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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영 [육식동물] (1984)

tunikut 2008. 12. 19. 15:42

 

 

그러니까 그게 언제였지.. 내가 아마도 초등학교 4-5학년 무렵이었던 것 같다. 같은 학교에 다니던 동네 친구 녀석이 있었는데 우리는 학교 끝나고 그 친구 집에 종종 놀러가곤 했다. 그 친구 집은 전형적인 80년대 그냥 허름한 집, 좁은 마당에 조그맣게 걸터 앉을 수 있는 작은 마루, 그리고 허름한 좁은 방 1-2개와 부엌이 있던 집이었다. 암튼 학교 끝나면 그 친구 집에 가서 (호기심에) 부모님들 보시는 비디오 테잎들을 장농에서 꺼내다 보곤 했었는데 그 당시에 보던 영화들을 통해 난 에로, 좀비, 이소룡, 살인 등의.. 80년대 초딩 치고는 교육상 안좋은 것들을 꽤 접했다. 암튼.. 하루는 역시 또 그 친구 집에서 장농에서 무슨 이상한 테잎 -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당시엔 정품 비디오는 별로 없었고 죄다 손으로 찍찍 제목을 갈겨쓴 불법 복제 비디오들이 routine이었던 시절이다 - 을 하나 꺼내서 보는데 (친구놈은 그걸 에로 영화라고 꺼내서 보여준다) 플레이를 누르자 난데없이 의자에 앉아 있는 김성겸씨를 왠 이상한 여자가 뒤에서 가위로 찔러서 쳐죽이는 장면이 나오는 거다. (아마도 영화의 엔딩에 멈춰져 있었던 듯) 우어.. 어린 초딩생인 나한테는 꽤나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내가 한창 데이빗 린치나 크로넨버그와 같은 엽기 그로테스크 무비에 빠져있던 대학 시절 한국에도 데이빗 린치와 같은 감독이 있었다는 걸 알게됐으니 바로 그 분이 고김기영 감독이었고 이 분의 영화에 대해 많은 관심이 생겼으나 구하기가 쉽지 않아 전전긍긍하고 있던 중 케이블 TV에서 "육식동물"을 한다고 해서 쌍수를 들고 반기면서 영화를 봤다. 그리고 전율을 느꼈고 초딩 시절의 나를 충격에 빠뜨렸던 가위로 쳐죽이는 장면이 바로 이 영화라는 걸 알게 된 순간 소름이 쫘악 돋게 된다. 아아.. 이 영화.. 난 김기영 감독님의 영화는 이거밖에 보지 못했다. "하녀"나 "살인 나비를 쫒는 여자" 등이 그렇게 대단하다고 하는데 보고싶어 미쳐죽겠는데 도무지 구할 길이 없으니 참 속상하다. 암튼 말길이 자꾸 휘청휘청하는데..

 

80년대 특유의 조악한 질감, 썰렁한 배우들의 연기는 스릴러인 이 영화의 분위기에 더욱 잘 어울리며 왠지 불길한 느낌이 드는 집의 구조나 구석진 어두운 조명과 미장센, 그로테스크한 배우들의 상황 설정과 연기들은 데이빗 린치의 "트윈 픽스"가 부럽지 않다. 게다가 충격적인 엔딩 장면과 이 사건이 실화임을 말해주는 신문 기사들 - 마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의 엔딩과 같은 느낌 - 은 더더욱 영화를 보고 나서도 사람 기분을 찝찝하게 만들고 있다. 아아.. 이런 영화들 너무 좋다. 너무 너무.. (나 이상한 사람은 아니다 근데)

 

"깊은밤 갑자기", 김기영 감독님의 영화들, "여곡성" 등등 옛날 한국 에로틱 스릴러/호러 영화들이 너무 땡기는데 도무지 볼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누구 도움 좀 주실 분.. 흑.

 

굽신굽신

 

2008/10/08 (수) 1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