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nikut's Cultural Paradise

official drafts

Demigodz [KILLmatic] (2013, Dirty Version)

tunikut 2013. 5. 15. 13:37

 


01.   Intro (Giants on The Earth)

02.   Demigodz Is Back

03.   Dumb High (featuring Open Mic)

04.   Never Take Me Out (featuring Termanology)

05.   Just Can’t Quit (featuring Scoop Deville)

06.   Worst Nightmare

07.   Can’t Fool Me (featuring Eternia)

08.   DGZ x NYGz (featuring Panchi of NYGz)

09.   Dead In The Middle

10.   The Gospel According To… (featuring Planetary of Outerspace)

11.   Raiders Cap

12.   The Fallen Angels

13.   The Summer Of Sam

14.   Tomax & Xamot

15.   Captain Caveman (featuring RA The Rugged Man)

16.   Audi 5000

  

 

가뜩이나 각박하고 힘든 세상에서 우리를 가장 그나마 버틸 수 있게 만드는 힘은 바로 다행감이 아닐까. 먼 옛날 미국 남부 흑인 노예들이 힘든 농삿일을 마치고 먼 언덕을 바라보며 연주했던 가스펠 노랫말과 성가 소리를 그 후세와 자손들은 잊지 않고 초창기 재즈를 들으며 그 시절 부모 세대의 음악이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음을 느꼈고 그로 인해 다행감을 맛보곤 했다.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한다. 혹시 음악이 죽어버리면 어떡하지. 내가 좋아하던 음악을 더 이상 못듣게 된다면 어떡하지.. 북한에서 날아온 미사일이 내 방의 씨디들을 다 와장창 부숴버리면 어떡하지.. 정말 무섭지 않은가. 그렇다면 90년대 힙합의 붐 뱁 (boom bap) 소리에 완전히 갇혀버린 나와, 이 글을 관심 있게 읽고 계신 당신이 만일 더 이상 예전의 힙합 사운드를 들을 수 없다면 어떡할까라는 불안감을 혹시나 가지고 있다면, 걱정하지 마라. 데미가즈 (Demigodz)가 우리에게 안겨줄 다행감을 가지고 돌아왔다.

 

데미가즈는 이미 90년대 중후반에 결성된 미국 언더그라운드 힙합 크루다. 혹시나 작년-재작년에 [Honkey Kong] [Nineteen Ninety Now]라는 앨범으로 미국 언더그라운드 힙합씬을 뒤집어놨던 애퍼띠 (Apathy)와 셀프 타이틀드 (Celph Titled)를 좋아하게 되었다면, (진부한 표현이지만) 당신은 이미 데미가즈의 팬이다. 왜냐하면 데미가즈는 애퍼띠와 셀트 타이틀드를 주축으로 결성된 그룹이니 말이다. 하지만 데미가즈는 아미 오브 더 패로우즈 (Army Of The Pharaohs) 처럼 한둘의 주축 멤버를 중심으로 여러 멤버들이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개방형 구조이기 때문에 무한도전이나 ‘12보다는 정글의 법칙이나 출발 드림팀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당신도 노력하면 데미가즈의 멤버가 될 수 있다.) 무려 15년이 넘는 기간 동안 데미가즈의 이름으로 발표된 앨범은 고작 두 장인데, 하나는 2001년에 발표된 EP [The Godz Must Be Crazy]이고 (이 앨범은 2007년에 몇 곡의 신곡과 인스트루멘틀을 포함해서 [Deluxe Edition: The Godz Must Be Crazier]라는 더블앨범으로 리이슈됐다.), 그 다음이 오늘 리뷰하는 본 앨범인데, 전작이 EP이다 보니 사실상 좀 많이 이상하긴 하지만 말하자면 데뷔 15년 만에 발표하는 데미가즈의 정규 데뷔앨범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당연히 본인들은 그렇게 생각 안할 거다.)

 

사실 데미가즈가 발표한 이 앨범이 가지는 의미는 이들에게 관심과 애정이 있는 사람들에겐 무척이나 크다. 이건 마치, 각각의 솔로 활동으로 입지를 다지고 인지도와 명성을 쌓은 이들이, 금기시되던, 오랫동안 반고의적으로 잊혀졌던 옛 약속을 부활시켜 그 봉인을 해제해버린 상황이랄까. 마치, 한동안 잊고 지냈던 두려운 거대 조직의 배후가 조심스럽게 드러난 상황이랄까. 뭐 대충 그런 정도의 어떤 짜릿함이 있다. 쉽게 말해, “*, 다 죽었어! 데미가즈다 데미가즈!!!” 뭐 이런 느낌? 셀프 타이틀드가 “Demigodz Is Back”의 첫벌스에서 말한 가사가 정답이다. “Demigodz is back? Hey, it’s fucking awesome!”

 

개방형 구조이긴 하지만 앨범 자켓에 여섯명의 실루엣을 그려놓은 것을 보아 아마도 현재는 애퍼띠, 셀프 타이틀드, 에소테릭 (Esoteric), 라이유 (Ryu), 모티브 (Motive), 그리고 블랙카스탠 (Blacastan)의 여섯명으로 일단 정규 멤버를 압축한 것으로 보인다. 앨범은 주구장창 여섯 멤버들과 몇몇 게스트 랩퍼들의 호전-공격-하드코어-언어유희-펀치라인의 향연이라 보면 된다. 진지한 내면 고찰? 매타포의 철학? 힘든 게토의 삶? 애절한 사랑? 진중한 스토리텔링? 그런 거 없다. 당연하지. 순도 100%본격 퓨어 하드코어 힙합 앨범을 표방한 앨범에서 그딴가사들은 필요도 없고 있어도 팬들에 대한 모독이기 때문. 가사를 통한 음미는 [good kid, m.A.A.d city]에서 충분히 했으면 됐고, 자자, 그보다는 우린 이 앨범의 프로덕션에 주목해야 한다.

