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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ne Inch Nails [The Fragile] (1999, Interscope/Nothing)

tunikut 2016. 5. 8. 10:46


사실 이 앨범은 내가 한동안 힙합만 위주로 듣다가, 본격적으로 그놈의 백인 4인방 (리차드디제임스, 트렌트 레즈너, 알렉 엠파이어, 떨스턴 무어) 음악에 쩔기 직전에 시발점이 된 앨범으로, 익히 레즈너의 음악에 익숙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뭐 쎄겠지만 뭐 그렇게나 쎄겠어? 라고 볼륨 이빠이 올리고 노스 캐롤라이나의 자그마한 그린빌 공항 벤치에서 플레이했다가 somewhat damaged 앞부분부터 레즈너가 거의 꽤애애애애액거려서 으헉, 쎈데 하고 볼륨을 살짝 줄이는 소극적인 모습을 보인 앨범이다. 


이 앨범 역시나 밑에 나스트라다무스처럼 레즈너 디스코그래피에서 상당히 약한 앨범으로 취급받는 앨범이지만, 역시나 막귀 ('똥귀' 표현은 자제중)인 나로서는 꽤나 좋아하는 앨범이고, 이걸 주구장창 플레이하면서 노스 캐롤라이나에서 달라스 공항으로 이동해서, 달라스 공항에서 장장 9시간 이상을 올나잇 지새우면서 그 텅빈 공항에서 에이펙스 트윈의 드루꾸즈 앨범과 함께 내 친구가 되어준 고마운 앨범이기에 더 그렇다. 가뜩이나 잠 한잠 못자고 텅빈 공항에서 이 앨범을 '무려 가사와 함께' 경청하다가 그 말로 표현못할 먹먹한 서사에 두 장 짜리 앨범의 마지막 트랙을 듣고 오.. 약간 멍~했던 기억이 나는데 그 멍~함이 앨범이 인상적이어서 멍~했던 건지 잠을 못자서 멍~했던 건지는 조금 헷갈리지만 전자 땜에 멍~했던 거라고 해두자. 


약빨았니? 라는 말을 종종하는데, 이 앨범이야말로 레즈너씨가 제대로 약빨면서 만든 앨범인데 약빤 앨범 치고 나쁜 앨범 별로 없다는 건 에미넴의 앙코르 빼고는 별로 못봤던 듯 싶고, 가히 나인인치네일스, 아니 트렌트 레즈너의 전체 디스코그래피에서 제일 우울한 앨범이라 할 수 있겠다. (사운드적인 측면 말고 전체적인 서사에서 말이지) 오죽이나 우울했으면 피치폭에서 그만좀 징징대라고 2.0을 줬겠나. 전체적인 서사나 구성은 전 앨범 downward spiral을 약간 카피한 느낌이 드는데 downward spiral이 존나게 세상을 향해 용두질치다가 끝에 싸고 몸이 소세지로 갈리다가 결국 그래 나 이제 기운낼께.. 하고 해피엔딩으로 끝난다면 이 앨범은 거의 의심없이 아무런 고민없이 그냥 자신의 생명을 절단내버리는 최악의 새드엔딩이라 할 만하다. 


앨범을 듣다보면 피치폭 리뷰에서처럼 진짜 지겨울 정도로 앨범 내내 레즈너는 징징대는데 가만히 그 느낌을 따라가보면 '뭔가를 무지하게 그리워하는' 정서를 느낄 수 있으며 그건 아마도 당시에 운명을 달리한 레즈너의 primary caregiver였던 할머니를 향한 것일 수도 있을 것이고, 당시 약물과의 사투에서 나오는 withdrawal일 수도 있겠다만 뭐 그건 그닥 중요치 않다. left cd에서 내내 징징대다가 결국 그래 나 저 바다로 몸을 던져버릴 거야 그러면서 서정적인 la mer에 이어 진짜 가슴 저리게 우울한 발라드 the great below에서 바다로 몸을 던지는 장면은 꽤나 인상적이며, 곧바로 right cd의 the way out is through에서 마치 물속에서 꾸물텅꾸물텅 가라앉다가 갑자기 (에미넴 not afraid 뮤비에서처럼) 몸이 초인화돼서 수면 위로 솓구쳐 오르는 듯한 상황극이 주는 드라마틱함도 멋지다. 그렇게 살아나와서 막 다시 사람들과의 관계를 시작해보기도 하고 starfuckers, inc처럼 디스도 좀 해보고 하다가 에이 그래도 이건 아냐, 난 그냥 (죽은) 너의 곁으로 다시 갈래.. 하고 underneath it all의 종말부에 난 여전히 널 느껴.. 막 그러면서 목소리가 껌뻑껌뻑 나오다가 사라졌다가 하다가 이내 훼이드 아웃되면서 결국 ripe (with decay)에서 시체가 돼가지고 몸이 썩으면서 파리가 앵앵거리면서 끝나는 부분은 상당히 비극적이고 참혹하면서 드라마틱하다. 


서사도 멋지지만 하나하나 멋진 곡들도 많다. 누군가를 굉장히 그리워하는 느낌을 가장 강하게 던져주면서 딱 듣자마자 귀에 친숙하게 박히는 멜로디가 좋은 we're in this together는 상당히 훌륭한 싱글이며, 난 진짜 nin의 시그너쳐사운드라고 무방할 그 뭐시냐 귀를 자극하지 않는 얇은 노이즈를 이용한 전자음으로 접붙이기 하는 식이 너무 좋은데 예를 들면 no, you don't가 끝나기 직전에 살짝 등장하는 그 노이즈나, where is everybody? 곡 전체를 이끌어가는 그 얇은 전자음 베이스라인 말이다 (필시 el-p가 영향을 받았을 듯함). 나로 하여금 불륨을 줄이는 말도 안되는 소심함을 보이게 했던 오프닝 트랙 somewhat damaged 역시나 조용한 어쿠스틱으로 시작해서 개지랄로 향하는 고조되는 분위기가 일품이며, 나인인치네일스가 개지랄도 하지만 사실 개지랄은 nin 사운드의 핵심이라고는 볼수 없고, 내가 그 어릴적 nin을 가장 최초로 접했을 때 느꼈던 피아노 건반음 위주의 느릿느릿하고 오컬트적인 분위기가 어떻게 보면 더욱 nin의 핵심사운드라고 할 수 있는데 이를테면 the wretched, the day the world went away 같은 곡들이라 할 수 있겠다. please 같은 곡의 인트로는 사실 nin/reznor의 아주아주아주아주 전형적인 사운드라서 도대체 뭐가 레즈너의 아주아주아주아주 전형적인 사운드인지가 좆나게 궁금하면 저 곡의 인트로를 한번 들어보기 바란다. 


뭐 글쎄다. 그닥 대접받는 앨범은 아니지만 나같은 경우 노스 캐롤라이나-달라스 공항에서의 추억이 있기에 이 앨범을 더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암튼 레즈너가 제일 약빨고 할머니도 여의고 아주 그냥 밑바닥 구렁텅이에서 허우적거리면서 만든 유일한 앨범이라서인지 암튼 암튼 모르겠다 좋다 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