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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l Bill [Septagram™] (2016, Uncle Howie)

tunikut 2016. 6. 21. 13:33


조용히 발매된 일빌의 새 앨범. 조용하긴 하지만 솔직히 지금 나를 포함한 일빌 팬들 사이에선 앨범 대박이라고 서로 막 인사하고 친분 맺고 난리다. 솔직히 이런 앨범 이렇게 가만히 앉아서 듣고 있으면 아 세상 머있어 그냥 이런 신나는 음악 들으면서 즐겁게 사는 거지 뭐 이런 생각을 들게 해주기 때문에 음악은 참 좋은 것이다. 


일단 자켓부터 보자. 미국의 역대 연쇄살인마 찰스 맨슨과 데이빗 버코위츠가 맞장을 뜨는 사진이고 피범벅에 예의 일빌의 붉은 로고를 떡 하니 박아놨다. 진심으로 가슴에 손 얹고 참 일빌스럽다. 너무 일빌스러워서 오히려 일빌이 아닌 것 같다 (뭔 소리니 또). 


제목은 또 뭐냐 셉타그램? 일빌의 음악을 꾸준히 들어온 팬이라면 알겠지만, 자기가 살고 있는 세상이 더럽다는 걸 표현하는 방법으로 여러 아티스트들이 제각기 자기 스타일로 그걸 표현하는데 일빌은 항상 음모이론과 기호론, 그리고 사타니즘을 끌어다가 세상이 더럽다는 걸 얘기한다. 항상 피범벅에 알수 없는 기호와 사탄의 이미지들을 앞세우는데 그렇다고 일빌이 무슨 사탄 숭배자는 아니고, 오히려 그 반대로 좆같은 세상이 다 이렇게 일루미나티와 사탄이 만들어놓은 음모와 기호로 굴러간다고 생각하는 게 일빌이 기본적으로 같고 있는 아티스트적 모티브다. 


자 이제 음악 얘기하자. 일빌이라는 아티스트가 생긴 것과 다르게 항상 들을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참 영리한 게 어떻게 해야 멋진 곡을 쓸 수 있고, 팬들이 원하는 스타일의 '한곡'을 완성할 수 있는지를 참 잘 아는 사람 같다는 거다. 지난 번에 howie made me do it 3 컴필레이션 앨범을 들으면서 난 진짜 귀에서 피가 났는데, 1시간이 넘게 존나게 하드코어로다가 귀를 혹사당하면 그 피로감을 넘어선 괴로움에 좋던 음악도 다 날라간다는 사실을 인지한 듯, 이번 앨범은 참으로 참으로 간결하게 진짜 알짜배기, 진짜 하드코어라는 단어 자체의 의미처럼 딱 '정수'만 딱 뽑아서 28분 정도로다가 완전히 쫙 압축해봤다고 할까? 이게 진짜 웃긴게 진짜 무슨 후라이팬에 놓고 바짝 조린 요리같다. 러닝 타임이 살인적으로 짧지만 절대 ep로 들리지 않고 정규앨범으로 들리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또 하나 이 앨범이 놀라운 점은 구성 자체도 기가 막히다는 건데, 적절하게 분위기 몰이를 하는 음산한 느낌의 스킷을 적재적소에 배치시켜 놓고 (비니 패즈와 함께한 heavy metal kings 앨범에서 실패한) 강약 조절을 정말 신기에 가깝게 해봤다는 거다. 느릿느릿하게 최면을 거는 느낌의 곡 전후로 머리를 꼳아 박는 붐뱁을 배치시킨 다음 다시 싸이키델릭하게 가고.. 뭐 이런 식 말이다. 도무지 지루할 틈이 없고, 앨범을 들으면서 이런 느낌 정말 오랫만인데, 하루 종일 이 앨범만 돌리고 싶을 지경이니 말 다했다. 


랩은 또 어떤가. 오랜 동료 고어텍스와 큐 유닉이 대부분의 휘쳐링에 참여했는데 일단 이 게스트들의 네임밸류부터가 그 옛날 non phixion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그 자체로도 일빌의 어떤 '초심' 비스무리한 감성을 공유할 수 있겠는데, 긴 벌스를 하나씩 뱉고 끝나는 식상한 구성에서 탈피해서 대부분의 곡들이 짧은 벌스를 서로 주고 받는 구성으로 해놨기 때문에 곡들 하나하나가 참으로 다이나믹 하다. 큐 유닉과의 기가막힌 콤비 플레이를 보여주는 getcha shit together와 manson vs berkowitz의 그 겉잡을 수 없는 '흥'을 거부할 수 있는 이는 단언컨대 없다. 


모든 곡 하나하나가 전부 베스트곡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 앨범의 특히 정중앙에 자리 잡은 septagram과 manson vs berkowitz는 그 중에서도 백미인데, 앨범 자체의 컨셉과 주제 의식을 함축하고 있기도 하지만, 사운드적으로도 대단한 것이, 예전 고페킬 앨범부터 간간히 비니 패즈와 일빌과의 작업을 통해 눈여겨봐왔던 프로듀서인 MoSS가 만든 septagram의 비트는 그냥 그 곡을 그대로 들고, 타임머신 타고 96년 뉴욕의 언더그라운드 클럽에다가 틀어놔도, "오! 이곡 비트 죽인다! 누가 프로듀서했어? 야 벅와일드 저리 가란데?"의 평가를 받을 수 있을 정도의 도프함을 보여주고 있고, 이어지는 manson vs berkowitz는 c-lance가 만들었는데 예전부터 비니 패즈 음악 들으면서 shuko 잘한다고만 생각했지 c-lance는 shuko에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aotp 앨범 간간히 만들면서 점차 비트의 퀄리티가 높아지더니, 이 곡에서의 c-lance가 들려주는 붐뱁 비트는 아 정말... 듣고 은혜받아 천국가는 느낌이랄까? (너무 흥분하면 만연체가 되는 버릇 죄송) 


서로 인사하고 친목 주고 받은 일빌 팬들 사이에서의 공통된 평이 하나 있는데 이 앨범의 유일한 단점은 '지독히 짧은 러닝타임'이라는 것에 어느 정도는 동의하지만, 그 만큼 일빌 자체가 이번 앨범은 힘을 빼고 만들었다고 이해할 수 있고, 그걸 역으로 생각하면 힘을 뺐다고 해서 그게 무슨 믹스테잎이나 컴필레이션 같이 만든 게 아니라, 분명히 '정규 앨범'의 컨셉트와 퀄리티로 만들었다고 나는 확신한다. 아까도 말했듯이 군더더기를 완벽하게 제거하고 정말 '정수'만을 담아낸 장인의 걸작이랄까? 긴 말 필요없다. 밑에 보이는 (일빌이 친히 리트윗한) 내 트윗이 딱 내가 생각하고 있는 이 앨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