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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nye West [The Life Of Pablo] (2016, GOOD/Def Jam)

tunikut 2016. 2. 28. 03:18


간만에 익사이팅한 앨범 들어서 리뷰 아닌 리뷰를 끄적거리게 됐는데 뭐 존나게 바쁜 생활 속에 나 아직도 음악 업데이트 하고 있거든 정도의 표현으로 봐도 되겠지만 하여간 왜 이런 건 우리 주변에서 여러 상황에서 볼 수 있는데 일단 '전문가'가 돼버리면 만사 편하게 해도 결과물은 끝내준다는 거 다 알거다. 요리사가 정확하게 자로 잰듯한 레시피로 완벽하게 구현해낸 음식을 칸예로 치면 mbdtf라고 비유를 하자면 그 이후부터는 이제 레시피 따위는 필요없고 대충 손으로 고추가루랑 소금이랑 설탕 움켜쥐고 뿌려도 훌륭한 맛이 나오는 것과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칸예는 이제 시골에서 맛있는 밥상을 차려주는 고향집 할머니가 된 느낌이다. 


yeezus부터 느꼈지만 뭔가 weird함에 경도돼버린 칸예같은데 이번 앨범을 들으면서 조심스럽게 이제 더 이상 칸예는 mbdtf와 같은 자로 잰듯한 마스터피스를 창조할 마음은 별로 없어보이고 그닥 그런 것에 관심도 없어보이고 뭐 의류나 다른 데 대한 관심도가 음악과 같기 때문에 완전히 초집중해서 스튜디오에서 소파잠 자고 씨리얼 먹으면서 작업하고 싶은 기분도 안들거지만, '아트'에 대한 마인드는 오히려 그 전보다 하늘을 뚫을 듯이 강력하기 때문에 '형식'에 얽매이기 보다는 100% '감성'에 완전히 때려붓는 듯한 느낌 쪽으로 가는 듯 하다. 


이번 앨범을 두고 유기성이 떨어진다라거나 주제가 하나로 집중되지 않는다라는 평이 있는 것 같은데 내 생각은 그렇지 않고, 앨범을 들으면서 참으로 칸예가 자기자신의 '정신세계'에 오롯히 '집중'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오히려 '주제의 통일성' 면으로 치자면 808이나 mbdtf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yeezus가 오히려 tlop보다 더 산만했음), 유기성이 떨어진다는 평은 '사운드'적인 측면에서 이야기 되는 것 같은데 오히려 유기적인 형식을 버리고 꼴라쥬처럼 오로지 '의식의 흐름'에 맞춰 배열했다는 점에서 마치 j dilla의 donuts에서 느꼈던 희열감 마저 느낄 수 있다. 게다가 요즘 (힙합) 음악에서 그다지 크게 대두되지 않는 '샘플 운용'을 칸예는 이번 앨범에서 오히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대놓고 과용을 하면서 다시금 칸예가 왜 트렌드에 이끌리지 않는 사람인지를 느낄 수 있다. (이번 앨범에서의 샘플 사용에 대해 개인적으로 정말 놀랐음) 똑같이 샘플들을 드럽게 붙여서 비트를 만드는 madlib이 왜 이번 앨범에 관심을 두고 있는지 (자기 인스타에 테스트프레싱 바이닐 사진도 올리고 자기 레이블인 rappcats에 칸예 포스팅도 하면서) 이해가 가는 부분이기도 하다. 


도대체 왜 한물(갔다고 생각되는)간 오토튠을 과용하는지에 대한 물음에 오히려 일그러진 정신세계를 이만큼 잘 표현할 수 있는 장치가 있겠냐 싶을 정도로 오토튠 자체를 '예술적 장치'로 활용하고 있으며, 앨범을 듣다보면 신에 대한 갈구와 성스러움, 그리고 불경스러움 사이의 긴장감을 기막히게 아슬아슬한 외줄타기처럼 표현해놨는데, 마치 '이거 가스펠 앨범 같은데 어우 왜 이렇게 드럽지 이거 이래도 돼나' vs '어우 이거 힙합 앨범인데 왜 이렇게 성스러워 이게 이래도 되는 거 맞음?' 사이의 싸움이라고나 할까? ultalight beam, waves, real friends에서의 뭔가 마음에 확 와닿는 짠함도 좋지만 freestyle 4의 인트로나 FML의 아웃트로에서 느껴지는 괴상하다못해 괴기스럽고 으스스하고 뒤숭숭한 느낌도 너무나 사랑스럽다. 이 앨범을 더욱 차별화 하는 부분은 앨범을 아무리 들어봐도 정말 피곤하기 그지없는 돈-물질-자기과시 등 단물이 다 빠지다못해 '아직도 그러고 사냐'의 느낌을 주는 가사는 단 한군데도 찾아볼 수 없으며 (내가 에미넴을 높게 샀던 이유), 오로지 자신의 내면 갈등, 두려움, 믿음, 사랑.. 뭐 그런 등등의 '실질적인 정신세계'에 집중하고 있다는 거다. 그뿐인가? 정신없이 꼴라쥬처럼 이어지는 진행과, yeezus의 분위기를 잇는 뭔가 텅빈 느낌 사이사이에도 여전히 몸을 흔들 수 있는 킬링 트랙들이 꽤많이 포진돼있다는 점에서도 단언컨대 이 앨범은 yeezus보다 사랑스럽다. 개인적으로 karriem riggins가 참여한 30 hours의 그 80년대 말 스타일의 비트는 왜 그렇게 좋은지 미치겠다 썅. 


yeezus에서부터 느껴졌던 칸예의 '시카고 하우스'에 대한 관심은 결국 아예 대놓고 샘플들을 덕지덕지 풀로 붙인 이번 앨범의 마지막 트랙 fade에서 결국 폭발해버리고 마는데 fingers inc (larry heard)의 mystery of love와 barbara tucker의 유명한 시카고 하우스 트랙이자 하우스 조금만 들은 사람이면 정말 지겹도록 들었을 deep inside나 i get lifted의 아카펠라 샘플들을 덕지덕지 풀로 붙여서, 그닥 칸예가 별달리 크게 한 것도 없이 그대로 하나의 트랙을 만들어버린 것에서 정말 lol할 수 밖에 없었다. 


조심스레 이제부터 아마도 슬슬 칸예는 더더욱 아방가르드하고 혼란스러운 음악쪽으로 빠지게 될 것 같다는 예상을 해보는데 매너리즘에 빠지지만 말고, 제발 약물중독이나 뭐 자살 이런 쪽으로 방향을 돌리지 말고 적당히 정신세계 안정을 유지하면서 '개미친지랄' 쪽으로 방향을 쭉쭉 정진한다면 아마도 힙합계의 비틀스나 마일즈 데이비스로 먼 훗날 기억되지 싶다. 원래 칸예 웨스트의 '팬'은 정말 아니었지만 이번 앨범 듣고 팬하기로 했다. 정말 멋진 앨범 고맙다. Good Work. Kanye!