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nikut's Cultural Paradise

official drafts

Eminem [Infinite] (1996, F.B.T. Productions)

tunikut 2013. 11. 23. 20:30

 


01. Infinite

02. W.E.G.O.

03. It's O.K.

04. Tonite

05. 313

06. Maxine

07. Open Mic

08. Never 2 Far

09. Searchin

10. Backstabber

11. Jealoust Woes II

 

 

이제 이쯤 해서 에미넴(Eminem) '1', [Infinite]에 대한 얘기를 가볍게 해보고자 하는데, 이 앨범이 이제 막 나온 앨범이 아니기 때문에 앨범에 대한 '평가'라기 보다는, 굳이 지금 이 시점에서 이 앨범을 다시 들어보는 것이 왜 깨알 같은 재미를 주는지 거기에 초점을 두고 이야기해보자.

 

이창동 감독과 배우 설경구씨가 가장 일매릭(illmatic)했던 시절에 만든 영화 [박하사탕]을 감명 깊게 봤으면서 동시에 에미넴의 팬인 분이 계시다면 이 앨범 [Infinite]에서 분명 뭔가를 얻어가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에미넴의 최근작 [The Marshall Mathers LP 2 (이하 MMLP2)]는 에미넴 버전의 "나 돌아갈래~~!!!"로 볼 수도 있기 때문인데, 시간을 거슬러 거슬러 올라가 70년대의 주인공 설경구씨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묘한 눈물을 흘렸던 엔딩씬에 감동을 받았다면, 다시 시간을 거슬러 거슬러 올라가 세간의 폭풍을 얻어맞기 전 에미넴의 청년 시절 눈빛으로 한번 들어가보자.

 

자 음악을 틀면, 뭔가 육중한 베이스와 제법 둔탁거리는 비트에 곱디고운 하이톤의 에미넴의 랩이 시작된다. 그 첫 느낌이 앨범의 끝 느낌과 거의 같다고 볼 수 있겠는데, 이 앨범 전곡을 미스터 포터(Mr. Porter)와 에미넴이 공동 프로듀스한 결과가 그렇다. 그 느낌은.. "90년대 특유의 둔탁 사운드?" 뭐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육중한 베이스라인이 헤비한 붐뱁(boombap) 느낌을 준다기 보다는 몽환적이고 뭔가 습한 안개 낀 늪지대를 탐험하는 듯한, 아니면 (자켓 이미지처럼) '무한한' 우주 공간을 그냥 한 곳을 향해 쭈욱 날라가는 느낌, 아니면 어두운 동굴 속을 뭐가 튀어나올지도 모르면서 막 냅다 뒤도 안보고 돌진해 걸어 들어가는 느낌이랄까. 마치 같은 디트로이트 출신 그룹 슬럼 빌리지(Slum Village)의 초창기 제이 딜라(J Dilla)가 주도한 묘한 사운드와 다소 닮아있다. 앨범은 약속한 듯 '몽환성' '무거운 베이스라인'을 처음부터 끝까지 잘 유지하고 있는데, 만일 에미넴의 이번 신작 [MMLP2]처럼 다양한 스타일의 사운드들이 종합선물세트처럼 있는 게 싫고, 앨범 전체가 균일한 사운드로 이루어진 앨범을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이 앨범이 딱 맞다.

 

