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nikut's Cultural Paradise

k.b.m. collection

b-soap [Souvenir] (2008, Cherrymoon)

tunikut 2008. 12. 23. 14:39

 

음. 음! 음! 목청을 좀 가다듬고.

 

비솝은 원래 크루시픽스 크릭, 버벌 진트와 함께 한때 언더그라운드 힙합씬의 모던보이 3총사 중 한명이었다. 이들은 디엔 미셸이기도

했지만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남들이 치열하게 한국말로 랩을 어떻게 맛깔나게 할까 고민하고 치열하게 뤼얼과 훼이크를 구분하며

치열하게 오버와 언더를 구분하고 치열하게 '한국 힙합 열정의 발자취'를 걸어가고 있던 무렵, 그저 자기들이 하고 싶은 대로 모던락인지

힙합인지 알앤빈지 일렉트로니칸지 뭔지 별로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청아하고 깨끗하면서 세련된 음악들을 만들어가기 위해

노력해오던 모던보이들이었다. 구한말로 따지면 김옥균-박영효-서광범이었다.

 

그리고 6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버벌 진트가 훼이버릿을 들고 우리곁에 노래를 부르며 먼저 치고 나왔고 이에 드디어 드디어 비솝'형'의

데뷔 앨범이 발매되기에 이른다. 오버클래스? 비솝에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왜, 비솝이니까. 비'숍'이 아니다. 비숍은 주목을 못받았

지만 한글자 차이인 비솝은 절대 절대 절대 그런 대우를 받을 뮤지션이 아니다. 한때 그는 버벌 진트보다도 더욱 농도 짙은 '영어식 한국말'

을 내뱉었고 들릴 듯 말듯 읊조리는 롸밍은 청자에게 상당한 tension과 함께 말초를 자극했으며, 신비주의에 둘러싸여 사람인가 목소린가

기계인가 구분이 안가던 인물이었다.

 

자, 그런 그가 정규 앨범을 냈다. 일단은 안들어봐도 그간 그의 휘쳐링 결과물들을 통해 어떤 분위기가 될지 60% 정도는 예측할 수 있다.

그래, 들릴 듯 말듯 읇조리는 영어처럼 굴러가는 한국말 스토리 텔링이겠지. 수록곡이 19곡이나 된다. 으엑, 이거 계속 똑같은 분위기에

너무 지루한 거 아니야?!

 

이제 앨범을 들어보자. 당신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간다. 지루하다고? 천만에 말씀. 최근 몇년간 들어본 한국힙합 앨범들 중에 제일 '않'

지루한 앨범이었다. 앨범은 크게 세 파트다. 트랙 리스팅을 보면 색깔로 구분이 되어있다. 1. '버벌진트스런' 세련되고 재지한 인스트루멘

테이션이 나타나는 전반부. 2. '로보토미스런' 불길하고 이상하고 왜곡된 중반부. 3. '크루시픽스크릭스런' 청아하고 상큼하며 달콤한

후반부.

 

누가 들어도 파워-킬러-오방 타이틀 트랙인 "순간의 노래"의 인상적인 훅, 절대 품질 보증이라고 할 수 있는 버벌진트표 프로듀싱이 빛을

발하는 업템포 비트와 연주가 사람 미치게 만드는 "Midnight Run"을 들으며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한다면, 90년대 초반 변태 하우스 비트

가 생각나는, JA의 왠지 모르게 이상한 비트를 들을 수 있는 "Wontsellmyself", 세기초지만 '언제나 세기말'을 지향하는 불길한 로보토미의

사운드와 천진난만하지만 역시 왠지 이상한 웜맨의 목소리에서 먹어들어가는 "시트콤", 시작부터 저 유명한 '게릿따일 목소리'로 "뚜루루

루루" 노래를 부르며 청자의 기분을 더욱 이상하게 만드는 "Nighthawks" (San의 목소리도 충분히 변태적이다)까지 오면 슬슬 좋았던

기분이 이상해지다가 크루시픽스 크릭이 예의 그만의 오이냉채같은 청아한 사운드와 비솝의 이쁜 가사가 "검은 드레스의 웬디"에서 다시

금 따뜻하게 어루만져주며 "La The Girl Who Followed Sol"에서 완전 사람을 다시 활짝 웃게 만들면서 맨마지막에 YOM의 애잔한 비트

와 사운드가 인상적인 "마주봄"으로 작별 인사를 하고있다.

 

완전 품질 보증 명품 프로듀서들의 명품 사운드! <- 이게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이 앨범을 절대 지루하지 않게 만드는 힘이다. 물론 비솝

만의 개성 강한 목소리와 그만의 스토리텔링 역시 앨범의 사운드와 잘 어울리며 앨범을 지탱하는 또다른 한 축이지만 개인적인 생각에는

역시 프로듀싱의 수혜를 크게 입은 앨범이라는 점은 부인하기가 힘들다.

 

그는 보기좋게, 듣기 좋은 재미있는 데뷔 앨범을 발표했다. 이만하면 SnP 시절부터 그의 앨범을 기다려온 팬들에게는 최고의 데뷔 앨범

이다. 이제 차기작은? 보다 그의 '목소리'와 '이야기'가 주도하는 앨범 혹은 EP가 나오면 어떨까. 그 사이에 깔쌈한 믹스테잎 한 개 정도도

괜찮지 싶다.

 

2008/10/30 (목) 0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