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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aiah Rashad [The Sun's Tirade] (2016, TDE)

tunikut 2016. 9. 13. 13:44


좀 생각해보면 이번 앨범 같은 경우는 지난 앨범과는 좀 다르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하나를 얻고 하나를 잃었달까. 결국 평점? 뭐 그런 식으로 따져본다면 지난 앨범과 약간은 동급 혹은 살짝 이하라는 얘긴데 하나를 얻고 하나를 잃으니 결국 뭐 버퍼링됐다는 건데 얻은 질량에 비해 잃은 질량이 약간 더 크니 결국 약간은 조금 지난번보다는 모자란다는 건데 뭐 그런 게 뭐 중요하냐 하겠냐만 결국 질량 보존의 법칙은 어긋나버리게 된 셈인데 그건 아니고 그러고 보니 이게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어서 이거 뭐 어떻게 글을 시작해 나가야할지 나도 모..르...으..겠....당.... 


그러니까 바로 위에 내가 쓴 저 문단처럼 라샤드 역시 저런 자세로 이번 앨범을 만들었는데, 나 스스로가 내가 내 블로그에 끄적거리는 리뷰에 존나게 어떤 확신이 있기 때문에 욕을 먹던 말던 누가 보던 말던 완전 그냥 내 스타일로 뭉개버리는 감이 있는데, 라샤드 역시 자기가 하는 음악에 워낙에 확신이 있다보니 음악을 그냥 완전히 '바이브' 하나에 집중해버리면서 뭉개버리는 식으로 만든 게 이번 앨범이라는 거다. 


원체 힙합 관련 리뷰는 예전에 웹진 리뷰를 쓰던 기억이 남아있어 왠지 막 사운드 분석하고 가사 분석하고 그렇게 써야할 것 같은 강박관념이 있는데 그런 거 다 떨쳐버리고 오늘은 그냥 내 스타일대로 써보자면. 일단 저 앨범 커버는 정말 정직하게 내가 굉장히 좋아하는 분위기인데 문제는 저 까만 테두리 없애고 그냥 삽화만으로 채웠으면 조금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고 차 색도 짙은 네이비 칼라로 했으면 좀더 몽환적이고 좋았을 텐데.. 잡소리 그만하고 또 잡소리 하자면 우리가 존나 우울해서 (물론 그럴 건 아니지만) 만약에 자살하는 사람의 심리로 들어가본다면 왠지 캄캄한 밤에 조용하고 아무도 없을 때 죽는 것보다, 괜시리 화창한 대낮에 사람들도 많은 그런 무슨 강가나 이런 데서 더 죽고 싶은 마음이 역설적으로 더 들지 않겠냐하는 것과, 또 하나는 우리가 꿈을 꾸었을 때 왠지 어두컴컴했던 기억보다 화창한 분위기가 나중에 생각해보면 더 몽환적으로 다가온다는 건데 암튼 내가 갖고 있는 그런 '꿈-우울'등과 관련된 이미지를 기가 막히게 제대로 표현했다는 점에서도 이 앨범은 일단 먹고 들어간다. 저 왠지 '불길'하면서 '포근'한 저 하늘봐라. 구름은 또 뭐고, 저 빌딩숲 진짜 미친다. 또 갑자기 차 타고 가다가 왜 몸이 뜨냐고.. 아 진짜. '불길'과 '포근'의 조합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조합 중의 하나로 궁금한 사람은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 영화 판도와 리스 보면 됨.


