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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홍진 [곡성(哭聲)] (2016)

tunikut 2016. 7. 3. 03:37


한국 같았으면 이런 건 개봉하자마자 혼자라도 심야라도 달려가서 봐주는 편인데 젠장 미국에 있다보니 이제서야 보게 됐다. 하여간에 "고립된 시골 + 미스테리" 이 조합은 (영화의 완성도를 떠나) 나한테는 뭐 거의 밥먹다가도 지랄하면서 뛰쳐나갈 정도로 매력적인 테마라서 내 시선을 끌고자 하는 감독이나 소설가가 있다면 '존나 고립된 깡촌 시골에서 벌어지는 존나 이상한 일'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만들면 된다 (뭐니). 


난해한 예술 작품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완전 창작자의 겨드랑이 땀냄내까지 느껴질 정도로 온 인생 영혼 에너지를 다 퍼부어서 그것이 압도적인 난해함으로 감상자에게 다가오는 것이 있고, 또 다른 하나는 창작자가 완전 똑똑해서 의도적으로 장치를 비틀어놔서 감상자를 난해하게 만드는 의도적 난해함이 있다. 예를 들어 전자의 경우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쥴랍스키의 포제션, 칸예의 tlop, 안노 히데아키의 에반게리온 시리즈, 데이빗 린치의 트윈 픽스 시리즈 등이 있겠고, 후자의 경우 김기영 감독의 이어도, 데이빗 린치의 인랜드 엠파이어, 칸예의 yeezus, 미카엘 하네케의 히든 등이 있겠는데, 뭐 양쪽 모두 각자의 작품성은 또 다르기 때문에 뭐가 우월하다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나홍진 감독의 곡성은 후자에 속한다 할 수 있을 것 같다. 


영화에 대한 분석글들은 너무 너무 많고, 나도 뭐 그렇게 막 분석을 할 수 있을 정도의 경지가 있는건 아니라서 여기서까지 굳이 그러고 싶지는 않지만 영화는 생략된 부분이 좀 있거나 의도적으로 감독이 관객을 헷갈리게 하려고 해서 그렇지 스토리나 주제 의식 등등은 비교적 명확한 편이다. (참고로 곡성에 대한 분석은 유투브에 이동진 영화평론가의 2시간 짜리 분석 영상을 추천함) 암튼 영화를 보고 나면 그 일본인이나 무명에 경도돼서 그래서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누가 선이고 악이야?에 대한 담론이 오고 갈 수 있지만, 정작 영화의 주인공은 곽도원씨이며 알 수 없는 악에 맞서 어떻게는 해결하려고 허둥거리는 주인공의 이야기라고 보는 게 가장 맞을 것 같다. 그러니까 하네케 감독의 히든이나 하얀리본에서 처럼 범인이 누구냐에 초점을 두지 말고, 주인공의 시점으로 이해해야 되는 영화라는 뭐 그런..


포스터에도 낚시하는 장면이 있고, 미끼를 낚시바늘에 꽂는 장면으로 영화를 시작하는 것부터, 현혹되지 마라/미끼를 물었다 등의 홍보 문구부터 영화에서 계속 나오는 미끼에 대한 대사 등등을 보면 감독이 '의도적'으로 관객에게 낚시하는 영화가 확실히 맞고, 감독 역시 인터뷰에서 '관객의 반응이 너무 궁금하다'라고 하는 걸로 봐서도, 감독이 충분히 이런 것들을 의도한 건 맞는 것 같다. 


암튼 좋았다. 좋은 영화다.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여러번 꼽씹을 수 있고, 이야기 거리를 만들수 있고 작품성 대중성 모두 사로 잡은 영화가 얼마나 많겠나. 스토리가 어떻고, 누가 범인이냐가 어떻고, 뭐가 선이고 악이냐가 어떻고, 악에 맞서 싸우는 인간의 무력감이 어떻고.. 등등도 물론 의미가 있겠지만, 다른 걸 다 떠나서 배우들의 연기만 보는 것으로도 충분히 즐겁고 (난 이 영화에서 곽도원씨의 연기가 황정민씨 연기보다 훨씬 더 좋았고, 황정민씨 사투리 연기는 난 약간은 아쉬운 편), 시종일관 그 음산한 분위기에 곽도원씨와 함께 뭐가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자꾸만 몰입하게 만드는 연출도 좋았다. 


p.s. 지금 아내와 아이들이 잠시 한국에 가고, 혼자 미국에 살고 있어서 이 영화를 혼자서 볼까 어쩔까 보고 나서 또 괜히 뒤숭숭해서 머리 감으면서 계속 뒤돌아보게 되는 거 아니야, 제목이 곡성인데 씨발 이거 막 무슨 귀신 우는 소리 나오고 그러는 거 아니야 등등 잠시 망설였는데 맥주 3병 까고, 좆될 각오하고 봤는데 의외로 영화는 그닥 무섭지 않았다. 영화가 진짜로 안무서운 건지 내가 좆된다는 생각으로 봐서 의외로 그 무서움이 좆될 정도는 아니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