그렇게 어둡고, 둔탁거리고, 몽환적이지만 묘한 매력을 풍기는 사운드에 얹은 에미넴의 목소리는 완전 앳된 하이톤의 꼬마 느낌이다. 하지만 에미넴 하면 랩인데, 그럼 랩은 어떨까? 지금과 완전 차이 나게 미숙할 것 같지만, 의외로 앨범의 문을 여는 첫곡 "Infinite"부터 에미넴 '특유', 라임들을 잇달아 붙여 진행하는 다중라임이 등장한다. 이어지는 대부분의 곡들 역시 마찬가지인데, 물론 아직까지는 에미넴이 랩을 연구하는 중이기 때문에 플로우 자체는 (지금 들으면 촌스럽게 느껴질) 전형적인 90년대 스타일의 클리셰인 경우가 많지만 적어도 라임에 있어서는 이미 이때부터 그 끼를 지니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가사 역시도 목소리톤 만큼이나 고운데 그 증거는 이 앨범에서 에미넴이 F로 시작하는 네 글자를 정확히 7번만 사용했다는 점이다. (다 세봤다.) 그것도 감탄사("*!")가 아닌 형용사("망할")로 주로 쓰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최근의 인터뷰에서도 그가 직접 밝혔지만, 이 앨범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테마는 "나 돈없고 배고프고 너무 가난해서 나중에 꼭 성공해서 부자가 되고 싶어"라는 거다. 이미 지금 에미넴이 어떻게 됐는지 아는 상황에서 들려지는 그의 가사 하나하나는 가슴을 후벼 팔 정도로 굉장히 묘한 애환을 느끼게 해주는데 특히 "It's O.K."라는 곡은 가사 전체를 반드시 한번 체크해보실 것을 권유한다. 일단 가장 놀라운 것은 엄청난 '긍정의 기운'인데, "현실이 괴롭고 억울하고 힘들지만 절대 동요하지 않을 거야."라고 하면서, "반드시 돈을 벌어 성공할 거야."라는 당찬 포부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딸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어깨에 돌을 진 기분이야."라고 하며 헤일리 아빠로서의 책임감으로 고민하는데 이는 "Never 2 Far"의 시작부에 미스터 포터와의 대화 스킷에서도, '버스를 타야 되는데 수중에 75센트밖에 없어서 그냥 걸어가야' 되는 안습의 상황에서 "난 딸이 있기 때문에 부자가 돼야 한단 말이야"라고 해, 듣는 이를 짠하게 만든다. 하지만 결국엔 이 곡의 제목에서처럼 "성공은 그리 멀지 않아(never 2 far)"라고 또 한번 우리에게 '긍정의 기운'을 심어주신다. ([MMLP2] 리뷰에서 에미넴을 노홍철에 비유한 것이 적절했다.) 하물며 "Searchin"에서는 사랑하는 여성에게 순수하게 고백하며, 지금의 '여성혐오'가 아닌 '여성사랑'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또 한 가지는, 에미넴은 (여타 랩퍼들 같은) '갱스터'로서의 삶, 혹은 범죄와 연관된 삶을 살지 않겠다는 의지를 앨범 곳곳에서 비치는데, "Infinite"에서 "난 총 가지고 thug life 같은 짓은 안할 거야."라고 하며, "It's O.K."에서도 "난 마약 밀매나 강도짓은 안할 거야. 랩스킬과 능력을 키울 거야."라고 한다. 심지어 (문제의) 이 곡에선 "난 나에게 크리스찬의 정신이 있다는 걸 알았어."라고 해, 지금의 청자들 입장에서는 거의 경악에 가까운 반응을 유발하기도 한다. (그래 놓고 나중에 "I'm CRIMINAL!!!(난 범죄자야!!!)" 이러고 있다.)

 

그러면 무조건 착하기만 할까? 맞다. 이 앨범 속의 에미넴은 '되게' 착하다. 하지만! 슬림 셰이디(slim shady)가 내부에서 꿈틀거리는 징조를 약간 느껴지게 하는 소절들이 몇 개 있다. "Infinite" 중에는 "나한테 어떤 책임이 지워질 지도 몰라. 왜냐면 내 안에 괴물(monster)이 살고 있거든."이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이번 신작의 "The Monster"와 정확히 테마가 일치한다. (소름..) 또 친구의 배신을 다룬 스토리텔링인 "Backstabber"에서는 친구가 에미넴에게 자신의 잘못을 사과하고 이제 깨끗해지겠다고 용서를 빌자, "난 칼을 뺏어서 녀석의 비장에 쑤셔넣었지. 그리고 성기 아래 피부를 도려낸 다음에 집으로 끌고 와서 전화기로 녀석의 머리를 두들겨 팼어"라고 하며, 이미 그 안의 셰이디적 근성을 표출해 보이고 계신다. (재미있는 것은 이 곡의 인트로에는 경찰의 확성기음을 통해, "Attention all units, I repeat"이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마치 "The Real Slim Shady"의 인트로를 상기시킨다.)

 

이 앨범에서 또 생각해봐야 할 것은 에미넴과 미스터 포터의 관계다. 이미 이 앨범에서부터 전곡을 공동 프로듀스하고 중간중간 미스터 포터가 랩, 혹은 스킷에 참여하고 있었는데, 최근까지도 배드 미츠 이블(Bad Meets Evil)의 앨범 거의 대부분을 프로듀스하고, 현재 에미넴의 라이브에서 하이프맨(hype man)으로도 활동하고 있는 걸 보면 그 오랜 우정이 참 보기 좋지 않은가?

 

 

암튼, [MMLP2]가 나온 현 상황에서 이 앨범 [Infinite]은 한번쯤은 꼭 체크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물론 앨범의 완성도가 그렇게 뛰어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앨범 전체를 균일하게 감싸고 있는 어둡고 둔탁거리는 사운드와 초창기 에미넴의 하이톤의 앳된 랩이 합쳐져 묘한 대조성의 매력을 풍기는 앨범임에는 분명하다. 이 앨범 속의 에미넴은, 여성팬들에게는 묘한 모성애를 자극할 것이고, 남성팬들에게는 '이봐 이 친구 진짜같은' 뭐 이런 등등의 번역체를 떠오르게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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