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nikut's Cultural Paradise

official drafts

The Charlatans [Between 10th And 11th] (1992, Beggars Banquet)

tunikut 2010. 11. 15. 14:02



01. I Don't Want To See The Sights

02. Ignition

03. Page one

04. Tremelo Song

05. The End Of Everything

06. Subtitle

07. Can't Even Be Bothered

08. Weirdo

09. Chewing Gum Weekend

10. (No one) Not Even The Rain

 

  

  고등학교 때 잠깐 진짜로 밴드를 만들어보려고 했습니다. 밴드 구성을 상의하면서 제가 키보드를 제안하자 밴드 리더였던 그 친구 녀석은 "임마, 키보드는 기타로 커버가 안될 때나 쓰는 거야"라는, 샬라탄스 형님들 아셨으면 다구리 당할 뻔한 발언을 하면서 저의 제안을 단박에 거절했더랬죠. 결국 제가 삐져서 밴드 결성은 무산됐습니다.

 

  90년대 중반 한참 국내에도 '얼터너티브록' 물결이 일던 시절 당시에는 유투브가 없어서 뮤비도 꼭 어디 가서 보거나 구해서 보거나 했었는데 PC 통신을 통해서 어느 알 수 없는, '얼터너티브록'이 가득 들어있다는 공vhs 테잎을 하나 구해서 보게 됐는데요, 뭐 내용은 그 당시로선 꽤 알찼습니다. Fun Loving Criminals, The Wannadies 이런 분들 클립들이 있었는데, 제가 보다가 "!" 했던 밴드가 있었어요.  어떤 TV 라이브쇼 footage였는데.. 솔직히 당시만 해도 졸라 너바나에 다들 열광하던 시기여서 막 거칠게 기타치고 목소리도 막 삑사리내면서 꽦꽦 지르고 옷도 후줄근하게 입고 그런 게 멋있었거든요. 그리고 중요한 포인트는, 마이크를 쥐고 있는 보컬리스트의 손목 관절은 적어도 굴곡(flexion) 돼 있어야 간지나고 멋있는 거였죠. 근데 제가 보고 "!" 했던 그 밴드의 음악은 상당히 간질간질하게 찰랑찰랑거리면서 보컬리스트는 머리도 얌전하게 바글바글 파마해가지고 카메라를 보면서 야릇한 표정을 지으며 몸도 흐느적흐느적 거리면서 가장 중요한 건 손목 관절이 신전(extention)된 상태로 흔들흔들거리면서 마이크를 쥐고 노래를 부르더라는 거죠. 충격이었습니다. 전 그걸 보고 '어머, 쟤 정말 병신같애' 이러면서 참 웃기는 밴드도 다 있다고 생각했답니다.

 

  하지만 그 밴드는, 기타로 커버가 안됐기 때문에 키보드를 전면에 내세운 그런 밴드도 아니었고, 절대 '병신같은' 밴드도 아니었습니다. 우리의 편견이 이렇게 무섭다는 걸 깨닫게 해준 바로 그 밴드는 오늘 얘기하는 이름도 찬란한 "더 샬라탄스"입니다!

 

  (당시 국내에서 '모던록' 좀 듣는 사람들 앞에서 너바나-펄잼-STP 좋아한다고 말하면 "어머 너 모얌?" 이런 식이었어요. 심지어 전 그 분들 앞에서 Veruca Salt 좋아한다 그랬다가 윽.. 당시 국내에서도 역시 너바나-펄잼은 '메인스트림'이었죠. 그 당시 모던록 열혈 키드들의 가장 주된 관심사는 The Smiths-Mozz로 대표되는 영국 밴드들과 Matador로 대표되는 미국의 인디씬이었습니다. 그리고 약간의 일본씬, 그리고 약간의 일렉트로닉. 물론 전 음감회 때 Gang Starr를 틀었지만요 히.)

 

  맨체스터, 아니, 영국식으로, "만체스터 사운드"라는 스타일이 있어요. 가끔 "마드체스터"라고 불리우도 합니다만.. 뭐 사실 이렇게 '무슨무슨 뭐' categorize하는 건 critic스런 느낌이 너무 들어서 좀 거부감이 들긴 하지만, 그래도 음악을 이해하고 듣는 데는 가끔 도움이 됩니다. "우린 그냥 록큰롤을 할 뿐이라고!" 뭐 당사자 밴드들은 그럴 수도 있겠죠. 암튼. 맨체스터 사운드는 말그래도 영국의 맨체스터 지역에서 발생한 록음악의 한 스타일인데요, 전통적으로 Happy Mondays Stone Roses라는 양대 산맥을 이루는 밴드의 음악을 그렇게 부릅니다. 이 음악은 제가 저기 위에 두번째 단락에서 '병신같애'라고 표현했던 바로 그런 스타일이예요. 찰랑거리는 키보드음을 주축으로 댄서블한 드럼과 싸이키델릭한 기타-베이스, 그리고 영국식 발음-악센트 팍 넣은 멜로딕한 보컬.. 록이지만 댄스 뮤직같고, 팝이지만 록같고.. 뭐 그런 느낌이랄까요? 그런고로 록을 듣는 사람들이나 댄스 뮤직을 주로 듣는 사람들이나 공통 분모로 찾아 듣는 음악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댄스보단 록에 가깝다는 생각입니다.) 따라서 미국식 하드록을 좋아하는 사람들한테는 거부감이 들기도 하는 스타일이죠. 아무튼 오늘 얘기하는 The Charlatans도 이러한 스타일의 음악을 들려주는 대표적인 밴드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매드체스터-얼터너티브-브릿팝의 조류를 거쳐 현재까지도 왕성한 활동과 앨범 발표를 하고 있죠. 얼마전에도 신보가 나왔어요. 이상한 것은 매우 듣기 좋은 사운드를 내고 있음에도 '국민 밴드' 대접을 받는 영국에서와는 달리 국내에서는 인지도가 그다지 높은 편은 아니라는 겁니다.

