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nikut's Cultural Paradise

official drafts

Freddie Gibbs & Madlib [Piñata] (2014, Madlib Invazion)

tunikut 2014. 3. 31. 16:07


01. Supplier

02. Scarface

03. Deeper

04. High (Feat. Danny Brown)

05. Harold’s

06. Bomb (Feat. Raekwon)

07. Shitsville

08. Thuggin’

09. Real

10. Uno

11. Robes (Feat. Domo Genesis & Earl Sweatshirt)

12. Broken (Feat. Scarface)

13. Lakers (Feat. Ab-Soul & Polyester The Saint)

14. Knicks

15. Shame (Feat. BJ The Chicago Kid)

16. Watts (Feat. Big Time Watts)

17. Piñata (Feat. Domo Genesis, G-Wiz, Casey Veggies, Sulaiman, Meechy Darko & Mac Miller)


프레디 깁스(Freddie Gibbs, 이하 깁스)와 매들립(Madlib)의 새 합작 앨범을 감상하는데 가장 큰 포인트는 이 [Piñata]라는 앨범 자체를 얼마나 독립적으로 놓고 보느냐에 있다. 만일 이 둘의 그 동안의 작품들만을 염두에 두고 이 앨범을 감상한다면, 이 앨범이 품고 있는 작품성을 놓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이 앨범에는 깁스의 전작들인 [Cold Day In Hell], [Baby Face Killa], 그리고 [ESGN]에 있었던 마초적 갱스터 바운스는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이전 매들립 콜라보 걸작들인 [Madvillainy], [Liberation], 혹은 [Perseverance]에서 나타나던 묵직한 베이스를 기반으로 한 힙합 그루브 역시 현저하지 않다. 바로 이 부분은 내가 처음에 핀트를 잘못 짚었던 부분인데 이것들만을 염두에 두고 유사한 즐거움을 찾고자 이 앨범을 선택했다면 적잖이 실망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어째 다들 잘 들었는데 나만을 위한 변명 같다.)

 

그럼 이 앨범의 정체는 도대체 뭘까? 단정적으로 말하긴 어렵겠지만 앨범 전체가 품고 있는 테마를 영어 한 단어로 표현해보자면 "regret(후회, 유감, 아쉬움)"에 가깝다. 이에 대한 설명을 위해 얼마전 발표된 스쿨보이 큐(ScHoolboy Q) [Oxymoron]에 잠깐 비유를 해보자. 갱스터 출신 랩퍼들의 느끼는 "regret"이란 게 다 비슷한 걸까? 자신이 저지른 행위와 인간으로서 느끼는 감정 사이의 딜레마와 방황이라는 측면에서 말이다. 스쿨보이 큐는 [Oxymoron]이라는 타이틀 속에 옥시콘틴을 밀매하던 갱스터로서의 삶과, 딸을 위한 양육이라는 양심 사이의 갈등을 투영한 바 있다.

 

그럼 다시 이 앨범으로 돌아와서, [Piñata(피냐타)]라는 제목에는 어떤 뜻이 있을까. 원래 피냐타는 마치 우리나라에서도 초등학교 운동회 때 하는 '박 터트리기'처럼, 종이죽 등으로 만든 인형 속에 사탕이나 과자 등을 넣어놓고 행사 때 터트려서 꺼내 먹는 남미식 파티 문화라고 한다. 어느날 깁스가 꿈을 꿨는데 꿈 속에 피냐타가 있었고, 어린 아이가 그걸 터뜨렸는데 그 속에 마리화나가 있는 걸 보고, 아이가 마리화나를 가지고 노는 광경에 놀라움을 느꼈다고 한다. 결국에는 그 꿈속에서 본 광경에 대한 묘한 감정, 갱스터/허슬러로서의 삶과 '동심'이라는 상반된 이미지의 충돌 속에서 느낀 후회와 유감이 스쿨보이 큐가 그랬듯, [Piñata]라는 타이틀 속에 투영된 게 아닐까.

 

이런 식의 기본 컨셉을 잡고 들어가보자. 깁스의 전작들에 비해 이 앨범에서 두드러지는 가장 뚜렷한 변화는 그의 가사다. 갱스터적 가사와 직설 화법으로 청자에게 정권을 찌르던 이전 가사들과는 달리, 이 앨범은 일단 전체적인 시점이 과거에 초점을 두고 있어 회고적인 성격을 띤다. 여기에 개인사에 대한 스토리텔링과 사이사이의 갱스터 테마가 뒤섞인 구성을 보이는데, 흥미로운 것은, '화자'로서의 깁스는, "자신이 잘못을 행했고, 또 잘못했다는 걸 아는데도, 그걸 뚜렷이 표현하지 못하고 겉으로는 센 척을 하지만 속으로 후회하는" 굉장히 복합적인 감수성을 보인다는 거다.

