.. 근데 대체 네스호로 가는 버스가 어느 정류장에서 출발하는지 알아야지.. 아무나 잡고 물었더니 "우르크하트 성요? 이거 타세요." 알고 보니 바로 그 버스 옆에서 내가 해맸던 거였다. 암튼 가까스로 네스호로 가는 버스를 올라탈 수 있었다. 운전사에게 리턴 티켓을 끊고 자리에 앉았다. 버스는 12시 25분 정도가 돼서야 출발.. (이 나라 사람들도 대체로 시간 잘 안 지킨다. 그렇게 뛸 필요가 없었다.)
 
버스가 한 20분 정도 달리니 드디어 도로 옆으로 검푸른 네스호가 모습을 드러냈다. 저 속 어딘가엔가 괴물 네시가 살고 있다지.. 한 20분 정도 더 달려 우르크하트 성에 도착했다. (도착하니 거의 1시.. 참 불편한 게 인버네스에서 우르크하트 성까지
운행되는 버스가 굉장이 드물게 있다. 매시간 있으면 좋을 것을..)
 
우르크하트 성..
잉글랜드와의 투쟁 끝에 함락되는 것을 거부하고 스스로 자폭해버렸다는.. 거의 반쯤 무너진 옛 성이다. 그 주변으로 검푸른 네스호가 흐르고 있다. 나는 adult 티켓 3.80파운드를 내고 성으로 걸어 내려갔다. (학생용 티켓이 없다.) 내려가는 길에 바라다보이는 무너진 성과 그 뒤로 검푸른 네스호의 광경이 펼쳐지는 게 장관이다. 나는 성 안으로 들어가서 이 곳 저 곳 속속들이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찬찬히 둘러봤다. 성의 꼭대기까지 올라가면 네스호가 내려다보이는데 나는 여기 서서 잠시 네스호의 괴물 네시를 생각하며 명상을 했다. 신기한게 이 괴물 '네시'는 정말 상상속의 괴물만은 아닌가보다.
이미 'Nessieterarhombopteryx'라는 학명을 지니고 있더라. 음.. 암튼 네시는 역시 볼 수 없었고 주변을 찬찬히 둘러보고 나왔다.
 
기대가 큰 만큼 실속은 없는 건지 사실 이 곳은 별 건 아니다. 네스호라고 해도 그냥 호수일 뿐.. 우르크하트성이 멋지긴 하지만 역시 그냥 하나의 성일 뿐이다. 뭔가 대단한 건 아니라는 것.. 한 두어 시간 정도 보고 나는 타임테이블상 3시 10분에 인버네스로 다시 출발하는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 앞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근데 이 나라 사람들 정말.. 버스 시간 안 지킨다. 3시 10분에 출발해야 할 버스가 30분이 지나도 안 온다. 결국은 4시가 거의 다 돼서야 버스가 슬금슬금 온다. 내가 만약 1시 15분 버스를 타고 여기 성에 왔더라면 그날 밤 런던으로 못 돌아갈지도 모르는 거였다.
 
이렇게 네스호와 인버네스 사이의 버스편은 불편하다.
네스호 하나 관광 수입으로 먹고 사는 도시가 이래서야 되겠나!
 
암튼 4시가 다 돼서 버스에 올라타 4시 30분 경에 인버네스에 도착했다. 중간에 Drumnadrochit이라는 마을(Loch Ness Center가 있는 곳이다.)을 들을 예정도 있었는데 버스가 늦어서 꿈도 못 꿨다.
 
4시 30분 다시 인버네스 도착. 런던행 버스 출발까지는 아직 1시간 정도 여유가 있다. 인버네스라는 도시는 굉장히 작고 심플해서 1시간 여유 동안이라면 충분히 시내 구경을 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우선 지도를 보고 인버네스 성을 둘러본 뒤 네스강가를 따라 걸었다. 네스강 주위의 풍경은 꽤 괜찮았다. 하지만 에딘버러라는 아름다운 도시를 보고 난 다음이라 그다지 큰 감흥은 없었다. 네스강을 건너 뭐 좀 먹을 데 없나.. 둘러보다가 Tesco라고 하는 대형 스토어에 들어가 이것저것 막 샀다. 나는 무지 배가 고팠기 때문에 엄청나게 사댔다. 아침 겸 점심 겸 저녁 및 그 날 밤 버스 안에서 먹을 식량을 사느라 각종 음료수 및 물, 샌드위치, 빵, 과자, 초코바 등등.. 잔뜩 사고 나와 네스강가의 벤치에 앉아서 개걸스럽게 먹었다. 이제 슬슬 5시가 넘어간다. 버스 탈 시간. 다시 Farraline Park Bus Station으로 와서 Scottish CityLink 버스를 탔다. 런던까지인데 왜 스코티시 씨티링크? 아 그건 일단 이 버스가 글라스고까지 간 다음 거기서 1시간 정도 대기 하다가 다시 National Express를 타고 런던으로 가는 거기 때문.
 
