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nikut's Cultural Paradise

official drafts

Keith Jarrett/Gary Peacock/Jack DeJohnette [Somewhere] (2013, ECM)

tunikut 2013. 5. 22. 11:04

 

 

01. Deep Space/Solar

02. Stars Fell on Alabama

03. Between The Devil And The Deep Blue Sea

04. Somewhere/Everywhere

05. Tonight

06. I Thought About You

 

 

1983년 처음으로 [Standards] 앨범 레코딩을 통해 결성된 키스 자렛 (Keith Jarrett), 개리 피콕 (Gary Peacock), 잭 디조넷 (Jack DeJohnette) 트리오가 올해로 30주년을 맞았다. 본 앨범은 이들 ‘스탠다드’ 트리오가 그 30주년을 기념하여 최근에 발표한 앨범으로, 지난 2009년 7월 11일 스위스 루체른에서 가졌던 실황을 녹음한 라이브 앨범이다.

 

언젠가 키스 자렛은 인터뷰에서 이제 내가 할 일은 솔로 피아노를 연주하는 것과 스탠다드를 연주하는 것 말고는 없다. 작곡은 하지 않겠다.”라는 말을 했다. 사실 재즈 역사상 가장 위대한 피아노 트리오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는 이들이 지난 30년 동안 줄곧 해온 일이 고작 스탠다드를 연주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좀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스탠다드를 연주한다는 것은 재즈의 가장 기본이며 원류를 충실히 따른다는 애티튜드로 보는 것이 맞다. 재즈가 뭔가? 그 옛날 뉴 올리언즈의 선술집에서 당시 유행하던 유행가를 즉흥으로 풀어 연주하던 음악 아닌가.

 

하지만 키스 자렛 트리오의 음악을 단순한 스탠다드 리바이벌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들의 음악을 줄곧 들어보면 알겠지만, 원곡의 가장 기본이 되는 멜로디의 극히 일부만 앞뒤로 차용할 뿐 곡 전체의 전개는 완전한 임프로바이제이션으로 진행되며, 그 스타일 또한 발라드부터 스윙, 보사노바에서 아방가르드까지 전혀 예측할 수 없게 전개되기 때문이다. 흔히 모던 크리에이티브 (modern creative)”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는데 이 용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뮤지션이야 말로 키스 자렛이 아닐까? 키스 자렛이 들려주는 음악의 가장 강한 개성이라고 한다면, 바로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악상과 그에 반사적으로 작동하는 손의 움직임으로 즉흥 연주가 아닌 즉흥 작곡에 가까운 음악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아무도 따라할 수 없는, 그만이 가진 독창성이다. (실제로 지난 5 19일 내한 공연에서도, 연주를 시작하려다가 갑자기 멈추고 일어서서 무대를 한바퀴 돌며 잠시 악상을 다듬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키스 자렛은 절대 듣기 좋은음악을 들려주는 뮤지션이 아니다. 듣기엔 편안하게 느껴질 수 있으나 사실 그의 음악은 다소 어려운 편에 속한다. 록뮤지션 써스턴 무어 (Thurston Moore)의 솔로작 [Demolished Thoughts]가 겉으로는 편안한 어쿠스틱 사운드처럼 들리지만 그 안에 엄청난 추상이 내재된 것과 비슷한 논리랄까.

 

키스 자렛만의 이러한 천재적인 감각에 바탕을 둔 이 스탠다드 트리오의 음악 역시 여타 피아노 트리오의 그것과는 다르다. ‘노련한 거장들의 즉흥 연주라는 건 우리의 상상 이상인데, 이번 내한 공연에서 직접 피부로 느꼈지만, 단순히 동시다발적으로 손발을 맞춰 연주하는 걸 넘어서 하나씩 주고 받듯이, 미리 예정되어 있지 않았으나 한쪽에서 솔로를 끝내면 기다렸다는 듯이 이를 이어받는 식의 즉흥 솔로는 가히 놀랍다. 특히 그 노련함이 어느 정도냐면 예를 들어 일부러 피아노 연주를 드럼에 살짝 엇박으로 한박자씩 늦게 연주해서 드러머를 마치 놀리듯이 장난하는 식의 시퀀스도 들려준다는 거다. ‘일부러 실수하는여유의 미학이라고나 할까?

 

본 앨범은 전체적으로 마일스 데이비스 (Miles Davis)와 레너드 번스타인 (Leonard Bernstein)의 오마쥬처럼 들린다. 첫곡 “Deep Space/Solar”는 마일스 데이비스 원곡에 자렛의 즉흥을 곁들인 곡으로. 이들 트리오의 가장 최근의 프리 뮤직적인 성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앞서 말한 서로 주고 받는 식의 솔로 연주와 긴장감 넘치는 드러밍, 그리고 속주와 변주를 능수능란하게 진행하는 자렛의 피아노가 인상적이다. 멜랑콜리한 발라드 “Stars Fell on Alabama”와 장난끼 섞인 블루스 넘버 “Between The Devil And The Deep Blue Sea”가 지나고 나면 본 앨범의 타이틀곡이자, 앨범의 가장 클라이막스라고 할 수 있는  “Somewhere/Everywhere”가 나온다.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West Side Story)”의 애절한 스코어인 “Somewhere”, 즉흥으로 작곡한 “Everywhere”를 병합시킨 곡으로 서정적인 원곡의 피아노 연주로 시작하여,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이 “Everywhere”로 넘어가는데 여기서부터는 마치 [The Köln Concert] 앨범과 유사한, 키스 자렛의 솔로 임프로바이제이션의 극치를 맛볼 수 있다. (오히려 여기서는 개리 피콕과 젝 디조넷은 두각을 드러내지 않고 조력자 역할만 한다.) 이 곡은 마치, “그렇지 않아, 어딘가에 있는 게 아니야, , 모든 곳에 있자나."라고 달래주는 듯한.. 원곡의 애절함을 반전시키는 카타르시스가 멋지다. 서서히 그 희망 어린 메세지가 고조되면서 베이스음이 커지며 후반부에는 살짝 록적인 느낌에 바운스/그루브감까지 맛볼 수 있다. 장장 20여분의 대곡인 이 곡은 그 자체로 하나의 힐링 음악이라 할만하다. 잭 디조넷의 힘찬 드럼 솔로잉이 인상적인 스윙 넘버 “Tonight” (역시 번스타인 원곡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수록곡)가 이어지고 나면, 다시금 마일스 데이비스를 생각나게 하는 발라드 “I Thought About You”로 앨범은 끝을 맺는다.

 

키스 자렛 트리오가 이번 30주년을 끝으로 트리오로서의 활동은 접는다는 소문이 있다. 그렇다면 본 앨범 역시 이들의 마지막 앨범일 수도 있을 텐데 그래서인지 몰라도 평이한 밥스타일 혹은 스윙보다는 즉흥적인 성향이 매우 강한 곡들이 많고, 무형식의 전개가 많았다. 이들의 최종 진화형이 이렇다라는 걸 보여주려 한 걸까. 앨범 자켓이 주는 이미지를 다시 봐도 왠지 묘하다.

 

이 위대한 세 거장의 음악, 다시 들을 수 있을까? Maybe somewhere? Or everyw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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