수록곡이 존나 많아서 뒤로 갈수록 쳐진다는 느낌이 있는데 스쿨보이큐 곡성 앨범도 처음엔 그랬지만, 후반부 곡들이 친숙해지면서 그런 느낌들이 좀 가신 감이 있다. 앨범 자체는 각각의 확실한 주제와 강렬하고 인상적인 훅, 그리고 깔끔한 구성이 돋보였던 실비아 데모에 비해 전체적으로 좀 루스하게 설기설기 매운 감이 있으며, 가사 하나하나의 메세지나 주제에 집중했다기 보다 위에 언급했던 것처럼 라샤드 자신이 겪었던, 그리고 겪고 있는 심리나 어떤 '이미지'를 음악으로 최대한 형상화했다는 점에서 지난 앨범과는 비슷해보이면서도 전혀 다른 접근 방식을 보인다는 거다. 근데 그게 무슨 '지랄'이나 '객기'나 '꼬장'의 수준에 그친 게 아니고 꽤 성공적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곡 하나하나마다 각기 따른 주제를 가지고 있다기 보다는 앨범 전체에 걸쳐서 듬성듬성 이 얘기 꺼냈다가 저 얘기 꺼냈다가 오락가락 하는 느낌이 강하며, 이는 그가 지난 몇년간 사경을 해매던 자낙스와 알콜 중독, 그리고 우울증에 기인한 바가 크다 하겠다. 아닌게 아니라 솔직히 내가 라샤드라도 존나 우울증 좀 걸릴 것 같은 게 아무리 블랙 히피 형들이 밥도 잘 사주고 한다고 해도 그 왠지 모를 텃새 느낌 뭐 그런 것 때문에 괜시리 외톨감을 느꼈을 수도 있을 것 같고, 지난 실비아 데모에서 이미 알아봤지만 라샤드 이 사람이 존나게 시니컬하고 감성이 여리고 졸라 수동공격적인 태도를 보이기 때문에 그런 성격적인 부분과 주위 상황이 만나면서 존나게 술마시고 자낙스 쳐먹고 했던 것같다는 거다. 그런 얘기들이 앨범 전체에 두루뭉술하게 그려지는데 또 한편으론 사람들이 존나 좋아해주기 때문에 나름 으슥해진 면도 있어서 실비아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돈 얘기 여자 얘기도 좀 나름 해보인다는 것도 재미있고, 지난번에도 그랬지만 여전히 자기 엄마에 대한 극진한 정성과 가족들을 보살펴야 한다는 갈등과 아빠에 대한 애증 등등이 역시 나타나고 있다. 


다소 아쉬운 점은 실비아에서처럼 듣자 마자 귀가 녹아버리는 달달한 훅들이 별로 없다는 거지만, 반대로 달달한 게 없다보니 쉽게 질리지 않을 수 있다는 장점도 나름 있다. 스쿨보이큐 대팔 처럼 처음에 들으면 병신 같지만 은근히 중독되는 것 같은 포 다 스쿼우 (바더 이빠 비빠 뿌)나 후리 런치 (밀 티킷 티킷 밀 티킷 티킷) 같은 곡들도 재미있지만, 그 다음부터 더 미치겠는데 왓츠 롱에서 난 켄드릭 벌스보다 그 전에 나오는 라샤드의 엇박 플로우가 진짜 개작살이라고 생각하고 그 엇박 플로우를 이끄는 비트가 좀 감칠나는 소울 비트라는 게 아이러니다. 


앨범은 비데이부터 점점 더 재미있어지기 시작하는데 이 곡은 그냥 장르 자체가 힙합이라기보단 그냥 '라샤드 뮤직'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개성이 강하며 생일날 완전 술 취해서 읇조리는 식으로 몽환적이기 그지없는 스트링 신디사이저 반주에 맞춰 귀를 즐겁게 해주고, 다음 곡 실크 다 샤카 (실비아에서처럼 서던 랩퍼 이름 오마쥬)는 거의 베스트 트랙 중 하나로 무슨 반주가 세상에 말도 안되는 괴기스러운 변태 비트에 중간에 뚤링뚤링뚤링거리는 건반음이 완전 사람 속을 다 긁어놔버리는데 곡 분위기만 놓고 보면 90년대 최대암울트립합이었던 포티스헤드가 '나 잘못했어. 너가 그냥 다해'라고 엎드려서 항복이라도 할 기세다. 게다가 보컬 역시 생목이 아니라 (역시나 내가 존나리 좋아하는) 이펙터 넣은 '전화 목소리'라서 가뜩이나 괴기스럽고 몽환적이고 우울한데 거기에 디 인터넷의 시드가 가녀린 여성 목소리까지 얹어줘서 이건 무슨 청자를 당장에라도 잡아죽일 기세로 덤벼들고 있기 때문에 음악을 끄고 으아아아아악 비명 지르며 집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을 정도다. 


