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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rston Moore [Demolished Thoughts] (2011, Matador)

tunikut 2016. 6. 5. 15:56


muro가 mix cd 내는 횟수와 거의 맞먹을 정도로 정신나가게 앨범을 발표하는 떨스턴 무어형에겐 '몇번째 앨범'이라는 칭호는 매우 무의미하고 그냥 '흘러가는' 디스코그래피상에서 유니크하게 이런 앨범 저런 앨범 정도로 얘기하는 게 가장 적합할 것 같은데, 마침 '흘러가는'이라는 표현 잘했다싶은 게 이 앨범 역시 매번 들을 때마다 느끼는 건 앨범 전체가 참 '흘러가는' 듯한 느낌을 준다는 거다.


앨범에 역사적 배경을 운운하는 건 살인적으로 싫지만, 사실상 이 앨범이 발표된 시기는 무어가 고든과 헤어지냐마냐 하던 때여서 그런지 몰라도 앨범 내내 '그녀'를 향한 복잡한 심경을 담고 있어 그녀를 붙잡기도 하고 놓치기도 하고, 뉴욕 맨하탄의 오차드 로드의 정경을 그리기도 하고 특히나 마지막곡 january 가사를 보면 좀 가슴이 찡해지기도 하는데, 집에 있는 수영장 앞에 신발이 놓여있고 분명히 그녀의 웃음소리를 들었고 등등.. 막 연인을 잃은 남성의 기억의 무의식적 흐름속에 같이 빠져들게 만들어버린다.


beck이 프로듀스를 맡아서 그의 스타일 대로 어쿠스틱 포크쪽으로 흘러갈 뻔(!) 했지만 무어형 (나한테 트렌트 레즈너는 '대왕님'이고 무어는 그냥 '형'이다)이 그걸 잘 조절해서 앨범이 참 전체적으로 멋들어지게 추상적으로(!) 뽑아졌는데 (가끔씩 균형을 잃고 blood never dies 같이 목소리만 beck으로 바꾸면 완전 beck 곡이 돼버리는 곡도 있지만), 말했다시피 '어쿠스틱'을 사용했다고 해서 앨범이 '편하고 듣기 쉬운' 앨범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앨범이 '흘러간다'고 앞서 얘기했는데 전체적으로 '노래'의 비중보다 '연주'의 비중이 70%여서, 앨범이 처음부터 쭈욱 무어의 어쿠스틱 기타와 사마라 루벨스키의 애수어린 바이올린 연주를 토대로 시냇물 흐르듯이 흘러가는 가운데 이따금씩 무어의 노래가 마치 시를 읊듯이 전개되는 형태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 고로 집중해서 듣지 않고 딴생각하면서 들으면 자칫 지루해서 잠에 빠질 위험이 있으나, 반대로 눈을 감고 초집중해서 그 감성에 푹 빠져버리면 이 앨범 만큼 멋진 앨범이 없다.


처음 들으면 귀에 착 붙는 benediction이나 blood never dies가 잘 들리겠지만, 반복해서 듣다보면 circulation의 (제목처럼) 곡 말미에 미친듯이 반복되는 어쿠스틱 기타와 beck이 연주하는 신디사이저가 주는 몽환의 향연이 주는 아찔함이 너무 어지러워서 거의 악몽을 꿀수 있을 정도로 일품이고, orchard street의 종반부에 거의 '어쿠스틱 노이즈'라 할만한 무어 특유의 불협화음이 점차 고조되는 드론을 이루면서 곡 끝에는 훼이드 아웃되는 무슨 열차 신호등 소리같은 게 등장하면서 청자를 더더욱 깊은 혼란속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끝도 없이 흘러가듯이 반복되는 무어의 어쿠스틱 기타 소리가 묘한 신디사이저 우주음과 어우러져 마치 앰비언트처럼 들리는 space 역시도 그 감성이 주는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다. 하물며 맨 마지막곡 january는 마침내 그 본성을 드러내듯이 잔잔한 어쿠스틱으로 끝나는 '듯' 하다가 불길한 신디사이저음의 텐션으로 끝내버리는 반전을 안겨준다. 이 앨범? 결코 편하지 않다.  


반복해서 들었을 때, 그리고 들으면 들을 수록, 앨범이 담고 있는 허무와 추상과 절망과 그리움과 회상과 상처를 아주 가슴 깊이 느낄 수 있는 묘하게 매력적인 앨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