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nikut's Cultural Paradi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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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ent Reznor [Quake] (1996, Id Software)

tunikut 2016. 5. 29. 13:19


정말로 쓰고 싶었다 이 리뷰.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 리뷰를 쓰기까지. 나는 nin을 좋아했다. 그리고 내 음악적 취향이 슬쩍 바뀔 무렵 어렴풋이 트렌트 레즈너가 퀘이크의 게임음악을 맞는다는 소식이 들렸지만, 난 음악을 듣길 포기했다. 왜냐면 난 그때까지만 해도 그 음악이 너무 궁금했지만, 그 음악을 들으려면 어쩔 수 없이 게임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어서, 난 음악을 '감상'하고 싶었던 거지 음악을 듣기 위해 게임을 '해야' 할 필요성을 못느꼈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렇게 수만년이 흘렀다. 난 한동안 이 퀘이크 사운드트랙에 대해 잊고 있었다. 근데 이게 왠걸. 이 cd-rom을 구입하면 그냥 씨디플레이어에서 음악 듣듯이 레즈너 대왕님이 만든 음악을 '감상'할 수 있다는 소식을 듣고 정신착란 상태에서 빠져 식음을 전폐하고 피골이 상접한 상태로 얼른 아마존에서 이걸 (운좋게도) 신품으로 주문해버렸다. (참고로 다른 데서는 무척 구하기 힘들고 아직 아마존에 신품 재고 1-2개 정도 있는 것 같으니 관심 있는 분은 서두르시길)


난 이 음악을 그냥 감상하지 않았다. 그냥 멍하니 방구석에 앉아 벽 바라보고 이 음악을 들으면 왠지 이 음악의 정취를 못느낄 것 같았다. 뭔가. 뭔가. 뭔가. 이 '퀘이크'라는 게임의 전체적인 테마를 좀 알고, 그 '기'를 받으면서 들어야 제맛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난 '게임치'다. 게임을 정말 못한다. 그치만 게임을 느끼고 싶었다. 고민 끝에 좋은 방법을 찾았다. 유투브에서 이 퀘이크 1탄 게임 동영상을 플레이하고, 소리를 뮤트로 한 다음에 그 화면들과 함께 이 씨디를 플레이하는 방법이었다. 그 결과는? 대성공 대만족이었다. 싱크로가 엄청났다.


트렌트 레즈너는 진정한 천재다. 이 음반을 들으면서 난 진짜 진짜 깨달았다. 그는 진짜 천재라는 걸. 이 게임음악을 만들 시기는 그가 지금처럼 영화음악가로 점잖게 대접(?) 받던 시기도 아니다. 한창 완전 개미친놈상태였을 때다. 근데 그의 손을 거쳐 나온 이 음반에 담긴 음악은 정말 완벽하게 이 게임의 테마와 '기'를 듬뿍 담고 있는 정말 말도 안되는 완벽한 사운드트랙이었다. 아 진짜 울고싶다.


자 일단 시작하면 좀 시시하다싶게 느껴질 정도의 전형적인 노이지한 인더스트리얼로 몰아치는데 이 시시하고 '유치함' 자체가 '게임'에 잘 어울린다는 거다. 무슨 소리인지 알간? 뭔가 아동틱한 인더스트리얼 노이즈랄까? 완전 개천재 아니냐? 우리가 메탈 기어 솔리드 음악 들으면 그 왜 음악이 되게 좋으면서도 게임-아동틱한 느낌 나지 않나. 그 느낌을 그대로 nin 스타일로 살렸다는 거다. 자 하여튼. 그렇게 몰아치는 짧은 오프닝이 끝나고 이제 진정 본격적인 사운드트랙으로 들어가는데.. 괴실험 후에 괴바이러스에 감염돼서 한참 난리가 나는 광경을 휘몰아치는 인더스트리얼로 한번 딱 때려주고, 끝에 비명소리와 함께 페이드 아웃 되며 이제 컴컴하고 사람 다 죽은 황량한 도시로 바뀐다. 지금부터 레즈너가 들려주는 사운드들은 '음악'이라고 보기도 어려우며 그냥 아주 아주 쉽게 한마디로 딱 얘기해서 '지옥의 소리'이라고 하면 되겠다.


