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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oul [Long Term: The Mixtape] (2009, TDE)

tunikut 2016. 3. 16. 12:55


누가 앱-소울 (dash 잊지 말자) 따위의 데뷔 믹스테잎 따위에 관심을 가지냐고 묻는다면 죽빵을 한데 날린 다음에 곧바로 내 학창 시절 얘기를 들려주려고 하는데 한 교수님이 수업 시간에 "여러분 날씨도 덥고 너무 지치고 피곤하죠 너무 쉬고 싶죠..." 그런 다음에 학생들이 풀 죽은 목소리로 "네에..." 그러면 곧바로 "그럴 수록 더 열심히 해야돼!" 라고 자체적 악마성을 보인 것처럼 나 역시도 이렇게 abandoned 앨범들일 수록 그럴 수록 열심히 듣고 더 열심히 포스팅 해야돼! 정신을 살리려고 한다. 


앱-소울의 팬을 자처하고자 한다면 이 믹스테잎은 반드시 반드시 들어봐야 할 이유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추후 발매되는 앱-소울의 앨범들에서 흔하게 나타나는 그의 정체성, 그가 왜 맨날 롱텀! 롱텀! 그러고 아직도 시대가 바뀌어 2016년이 됐는데도 long term 3 mixtape을 계획중이라고 하고 도대체 그놈의 롱텀에 담긴 의미가 뭐고, 왜 맨날 앱솔루트! 그러지 않으면 솔로! 솔로! 뭐 블랙 립 배스터드! 라고 하는지, 어떻게 해서 ab-soul이라는 이름이 탄생했는지 어떻게 커리어를 시작했고 어떻게 punch하고 계약을 맺었는지 등등 여기 그것들이 여기 다 나오기 때문이다. 답은 안갈켜 준다. 


앨범 끝부분의 스킷에서 그가 언급하듯이 자신의 음악은 'human music'이라고 (이때 앱-소울 발음이 마치 "휴면 뮤직" 처럼 들려서 반쯤 졸린 상태에서 들으면 뮤슨 라면뮤직 뭐 이렇게 무슨 새로나온 라면 이름인가? 이렇게 들리기도 하니 조심) 하는데 이 데뷔 믹스테잎의 가장가장가장 중요한 특징이면서 앱-소울을 꽤나 사랑스럽게 만드는 요소가 뭐냐면 그의 힘을 쫙! 뺀 가사들이다. 이건 무슨 진솔하다못해 얼마나 청아하고 투명한지 듣다보면 내가 음악을 듣는건지 아침이슬을 머금고 있는 건지 정신착란을 일으킬 정도다. regular ni**a는 이 측면에서 거의 끝판왕 수준인데 "너넨 쓰리썸을 한다며? 난 그냥 차뒷좌석에서 한명하고 하는 게 좋아. 너넨 총을 쏜다며? 난 농구에서 슛을 쏴. 너넨 마약을 판다며? 난 그냥 평범한 직업을 찾고 있어. 난 아주 평범한 녀석이야." 무려 막 이런다. 켄드릭 라마가 하이프맨 역할을 하는 (뮤비도 나온) day in the life는 앨범 내 베스트 트랙 중 하나인데 여기서도 아주 뭐 막 멋있게 뭐 막 할 것처럼 그러다가 끝에가서는 "뭐 이러이러 하다가 결국 아무 것도 못했네" 식의, 무한도전에서 가끔 나오는 90년대식 개그 "우왕우왕우왕우왕왕왕왕왕"이런 효과음이 어울릴 법한 괜시리 청자로 하여금 피식거리게 만드는 해학적 분위기는 일품이다. 100 yard dash는 또 어떤가. 막 공격적으로 threatening하는 가사들 끝에서 "사실 난 파리도 못죽여" 그러면서 또 "우왕우왕우왕우왕왕왕왕왕" 이런 상황을 만든다. 가사들은 또한 굉장히 introvert하는 그의 찌질한 면모들을 많이 보이는데 (이 찌질함은 그의 long term mixtape 2에서 더욱 잘 드러난다. 추후 쓸 테니 기다리길) studio life에서는 자기는 밖에도 잘 안나가고 그냥 스튜디오에서 음악만 만든다고 하고, 앨범 내 끝곡 solo 역시 친구들이 있지만 그냥 다 so so 여서 혼자 하는 게 좋다고 한다. (이건 무슨 에반게리온 신지의 tde 버젼 같다) 


그렇지만 앱-소울이 대단한 건 이런 진솔한 가사 뿐만은 아니다. 안 그럴 것 같지만 이 앨범 전체를 꽉꽉 채우고 있는 워드플레이나 펀치라인들은 실로 대단하며, 언급했던 day in the life는 아예 곡 전체 가사가 전부 펀치라인으로 이뤄져 있어 (천하의) 케이닷이 앱-소울의 bar가 끝날 때마다 옆에서 잼잇어서 웃어재낀다. 천하의 켄드릭 라마가... 추후에 앱-소울 앨범들 포스팅하면서 또 다루겠지만, 내 생각에 tde에서 켄드릭 라마가 컨셔스하고 드라마틱한 가사와 앨범 자체를 아트로 승화시키는 재주가 있어서 그렇지 단순히 '랩 가사'의 측면으로 본다면 단연코 앱-소울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암튼 그렇고.. 믹스테잎이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유기성이 떨어지는 사운드의 위용을 자랑하고 있으며, 켄드릭 라마와 재기발랄하게 랩을 주고 받는 curtiss king(!) 프로덕션의 watch yo lady 같은 경우 킬러 트랙으로 작용하기에 충분하고, 100 yard dash, i'm a g (스쿨보이 큐 피처링이 돋보임), 그리고 보너스 트랙들인 the notch (무려 MF DOOM 프로덕션)나 distortion 같이 지금의 앱-소울 음악과는 차이를 두는 퓨어한 하드코어 언더그라운드 붐뱁 트랙들도 있으니 체크 바란다 (하긴 드레이크도 초기 믹스테잎에서 j dilla나 slum village 비트들 가져다 랩 했으니 뭐).  


뭐 앨범의 퀄리티가 뛰어나다거나 명반이라거나 그래서가 아니고, 그냥 앱-소울을 좋아한다면 이 글 한번 읽어보고 한번 들어보시라. 꼭 가사랑 같이. 적어도 앱-소울이라는 랩퍼가 기본적으로 어떤 캐릭터를 가진 랩퍼인지, 어떤 색깔을 보이는 랩퍼인지 파악하는데 아주 좋다. 앱-소울에 관심이 없거나 팬이 아니라면? 패스해도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