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nikut's Cultural Paradise

tunikut's prejudice

Run The Jewels [Run The Jewels 3] (2016, Run The Jewels, Inc.)

tunikut 2017. 2. 11. 15:22


매번 런더쥬얼스 앨범들 감상문을 쓸 때마다 느끼는 생각이지만, 난 정말로 시리어스하게 런더쥬얼스가 밉다. 이게 어떤 느낌이냐면, 어떤 자존심도 쎄고 나름 지적이고 똑똑한 여자가 어떤 남자를 사랑하는데 이 남자가 존나 나쁜 남자라서 막 바람도 피우고 연락도 잘 안되고 성질도 더럽고 암튼 존나게 나쁜 남잔데 도저히 그 남자의 매력에서 빠져나갈 수가 없어서 결국에는 그 남자의 품에 안겨 "너 미워! 너 미워! 너 미워!" 이러면서 가슴을 막 때리면서 눈물 흘리며 흐느끼는 그런 상황이랄까. 난 그렇게 런더쥬얼스가 밉다. 


매번 런더쥬얼스의 신보가 나올 때면 난 '이번엔 반드시 듣고 실망할테다'라는 마음 가짐으로 임한다. 왜냐고? (농담 아니고) 난 런더쥬얼스가 정말 밉기 때문에. 실제로 처음 한 두번 듣고는 내 예상이 맞았다는 듯 그래, 그럼 그렇지. 그렇다니깐. 존나 이제 예전의 엘피가 아냐. 뭐 이런 식으로 세간의 온갖 칭찬과는 무관하게 혼자 쿨한 척 그들을 냉혹하고 차가운 시선으로 평가를 한다. 왜냐고? 난 런더쥬얼스가 밉기 때문에. 


그럼 도대체 왜 그렇게 런더쥬얼스가 밉냐고? 그 이유는 간단하다. 런더쥬얼스는 내가 사랑하던 "솔로 아티스트로서의 엘피"를 빼앗아간 나쁜 놈이거든. 나한테서 "코플로우-환타스틱다미지-아일슬립웬유어데드" 시절의 그 향수와 추억을 도둑질해간 나쁜 놈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단 몇번을 좀더 각잡고 감상을 해보고, 가사들을 조금씩 음미해가며 듣고, 프로덕션만 따로 귀를 기울여서 다시 들어보고, 전체적으로 랩과 비트의 조화 뭐 암튼 이런저런 것들을 야금야금 곱씹어가며 들으면 들을 수록 결국엔 그 치명적인 매력에 빠져버려서 너무 너무 '나쁜 남자'지만 결국에는 모든 걸 내려놓고 이 나쁜 남자의 품에 안겨버려 "너 미워! 너 미워! 너 미워!" 이러면서 결국 울어버리는 아주 처량하고 가엾는 여인의 모습이 돼버리기 때문에 내 자신이 너무 불쌍해져서 런더쥬얼스가 밉다. 


요 3집은 내가 사실 거의 기대를 안했고 1, 2집 때와는 다르게 성탄절에 딱 나왔을 때도 '어 뭐 나왔네' 이랬다. 몇번 더 들으면서는 글쎄, 뭐 1집 정도로 좋지만, 완전 개미쳤던 2집을 넘어서기는 조금 아쉽나? 이랬는데 몇번 더 들으니 이건 뭐 가히 '런더쥬얼스 최고작'이라고 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지금은 딱 든다. 


길게 쓰기 싫으니 딱딱 할말만 하겠다. 일단 엘피의 프로덕션 자체가 상당히 매끈하고 세련돼졌다. 어떤 부분에서는 살짝 오케스트레이션 같은 느낌을 주는 드라마틱함도 보여준다. down에서 talk to me로 이어지는 부분의 그 세련된 트랜지션을 봐라. 일단 talk to me와 legend has it은 그 어떤 엘피-rtj 킬링 트랙들과 비교해서도 꿀리지 않을 정도의 위용을 자랑하는데, 웅장한 느낌으로 시작해 엘피 특유의 긴박한 드러밍으로 급전환되면서 밀고 당기는 식의 진행이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talk to me도 미치지만, 이것보다 legend has it과 everybody stay calm에서의 그 무슨 롤플레잉 게임 주인공이 마치 스텝을 밟으면서 걸어가는 듯한 진행 방식이 선사하는 기가 막힌 그루브를 듣고 있자면 엘피가 도대체 왜 천재 소리를 듣는지 절감할 수 있다. rtj 음악을 들으면서 항상 느끼지만 다른 이들도 그럴 것 같은데 '이 괴상한 그루브를 만들어내는 엘피의 비트에 아주 그냥 청자의 귀에 손가락을 넣고 돌리며 후벼파는 것 같이 쏙쏙 박히는 킬러 마잌의 랩은 이들의 음악을 매력있게 만드는 또 하나의 요인이다. 