 

전작 (편의상 [The Godz Must Be Crazy EP]전작이라 칭한다.)은 대부분 셀프 타이틀드가 프로듀스를 했다. 대체적으로 90년대 후반-00년대 초반 언더그라운드의 화두였던 재지한 느낌과 찰진 브레익비트가 주를 이뤘었는데 그 가운데 몇몇 애퍼띠가 프로듀스한 곡들이 약간 멜로우 (mellow)한 느낌을 주면서 다소 신선했었다. 근데 그 느낌 그대로 이번 앨범에는 거의 메인 프로듀서 (16곡 중 8) 역할을 애퍼띠가 맡았는데, 바로 그 점이 이 앨범에 별 네개의 가치를 부여하게 했다고 할 수 있겠다. 작년에 발매됐던 아폴로 브라운 (Apollo Brown)과 오씨 (O.C.) [Trophies]라는 앨범을 알 것이다. 작년에 미국 언더그라운드 힙합의 이었던 앨범이다. 이 앨범이 높은 평가를 받은 이유 중 하나는, 비트들이 기본적으로 90년대의 오리지널 느낌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면서, 촌스럽지 않게 묘하게 현재의 트렌드도 동시에 담은 것 같았던, --합의 세련된 비트들을 들려줬다는 것인데, 대체 왜들 이러는지 애퍼띠가 주축이 되어 만든 이 앨범의 사운드 역시도 그렇다는 거다. 톡까놓고 말해서 90년대 죽이는 뚝치빡붐 뱁 느낌을 살리면서 앨범이 전체적으로 너무 신선하게 나와버렸다. ‘.. 또 고만고만한 하드코어 힙합 앨범이겠지..’가 아니라는 말이다.

 

메인 프로듀서인 애퍼띠가 만든 “Can’t Fool Me”를 보자. 뭐 이런 게 다 있나? 카세트 테이프 리와인드시키는 느낌의 신선한 익스페리멘탈 비트. 마치 실험 뮤지션 토바코 (Tobacco)의 음악에서나 듣던 비트다. “Just Can’t Quit”은 어떻고? 피아노 루프와 비기 (Biggie)의 목소리를 활용해 마리화나에 대한 찬양을 장난스러운 비트로 얼버무려버렸고, 심지어 “The Fallen Angles”의 비트는 우주적이기까지 하다. 그러다보니 영화 록키 (Rocky)의 유명한 테마 “Gonna Fly Now”를 차용한 “Demigodz Is Back”은 진부해서 오글거린다기 보다는 오히려 귀엽다. 의도적인 전형성이 주는 미학이랄까. 암튼.. 그리고 이에 애퍼띠와 오래 호흡을 맞췄던 명프로듀서 첨질라 (Chumzilla)“DGZ x NYGz”는 트렌디한 신디사이저음까지 차용해버렸다. 더불어 역시나 애퍼띠의 오랜 동료 테디 락스핀 (Teddy Roxpin)“Never Take Me Out”“Captain Caveman”, 그리고 베테랑 더 스노우군스 (The Snowgoons)“The Summer Of Sam”의 록적인 느낌은 심장을 쫄깃하게 만들며, 이쯤해서 “The Gospel According To…” 도입부의 가스펠적인 느낌과 “Audi 5000”에서의 마르코 폴로 (Marco Polo)의 리얼 연주 비트까지 가면 우와…. 대단하다. 잠깐, 여기까지 읽은 독자는 혹시나, “그게 뭐야! 뭐 종합선물셋트야? 다양성만 있고 일관성이 없는 거 아냐?”라고 반문할지 모르겠으나, 이러한 다양한 비트들만 듣고 있기에는 시종일관 애퍼띠의 공격적인 다음절 라임과 셀프 타이틀드의 조롱하는 바리톤 언어유희, 그리고 여타 멤버들의 일관된 히드코어랩이 우리의 귀를 가만두지 않는다. 걱정마시라. 앨범은 충분히 일관적이고 통일적이며 분명한 구심점이 존재한다.

 

헤비메탈 앨범에서 발라드가 없으면 섭섭해하는 사람들이 있듯이, 역시 여기도 돌직구 하드코어 비트의 전형성을 보이는 것들도 물론 있다. 노다웃 디제이 프리미어 (DJ Premier)“Worst Nightmare”에서 그는 그가 들려줄 수 있는 가장 전형적인 프리모 비트를 들려준다. 또한 빅 펀 (Big Pun)“Twinz”에서의 유명한 다음절 라이밍을 샘플링한 애퍼띠의 “Dead In The Middle”은 가장 이상적인 하드코어힙합비트의 전형이라 할 수 있겠다. 

 

하드코어힙합의 정수와 태도는 그대로 남겨둔 채로, 전혀 진부하지 않게 창조적이고 신선한 음악을 들고, 그야말로 돌아온데미가즈의 사랑스러운 앨범에 두고두고 찬사를 보내고 싶다. “The Fallen Angel”에서의 모티브의 가사 한 줄이 의미 심장하다.

 

“Hardcore hip hop fans, this is what they hope for.”

 

오늘도 우리 딸아이는 고양이 인형을 끌어 않고 자지만, 나는 오늘밤 데미가즈의 [KILLmatic] 씨디를 품에 끌어 않고 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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