암튼 버스는 출발했다.
밤 9시 45분. 내가 타고 온 Scottish CityLink 버스는 글라스고의 Buchanan Bus Station에 도착했다. 이제 여기서
한 시간 가량 기다렸다가 런던으로 가는 버스를 타면 된다. 버스를 타고 오면서 본 글라스고라는 도시 역시 굉장히 멋있다.
근데 이 곳 글라스고는 여타 영국의 도시들과는 조금 다른 맛이 있다.. 뭐랄까.. 고층 빌딩들이 많고 좀.. 다소 현대적인 느낌을 받았다.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 같기도 하고.. 하여간 이런 특색 있는 모습 때문에 난 그 1시간의 여유 동안 잠시 글라스고를 둘러보고 싶었는데 버스를 타고 오면서 옆자리에 앉았던 한 서양 여자가 자꾸 자기 짐을 좀 봐 달라고 해서 그만 역에서만 1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이 서양 여자와 버스를 타고 오면서 몇 마디 대화..
 
(내가 엘쥐 싸이언 핸드폰 겸 MP3 플레이어를 빼서 음악을 들으려고  마이크로칩을 갈아끼우는 것을 그 서양 여자가 유심히 쳐다 본다.)
"이건 mp3 플레이어예요."
(잘 못알아 듣는다.)
"오.. 라디오군요.'
"아뇨 엠.피.뜨리. 플레이어요."
(알아 들었는 듯)
"아.. 와우.."
(근데 아마 mp3가 뭔지 모르는 것 같다.)
 
이윽고 밤 10시 45분. 나는 런던으로 가는 National Express 버스에 올라 타자마자 그만 잠이 들어버렸다. 암튼 그렇게 해서 이틀간의 짧지만 많은 것을 본 스코틀랜드 일정은 끝이 났다.

[런던 시내 관광: 대영박물관/하이드 파크]
 
- 8월 5일 토요일 -
 
아침 6시 50분.
버스는 런던의 빅토리아 코치 스테이션에 도착했다. 나는 정말로 글라스고에서 올라타자마자 잠들었기 때문에 오는 동안은 하나도 지루하지 않았고 피로하지도 않았다. 정말 잘 잤다. 암튼 VCS에서 나와, 나는 다시 숙소를 잡기 위해 Warwick Way 쪽으로 갔다. 근데 아무래도 사람 심리가 그렇 듯 첫 날 도착해서 묵었던 Limegrove Hotel을 찾게 되더라. 하룻밤 싱글룸이 28파운드. 좀 비싸긴 했어도 그나마 한 번 묵었던 곳이라 친근해서.. 이 B&B의 주인은 아저씨랑 아줌만데 아저씨는 무슨 나치족의 대표선수처럼 생긴 수염과 험상굿은 외모에 문신도 있다.. 친절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못된 것도 아닌, 굉장히 무뚝뚝한 사람이었다. (근데 난 이 아저씨가 왠지 좋다.) 아줌마는 약간 흑인+인도 계열.. 아줌마는 친절하다.
 
여기에다 짐을 풀고 침대에 누웠다. 사실 원래 계획한 오늘 일정은 솔즈베리가서 스톤헨지 보기였는데 도착해서 잠깐 VCS에 알아본 결과 교통편이 좀 안 맞는다. (이 얘기는 좀 이따 하기로 하고 일단 좀 자자) 그래서 일단은 스톤헨지를 포기하고 숙소에 온 것. 오늘은 그냥 런던이나 빈둥빈둥 거리며 지내기로 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한 결 마음이 편하다.
 
런던은 이미 '우리 동네화'해버렸다. 런던에 있는 동안은 그냥 우리나라에 있는 것처럼 마음이 편하다. 나는 남은 피로도 풀겸 숙소에서 알람을 맞춰 놓고 그대로 좀 더 잤다.
 
정오 12시.. 알람이 울려 일어났다.
 
오늘은 대영박물관만 보면 된다.. 무슨 광화문 국립중앙박물관 가는 것처럼 마음이 편하다. 오늘은 쉬는 날이다..
 