자 이제 괴물들을 쳐부수려 주인공이 무기를 들고 게임을 시작한다. 2번 트랙이 주는 느낌도 아주 특이한데, 여백을 충분하게 두고, 조용한 가운데서 불길하게 반복되는 전자음이 주는 느낌이.. 뭐냐면 그 왜 되게 무서운 흉가에 들어갔는데 조그마한 방에 들어가서 문을 다 닫고 불을 환하게 키고 앉아 있으니 뭔가 진짜 불길하고 너무너무 진짜 무서운데, 역설적으로 의외로 뭔가 따뜻하고 편안한 느낌이 순간적으로 들 때의 그 느낌이랄까. 암튼 그런 느낌을 준다. 뭐 어쨌든 결론은 무섭다는 얘기다. 그 다음 3번으로 가면 이제 상황은 주인공의 시각이 아니라 괴물들의 공간으로 바뀌어서 괴물들끼리 수군수군거리고 꾸루룩거리고 뭐 지들끼리 대화를 하는 건지 먹이를 먹는 건지 지들끼리 잡아 쳐먹는 건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반복되는 간결한 신디사이저음과 함께 아주 괴상하고 불길한 상황을 보여주고 있으며 점차적으로 고조되면서 중후반부에는 레즈너 특유의 노이즈가 등장하면서 제대로 (사람인지 뭔지를) 잡아 뜯어먹는 소리가 나타난다 (소름). 4번 트랙 다음으로 멋진 트랙임.


이어지는 4번은 이 앨범에서 내가 최고로 꼽는 곡으로 진짜.. 아 정말 이 느낌을 어떻게 묘사할까. 묘사하기도 벅차다. 자 암튼 4번에서 다시 주인공의 시점으로 바뀌면서 아주 깜깜하기 그지없는 곳을 해매기 시작한다. 아주 칠흙같이 어두운, 어디가 벽이고 어디가 길인지도 모르겠는, 아니 이 곳이 실내인지 실외인지도 구분이 안가는, 그 아주 깜깜한 곳을 주인공은 총 하나를 들고 식은땀이 가득한채 걷고 있다. 발에는 시체인지 죽은 괴물인지 가끔씩 밟히기도 한다. 사방에는 자욱한 먼지가 눈을 찌르고 목구멍을 자극한다. 이 깜깜한 사방에서도 엷게 빛나는 누런 빛의 자욱한 먼지는 볼 수 있다. 가끔씩 어디선가 들려오는 비명 소리. 사람의 소리인지 괴물의 소리인지 구분도 안간다.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깜깜한 벌판. 제발 여길 벗어나고 싶지만, 도저히 사방에 아무것도 안보이고, 자꾸만 반복되는 지독한 어두움과 공포 뿐. 아 제발.. 그만 이제 벗어나고 싶어.. 그러면 한번 더 휘몰아쳐주고, 그만 이제 그만.. 그러는데 또 한번 휘몰아치고.. 이제 정말 죽을 것 같아.. 이제 그만 그만.. 그러는데 또 한번 휘몰아쳐주고.. 이런 식 말이다. 오케이?


이후의 트랙들 역시 마찬가지의 맥락을 보인다. 예를 들어 이어지는 5번 트랙에서는 주인공의 거친 숨소리를 극명하게 보여주는가 하면, 순차적으로 이어지는 트랙들에서도 불길한 효과음과 이따금씩 불규칙적으로 등장하는 알수 없는 소리들 (이를 테면 총쏘는 소리, 발자국 소리, 문을 열었다 닫는 소리 등등)이 반복되며 청자를 계속해서 깊은 텐션에 빠지게 만든다. 앞선 트랙들이 워낙에 강력한 이펙트를 날려줘서 중후반부에는 그야말로 지독히 어두운 앰비언트만 롱테이크식으로 반복돼 다소 지루한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수면용으로도 왓다다), 여하튼 당시 최고 미친놈상태였던 트렌트 레즈너가 한편으로 자기가 갖고 있는 악기들로 이런 가공할 만한 사운드트랙을 만들었다는 점은 정말 박수를 쳐줄만하다.


결론! 아까 얘기한 대로 이 음악을 듣기 전에 먼저 퀘이크의 기본 스토리를 알고 난 다음, 유투브 게임 동영상과 싱크로 시켜서 이 앨범을 한 두번 돌리자. 그리고 방에 불을 끄고, 눈을 감고, 음악을 들으면서 이 음악들이 안내하는 상황 속으로 막 상상의 나래를 펴보는 거다. 존나 개무서우면서 제대로 이 분위기를 느끼다가 아마 잠이 들 거다. 그리곤 악몽을 꿀 수도 있다. 다시 한번 말한다. 지옥의 소리. 어떻게 도대체 어떤 악기를 써서 이런 묘한 사운드 효과를 낼 수 있는 건지. 트렌트 레즈너. 그의 음악적 능력이 경외스럽기만 하다. 진정한 음악 천재, 음악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