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nikut's Cultural Paradise

official drafts

Fat Jon As Maurice Galactica [Rapture Kontrolle] (2012, Ample Soul)

tunikut 2013. 3. 17. 20:47

 


01.   Thoughtform

02.   Divided Ascension

03.   Magic Flute

04.   Eternal Type Satellite

05.   Galaxy Class

06.   Losing You

07.   Little Green Book

08.   Intellect Bombs (To Save You)

09.   A Wingman Supreme

10.   Various Randoms

11.   The Prowess

12.   Pain Of A Cultured Night

13.   Thirdbass Allday

14. Just A Moment

 

 

  한달 조금 남짓 넘게 팻 존 (Fat Jon)과 싸웠다. 이건 정말이지 진심어린 대결이었다. 그 장황하고 힘들었던 인고의 일지를 남긴다. 그것은 솔로 아티스트로서의 팻 존이 들려주는 음악에 대한 나의 근본적인 의구심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함이었다. 그 의문점은 이 하나의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어째서 팻 존의 음악을 들으면 무언가 왜 도대체 어째서 왜 계속 공허할까?'

 

  야구를 좋아하는 이웃집 철수에게는 씬시내티 (Cincinatti)는 추신수의 도시일 거지만, 비트메이커의 음악에 미친 나에게 이 도시는 팻 존의 도시이다. 2001년 파이브 디즈 (Five Deez)라는 4인조 힙합 그룹의 클래식 데뷔작 [Koolmotor]를 기점으로 시작된 팻 존의 커리어는 이와 거의 동시에 '모리스 갈락티카 (Maurica Galactica)'라는 예명으로 발표한 솔로 데뷔 앨범 [Humanoid Erotica]와 평행하게 대박을 터뜨리며 활발하게 씬에 등단한다. 이후 고향 씬시내티의 미국 언더그라운드 힙합씬에서 자신의 솔로와 파이브 디즈 활동, 제이 롤스 (J. Rawls)와의 3582 프로젝트 등으로 활동을 하던 중, 자신의 음악이 진정으로 나아가야 할 길은 일본이야라고 생각을 했는지 일본을 주무대로 활동하다가 이제 유럽으로 갈래 그래서 지금은 프랑크푸르트에 거주하면서 자신의 커리어를 계속 뻗쳐나가고 있다. 베를린 카페에서 외로움에 치를 떨던 팻존의 음부신경 활동전위를 탈분극시킨 아내 암레셋 솔로몬 (Amleset Solomon)과 레벨 클릭 (Rebel Clique) 프로젝트, "씨스타에 소유가 있다면 파이브 디즈에는 소닉 (Sonic)이 있다"에서의 그 소닉과 함께한 뷰티풀 킬링 머신 (Beautiful Killing Machine) 프로젝트 등.. 자신이 설립한 레이블 앰플 소울 (Ample Soul)을 거점으로 여전히 정력적인 창작 활동을 하고 있는 중이다. 멜로우한 스타일의 자신의 음악이 일본이나 유럽에 더욱 적합하다고 판단한 듯 하다. 한 때는 '더 이상 샘플을 기반으로 한 힙합의 작법에 관심이 없다'라는 위험한 발언을 하기도 했듯, 자신의 조국인 미국에서의 활동은 별로 관심 없어 보여 약간은 씁쓸하기도 하다. (아니면 미국에서 누구한테 사기를 당했는지)

 