나는 빈둥빈둥 준비해서 빈둥빈둥 숙소를 나왔다. 아직 시간 여유가 무지 많아서 나는 내일 떠날 솔즈베리행 교통편을 알아보기로 했다. 일단 VCS에 가서 티켓 창구에 물어봤다. 내일 솔즈베리로 가는 첫차는 오전 11시, 솔즈베리에 도착하면 오후 2시, 솔즈베리에서 돌아오는 막차는 세상에 3시랜다. 오와.. 이렇게 되면 스톤헨지 관람은 불가능하다. 솔즈베리에서 스톤헨지로 갔다 오는 것만도 왕복 1시간씩 2시간인데..
 
근데 티켓 창구의 흑인 여자 점원이 좋은 정보를 줬다. "기차를 이용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역시 흑인이 최고다.)
(솔즈베리 가서 스톤헨지 보실 분들은 토요일이 아닌 이상 런던에서 버스 타고 가시지 마세요. 토요일만 아침 8시 반에 첫차, 오후 5시 반에 돌아오는 막차가 있을 뿐, 그외 요일은 첫차가 11시, 돌아오는 막차가 오후 3시랍니다. 즉, 토요일만 제외하고는 스톤헨지 관람이 버스로는 불가능하다는 거죠.)
 
나는 땡큐라고 하고 곧바로 근처에 있는 빅토리아 기차역으로 갔다. 빅토리아 기차역에서 타임 테이블을 보는데.. 빅토리아역에서는 솔즈베리로 가는 기차편이 아예 없는 거다. 음.. 당황했다.
 
그래서 잠시 가이드북을 보니 솔즈베리로 가는 기차편이 워털루역에서 출발한다는 정보가 있다. 그래서 나는 일단 워털루역에 가고 보자! 하고는 지하철을 타고 워털루역에 갔다. 워털루역은 기차역으로 지하철역과 바로 연계돼있다. 암튼 워털루역에 도착해서 타임테이블을 보니.. 역시 솔즈베리로 가는 기차편이 있더라. (스톤헨지 보실 분들은 런던 워털루 기차역에서
기차 타고 가서 보시는 게 가장 좋을 듯..)
 
나는 여기서 내일 떠날 솔즈베리행 기차편을 예약(=미리 구입)했다. 기차라 좀 비싸서 왕복 21.90파운드이다.
마음이 더 한결 편안해진 나는 이제 대영박물관만 보면 된다.
 
아직도 시간은 뎀빈다.
워털루역에서 Northern line을 타고 올라가 Tottenham Court Road 역에 내렸다. 여기서 내리면 대영박물관에 금방 갈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아니다. 기나긴 Oxford St.를 좀 걸어야 된다. 이 옥스포드 스트릿 역시 런던의 번화가 중 하나로, 피카딜리 서커스가 '런던의 명동' 쯤 된다면 이 옥스포드 스트릿은 '런던의 강남역' 쯤 되겠다. 암튼 이 옥스포드 스트릿에도 역시 HMV가 보이길래 자연스럽게 들어가서 한 30분 가량 씨디 구경을 했다.
(난 걷다가 레코드숍이 보이면 무조건 들어간다.)
 
옥스포드 스트릿을 지나 조금 걸어가니 드디어 대영박물관에 도착했다. 으잉.. 근데 왠 이런 어수선.. 입구에서부터 수리 중이어서 박물관의 자태를 감상하기도 힘들다. 사람들은 정말 '개떼'같이 많다. 진짜 많다.
 
약간 실망..
암튼 박물관은 안이 더 중요한 것이니 안으로 들어갔다. (입장 무료) 입구에는 각 층 마다 전시된 관을 안내해 주는 무료 책자가 있고 팜플렛을 파는데, 이 중에 한국어 팜플렛도 있다. 난 그냥 영어 팜플렛을 샀다. 5파운드나 한다.
(한국어를 무시하는 게 아니라 '현지'의 느낌을 더 살리려고..)
 
내가 갔을 때는 무척 아쉽게도 지하의 그리스/로마 전시관과 무엇보다 '한국관'이 닫혀 있었다! 젠장.. 실은 한국관에 관심이 많았는데.. 일단은 1층(영국식으론 ground floor)에 있는 이집트관을 들어가서 그 유명한 로제타 스톤(난 근데 이 로제타 스톤의 의미를 여행을 갔다 와서 친구로부터 들었다.. 당시에는 그냥 사람들이 워낙 많이 있길래 본 것.. 무식한 나다..)을 비롯한 각종 유물들을 보고, 다음으로 역시 1층의 아시아관을 들어가서 중국과 동남아, 이슬람의 유물들을 감상했다. 특히 중국 당나라, 원나라, 청나라의 불상과 유물들은 인상적이었다. 다음 2층(영국식으로 first floor)으로 올라가서 역시 이집트관을 제일 먼저 들어갔다. 그 유명하다는 '미이라(mummy)'를 보기 위해서였다. 예상했던 대로 미이라 앞에는 사람들이 바싹 달라 붙어 있다. 미이라를 만드는 과정이 한 쪽 벽에 설명되어 있고.. 한 쪽에는 괴로워하는 표정으로 죽은 까만 시체가 웅크리고 있는 것도 있다. 열심히 사람들 틈을 파고 들어 사진을 찍었다.
(대영박물관 내 사진 촬영 가능)
 
