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nikut's Cultural Paradi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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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an Carlos Fresnadillo [28 Weeks Later] (2007)

tunikut 2008. 12. 19. 13:41

 

난 지금 원주에 혼자 살고 있다. 그것도 아직 세간 살이나 가구가 들어오지 않은 텅빈 아파트에.. TV도 없고 인터넷도 안된다.

그런 텅빈 아파트에 이불 하나 깔고 잠만 자고 있다. 생각만 해도 썰렁하다 못해 삭막하지 않은가? 그런데 밤이 되면 더 적적하다.

적적한 기분이 점점 뒤숭숭해지다가 슬슬 무서워지기라도 하면 잠을 못이룬다. 그런 내가 유일하게 의지하고 있는 건 한개 채널

밖에 안나오는 라디오와 노트북에 연결된 DVD, 그리고 벌집핏자와 캔맥주 1-2개가 고작이다. 헐헐..

 

어젯밤도 참으로 적적하고 뒤숭숭했더랬다. 그런 적적함을 달래기 위해 아파트 앞 비디오 대여점에서 빌린 영화가 바로 여기 올라온

"28주 후"다. 예전 대니 보일 감독의 "28일 후"를 텅빈 극장에서 진짜 재미있게 봐서 그 후속편인 본작을 아무 망설임 없이 선택

했는데 전작의 경우 공포/호러의 느낌보다는 SF/액션의 성향이 더 강했던 고로 결코 무섭지 않으리라는 예상을 했지만 후속편인

본작에 와서는 공포 영화에서 쓰는 모든 기법들 - 깜짝놀래기/피범벅슬래셔/귀신/원한 등등 - 이 아무 기약없이 등장해서 따뜻하고

포근한 영화를 봐도 가뜩이나 뒤숭숭한 이 텅빈 아파트에서 영화를 관람하던 나를 영화가 끝난 새벽 2시경 집밖으로 뛰쳐나가게

만들었다. (사람이 집안에 있다가 너무 무서우면 집밖으로 뛰쳐나가게 되는데 난 살면서 이런 경험을 두 번 해봤다. 이번 말고 다른

하나는 대학생 때 스즈키 코지의 소설 링 1편을 읽고 난 다음 그랬다는..)

 

후앙 까를로스 프레스나딜로(?)는 아마도 스페인 출신의 신예 감독이 아닐까 싶은데 대니 보일의 전작을 훨씬 뛰어넘다못해 완전히

열반의 경지에 이른 긴장감과 스펙타클함을 선사한다. 겁나 빨리 쫓아오는 감염된 좀비(?)들의 표정이나 행동은 굉장히 사실적이어서

공포감을 배로 올리고 잔인하고 끔찍한 장면들도 매우 리얼해서 정말 임산부나 노약자는 조심해야될 영화다. ("28일 후"를 생각하고

보다가는 나처럼 zot된다.) 이 영화의 가장 하일라이트는 종반부 컴컴한 지하도 안에서 야간카메라 화면을 통해 보이는 장면들인데 

정말이지 아무리 담력이 좋은 사람도 이 장면에서는 극도의 텐션을 느낄 것이다. 또한 이 영화는 단순히 좀비들과 맞서 싸우는 인간들

이 아니라 code red의 미명 아래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사람이 좀비와 사람을 동시에 피해야 하는 지옥과 같은 악마성이 나타나기도

한다. 그저 감독의 연출력과 화면 기법에 탄복할 뿐이다. 미치도록 무서웠지만 너무 재미있어서 자정이 넘은 시각임에도 영화를 끌 수

없었다. 다만 영화가 끝나고 집밖으로 뛰쳐나갔을 뿐.. 

 

P.S. 재미있는 사실 하나: 내가 예전에 이 블로그에 "28일 후"를 포스팅한 날짜가 05년 8월 7일이었는데 이 글이 08년 5월 7일 작성

됐다는 거.

 

2008/05/07 (수) 1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