 

앨범 발매전 EP로 나왔던 세 곡의 싱글들은 결국 이 앨범 전체의 테마를 이끌어간다 할 수 있는데, 앞서 언급한 깁스의 복잡 미묘한 심리 상태가 가장 잘 나타나고 있다. "Shame"에서는, 자신은 일차적 쾌락을 원했지만 그보다 좀더 진지한 관계를 원했던 여성과 하룻밤을 보낸 후 아침에 떠나버리면서, 결국은 표현을 못하고 여성에게 상처만 줘버린 자신에 대한 후회스러운 마음을 담고 있다. "Deeper"에서도 자신을 버리고 반듯한 직장을 가진 새로운 남자를 만난 예전 여자친구에 대한 증오와 새로운 남자친구에 대한 부러움을 끝내 표현하지 못하고 "깊게(deeper)에 찔렸다"고만, 속으로 삭히는 태도를 보이고 있으며 (이 곡은 힙합을 여성에 투영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앨범의 백미 중 하나인 "Thuggin'" 역시 겉으로는 갱스터적인 가사를 보이고 있지만 그 늬앙스가, 자신의 강함을 어필하기 보다는, 내면의 갈등을 벗어나기 위해 갱스터의 삶을 정당화하는 듯한, 관조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것이다. "그래, thuggin'하기 때문에 이게 좋은 거야. 이게 옳은 거지.."라고 말이다

 

한편 깁스의 회고적 가사들은 좀더 다양성을 보인다. 앨범 내 가장 개인적인 곡인 "Broken"에서는 어릴 적 할머니와 아버지와의 일화를 통해 갱스터 삶에 대한 후회감을 표현하지만, 결국 전직 부패 경찰이었던 아버지와 자신을 '둘다 썩은 건 마찬가지'였다고 동일시하며 자기 위안을 한다. 한편 이런 자기 위안을 결국 그는 "Shitsville"에서 마치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 "m.A.A.d city"에서 그랬듯, 자신의 고향 개리(Gary)가 처한 "똥마을"의 현실 및 정부에 대한 비판을 통해 강하게 표출한다. "너희들도 썩은 건 나랑 똑같잖아"라고 말이다. "Knicks" 역시 주목할 만한 곡인데, New York Knicks를 상대로 했던 기억에 남는 농구 시합을 모티브로 이야기를 꺼내, 과거의 회상에서부터 점차 그라데이션 식으로 경찰에 대한 증오심으로 발전시키면서 결국 갱스터로서의 강한 적개감 표출을 통해 끝을 맺는다는 점이 무척 인상적이다. 끝곡이자 타이틀곡 "Piñata"에서도 마찬가지로 자신이 감옥에 갔을 때 온 가족이 울었고, 어머니는 주저 앉았다고 하는 후회감을 드러내며 "자동차 백미러를 통해 미래를 본다", 다소 비관적인 늬앙스를 풍기는 메타포와 함께 앨범을 마무리하고 있다. 이렇듯 이번 앨범은 그간 깁스의 앨범들에서 쉽게 찾기 어려웠던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담아냈다는 점에서 어쩌면 그의 실질적인 데뷰 앨범같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지금까지의 깁스의 모습이 마치 영화 <스카페이스>에서의 알 파치노의 모습이었다면, 이 앨범에서만큼은 마치 <카사블랑카>에서의 험프리 보가트 같다.

 

이제 매들립에 대한 이야기로 가보자. 사실 이 앨범은 두 사람이 서로 만나지 않고 CD 8장 분량의 비트들을 매들립이 깁스에게 주고, 거기서 깁스가 비트를 골라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녹음 후 매들립에게 다시 보낸 다음, 매들립이 끝으로 손을 보고 마무리하는 식으로 작업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이게 단점으로 작용할 건 아닌 것 같다. 우린 이미 같은 방식으로 작업된 퍼시 피(Percee P) [Perseverance]라는 힙합 역사에 길이 남을 클래식 앨범을 잘 알고 있으니 말이다. 재차 반복한다. 중요한 건 테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 앨범은 매들립 입장에서도 또 한번 실험을 한 거라고 보는데, 자신의 주무기와도 같았던 (많은 이들이 매들립의 음악을 사랑한 이유였던) 귀가 먹먹한 베이스를 기반으로 한 빈티지하고 아방가르드한 재즈 샘플들이 난무하는 비트를 버리고, 지극히 따뜻한 소울풀한 샘플과 레이드-백한 스네어, 그리고 약간의 싸이키델릭한 비트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는 사실 매들립의 최근 음악적 성향과도 일치하는데, 앞서 말한 매들립표 빈티지 사운드가 주로 [Madvillainy] [The Unseen], 그리고 [Champion Sound] 등을 작업하던 2000년대 초반 작업들에서 현저했다면, 2010년부터 2011년까지 12장의 앨범을 발매한 [Madlib Medicine Show] 시리즈 이후부터는 프로그레시브/싸이키델릭 록 샘플과 아니면 좀더 소울풀한 느낌의 음악들을 선호하고 있다는 거다. 프로그레시브한 성향을 이용해 만든 작품이 최근의 [Rock Konducta Part 1]이었다면, 소울풀한 성향이 반영된 것이 이 앨범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어찌됐던 중요한 건, 그런 소울풀하고 따뜻한 느낌의 비트들이 깁스의 관조적, 회고적, 개인적인 가사들과 뛰어난 매치를 보인다는 점이다. 더욱더 놀라운 것은, (이건 필시 매들립이 끝에 마무리할 때 한 거라고 생각되는데) 인트로 샘플과 깁스의 랩이 시작되는 이행부에서 살짝 고의적인 변칙을 통해 깁스의 랩에 힘을 실어주면서 극적인 효과를 더했다는 점이다. , 느릿느릿하게 가다가 갑자기 빨라지면서 동시에 깁스의 랩이 터지는 식의 구성 말이다. "Deeper", "High", "Thuggin'", "Shame" 등 앨범의 주요 트랙들에서 이런 효과들이 잘 나타나며, 특히 "Thuggin'"의 첫번째 벌스에서 깁스가 "thuggin!"을 외치는 부분에서 갑자기 분위기가 가속되는 부분은 대단히 인상적이다. 그 밖에도 앨범은 "Harold's", "Lakers", "Shame" 등 따뜻하고 인간적이어야 할 부분에서 지극히도 소울풀한 비트들이 적절하게 배치되어 청자의 마음을 녹여준다. 비제이 더 시카고 키드(BJ The Chicago Kid)의 훅이 깊은 여운을 주는 "Shame" "Thuggin'" 못지않은 앨범 내 베스트 트랙으로 꼽기에 부족함이 없다.

