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nikut's Cultural Paradise

k.b.m. collection

DJ Wegun [Atomic Anatomy Vol. 01] (2008, Soul Company)

tunikut 2009. 2. 8. 22:48

 

자. 일단 결론부터 말하자. 이 앨범은 졸작이다.

 

먼저 본 블로그를 예전부터 봐온 사람이라면 잘 알겠지만 dj wegun의 데뷔 ep를 듣고 올해의 신인이다 어쩌다 좋다고 난리를 친

것도 나고, 그의 프로젝트 그룹이었던 수퍼래핀 피제이의 ep 앨범을 듣고도 올드스쿨이나 어쩌다 좋다 교감 신경이다 뭐다 난리

를 친 것도 나다. 또 하나, 지난번 1988 rap 앨범 포스팅 때 말미에 왜 아무도 '한국힙합 믹스앨범'은 안내는 거냐고, 내가 만들까?

뭐 그런 얘길 했는데, 그렇게 내가 반해버렸고 끔찍하게 이뻐하고 그 행보를 무척이나 기대해오던 디제이 웨건님께서 마치 나를

위해 그런 듯인냥 '한국힙합 믹스앨범'을 들고 나왔으니 이건 마치 아무 짓도 안해도 이뻐 죽겠는 애가 맘에 쏙드는 선물까지 준 격

이니 완전 이 앨범 나올 때 내 기분은 장난 아니었다.

 

그래서 이 앨범을 구입하고도 바로 안듣고 아주 아껴서, 즐거운 마음으로 최상의 컨디션일 때 들으려고 고이 고이 모셔뒀다가

며칠 전 아침 출근길에 드디어 플레이를 했다. 인트로! 오우 웨건의 스크래치에 어우러진 웅장한 느낌의 샘플들이 제법 그럴 듯

하게 포문을 연다. 이윽고 "black cancer!"를 외치며 화려하게 데드피의 목소리가 등장하는 순간 '아..드디어..' 이런 느낌과 함께

마치 오랫동안 이 순간만을 기다려왔다는 카타르시스에 눈물까지 흘릴 뻔했다. 이렇게 더할 나위 없이 멋진 '데드피 온 더 랍티

미스트 트랙'이 끝나는 순간부터 문제는 시작됐다. 아니 이제 좀 슬슬 몸을 풀고 좀 고개좀 까딱거려 볼까 하는데 갑자기 곡이 뚝

끊기면서 왠 어쿠스틱 기타음에 포크송을 연상시키는 하모니카 소리? 엥? 이거 뭐야.. 에이 잠시 그런 거겠지.. 하고 지나가니 

이번엔 더 콰이엇의 목소리가 날 또다시 흥분시키며 '그래! 그냥 잠시 그런 걸꺼야'라고 자위했으나 그럼과 동시에 또다시 곡이 뚝 

끊기더니 어랍쇼? 이렇게 1번 트랙이 끝나고 새로운 곡으로 - 전혀 이어지는 느낌 없이 - 2번 트랙이 시작되네? 이거 뭐야! 곡들을

컨티뉴어스하게 믹스한 게 아니라 cluster를 이뤄서 몇개 몇개 끊어논거야? 순간 dj bay의 "night ride" 믹스 앨범이 생각났다. 딱

그 구성인 거다.

 

자, 내가 여기서 왜 '캐'실망도 아니고 '개애'실망했는지 얘기해주겠다. 앨범을 들으면서 의도는 알겠다. 한국 힙합곡들을 플레이

하면서 그 곡에 쓰인 샘플들을 같이 엮어보자는 거겠지. 그래, 이해한다. 근데 그렇게 되면 이 앨범은 '힙합 디제이의 믹스 앨범'이

아니라 '라디오 디제이의 플레이 앨범'이 된다. 아니, 기본적으로 '디제이 믹스' 앨범이란 게 뭔가? 뭐 멀리 갈 것도 없이 dj soulscape

이나 dj solegene, dj jinmoo 이런 분들 것 들어보면 알지 않나? 디제이 믹스 앨범의 필수불가결한 조건은 '컨티뉴어스'함이다. 이게

일단 기본이 돼서 서서히 음악 듣고 즐기려는 사람들의 몸을 흔들게 만들다가 절정의 순간을 맛보다가 서서히 내려가는 믹스셋이

기본 아닌가? 아, 뭐 그래 내가 디제이 웨건의 믹스 앨범에서 솔스케잎의 그것을 기대한 게 잘못이라면 그렇다고 치자. 그럼 최소한

'한국 힙합 믹스'라면 들으면서 최소한 뚝뚝 끊기는 느낌은 없어야 되지 않나? 치열하게 믹스된 한국힙합튠들을 기대한 내가 잘못인가?

이거 뭐 좀 들어볼라치면 분위기 확 깨는 이상한 샘플곡 나오고.. 그것도 몇개 단위로 묶어서 트랙이 바뀌면 갑자기 확 끊겨버리고..

이거 좀 심하게 말하면 차라리 한국힙합곡 내가 좋아하는 곡들 씨디로 구워서 듣고 다니는 게 훨씬 더 신나겠다. 도대체 디제이 웨건이

어째서 이런 '라디오 디제이' 앨범을 만들었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이 앨범은 내가 지금까지 구입했던 소울 컴퍼니 앨범들

중에 처음으로 실망한 앨범이다. '원천봉쇄의 오류'를 한번 범해서 더 심하게 얘기해볼까? 이 앨범을 듣고 '좋다'고 느낀다면 분명히

문제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