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Romance
02. Something Came Over Me
03. Boom
04. Glass Tambourine
05. Endless Talk
06. Short Version
07. Electric Band
08. Future Crimes
09. Racehorse
10. Black Tiles
“대충 이렇게 껌에다가 숟가락으로 끼워 붙여서 불면 돼. 킥킥키..”
믿거나 말거나 비밥의 전설 찰리 파커 (Charlie Parker)가 고장난 색소폰을 고치면서 한 말이라고 합니다 (출처: 만화 Jazz It Up). 워낙에 연륜이 높고 경험이 많아서 대충 대충 때워놔도 훌륭한 사운드를 들려줄 수 있다는 일종의 자신감으로 해석할 수 있겠죠. 그렇습니다. 오늘 얘기하는 밴드 와일드 플래그 (Wild Flag)의 음악 역시 바로 이러한 ‘노련함’이라는 한마디 키워드로 접근해볼 수 있을 것 같군요.
와일드 플래그는 미국 오레건주 포틀랜드를 기반으로 결성된 여성 4인조 밴드입니다. 90년대 얼터너티브 붐 속에서 주목받았던 여러 인디 밴드들 중 힐리엄 (Helium)과 슬레터 키니 (Sleater-Kinney) 출신의 멤버들이 결성한 supergroup이라는 점에서 결성부터 주목을 받았었죠. 개인적으로는 힐리엄과, 그 프론트우먼이었던 매리 티모니 (Mary Timony)의 광적인 팬이다보니까 자연스럽게 그녀의 행적을 좆다가 알게 된 밴드입니다. (개인적으로 슬레터 키니보다는 매리 티모니의 팬이어서 리뷰에 약간의 ‘편향’이 있음을 양해바랍니다. ‘편향’은 있으나 ‘편견’은 없습니다.)
이 밴드가 특이한 점은 밴드 내에 베이스 주자가 없다는 점인데요, 어릴 때부터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만큼이나 세뇌받았던, ‘밴드 음악에 베이스가 없으면 절대 안된다’라는 명제에 경도되어 온 저로서는 거의 ‘충격’에 가까운 구성입니다. (예전에 언니네 이발관 1집 시절 공연을 보는데 베이시스트 류기덕님의 줄이 끊어지면서 베이스 연주가 없어지자 진짜 못들어주겠더라는 기억도 이를 뒷받침했었습니다. 저에게 베이스 없는 록밴드는 거의 패륜에 가까운.. 이제 그만!) 여하튼.. 밴드 멤버만 없었지 라이브시에는 베이스 세션을 두겠지 했는데 그러지도 않더라구요. 제 음악적 경험이 짧아서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솔직히 ‘베이스 없는 록밴드’ 음악은 개인적으로는 이 와일드 플래그의 음악이 처음입니다. 근데 바로 이 점이 제가 이 밴드의 음악을 얘기하면서 ‘노련함’이라는 키워드를 들먹인 이유라는 거예요.
“대충 이렇게 기타로다가 매꾸면돼. 킥킥키..”
이들의 데뷔 앨범을 들으며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바로 저겁니다. 걱정했던 베이스의 공백을 이들은 오히려 노련함으로 ‘극복’하는 정도가 아니고 그것을 ‘장점’으로 승화시켜버린다는 점이 사람 미치게 만든다는 겁니다. 이들은 잘 아시다시피 매리 티모니와 캐리 브라운스테인 (Carrie Brownstein)의 트윈 기타 시스템인데 일반적으로 베이스가 있을 경우 메인 리듬은 드럼과 베이스가 주도하고 리듬 기타와 리드 기타가 어우러지는 연주가 가장 전형적인 형태라면, 이들의 경우 메인 리듬 섹션을 순수하게 드럼에만 의존하고 리듬 기타가 베이스 역할을 대신하는 연주를 들려주는데 그러다보니 전반적인 사운드가 상당히 ‘약동’하는 느낌을 준다는 겁니다. ‘묵직함’이나 ‘헤비함’이 아닌 ‘약동감’. 게다가 캐리 브라운스테인과 같이 슬레터 키니를 이끌었던 드러머 자넷 웨이스 (Janet Weiss)의 통통 튀는 폴리리듬이 제 역할을 분명히 해주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죠. 베이스가 있는 punk 음악의 경우 비슷하게 약동하는 느낌이더라도 묵직함이 있는 ‘남성성’이라면 이들은 ‘여성 그룹’이라는 밴드의 개성을 베이스가 없는 사운드를 통해 더더욱 발전시켰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들이 대단하다는 거예요. 첫곡 “Romance” 한번 들어보시죠. 그야말로 ‘약동감’이라는 딱 한마디로 정의 내릴 수 있는 곡입니다. “Boom”, “Electric Band” 및 그밖의 여러 곡들에서 이러한 느낌들은 일관성 있게 나타납니다.
그런데 이렇게 ‘약동감’만 있는 건 아닙니다. 어떻게 보면 앨범의 유일한 단점이라고 criticism을 표출할 수도 있겠지만 (왜냐면 금방 질릴 수 있으니까) 멜로디가 상당히 달콤하고 귀에 착착 감기는데요, 워낙에 노장 싱어송라이터들인 매리 티모니와 캐리 브라운스테인의 보컬 멜로디 (“Something Came Over Me”, “Endless Talk”)가 좋고, 여기에 아울러 레베카 콜 (Rebeca Cole)이 들려주는 건반음이 이렇게 통통 튀는 사운드 중간중간에 양념 역할을 매우 잘 해주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Romance”, “Future Crimes”).
밴드는 앨범 발매 전 인터뷰에서 “캐리가 보컬을 담당한 곡들은 슬레터 키니 느낌이 날 것이고 매리가 보컬을 맡은 곡은 힐리엄 느낌이 날 것이다”라고 했는데요, 정확합니다. 이들의 음악은 그 자체로도 solid하지만 과거 슬레터 키니와 힐리엄, 나아가 매리 티모니 솔로 커리어 시절의 팬들에게도 모두 어필할 수 있는 정도의 일종의 ‘충성심’도 갖추고 있는데요, 캐리가 주도한 “Romance”, “Boom”, “Short Version”, “Racehorse”와 같은 곡들에서 슬레터 키니 시절의 riot girl-punk적인 느낌을 들려준다면, 매리가 주도한 “Something Came Over Me”는 그녀의 솔로 2집 시절의 drone pop적인 느낌을, “Glass Tambourine”에서는 솔로 1집 시절의 싸이키델릭함을, “Black Tiles”에서는 힐리엄 시절의 로우 파이 느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저와 같은) 오랜 지기 매리 티모니팬들이 반가워할 만한 곡들이라 할 수 있겠죠. 이렇게 캐리와 매리가 주도한 서로 상반된 느낌의 곡들은 앨범 전체에 적절한 균형과 긴장감을 유지한다는 점 또한 이 앨범의 특징입니다.
이렇듯 2011년에 발매되어 많은 평단과 팬들로부터 극찬을 받은 이들의 데뷔 앨범은, 화려하지 않고 괜히 멋있는 척 하지도 않는, 풋풋한 인디록의 attitude를 그대로 유지한 채로 여성그룹이라는 개성을 살린 약동감과 듣기 좋고 귀에 착착 감기는 멜로디, 그리고 두 싱어송라이터 프로트우먼들의 상반된 개성을 통한 적절한 긴장감을 간직한, 그야말로 ‘솔리드’한 앨범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절대 선택하셔도 후회하지 않을 앨범이예요.
** Originally posted on: http://blog.naver.com/blogmiller/110156067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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