비트면에서는 남부 스타일의 bpm에다 엘피의 개성을 얹었던 이전 앨범들에 비해 좀 다른 것이, 살짝 상업적인 요소들을 가미했는데, 이게 어떤 느낌의 상업적인 거냐면 90년대 말 '지기 사운드' 등으로 불리우던 대표적인 상업힙합이 줬던 엇박 스타일의 치기치기거리는 비트를 말하는데 여기다가 엘피 특유의 기계적이고 차가운 베이스라인과 적절한 노이즈를 얹으니 꽤 괜찮은 화학반응을 이끌어냈다는 것이다. 선동-파티송인 hey kids나 stay gold 등 같은 트랙들이 그런 예다. 이번 앨범에서 또 좋았던 부분은 2100 도입부에서 cannibal ox 데뷔작 시절의 그 마치 우주를 유영하는 듯한 엘피 프로덕션 느낌이 살짝 나와서 올드팬으로서 반가웠던 거고, (내가 존경해마지 않는) 트렌트 레즈너 대왕님의 영향을 받은 엘피가 don't get captured 중간에 살짝 살짝 등장하는 나인 인치 네일스 전성기 스타일의 그 묵시록적인 키보드음을 넣은 거나, oh mama를 이끌어가는 그 묵직한 나인 인치 네일스 스타일의 인더스트리얼이 나오는 부분이다. 


이 앨범에서 가장 이례적인 트랙은 역시 panther like a panther인데 '엘피골수팬'이라면 약간 실망할 수도 있는, 엘피식의 트랩이라고 보면 될 듯 한데, 뭐 난 엘피 골수팬이지만 이 곡을 들을 때마다 뭐 어떻게 몸을 주체할 수가 없어서 춤도 아니고 막 병신같이 그냥 몸을 흔들기만 하는데 아마도 엘피가 지금까지 만들어낸 수많은 프로덕션들 중에서 '최고의 댄스 뮤직'이 아닐까 한다. 내 손바닥 위를 걸어가는 황색포도상구균도 몸을 흔들 만한 곡이다. 


많이들 느꼈던 부분이지만 '씨발다좆까나니네다죽이고돈털고마약하고여자랑섹스할거야'의 느낌이 주를 이루었던 1집과 2집에 비해 이번 같은 경우는 이 사람들이 좀 진중해졌는데 앨범 전체를 지배하는 느낌이 보다 정치적 메세지를 많이 던진다는 느낌이 더 컸다. 아무래도 한국의 탄핵 정국을 염두에 둔 것이 거의 확실한데, 멀리서나마 이렇게 한국의 정치 상황을 걱정해주니 그저 고마울 뿐이다. 


앨범을 끝내는 방식 역시 상당히 마음에 드는데, 1집에서는 크리스마스 훡킹 미라클의 그 뭉클한 메시지와 끝을 장식하는 진한 블루스 기타 솔로가 고마웠고, 2집 angel dust에서도 역시 가슴 저리는 메시지와 대미를 장식하는 모던-크리에이티브 스타일 (내가 존나 좋아하는 유리 케인 스타일, 세실 테일러 스타일 뭐 그런 뚱땅뚱땅거리는 거)의 피아노 솔로가 죽이게 좋았는데, 그를 잇는 thursday in the danger room은 여지껏 '감동 대미곡'들 중이서도 으뜸이라고 할 수 있는게 내가 너무 좋아하는 '노이즈(!)'를 중심으로 이끌어가는 프로덕션과 후렴구의 눈물 찔끔거리게 만드는 가사 "널 곧 볼 거라고 했는데 실상은 널 매일 봐. 너가 너무 일찍 떠났다고 했는데 사실 넌 떠난 적이 없어" <- 이게 이게 이게 이게 이게 어떻게 이런 백만불 짜리 가사가 나올 수가 있냐고.. 아 진짜.. 


근데 이 앨범이 더 멋진 건 이게 끝곡이 아니고, 이렇게 우울 모드로 방구석에 딱 쳐박혀서 불끄고 있다가, 그래.. 그냥 현실에 순응해야지.. 하면서 a report to the shareholders에서 현실에 순응하고 체념하는 듯 하다가.. 끝에 가서 킬러 마이크가 "우린 하지만 끝까지 적대적으로 남을 거야" 한마디 던지고 갑자기 분위기가 위유우우웅~ 거리면서 전환이 되는데 여기서 또 한번 cannibal ox 1집에서 맨 마지막에 pigeon에서 뉴욕시의 하층민으로 살아가나.. 싶다가 갑자기 날개를 펼치고 솟구치면서 scream phoenix로 바뀌는 그 극적인 반전을 다시 한번 연상을 시켰다고!!!!! 아 진짜.. 그러면서 예의 엘피 특유의 다크한 베이스라인에 스타카토 드러밍을 resume시키면서 다시 공격적인 랩을 주고 받으면 도대체 어쩌냐고.. 아 진짜.... 근데 그러다가 또 반전으로 잭 델라 로카가 나와서 마무리랩을 해버리면 어쩌냐고 정말 어째.. 런더쥬얼스 미워!!!!!!!!!!!!!!!!!!!!!!!!!!! 가 이제 가란 말이야!!!




      항상 내 감상문을 칭찬 해주는 엘피형. 


 



이 형들 실제로 공연장에서 보면 이런 느낌 (나 오늘 왜 이렇게 업됐지. 안하던 사진도 올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