  자, 이제 본격적으로 하고 싶은 말을 하자. 우리가 흔히 팻 존의 음악을 들으며 공통적으로 가지는 이미지는 '몽롱함; 몽환적임; 우주스러움; 서정적인 비트; 피아노; 플룻; 인스트루멘탈리즘' 등이다. 이건 거의 팩트지 싶다. , 바로 여기서 취향이 갈릴 수 있는데, 미국 언더그라운드 힙합의 느낌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사실은 팻 존의 비트에 만족을 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그냥 가까운 예로 D.I.T.C., 제이 딜라 (J Dilla), 피트 락 (Pete Rock) 이렇게 세 팀의 비트들을 생각해보라. 그렇다. 바로 가장 먼저 뭔가 먹먹한 베이스 그루브가 먼저 떠오를 것이고.. 또 다음으로는? 그렇다. 묵직한 스네어 드럼 소리 (뭐 딜라는 항상 그런 건 아니었지만). 이런 head-bobbing 힙합 비트가 좋다면 팻 존의 비트를 들으며 '뭔가 부족한데..'하고 느낄 공산이 크다. 분명히 팻 존이 영향을 받았을 거라고 생각되는 디제이 샤도우 (DJ Shadow)나 디제이 크러쉬 (DJ Krush)와 비교해봐도 이들의 '찰지고 각잡힌' 비트들의 느낌도 팻 존의 음악에선 좀처럼 뚜렷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드물다. 그렇다면 도대체 뭐가 문제인가!

 

  바로 이 문제를 가지고 내가 한달 이상의 기간 동안 팻 존을 붙들고 정말 치고받고 싸웠다. 해답은? 여전히 모르겠지만, 어느 정도 뚜렷한 건 베이스 그루브의 활용이 매우 제한적이고, 스네어 소리가 뚜렷하지 않고 전반적으로 fuzzy하고 noisy하게 처리를 한다는 점이다. (내 리뷰가 점점 박진영화 돼가는 것 같다.) 그러니까 소리를 극대화시킨 비트가 아니고 ‘half-air half-sound’ 합쳐서 몽롱하고 붕뜬 느낌의 비트를 강조하다보니 그렇게 들리는 것 같다는 말이다.. 라고 결론을 지어버렸다.

 

