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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rs Von Trier [Melancholia] (2011)

tunikut 2013. 9. 17. 15:20

 

언제부터인가 소소했던 내 블로그가 점점 외부 기고글 저장소 정도로 변질돼 가는 것 같아서 자체 정화좀 해야겠다. 바빠서이기도 하지만 이것도 초심 상실이라면 초심 상실일 수. 소소한 영화, 음악 글들 끄적이는 장소가 내 블로그다. 한동안 영화 포스팅이 orchiectomy되었기에 영화 하나 또 써본다.

 

이제 분명하다. 적어도 나에게 있어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존재라는 것 말이다. 일단 '형식적'인 측면에서는 여태까지 내가 봐온 감독들 중에서 가장 신선하고 가장 특이한 사람이라는 것. 예의 영화를 챕터로 구분하는 것들이나 슬로우 모션을 마치 회화처럼 나타내주는 기법 등등 말이다. 근데 그보다도 내게 있어 가장 확실한 이 감독 영화의 특징은 '볼 때는 실제로 핫식스 두 캔에게 굴욕을 안겨줄 정도로 죽도록 지루한데 다 보고나면 절대로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영화를 볼 때는 절대로 이 영화는 내 블로그에 포스팅할 자격이 없다고 판단을 했지만서도 몇달 지나면 그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잔존감 때문에 이끌리듯이 이렇게 끄적거리게 만든다는 거다. ("킹덤"도 쓰고 싶어 죽겠는데, 마치 만성 두드러기처럼 막 쓰고 싶어 막 긁고 싶어 죽겠는데, 아직 "킴덤2"를 못봐서 이야기가 완결이 안돼 못쓰고 있다.)

 

일단 굉장히 안그래도 주변 상황이나 내 처지가 '심리적'으로 우울해 죽겠는데 여기에 지구재앙 내지는 자연재해 등 '물리적'으로 우울한 요소가 더해지는 상황을 생각해본다면, 과연 그 '물리적' 우울이 '심리적' 우울의 악화인자인지 구원인자인지 구분이 안된다. 왜 그럴 때 있지 않나? 죽도록 우울할 때. 모든 일도 안되고, 완전 내가 이 세상에 왜 있어야 하지 하는 최악의 기분일 때면, 북한에서 전쟁을 일으키든, 지진이 나서 다 죽든 아무 상관 없다고, 어차피 냅둬도 최악인데, 차라리 다 죽자. 뭐 이런 심리. 이 영화가 그 묘한 심리를 건드린다. 그래서 커스틴 던스트와 샬롯 갱스부르나 키퍼 서덜랜드의 행동들이 서로 달랐던 것. 내가 본 영화 중 이렇게 '우울감'을 제대로 표현해논 영화는 못봤지싶고, 커스틴 던스트의 연기도 무척 좋았다. 스코어도 거의 없이 조용하게 흘러가던 이 영화. 그리고 끝 장면. 정말 잊혀지지가 않는다. 기억해볼 만한 영화지 싶다.

 

 

p.s. 올해 12월 25일 성탄절에 개봉하는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새 영화 [님포매니악]은 대체 얼마나 불경스러울지.. 샬롯 갱스부르 또 나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