 

하지만 마냥 따뜻하지만은 않다. 앨범의 오프닝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마치 래퀀(Raekwon) [Only Built 4 Cuban Linx...]의 테마와도 유사한 남미 마약 거래를 연상시키는 스킷 샘플과 함께 아프코 큐반 훵크 리듬("Supplier")이 잠시 나타나다가, 갑작스럽게 마치 블랙스플로이테이션(blaxploitation) 마피아 영화의 시작을 연상시키는 노이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육중한 베이스 비트가 시작되는 "Scarface"는 여전히 과거 매들립의 팬들의 귀를 충족시킬 만한 것이며, 매들립 사운드의 또 하나의 특징인 공간감이 느껴지는 건조한 질감의 비트는 특히 "Bomb"에서 현저하다. 가사만큼이나 독한 "Shitsville"은 강력한 업템포의 싸이키델릭한 힙합 트랙으로 앨범 내에서 거의 유일하게 몸을 던질 수 있을 만한 곡이며, "Uno"에서의 우주 공간을 연상시키는 신디사이저 샘플도 여전히 매들립의 신비로운 감각이 건재함을 보여준다. 2000년대 초반의 매들립 사운드가 정말 그립다면, "Real"의 첫번째 벌스에 한자리 마련되어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거기에 엔딩에 자리잡은 파씨 컷(posse cut) "Piñata"는 싸이키델릭한 신디사이저와 현악음이 반복해 울리면서 마치 마피아 영화의 새드 엔딩 크레딧을 연상시킨다.

 

이 앨범에 단점이 있다면, 그건 이미 글의 가장 서두에 언급한 것과 같다. , 기존의 깁스의 마초적인, 그리고 매들립의 실험적인 힙합의 매력을 좋아했던 사람들에게는 다소 '약하게' 들릴 수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 어찌보면 둘은 협력하여 물론 놀라운 작품을 주조해 냈지만, 각각의 고유 매력이 없어진 느낌이랄까. 또 프레디 깁스와 매들립이라는 의외의 조합이 과연 충분한 정도의 조화와 시너지를 보여주었는지도 한번쯤은 의심볼 수 있겠다. 우린 이미 얼마전 킬러 마이크(Killer Mike)와 엘피(El-P)라는 역시 의외의 조합이 어떻게 서로 상승 작용을 일으켰는지를 보았기 때문이다. 프레디 깁스의 랩스킬은 역시나 부인할 수 없지만, 어딘지 모르게 전반적으로 매들립의 비트를 (늘 그래왔듯) 능수능란하게 가지고 놀았다기 보다는 왠지 그 비트에 파묻혀 압도 당했다는 느낌이 드는 부분도 없지 않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시 위에 언급한 요소들은 각각의 청자의 취향에 따른 차이로 작용할 것이며, 앨범 자체만을 절대적으로 놓고 봤을 때 빼어나게 잘 만들어진 수작임은 명백하다. 여러 매체에서 언급했듯이, 연말 올해의 앨범 후보로 거론되는 것에 손색 없을 것이며, 프레디 깁스와 매들립 각각의 디스코그래피 상에서도 계속 회자될 것이다. , 그럼 마지막 질문이다. 앞으로도 계속 이 둘의 콜라보레이션을 듣고 싶은가? 아니면 다시 각자의 음악 스타일로 돌아가서 각각의 음악을 더 듣고 싶은가? 판단은 각자에게 맡기겠다.



* This post was contributed to: http://hiphople.com/review/2020233

(본 블로그에 올라온 글은 uncut, un-edited version으로 HipHopLE.com에 올라온 글과 다소간의 차이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