그러고나면 티티 앤 달라에서 살짝 서던 그루브타면서 왓츠 롱에서 켄드릭 형아가 여린 라샤드 마음 살짜쿵 잡아준 걸 여기선 제이락형이 언제나 변함없는 그 훈남 오빠 이미지로 라샤드의 마음을 완전히 달래주고 있으며, 그렇게 형들의 격려로 마음을 좀 잡은 것 같았던 라샤드가 결국 스턱 인 더 머드에서 다시금 돌아버리는데 여기서는 라샤드 뿐만 아니라 청자들도 같이 돌아버리게 되는데 그 첫번째 이유는 분량 몇안되지만 존나게 강력한 임팩트를 주는 스자의 훅과 후반부의 미친 개지랄 사이키델릭의 향연 때문이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요즘 티디이에서 스자의 휘쳐링 운용을 기가 막히게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아마도 스자만 가지고 있는 장점을 최대한 절제적으로 끌어올리고 있다는 생각이다. 티디이. 진짜 잘하는 음악 집단이다.) 암튼 그 후반부 사이키델릭은 진짜 말도 안되는게 듣고 있으면 마치 대니 보일의 영화 선샤인에서처럼 내 몸이 떠서 막 저 태양으로 솓구치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그게 결국 앨범 타이틀과 자켓 이미지랑 매치시켜서 들으면 그 느껴지는 감성의 카타르시스가 막 사정하고 난 직후만큼이나 짜릿하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하고 미치겠는데 여기에 라샤드는 또 못된 버릇 못고치고 목소리를 변조시켜서 아주 청자를 보내버리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비데이부터 스턱 인 더 머드까지가 이 앨범의 최대 클라이막스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이어지는 마이크윌메이드잇의 비트가 뭐 남들은 식상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마이크윌메이드잇의 비트에 비교적 순결한 몸이기 때문에 나로서는 꽤 좋았고, 조금 더 과장해보자면 얼랏은 이 앨범에서 내 훼이버릿 트랙 중 하나라고 아주 소심하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나면 여기까지 에너지를 너무 쏟았기 때문에 라샤드도 지쳤고 청자들도 다 지쳤기 때문에 후반부 트랙들은 그냥 그냥 넘겨들으면 되는데 이것들도 앞부분의 임팩트가 너무 강해서 그렇지 따로 떼어놓고 보면, 라샤드가 너무 웅얼웅얼 대는 것 빼고 퀄리티 자체가 그닥 나쁘지는 않고 살짝 바이 조지같이 아방가르드한 느낌도 나쁘지 않다. 또한 이 앨범에는 안드레삼천 스타일의 업템포 돈 매러나 로프 // 로즈골드에서처럼 블루스/소울적인 느낌과 90년대 초반 뉴스쿨 힙합같은 색다른 느낌들도 주고 있어 나름 서비스 받는 기분도 든다. 


언급했다시피 이 앨범은 실비아처럼 강렬한 훅도 없고, 통렬한 주제 의식이나 인상적인 리리시즘 뭐 그런 거 별로 없다. 뭐 흔히 말하는 킬링 트랙 같은 것도 그닥이다. 얘기인 즉슨, 실비아 느낌을 바라고 들으면 약간 실망할 수 있다는 건데, 그런 대신에 자낙스와 알콜 중독과 우울증을 견뎌낸 라샤드 본인이 그 감성 그 느낌 그대로 살려서 자켓부터 앨범 전체에 걸쳐서 쫘악 오로지 '바이브' 하나로 승부한 앨범이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접근 방식을 달리 했다는 점에서 그의 아티스트적 기질을 더 높게 살 수도 있다고 보고, 어쨌거나 저쩄거나 개인적으로는 라샤드나 티디이나 이번에도 역시 또 잘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