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nikut's Cultural Paradi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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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dlib [Rock Konducta Part 1] (2013, Madlib Invazion)

tunikut 2014. 2. 26.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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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 음악을 듣는 사람들에게는 묘한 습관이 있는데 그건 어떤 장르의 음악을 듣던지 약간의 리듬감이 느껴지면 으레 고개를 까딱까딱한다는 것이다. <K팝 스타>에서 어떤 종류의 참가곡을 듣던 간에 한결같이 고개를 까딱까딱거리는 양현석 심사위원의 모습이 대표적인 예다. 매들립(Madlib)의 여러 얼터에고(alter-ego) 프로젝트들 가운데 하나인 비트 컨덕터(Beat Konducta) 시리즈의 모티브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장르를 초월해 세상의 여러 종류의 음악들 안에서 '고개를 까딱까딱거릴 만한' 그루브를 찾아 여기에 매들립 스타일의 비트를 더해 인스트루멘틀 힙합으로 재해석한 것이 바로 이 프로젝트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개인적으로는 그의 모든 프로젝트들 가운데 비트 컨덕터 시리즈를 그의 창의성이 가장 돋보이는 프로젝트로 꼽고 싶다.)

 

영화, 인도 음악, 제이 딜라(J Dilla), 그리고 아프리카 음악에서 영감을 얻어 진행된 앞선 4개의 비트 컨덕터 시리즈에 이은 다섯번째 시리즈인 본 [Rock Konducta]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록 음악에서 영감을 받은 프로젝트로서 그의 '솔로'으로서는 가장 최근작이다. 이번에 나온 것이 Part 1이고 조만간 아마도 Part 2가 발매될 것이고, (지금까지 계속 그래왔듯이) 이 두 장의 바이닐(vinyl)이 합본 CD 형태로 발매될 것이다. 그럼 CD로 나오면 그 때 리뷰를 쓸 것이지, 왜 아직 다 나오지도 않았는데 설레발이냐고 묻는다면, 이 앨범과 이 프로젝트 안에 담긴 그의 창의력에 감탄해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어 벽을 박박 긁다가 나도 모르게 키보드 앞에 앉아버렸기 때문이라고 대답하겠다

 

힙합 디제이들의 믹스셋이 전통적으로는 주로 소울, 훵크, 힙합, 알앤비, 재즈 계열의 음악들로 이루어져 있었다가, 한동안 브라질 음악, 보사노바 계통으로 트렌드가 전환되는가 싶더니, 언젠가부터는 60-70년대 싸이키델릭/프로그레시브 록의 음원들을 이용한 믹스셋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매들립은 이미 지난 2010 [Madlib Medicine Show No. 6: The Brain Wreck Show]를 통해 이를 보여줬고, 국내에서도 신중현으로 대표되는 70년대 싸이키델릭 록을 이용한 믹스 앨범들을 DJ 소울스케이프(Soulscape) GK 후니'(GK Huni'G) 등이 발매한 바 있다. 따라서 한편으로 이 [Rock Konducta]는 이러한 힙합 디제이씬의 트렌드에 기반을 두고 탄생한 작품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록과 힙합의 결합'은 이젠 논하는 자체가 고리타분할 정도로 많이 회자되었지만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이 두 장르의 결합은 어떻게 보면 '물리적 결합'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디엠씨(Run-DMC)와 에어로스미스(Aerosmith)의 만남, 영화 <Judgment Night> 사운드트랙, (Korn)과 림프 비즈킷(Limp Bizkit)의 음악들, 하다못해 네크로(Necro)의 데쓰 랩(Death Rap)까지.. 사실은 '록 반주' '보컬로서의 랩'이 결합된 단순한 형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앨범에서 매들립이 해석한 건 이런 물리적 형태의 결합이 아니고, '록의 질료' '힙합의 질료'를 섞은 '화학적 결합'이라는 점에서 놀랍다.

 

먼저 '그루브'에 대한 언급을 해보자. 우리말로는 '' 정도로 번역하는 게 가장 적당할 듯한 이 '그루브'라는 단어는 힙합 음악을 얘기할 때만 있는 게 아니고, 록과 댄스 뮤직, 심지어 재즈에서도 두루 쓰이는 단어다. 우린 여러 록 음악들 안에서도 '그루브감'이라는 걸 많이 느끼고, 그에 맞춰 적절하게 몸을 흔들거나 헤드뱅잉을 하기도 한다. 힙합의 그루브는 다들 잘 아실 것이다. 이 앨범에서 매들립이 한 게 바로 이 두 장르 간의 '그루브감'을 하나로 마치 판화 찍듯이 일치시켜버린 것이다. 60-80년대 미국 싸이키델릭 록, 독일의 크라우트록, 애시드한 스페니쉬 프로그레시브록 및 기타 신디사이저에 기반한 싸이키한 음악들의 샘플들을 따다가 크게 변형시키지 않은 상태에서 매들립 특유의, 빈티지하면서 강하지 않은 스네어 드럼을 그 위에 덧입힌 형태라고 할까? 무언가를 억지로 쪼개고 계산하고 고심하면서 실험하는 게 아니고, 아이디어 하나로 설렁설렁 단순 작업처럼 새로운 음악을 창조했다는 점에서 매들립에게 '천재'라는 단어를 붙이는 건 어렵지 않을 것 같다.

 

베이스의 활용 역시 주목할 만하다. 이 앨범에서 나타나는 베이스음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힙합 브레익비트와 궁합을 이뤄 '리듬'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베이스가 아니다. 제목을 다시 보라. "Rock Konducta". 매들립은 이 앨범에서 록 음악에서 쓰이는, 직접적으로 리듬에 관여한다기 보다는 백그라운드에서 전체적인 사운드를 조율하는, '둥둥둥둥'거리는 베이스를 비트 사이사이에 끼워넣었다. 그러다보니 뭐랄까.. 중간중간 굉장히 프로그레시브(progressive)하고, 뭔가 상당히 질주하는 듯한 효과를 주게 되는데, 그 느낌이 언뜻 떠오르지 않는다면 쉬운 예로 델리스파이스의 "챠우챠우"나 최근 밴드 하임(Haim) "Forever"에서의 베이스를 떠올려보면 될 것이다

 

본 앨범은 당연히 힙합과 록을 함께 좋아하는 팬들에게 더욱 어필할 것임은 분명하다. 사실상 90년대 '그런지/얼터너티브 붐' 이후 현재까지도 록 음악들이 상당 부분 힙합 브레익비트에 빚을 지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Smells Like Teen Spirit", "You Oughta Know", "Creep", "Loser" 90년대 클래식 넘버들부터 최근 하임의 "Forever", 폴스(Foals) "Inhaler", 아케이드 파이어(Arcade Fire) "Reflektor" 등등.. 브레익비트는 록 음악에서 이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이 앨범에서 느낄 수 있는 '그루브'라는 게 바로 이들과 맥락을 같이 한다. 앞서 나열한 여러 훌륭한 록 넘버들을 들으며 고개를 '까딱까딱거려본' 경험이 있으신 분들은 분명 이 앨범에 담긴 음악들에 만족할 것이다. 잔잔하게 흘러가다가 갑작스럽게 터져나오는 디스토션 기타 소리의 전율을 같이 한번 느껴보자. 이 앨범은 '천재' 매들립이 또 한번 새롭게 창조한 음악이다.



* This post was contributed to: http://hiphople.com/review/1909299

(본 블로그에 올라온 글은 uncut, un-edited version으로 HipHopLE.com에 올라온 글과 다소간의 차이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