 

  오늘 들고 나온 이 앨범은 이들의 두번째 앨범이자 현재까지 최고작으로 평가받는 앨범인데요.. , 역시 세상은 만만하지 않고 냉혹합니다. 겉으로 그렇게 샬랑거리고 심지어는 우스꽝스럽게 보여지던 (근데 그 때나 그랬지 지금 다시 보면 Tim Burgess의 스테이지 매너는 꽤 카리즈마틱합니다.) 이들의 음악 안에 담긴 그 지독한 냉소와 sarcasm, 그리고 염세는 당시 샬라탄스 추종자들의 태도를 매우 씨니컬하게 만드는 데 일조하죠. 양기 가득한 태도. 행복한 발광. 알코올 중독. 더러운 그림들. 이들은 "이것들을 더 이상 보고싶지 않다"("I Don't Want To See The Sights")고 하며 "너의 그 부끄럽고 추한 모습 좀 봐"("Weirdo")라고 합니다. "자기 소개가 끝나기 전에 누군가가 유감스럽게 느낀다"("Weirdo")니요.. ㅠ 이거 진짜 숨도 못쉬겠습니다. 이거 뭐 그분들 앞에서 술이나 한잔 마시겠어요? 이런 식이라면 이들이 생각하는 최악의 자태는 '힙합식의 스웨거'겠군요. ㅋㅋ 바로 이런 정서. 샬라탄스와 이언 브라운 등으로 대표되던 영국 특유의 씨니컬한 거만함 (하지만 겉으로는 춤추고 흥겨움).. 이들 식의 스웨거랄까요? 재밌죠. 뭐 이런 Tim Burgess의 가사들은 여기서 더 나아가 자기 자신과 타인 사이 관계에서 나타나는 기묘한 현상과 느낌들을 무척 난해한 구절로 풀어나가는데요, 예를 들어 "바닥에 팔다리 쭉 뻗고 누워도 행복하긴 힘들어"("Ignition")라던가 "지금은 너의 것이 된 그 곳으로 돌아가게 될 줄은 몰랐어"("Tremelo Song"), "우리들 중 한명은 너가 어느 길로 갈 수 있는지 알아야만 돼"("Can't Even Be Bothered") 같이 쉬운 단어를 난해하게 연결해서 무슨 의미가 있는지 궁금하게 만든다는 겁니다.

 

  하지만 이들이 들려주는 사운드는 매우 달콤합니다. 그렇다고 '미국식', 캘리포니아의 밝은 햇살이 느껴지는 캔디팝식으로 달콤한 게 아니구요. 흐리고 비오는 '영국식'입니다. 적당한 수준의 헤비하지 않은 싸이키델릭 기타에 (존 베이커가 마크 콜린스로 바뀌어서 그렇다는 의견도 있음), 대체적으로 '찰랑'거리지만 "The End Of Everything"에서와 같이 다소 스트레이트한 록넘버에서는 '출렁'거리기도 하는 키보드, 그리고 가볍지만 댄서블하게 두들기는 드럼이 합쳐진 형태입니다. 기타만으로는 다소 텅비고 딱딱한 느낌이 든다면 사운드 전체를 찰랑거리고 출렁거리는 키보드 멜로디가 포근하게 에워싸고 있다는 느낌이라는 거죠. 팥빙수에 우유를 부은 느낌이랄까요. 특히 다이나믹한 건반음으로 문을 여는 "Tremelo Song"이나 강력한 하몬드 올갠의 "쭝쭈즈좌앙~"거리는 인트로가 인상적인 이들의 최고 히트곡 "Weirdo" 같은 킬링 트랙들은 거부하는 사람이 드물죠. 혹자는 이 두 곡 말고는 건질 곡이 없다고도 하지만 개인적으론 전형적인 맨체스터 찰랑그루브가 느껴지는 "I Don't Want To See The Sights"도 매우 좋아하구요, 살짝살짝 마음을 데워주는 키보드와 보컬 멜로디가 좋은 "Chewing Gum Weekend"나 차분한 느낌의 "Can't Even Be Bothered"도 꽤 좋은 트랙입니다. "Subtitle" 같은 space rock필 나는 슈게이징도 체크해볼 만한 트랙이구요.

 

  자, 마지막 단락입니다. 끝을 어떻게 맺어야 될지 몰라서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고 그러고 있는데요, 샬라탄스의 오늘 얘기한 이 앨범이 이들의 초창기 맨체스터 사운드를 잘 나타내주면서 이들만의 개성이 듬뿍 담긴 앨범이라는 내용을 포인트로 해서 멋들어지게 끝맺고 싶은데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네요.

 

 

* 오리지널리 포스티드 온: http://blog.naver.com/blogmiller/1100968469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