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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mes Wan [The Conjuring] (2013)

tunikut 2013. 9. 30. 22:46

 

(스포일러가 필요 없는 영화이나 엔딩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호불호가 갈린다고 하지만 일단은 나는 이 영화에 만족한 축에 속한다. 왜냐면 궁극적인 질문으로 돌아가서 우리가 공포영화를 보는 이유는 꽤나 무섭기 위해 보는 것인데 이 영화는 감독이 작정하고 관객에게 꽤나 후덜덜하게 만들기 위한 연출력을 매우 탁월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그 왜 차마 논뜨고 못보겠는, 괜히 고개를 뒤로 빼며 막 심장을 수줍게 만드는 연출력이 짱이었다. 스토리가 단순하다고들 하지만, (물론 개인적으로도 특별한 반전도 없이 그냥 단순무식 스토리로 끌고 간 게 조금 의아하기도 했지만), 실화에 바탕을 두고 있는 건데 여기서 뭘 줄거리를 바꾸겠냐고 생각하면 된다. 우리가 고전 영화 [이블 데드]를 사랑하는 것도 스토리라인보다는 특유의 분위기와 공포감이지 않나?

 

'무서운 장면 없이 무섭다'는 건 뻥이고 당연히 무서운 장면이 나와야 무서운 거지 귀신 얼굴도 안나오고 어떻게 무섭겠나. 무섭게 생긴 귀신 나온다. 무서운 장면 존나 많이 나오니 염려 마시라. '무서운 장면 없이 무섭다'는 건 음향이나 카메라의 시선 각도 등등에 대한 연출이 워낙 잘됐어서 관객으로 하여금 막 상상하게 만들고 괜히 조마조마하게 만드는 효과가 탁월했다는 뜻으로 이해하면 된다. 감독의 전작 [인시디어스]와 기본 설정 및 중후반부까지 진행은 거의 같다고 보면 된다. 실화를 기초로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내가 봤을 때 아마도 전작 [인시디어스]에서 감독이 아쉽다고 생각한 점을 '재도전'한 게 아닌가 싶고, 결과적으로 성공한 듯 싶다. (스토리면에서는 오히려 [인시디어스]가 더 탄탄하고 반전도 있고 그랬다.) 이 영화가 맘에 든 또 다른 점은, 보통 이런 영화의 경우 피해자 가족이 주인공이고, 해결사 내지는 엑소시스트는 조연인 경우가 많은데 이 영화는 반대로 해결사 역할을 하는 이들이 주인공이며, 그들의 개별적인 이야기와 드라마가 나온다는 점이 신선했다. 그러니까 피해자 가족에게 감정이입하는 게 아니라, 해결사에게 관중이 감정이입하게 만드는 독특한 효과랄까? 특히나 이 영화에서는 다른 것 다 재쳐두고 베라 파미가라는 여배우의 캐릭터가 너무 매력적이기 때문에 그것만 놓고 봐도 꽤 좋은 점수를 줄 수 있다.

 

영화의 엔딩에 악마가 빠져나오는 장면에서 베라 파미가가 "그 사진을 생각해봐!"라고 하는데 뭐 보는 이에 따라 다소 신파적이고 오글거린다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순간 눈물이 핑 돌 정도로 뭉클했다. 니들도 나이 들어봐. 

 

이 영화를 보고 다음 날 밤에 쓰레기 내다 버리러 아파트 복도를 걷는데 등 뒤에서 정확히 세 번 '딱딱딱'하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는 엘리베이터 앞 자동문이 저절로 열렸다 닫혔다 하더라. 이런 게 잘된 공포영화의 효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