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nikut's Cultural Paradise

favorite movies

홍상수 [강원도의 힘] (1998)

tunikut 2016. 3. 6. 05:24



이 영화가 은근히 강원도 다큐 생각나게 하는 제목이 극혐이라 잘 안보게 만드는 묘한 힘을 가지고 있다보니 나 역시도 홍감독님 영화를 즐기면서도 이걸 오랫동안 미뤄왔었는데 어제 이거 보고 왜 이 영화가 홍상수 감독님의 최고작으로 주로 꼽히는지 알 것 같았다. 홍상수 감독님의 영화는 거의 아예 대놓고 '남성관객'을 노린 것 같다는 생각이 거의 지금 생각으로는 확실한데 '대한민국 남성'이라면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어떤 '원형'이랄까? 그걸 참으로 참으로 스크린 상에 잘 구현해놓는다는 점에서 정말 지구상에 이런 스타일로는 유일무이한 감독같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다. 대한민국 남성. 어렸을 때는 엄마 아빠 따라 간 설악산. 산기슭 식당에서 엄마 아빠 막걸리 한잔 하시는데 옆에서 괜시리 집어먹던 도토리묵하고 감자전. 조금 더 커서 또 엄마 아빠 따라 산 설악산. 산기슭 물가에서 물놀이하던 기억. 성인이 되면? 그 어느 누구 대한민국 직장인 치고 여자 하나 데리고 멍게 서비스로 갖다 주는 바닷가 횟집에 앉아 소주 한번 안먹어보고 싶은 사람 있나? 찔리지? 솔직해져라. (암튼 이런 심리를 홍상수 감독임은 기가 막히게 파고 든다) 암튼 성인이 되면 이제 내가 막걸리와 감자전의 주체가 되면서, 왠지 (나의 주된 생활권을 벗어난) 타 지역에서는 괜히 여자 한번 꼬셔보거나 괜히 술집 가서 여자랑 술 마셔도 될 것 같다는 그 느낌. 서울에 사는 남자 직장인이 혼자 출장으로 강릉역이나 부산역이나 대구역이나 광주역이나 딱 내려서 한 반나절 일보고 다음날 아침에 서울로 다시 올라간다면 그 밤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날까?


암튼 이 영화가 대단하다는 건 그 무슨 일이 일어날까를 제시했다는 점이 아니고, 두 인물간의 같은 공간에서의 다른 일상을 기가 막힌 편집으로 보여줬다는 건데 (추후 "하하하"에서 이걸 다시 사용했지만 이 영화 만큼 극적이진 않음) 뭐 그런 걸 논하고 싶지는 않고 하여간 난 이런 홍상수 감독님의 대한민국 남성의 원형을 파고 드는 집요함 때문에 그의 영화를 즐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