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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 [극장전] (2005)

tunikut 2008. 12. 18. 17:46

 

난 홍상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다. 내가 본 그의 작품이라곤 이것하고 "생활의 발견",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이렇게 세 개인데 솔직히 둘 다 그다지 나한테는 별로였다. 홍상수 영화를 보면 항상 나오는 네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1. 꼭 집에 안들어가고 밖에 나와서 술 마시고 피곤하게 하룻밤 샌다.
2. 꼭 여관방에서 어색한 성관계를 한다.
3. 꼭 기분 좋게 시작했다가 어색하거나 분위기 안좋게 끝난다.
4. 꼭 술자리에는 지저분하게 술잔하고 안주하고 담배 꽁초가 그득하다.
 

내가 이 영화를 보게 된 건 참 홍상수적인 상황에서였다. 뭐냐고? 바로 월요일 오전 10시에 와이셔츠 차림으로 극장에서 혼자 봤다. 벌써 1년 전의 일인데 오전에 직장 상사로부터 심한 모욕을 당하고 도저히 *같아서 못하겠다는 심정에 핸폰 꺼버리고 직장을 뛰쳐나와 택시 타고 신촌 에 와서 핸폰 번호 바꿔버리고 월요일 오전이라 썰렁한 길거리에서 와이셔츠 차림으로 뭐할까 하다가 집에 들어가긴 그렇고 에라 모르겠다 영화나 보자 해서 신촌 아트레온에서 이 영화를 본 거다. 포도맛 웰치스 한 캔과 오징어포를 뜯으며 그렇게 아침에 사람도 거의 없던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보고 있자니 한편으론 속이 시원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이러고 있는 내 자신이 좀 초라해보여 눈물까지 괜시리 글썽이며 본 영화라 기억에 잊혀지지 않는다. 근데 이 영화는 다른 홍상수 영화보다는 좀 더 대중이 접근하기도 쉽고 또 재미도 있어 나한테도 잘 맞았다. 직장을 뛰쳐나와 한참을 보고 있는데 영화의 후반부의 배경이 죄다 내가 뛰쳐나온 직장이라 뭐가 좀 이상했다. 암튼 극장전이라는 제목과 내가 좋아하는 배우 김상경, 엄지원이 나온 것과 월요일 오전 와이셔츠 차림의 반백수같았던 나의 심리가 정확히 일체가 되었던 추억 어린 영화다. 크크..

 

2006/07/04 (화) 1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