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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cert reviews

WWE Royal Rumble Tour 2008 in Seoul

tunikut 2008. 12. 24. 04:36

 

일시: 2008년 2월 10일 일요일 오후 7시

장소: 잠실실내체육관
 
나와 같은 세대들은 누구나 그랬 듯이 초등학교 시절 WW'F'에 열광했었는데 특히 나의 경우는 거의
매니아 수준으로 좋아해서 당시 AFKN에서 해주던 '주요' 경기들을 전부 비디오 테잎에 녹화해서
소장하곤 했었고 (4대 pay-per-view나 Saturday Night's Main Event, 그리고 Superstars of Wrestling
에서 자버가 아닌 메인 선수들 끼리의 경기 등..), 매달 해외 서점 (당시엔 외국 잡지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에 가서 WWF magazine을 구입했으며 잡지 사진에 나온 레슬러들을 보고 그대로 연습장에 똑같이
그려서 그걸 또 모아서 파일북에 끼워 넣고 만족스런 눈으로 바라보기도 하는 등.. 어린 시절 WWF는
나에게 최고의 관심사였다. 누구나 그랬겠지만 당시에 헐크 호간, 마초맨, 얼티밋 워리어는 최고였고
홍키 통크 맨, 밀리언 달러맨, 안드레 더 자이언트는 최고로 나쁜놈들이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스타급 선수들의 세대 교체가 이뤄지면서 관심을 멀리했다가 대학교에 들어와서
같은 과 친구 중에 WW'E'를 좋아하는 친구에게 물들어 다시 보기 시작했고, 옛날엔 정말이지 매주 토요일
낮시간에 이거 맞춰 보려고 - 그 때는 언제 서머 슬램이 하는지, 언제 밤에 새터데이 나잇 메인 이벤트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신문 편성표에는 그저 'WWF 레슬링'이라고만 돼있었지.. - 노력했지만 요새는 케이블
에서 재방송 포함해 뻥뻥 잘 틀어주니 옛날보단 참 즐기기가 편해져서 다시금 매주 Raw와 Smack Down
을 보게 됐다. 우리 와이프는 원래 프로레슬링이 뭔지도 몰랐었는데 결혼하고 나한테 물들어서 재미를
붙이더니 요샌 나없어도 혼자서 볼 만큼 팬이 됐다. 난 크리스 제리코, HBK, 언더테이커 등을 좋아하고
와이프는 존 시나와 제프 하디의 열렬한 팬이다. 암튼.. 원래는 이번에 내한 투어를 볼 계획은 없었는데
최근에 방영한 제프 하디와 우마가의 steel cage match에서 막판에 우마가 위로 뛰어 내리는 제프 하디
모습을 보고 완전 반해버린 집사람이 "우리 이거 보러 갈까?"해서 보러 가게 됐다. 허헐..
 
항상 TV 화면으로 '중계하는' 프로그램만 봐와서 그런지 실제로 떡 보니 상당한 '괴리감'이 느껴졌다. 제일
먼저 실제 미국내 경기장에 비해 상당히 썰렁하고 허술한 무대 장치.. TV에서 보던 것과 달리 사각의 링은
굉장히 좁게 느껴졌고.. 선수 등장 입구와 링 까지의 거리도 무지 짧아보이는 등.. 또한 중계자의 목소리가
안들리니 자막 없는 무성 영화 보는 느낌.. 선수들은 각자의 특기 기술들을 포함해 멋진 시합 모습을 보여줬지만
썰렁한 무대 장치와 듬성 듬성 비어있는 관중석이 아쉬웠고 집사람의 표현을 빌자면 "이런 누추한 곳에 제프 하디
와 같은 스타급 선수들을 모시니 황송할 따름" 내지는 "최고의 스타급 수영 선수들을 불러다가 동네 풀장에서 경기
시키는 느낌" 이었다. 그렇지만 여러 스타급 선수들을 실제로 눈앞에서 봤다는 것과 썰렁한 무대 장치에 비해
관중들의 호응은 뜨거웠고 선수들도 이런 관중들의 호응에 잘 응해주고 여러 쇼맨쉽도 보여주며 일일히 관중들
의 손을 잡아주고 포옹도 해주는 등 좋은 모습들을 보여주어서 그닥 크게 실망스럽진 않았다. (어차피 별로 큰 기대
를 안했다.)
 
기억에 남는 몇가지들을 꼽아보면..
1. 선수들을 실제로 보니 TV 화면보다 비교적 왜소하게 보이더라는 점. 미스터 케네디는 몸집이 상당히 만만
하게 느껴짐. 랜디 오튼은 다리가 왜 그렇게 가늘던지.. 크크. 의외로 우마가는 실제로 보니 호리호리한 느낌.
작게 보이던 크리스 제리코의 키가 HBK와 비슷하다는 거.. HBK는 실제로 보니 더 잘생겨보임.
2. 무성 영화 속에서 그나마 TV에서 보던 것과 유사한 느낌을 받은 건 미스터 케네디가 등장했을 때. 특유의
마이크를 받는 제스쳐를 보여줬는데 마이크가 내려오지 않자 링 아나운서가 손 위에 거꾸로 살짝 마이크를
대주더라는.. ㅋㅋ. 대다수의 선수들이 비영어권이라 그랬는지 마이크워크를 하지 않았는데 유일하게 미스터
케네디만 특유의 고함으로 자신을 소개하고 "안녕. 오늘은 내가 비록 발 비너스를 상대하지만 노웨이아웃이 얼마
남지 않았다. 릭 플레어의 커리어도 이제 얼마 안남았다." 뭐 이런 비슷한 멘트들을 남기며 릭 플레어를
조롱하는 몸짓을 보여줌.
3. 최고의 호응을 이끌어냈던 릭 플레어의 등장.. 전설인 그를 실제로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고 느껴짐.
4. 역시나 메인 이벤트에선 크리스 제리코, 숀 마이클스, 우마가, 랜디 오튼 등 선수들이 등장할 때 마다 어떤
'묵직함'이 느껴졌다. 우리 나라 관중들은 HBK에게 열광했지만 미국인 관중들은 Y2J에게 더 열광하더라는 거..
5. 선역을 맡은 선수들은 대부분 관중들에게 링 사이드를 돌면서 일일히 악수하고 포옹하는 등 많은 팬
서비스를 보여줬는데 그 중 단연 최고는 제프 하디와 크리스 제리코.. 특히 제리코는 마지막에 철제 기둥을
기어 올라가서 관중들에게 인사하는 등 깊은 인상을 남겨줬다. 나 역시도 이번 경기로 인해 크리스 제리코
에 대한 인상이 굉장히 좋게 남게되었다는 후문..
 
대진표
 
Jeff Hardy vs Carlito (Intercontinental championship)
Snitsky vs Brian Kendrick
D.H. Smith vs Charlie Haas
Mr. Kennedy vs Val Venis
Hardcore Holly & Cody Rhodes vs Lance Cade & Trevor Murdoch
(World tag team championship)
Candice Michelle (in performance)
Beth Phoenix vs Mickie James (WWE women's championship)
Ric Flair vs William Regal (Career-ending match)
Shawn Michaels & Chris Jericho vs Randy Orton & Umaga (Main Event)
 
포스터도 그렇고 HHH가 나오기로 했다가 못나와서 적잖은 충격이 있었지만 그 역할을 대신 크리스 제리코가 잘 채워줬던 것

같다. 쩝. 나중에 기회가 되면 실제로 미국에 가서 제대로 다시 한번 관람하고 싶다. 꼭 그럴 날이 올 거다.

 

2008/02/11 (월) 00: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