그리고 같은 층에 있는 유럽관, 영국관, 일본관을 둘러 봤다. 필수 코스라는 '그리스/로마'관은 하나도 안 봤다. 일부가 닫혀
있기도 했었고.. 해서. 그리고 솔직히 좀 땡기지도 않았다. (난 [그리스/로마 신화]도 안읽었다. --;)
 
일단 '한국관'이 닫혔다는 것에 실망이 컸던 나이기 때문.. 직지심경을 꼭 실제로 보고 싶었는데..
 
결국 대영박물관의 필수 볼거리라는 파르테논 신전의 유물은 보지 못했다.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했다. (어차피 내가 살아
있는 한 영국은 꼭 다시 한 번 올 것이다!) 그럭저럭 약 두 세 시간 가량 둘러보고 나왔다. 근데 난 솔직히 말하면 별로 재미는 없었다. 이런 것에 별로 취미가 없어서인지.. 또 한 가지 이유는 '대영박물관의 내부'라는 건 뭔가 기막히게 웅장하고 멋지게 해놓은 것이 아니고 또 사람들이 워낙 많아 다소 어수선하기도 하다. 정말로 하나 하나의 유물에 관심이 크지 않은 이상 나같은 사람은 별로 재미를 못 느낀다. (솔직히 레코드숍에서 30분 씨디 구경 하는 게 훨씬 더 재미있다. --;;;)
 
암튼 그렇게 해서 대영박물관을 나와 출출해진 나는 바로 건너편의 피쉬 앤 칩스 식당에 들어갔다. 자리에 앉으니 서빙하는
아가씨가 나보고 어디서 왔녠다. 한국에서 왔다 그러니까 한국어 메뉴판을 준다. 대영박물관 앞이라 한국 사람이 많아서 그런가보다. 거기서 피쉬 앤 칩스 중짜랑 맥주 한 파인트를 시켰다. 가격은 잘 기억이 안 나는데 생각보단 비쌌던 것 같다.
먹고 나와서 슬슬 거닐었다. 인제 뭐하지.. 예정된 일정은 다 끝났는데 직도 오후 5시다. (사실 대영박물관과 타워 브릿지를 같이 보는 게 이 날 일정이었는데 타워 브릿지는 미리 봐서 시간이 남았다.)
 
모하지.. 그래! 하이드 파크!
하이드 파크는 사실 예정에 없던 거였다. 예전에 호주 시드니에 갔었을 때 역시 같은 이름의 하이드 파크를 가본적이 있다. 근데 시드니의 하이드 파크는 짜가고 런던의 하이드 파크가 원조라는 소릴 들은 적이 있어서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다시 Tottenham Court Road역에서 Northern line을 타고 내려와 Leicester Square역에서 Piccadily line으로 갈아타고 Hyde Park Corner역에서 내렸다. 지하철역에서 나오니 바로 하이드 파크의 입구였다.
 
하이드 파크.. 아마도 런던에서 가장 큰 공원일 것이다.
이 공원은 여타 공원보다 역시 더욱 멋진 것 같다. 굉장히 넓은 잔디밭과 그 사이사이 난 오솔길.. 그리고 Serpentine 연못이 기억이 난다. 그 연못에는 많은 청춘 남녀와 가족들이 발로 돌리는 보트를 타고 놀고 있고 그 주위 역시 많은 사람들이 해질 무렵의 여유를 즐기고 있다. 중심으로 뻗은 메인 로드에는 롤러블레이드를 탄 애들이 브레이크댄싱이 섞인 묘기를 부리고 있다.
 
나는 이런 분위기를 전에 호주 브리스번의 '사우스뱅크 파크랜드'에서 경험한 적이 있다.

이런 분위기라는 것은 한마디로 '너무 좋다 + 너무 부럽다'라는 것. 암튼 이 곳을 오늘의 마지막 일정으로 잡고 천천히 거닐며, 또 벤치에 앉아 담배를 피우며 하루의 마지막을 즐겼다. 하이드 파크의 길을 서서히 걷다가 어둑어둑 해지길래 Marble Arch 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빅토리아에 도착, 숙소에 들어가서 잤다.

 

2005/06/26 (일) 00: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