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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ec Empire [Hypermodern Jazz 2000.5] (1996, Mille Plateaux)

tunikut 2016. 5. 29. 08:56


맨날 이 블로그에 알렉 엠파이어 좋다 아타리 틴에이지 라이엇 좋다 어쩧다 생난리를 치면서 정작 관련 포스팅은 거의 이게 처음인 것 같은데 이런 걸 보면서 사람의 마음과 행동이 얼마나 다른지 다시 한번 느껴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솔직히 아타리 틴에이지 라이엇이 서글픈 사정으로 한동안 공백기를 가졌다가 이즈 잇 하이퍼리얼?로 컴백한 이후로 지금까지 계속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데 물론 아타리 음악도 나름대로 의미가 깊고 좋지만 솔직히 알렉 엠파이어 본인이 보여줄 수 있는 능력치의 1/3 정도밖에 발휘하고 있지 않다는 느낌이 드는 건 이런 초창기 솔로작들을 들어보면 단박에 알 수 있다 마치 런더쥬얼스도 좋지만 엘피가 본인이 보여줄 수 있는 능력치의 1/3밖에 안보여주고 있다는 느낌은 엘피 솔로작들을 들어보면 알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랄까.


mille plateaux라는 실험 전자 음악 레이블에서 발표한 알렉 엠파이어의 솔로작들은 하나같이 주옥같다고 할 수 있는데, 오늘 들고 나온 이 앨범은 거기서 3번째로 낸 앨범으로, 제목에서 느껴지다시피 재즈를 기본 모티브로 알렉이 독짓는늙은이장인정신으로 찍어낸 비트를 잘 버무려 이쁘게 가꾼 앨범이라 할 수 있겠는데 막상 들어보면 그게 아니라 듣는 내내 입을 쩍쩍 벌리고 손을 쭉쭉 뻗고 신체를 앞뒤 운동하게 만들면서 청자를 무슨 미친놈화 시켜버리는 놀라운 앨범이다.


첫곡 walk the apocalypse부터 세상에 태어나서 난 이런 비트 처음 들어보는데 재즈의 기본 정신인 임프로비제이션을 비트에 응용해 '기본 리듬'이라는 게 없이 마구잡이로 bpm이 바뀌는 무슨 상대 가리지않고 흔들어대는 (목적어 없음) 난봉꾼같은 비트가 등장하면서 거기에 자기도 어떻게 한몫 하겠다는듯 신디사이저도 옆에서 질서 없이 마구 흔들어대는 진정한 개망나니곡이라 할 수 있겠으며, 이 앨범 최고의 곡이자 조금만 과장하면 내 인생곡 목록에도 어쩌면 낄 수 있을지 모를 두번째 곡 god told me how to kiss는 내가 세상에서 제일제일제일제일 좋아하는 밍기적거리는 비트에 재수없이 반복되는 묵직한 전자음이 주는 몽롱한 느낌도 죽겠는데 거기에 전화 목소리를 샘플링으로 넣어서 분위기를 더더욱 아방가르드하고 황량하고 황당하게 만드는 정말 죽을 것같이 멋진 곡이다.


전제적으로 분위기가 딱 90년대 중후반 비트씬의 그 횡한 느낌이 가득한데, 이 앨범이 재즈를 기반으로 했음을 알 수 있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다운템포식의 변태적인 비트들이 메우고 있지만, 그 비트들의 뒤에서 앨범의 처음부터 끝까지 좆나게 받쳐주고 있는 사운드들은 전부 건반음이나 혼의 임프로비제이션을 응용한 것들인데, 이것들은 내 생각에 샘플링을 했다기 보다는 알렉 본인이 직접 리얼 연주를 했다는 생각이 드는데 왜냐면 사운드들이 약간 병신같기 때문으로 대표적으로 곡 제목부터 불쌍한 many bars and no money에서 다운템포 칠링 비트에 맞춰 알렉이 직접 연주하는 듯한 올갠음이 왠지 세련됐다기 보다는 좀 불쌍해보이기 때문이다. 진짜 무슨 돈없어서 징징대는 사운드랄까. 돈이 없어서 징징대다가 다음곡은 아예 자포자기해버리는 제목의 my funk is useless인데 제목만 저렇지 완전 useful한 파워비트에 즉흥연주를 연상시키는 불규칙한 베이스음에 후반부에 신디사이저를 미친듯이 마치 3살 짜리가 무질서하게 두들겨대는 듯한 연주가 일품인데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끝날 무렵에는 비트도 그냥 막 뭉게버리는 진정 정신나간 곡이라 할 수 있겠다. 이 앨범에 담긴 비트들은 알렉 엠파이어색이 짙게 깔려있는데 무슨 얘기냐면 똑같은 다운템포 비트를 찍어내도, 알렉이 원래 잘하는 장기인 드릴앤베이스에서 착안했을 무슨 비브라토같이 가볍게 떨리는 비트를 이용해서 앨범에 전체적으로 '퓨쳐리즘'적인 느낌을 많이 냈다는 거다 (허비행콕의 퓨쳐 투 퓨쳐 들어본 사람이라면 무슨 소리인지 알 것임). 짤막한 인터루드 트랙 the unknown stepdance도 짚고 넘어갈 만한데, 이걸 뭐라고 하지 무슨 묵직한 베이스 비트같은데 우퍼를 둥둥 울리는 듯한 비트 단 하나만을 이용해서 마치 탭댄스를 추는 것같이 짤막한 소품을 만들어냈는데 이 곡을 가만히 듣고 있자면 이 비트만을 이용해서 앨범을 처음부터 끝까지 즉흥 연주로 노이즈 앨범을 만들어도 꽤나 멋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재즈를 기반으로 한 브레익비트-다운템포라고 해서 무슨 디제이 크러쉬 초창기 음악이나 구루 1집처럼 재즈 힙합을 연상해서는 절대 안되며, 오히려 재즈와 일렉트로가 결합한 퓨쳐재즈 스타일에 더 가까운 음반이라고 할 수 있겠고, 자꾸 앨범 리뷰에 재수없다 난봉꾼같다 변태적이다 개망나니다 병신같다 이런 얘기를 해서 혹시나 오해를 하시는 분이 있을 수 있겠으나 그 키워드들이 내가 이 앨범을 최고로 칭찬하는 방법이다. 완전 사랑한다 이 앨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