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nikut's Cultural Paradise

official drafts

Run The Jewels [Run The Jewels] (2013, Fool’s Gold)

tunikut 2013. 10. 22. 22:21


 

01. Run The Jewels

02. Banana Clipper (featuring Big Boi)

03. 36" Chain

04. DDFH

05. Sea Legs

06. Job Well Done (featuring Until The Ribbon Breaks)

07. No Come Down

08. Get It

09. Twin Hype Back (featuring Prince Paul As Chest Rockwell)

10. A Christmas Fucking Miracle 

 

  

인간이 느끼는 가장 행복한 감정들 중에 하나는 숙제 다 했을 때. 그 숙제가 끝나는 시점 하나를 맛보기 위해 죽도록 달려왔다면, 숙제를 딱 다 마치고, “이제 끝!” 할 때의 그 순간의 짜릿함은 오르가즘에 가깝다. 2012년 동안 각각 [R.A.P. Music] [Cancer 4 Cure]로 열심히 일했고, 그 성과를 맛본 킬러 마이크(Killer Mike)와 엘피(El-P)가 숙제를 다 마치고 ! 우리 진짜 잘했쥐!”라고하는 그 순간의, 홀가분함과 다행감과 즐거움과 절정감을 음악으로 표현했다면 어떻게 될까? 그게 [Run The Jewels].

 

킬러 마이크와 엘피의 듀오인 런 더 쥬얼스(Run The Jewels)의 동명의 콜라보작인 본 앨범의 기본 컨셉은 두 가지. 하나는 위에 언급한 부담감을 덜은 재미이고, 또 하나는 엘엘 쿨 제이(LL Cool J)“Cheesy Rat Blues”의 도입부 가사에서 따온 그룹명처럼 올드 스쿨의 재미. 그 재미든 이 재미든 이 앨범은 기본적으로 두 뮤지션의 재미라는 컨셉에서 출발했다. 그들은 인터뷰에서 밝혔듯이 EPMD를 가장 모티브로 해서, 자신들이 어릴 적 듣고 자란, 요즘 세대들이 많이 접해보지 못한 힙합 듀오로서의 음악을 들려주고자 했다고 한다. (여담이지만 언제부터인가 힙합 그룹, 혹은 듀오는 참 찾아보기 어렵게 되지 않았나? 우리나라도 90년대 말만 해도 가리온-씨비매스-사이드비-드렁큰 타이거가 대세였고 솔로인 주석이 특이했다. 근데 지금은 그룹이 드문 시대다.)

 

아니나 다를까, 유니폼부터 검은 티에 체인이다. 당장 런 디엠씨(Run DMC)가 떠오르더니, “Run The Jewels”에서의 올갠(organ) 소리, “DDFH”에서의 딩동딩동거리는 구식 신디사이저음, “Twin Hype Back”에서의 싸구려 양철통 비트 등, 퓨쳐리스틱(futuristic)함의 대명사였던 엘피의 비트치고는 의외로 레트로적인 양념이 많이 가미됐다. 칸예 웨스트(Kanye West) [Yeezus]에서처럼 (그리고 아마도 에미넴(Eminem)의 신보에서 예상되는 사운드처럼) 기본적으로 엘피로서는 파격적인 미니멀한 비트들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 매우 눈에 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 앨범의 비트들이 놀라운 점은, 엘피가 들려줄 수 있거나 의도한 비트들이 교묘하게 균형을 맞췄다는 점인데, 기본적으로 킬러 마이크라는 서던 랩퍼의 구미에 맞는 서던 비트, 트랩 뮤직, 나아가 덥스텝까지.. 트렌디한 느린 bpm의 비트들을 쓰고 있다는 점은, 질주하듯 폭발하던 기존 엘피 스타일의 비트에 익숙한 사람들에겐 충격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변화다. 하지만 엘피가 현명한 점은, 원래 자신이 잘 하던 디지털/인더스트리얼적인 그만의 질감을 잃지 않고 그 질료들을 가지고 비트를 찍었기 때문에 마치 이런 비트? 이거 원래 내가 잘 하던 거 아냐?” 뭐 이런 느낌에 더 가깝지 싶다. 앨범은 시종일관 엘피의 트레이드 마크와도 같은 기계음 베이스라인을 잘 유지하고 있으니 너무 실망할 필요 없겠다. 여전히, 어둡고, 거칠다. 특히나 오프닝 킬러 트랙 “Run The Jewels”가 시작할 때 터져나오는 기계적인 베이스라인과 스타카토 드러밍을 들으면 엘피의 팬들은 그 느낌을 아니까 매우 반가울 것이다.

 

이 앨범의 또 한 가지 포인트는, 앞서 말했듯 기본 컨셉이 재미라는 것에 있다 보니 대부분 공격적이거나 약물에 탐닉하는 가사들이 주를 이루고 있으나, 중간중간 자신들의 커리어에 대해 불안해하는 면모를 보여준다는 거다. 우리는 모두 컴퍼니 플로우(Company Flow) 시절부터 철저히 ‘Independent As F**k’의 정신을 부르짖던 엘피를 잘 알고 있고, 킬러 마이크 역시 언더그라운드 정신으로는 전혀 꿀리지 않음을 알고 있다. 하지만 2012년 발매한 각각의 앨범들이 평단과 대중들로부터 호평을 받고, 엘피는 텔레비전쇼에도 출연하는 등, 메인스트림의 느낌과 맛을 경험함으로써 이에 대한 고민, 그리고 둘의 행보에 대한 고민 등을 표출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특히 “Sea Legs”에서 이 길을 들어서지 말았어야 해. 내 행동들에 전혀 고맙지가 않아. 출렁이는 파도 속에서 어디가 육지의 시작이고 어디가 바다의 끝인지 모르겠어.”라고 말하는 부분은 그간 엘피의 가사 속에서 느끼지 못했던 커리어에 대한 진중한 고민이다. 또한 “Job Well Done”에서는 제목처럼 우리 잘하고 있어?”라고 묻기도 하고, “Get It”에서는 이 프로젝트가 잘 안된다면, 나 같은 비관적인 얼간이 말이 맞다는 거야.”라며 자신들이 좋게 평가 받길 바란다. 하지만 결국에는 “A Christmas Fucking Miracle”에서 “We Do It For You.”라는 킬러 마이크의 단호한 마지막 한 마디로 자신들의 의지를 재확인하고 있다.

  

혹자는 엘피 특유의 폭발하는 공격적인 사운드가 상당부분 거세된 이 앨범에 대해 엘피가 물렁해졌다.”라고 실망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둘의 콜라보가 가진 가장 큰 매력은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던 대조성이 주는 아이러니한 시너지가 아닐까? 백인 대 흑인. 왜소한 체격 대 육중한 체격. 뉴욕 대 아틀란타. 내향적 파괴성 대 외향적 공격성 등.. 상반되는 이미지의 두 뮤지션이 만나 서로 고의적으로 짤막하게 가사들을 주고 받으며 진행되는 이 앨범 안에 담긴 둘의 묘한 시너지를 느끼며 앨범을 들어본다면 어느 순간 흠칫하게 다가오는 이 앨범의 매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반드시 볼륨을 많이 높이고 반복 청취해 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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