  본 앨범은 팻 존이 2001년 이후 11년 만에 다시 모리스 갈락티카라는 얼터 에고를 내세워 발표한, 솔로작으로는 통산 여섯번째 스튜디오 앨범이다. 개인적으로는 실망스럽다. 나의 경우 팻 존이라는 사람의 음악을 처음 접한 계기가 [Humanoid Erotica]였는데, 그 앨범이 너무너무너무 좋았어서였는지 몰라도 그 이후에 발표한 모든 그의 솔로작들은 [Humanoid Erotica]를 넘지 못한다는 생각을 한다. 그 이유는 앞서 지리멸렬하게 박진영식으로 해석한 팻 존 사운드의 왠지 모르게 채워지지 않은 그 공허한 느낌들이 [Humanoid Erotica] 이후의 모든 솔로작들에서 통일성 있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나의 심상에서 팻 존의 솔로작은 [Humanoid Erotica] non-[Humanoid Erotica]로 갈릴 정도이니 말이다. 솔직히 톡까놓고 말해서 [Wave Motion]-[Lightweight Heavy]-[Afterthought]-[Repaint Tomorrow]-[Rapture Kontrolle]의 사운드가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그냥 이 앨범들을 하나로 쭉 이어서 붙여놔도 그냥 하나의 앨범같다는 말이다. 한결 같다? 라는 정도로 합리화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10년 동안 발표한 작품들을 하나로 붙여놔도 하나의 작품같다라는 표현은 예술을 창조하는 사람에게는 모욕적인 말이다. 분명 그의 음악은 그냥 들으면 듣기 좋다. 그래서 나는 그와 계속 싸웠던 것이다. 좋긴 한데 허전하고, 좋긴 한데 아쉽고, 좋긴 한데 실망스럽고, 좋으면서도 그를 모독해야 하니 말이다. 벨기에의 일렉트로닉 프로듀서 스타이로폼 (Styrofoam)과의 콜라보작 [The Same Channel]을 너무 좋게 들어서 그 이후의 [Repaint Tomorrow]를 무척 기대했으나 다시금 도로 원래의 그 허전한 사운드로 되돌아가서 '역시 그렇지 뭐..'의 자괴감을 안겨주더니 너무나 위대했던 [Humanoid Erotica]를 만들었던 모리스 갈락티카의 11년 만의 컴백작인 본 앨범 역시나 또또 똑같은 음악을 답습하는 걸 보고 느낀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오프닝만 신선했다. "Thoughtform" 도입부의 노이즈와 이에 맞물린 왜곡된 비트가, [Afterthought] 앨범 수록곡 "Just Breathe"의 왠지 모르게 라스 폰 트리에 (Lars Von Trier) 감독의 영화 "킹덤 (원제: The Kingdom)"의 그 묘한 찝찝한 분위기를 떠올리게 하는 그 느낌을 줘서 오프닝만 굉장히 좋았다. '킹덤 같았으면 좋겠다..'라고 시작하고 플레이 버튼을 눌렀는데 진짜 '킹덤 같게' 시작했으니 처음엔 무척 좋았다는 뜻. 그러나 두번째곡 "Divided Ascension"부터 또다시 시작된 그 '똑같은' 사운드를 들어야했기 때문에 내가 분노하게 된 거다. 도대체 왜! 모리스 갈락티카의 이름으로 발표를 한 건지 이해가 안갔다. 물론 [Humanoid Erotica]도 앨범 자켓 이미지나 타이틀이 줬던 야시러운 느낌을 전면적으로 살린 앨범은 아니었지만, 오프닝곡이었던 "At The Bar"도 그렇고 전체적으로 매우 '찰진' 비트에 달콤하고 귀엽게 뭔가 깨작깨작거리는 앙증스러운 느낌이 통일적으로 있었는데, 본작 [Rapture Kontrolle]은 앨범 자켓과 타이틀만 더욱 야시시해졌지 음악들은 [Wave Motion]이나 [Afterthought] 만큼이나 심각하다. 수록곡 중 유일하게 "Thirdbase Allday" 딱 하나만 야시시하다. 도대체 왜 모리스 갈락티카를 소환해야 했는지 이해가 안간다. [Humanoid Erotica]와 유일한 공통점은 마지막곡에 하우스 넘버를 넣었다는 건데 거기 수록됐던 "Pretty Pussy Kitty Kat" (말했듯이) 앨범 전체와 조화를 이루는 앙증스럽고 깨작깨작거리는 넘버였다면 이번 앨범 마지막곡 "Just A Moment"는 하우스지만 거의 무슨 Tech-House식으로 막판엔 심각하게 몰아붙이는 곡이니 매우 뜬금없었고 이런 판단미스가 어딨냐라고 생각했다. 대중적인 느낌의 "Magic Flute"이 인기를 얻고 있으나 역시 기존의 작법과 변함이 없고, "Little Green Book"의 피아노 루핑이나 "A Wingman Supreme"의 색소폰 세션의 기용 등도 역시 진부하게만 들리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나마 키보드 전자음을 전면으로 내세운 업템포의 "Eternal Type Satellite"이나, 일본 스코어 뮤직의 레전드 히사이시 조 (Hisaishi Joe) 스타일의 신디사이저음을 배경으로 오랫만에 찰랑거리는 찰진 비트를 들려주는 "The Prowess", 팻 존 스타일의 전형적인 피아노음을 리듬화해서 비트와 일치시켜 진행하는 "Various Randoms" 등이 나름 신선하고 건질 만한 트랙들이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아무리 반복해 들어도 진부하고 아쉬운 건 어떨수 없다.  

 

  팻 존은 분명 뛰어난 아티스트다. 그리고 위대한 힙합 뮤지션이다. 사실 지금까지 분노 모드로 글을 썼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그의 '솔로작'들을 기준으로 했던 논리였고, 그 밖의 파이브 디즈와 레벨 클릭, 사무라이 샴프루 스코어, 스타이로폼과의 콜라보 등에선 또 전혀 다른 매력의 음악들을 들려주는 게 사실이니 여전히 팻 존은 존경해야할 아티스트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여전한 그의 팬으로서, [Koolmotor] [Humanoid Erotica] 같은 위대한 작품들을 만든 당사자이기 때문에, 그의 음악적 발전에 많은 기대감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번 앨범이 실망스러웠다는 뜻이니 팻 존 당사자나 가족이나 관계자나 이 글을 읽고 계신 팻 존의 팬들 모두 너무 노여워하시지는 말길 바란다는 쉴드성 발언으로 끝을 내본다.

 

 

* Originally posted on: http://hiphople.com/review/639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